나는 공포 게임이 싫다. 중요하니까 두 번 말한다. 나는 공포 게임이 싫다. 이전 지스타에서 '화이트데이: 스완송'을 플레이했을 때도 그랬고, 그 언젠가 '이빌위딘2'를 플레이했을 때도 그랬다. 무언가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나를 잡아채거나 놀라게 하는 경험은 개인적으로는 피하고 싶은 것들이다.
VR/AR 엑스포 2018에서 시연된 '화이트데이: 담력시험'도 마찬가지다. 테마파크에 맞게 형태가 바뀌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틀은 변하지 않는다. 때때로 귀신이 나오고, 사람을 놀라게 한다. 그리고 이건 내게 극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지난 3월 테마파크에 설치를 시작한 '화이트데이: 담력시험'은 잘 만든 게임이며, 영리한 방법으로 2인 플레이를 지원하는 게임이다. 그것도 양쪽이 만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 CASE #A. 사람을 놀라게 하고 싶은 욕망
시연 직전 지원 인원수가 '2인'이라고 적힌 것을 보며 의문을 가졌다. "분명 HMD는 한 대인 것처럼 보이는데, 왜 2인 플레이지?"하고. 그리고 시연을 도와주는 직원이 "아 한 분은 놀라게 하는 역할입니다"라고 했을 때의 김규만 기자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그 악마 같은 표정. 사람을 골려줄 생각에 신이 난 그 표정을 말이다.
화이트데이: 담력시험은 이렇게 두 파트로 나뉘어 게임이 진행된다. 한 명은 공포를 지배하는 역할, 다른 한 명은 공포를 느끼는 역할이다. 당연하게도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는 큰 차이가 있다. 플레이어 B가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동안 플레이어 A는 클리어 목표인 소품들을 이리저리 숨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플레이어 B가 알 수 없도록 진행된다. (실제로 체험이 끝나고 나서야 김규만 기자가 소품을 숨겼다는 것을 알았다)
플레이어 A가 가지고 있는 권한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기도 하다. 석고상을 떨어뜨리거나, 캐비닛의 문을 여닫거나, 물건을 이리저리 흔드는 정도다. 하지만 공포 분위기에 있는 플레이어 B에게는 매우 효과적이다. 분명히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지만, 한 발자국 물러나서 조작하는 것만으로도 느끼는 감정은 달라진다. 사람을 놀리거나 장난을 걸 때의 느낌과도 비슷하다. 상대가 놀라는 모습에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효과적으로 놀라게 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낀다. 미리 배치된 소품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다. 심지어 타블렛 화면에는 상대방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도 나타난다. 실제 게임 플레이 화면도 상대방에게 보여주니, 효과적으로 비명을 지르게 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놀란다면? 성공이다. 플레이어 A는 극도의 쾌감을 얻는다.
분명 공포게임임에도 웃음소리와 비명이 동시에 나오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한 명의 사람을 놀라게 만들 생각에 즐거움에 휩싸인다. 더불어 만들어 진 것이 아닌, 사람의 조작을 거치므로 더욱 효과적이고 예상할 수 없는 방향에서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상대가 놀라게 되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 CASE #B. 놀라는 자의 비명소리. 그리고 리액션
자, 그럼 HMD를 착용하고 놀라야 하는 플레이어 B의 입장이 되어본다. 일단 VR인 만큼, 주변 상황과 차단이 이루어진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HMD로 펼쳐진 세계이며, 양쪽 귀에는 스산한 소리가 들려온다. HMD 밖에서 들리는 이야기와 소리는 게임 속의 분위기로 대체된다. 당신은 이제 담력시험을 위해 스산한 교실로 들어갈 때다.
조작은 간단하다. 트랙패드로 이동하고, 몸은 방향을 정할 때만 회전한다. 일부 제한이 있는 조작이긴 하지만, 불편하므로 템포는 오히려 느릿느릿하다. 그래서 주위 환경을 조작하고 있는 A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B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쉽게 대응할 수 있다. 게다가 '찾아야 하는 무언가'를 목표로 제시했기에 게임 속에 있는 대부분의 오브젝트를 눈 여겨 봐야 한다. 심지어 한두 개도 아니다.
