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트릭컬',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있다

칼럼 | 윤서호 기자 | 댓글: 18개 |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학창 시절 때 자주 이런 말을 듣곤 했을 거다. 한 번 저지른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조심하라는 그런 의미지만, 때로는 엉뚱한 답을 들고 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닦아낸 뒤에 짜낸다던가, 흙을 퍼내서 증류시키면 되지 않겠냐는 그런 답변 말이다. 물론 그걸 마실 수나 있겠냐는 반발이 오기 마련이지만, 개중엔 그걸 꽤나 진지하게 말하는 친구도 있어서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만일 무인도 같은 곳에서 그 물을 그냥 닦고 버리거나 내버려두겠냐는, 그런 엉뚱한 답을 진지하게 해서 놀랐던 적이 있다.

원래대로라면 정식 출시를 했겠지만, 여러 이슈로 인해서 OBT로 일시 전환했다 재출시 준비 중인 '트릭컬'을 보며 새삼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생각보다는, 당혹스러움이 앞섰다. 디얍 특유의 귀여움과 이를 살리기 위한 폴빠의 톡톡 튀는 스토리, 양념 같은 BGM은 좋았지만 그뿐이고 나머지 부분은 다 하나씩 나사가 빠진 상태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출시 초였고, 결제 오류를 비롯해 여러 치명적인 오류까지 겹쳐져서 테스트 체제로 전환했던 게 다행일까.

물론 그간 꽁꽁 숨어있던 게임플레이가 다 드러나버렸으니, 어찌보면 이미 엎질러진 물인 셈이다. 이미 많은 시선들이 보고 있던 만큼, 그간 드러났던 치부는 없던 일로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걸 그냥 돌이킬 수 없다고 내버려둘 수도 없는 상황이지 않던가. 그래도 정식 출시에서 테스트로 바뀌었다는 한 장의 필터가 있으니, 어떻게든 수습하고 걸러내서 다시 내온다는 선택지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냥 '엎질러진 물'이라고 말하면서 다음에 잘하자고 넘어가는 건 당사자가 할 일은 아니긴 하다. 엎질러졌다면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도리 아니던가. 물론 그런다고 해서 완벽히 해결되진 않는다. 물을 어떻게든 주워담을 수 있다고 악을 쓰더라도, 100% 그대로 완벽히 주워담을 순 없다는 건 과학 아니던가. 그 한 번의 실수로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완벽히 찾아올 순 없다.

유저의 신뢰든 관심이든 다시 그 자리를 찾아온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또 가까스로 찾아온 그것들이 다시금 그렇게 돌아설지 모를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발을 걸쳤다는 건지 이미 많은 사례를 통해서 증명되지 않았던가. 일례로 에픽세븐은 2년에 걸쳐서 패치와 업데이트를 진행해서 다시 겨우 궤도에 올려놓았다. 그럼에도 아직도 외부 인식이 썩 좋지 않다. 언제든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불신감이 싹 가시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 정도면 나은 편이다. 헬적화 논란이 불거졌던 퍼니싱이나 영원한 7일의 도시 등, 몇몇 게임들은 이슈가 불거진 뒤 개선을 거쳐도 재조명받지 못하고 하락세를 이어가거나 서비스 종료까지 가기도 했으니 말이다.

서버 이슈 때문에 게임을 재출시한 가장 유사한 사례를 꼽자면 라스트 오리진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라스트 오리진은 상황이 조금은 달랐다. 게임 자체 퀄리티는 썩 괜찮았고, BM 자체도 준수했다는 평을 받았는데 서버가 말썽이라 이후를 기대할 법도 했기 때문이다. 이후 심의 문제로 마켓에 내려갔을 때도, 유저들이 기다려줄 만큼 호응을 이미 얻은 상태였다. 이런 게임을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유니크함과 그간 꾸준히 해온 소통, 그리고 나름 잘 구축한 게임플레이를 보여줬으니 말이다. 물론 아직도 서버와 클라이언트 최적화는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중간에 스토리와 몇몇 시스템에서 한 번씩 크게 엇나가서 위기를 맞은 적도 꽤 있다. 그럼에도 그 핵심은 꽉 잡고 있으니, 한 번 물이 쏟아진 걸 수습한 뒤로는 다시 완전히 쏟아지는 것만은 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까.

트릭컬은 그에 비해서 게임플레이, BM도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나왔다는 것이 중론이다. 즉 코어가 갖춰지지 않았으니 언제든 고꾸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유저들 사이에 감돌았다. 이를 정면에서 타파하기 위해서 한정현 대표가 빠르게 직접 등판하고, 경위에 대해서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회사 규모가 작다고 하지만 이슈가 불거진지 몇 시간만에 직접 대표가 등장하고, 밤