따라서 B는 필연적으로 놀랄 수 있는 완벽한 환경에 노출된다. 작은 것들을 조작하는 것은 얼핏 보기엔 미미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조건 작은 것들에 집중해야 하는 환경, 스산한 분위기가 배경으로 주어진다면 매우 강력한 도구로 변한다. A에게는 사람을 놀라게 만들 최고의 무대이고, B에게는 숨 쉬지 못할 정도로 급습이 이루어지는 게릴라 전장이다.
이쯤 되면 B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온갖 도구와 창문, 문들을 여닫을 수 있는 것은 폐쇄된 교실에서는 막강한 권한이다. B는 그저 비명을 지르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명확한 목표를 주므로, 이를 자신의 실력과 담력으로 해결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래 봤자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싶다. 놀라는 것이 게임으로 들어간 B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게임 내적인 면에서는 목표 구성이나 디자인을 칭찬할 만하다. A가 숨겨둔 물체들을 이리저리 찾아보는 과정은 묘하게 긴장감을 자아낸다. 무대의 큰 구성이 아니라 작은 것을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공포가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가까이 가야 한다는 점이다.
무언가에 시선을 집중하고 가까이 접근할수록 시선은 물체에만 꽂힌다. 주위 환경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으므로, 외부에서 오는 조작은 오히려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B는 또 놀라고, A에게 웃음을 준다. 게임 외부에 있는 A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다름 아닌 B의 놀람, 리액션에서 나오는 셈이다.
■ CASE #C. 예상외의 복병, '머리귀신'
이외에도 제3의 존재 '귀신'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플레이어 A의 통제를 받지 않는 요소들이다. 시리즈 전통의 머리귀신과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통제할 수 없는 몇몇 요소들은 플레이어 A와 B 모두에게 있어서 공포의 요소가 된다. A는 게임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갑자기 등장하면서 일말의 공포감을 준다. 물론 안전한 위치에 있는 만큼, 잠시간의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공포 속에 있는 플레이어 B에게는 머리귀신은 A의 조작으로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지 계속 당해왔기 때문이다. 불신 속에서 엄습하는 공포이기에, 더욱 인상은 깊다. 머리귀신은 움직이지 않으면 등장하는 것임을 알아도 A를 원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 머리 귀신은 마치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다가온다. 이전 시리즈에서는 모니터 속 화면의 멀리에서 갑자기 '훅'하고 다가왔다면, '화이트데이: 담력시험'의 머리귀신은 화면 속과 나의 시선 사이에서 다가오는 느낌을 받는다. 입체감이 있는 VR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마치 앞머리가 내려오는 느낌과도 같다. 그것도 '슬금슬금' 예고를 하고 찾아오는 공포다. 그렇기에 더욱 끔찍하고 소름이 돋는다.
더불어 게임의 시간제한은 플레이어를 계속해서 몰아붙인다. 왼손의 시계를 쳐다보면서 플레이어는 동작을 멈추거나,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시스템적으로 시각이 비는 틈을 만들어내면서 연출로 양쪽을 놀라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플레이어 A 또한 플레이어 B의 시점을 공유하므로, 둘의 예상외에서 무언가가 갑자기 등장한다면, 당연히 둘 다 놀랄 수 밖에 없다.
이렇듯 '화이트데이: 담력시험'은 사람의 오묘한 욕구들을 모두 뒤섞어 훌륭한 2인 플레이로 만들어냈다. 한 명은 HMD외부에서 게임을 조작하고, 다른 한 명은 HMD 내에서 게임을 체험한다. 그리고 게임 외부 내부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도 공포감을 줄 수 있을 만한 요소들을 갖춰뒀다.
그렇기에 '화이트데이: 담력시험'은 잘 만들어진 게임이다. 그리고 VR 테마파크라는 장소적 특수성을 고려해서도 메리트가 있는 콘텐츠다. 소재는 공포지만, 연인은 물론이고 어느 관계에서도 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형태라고 평가하고 싶다. 혹여나 '화이트데이: 담력시험'을 발견하거든, 반드시 플레이하길 권한다. 그만한 가치와 완성도가 있는 콘텐츠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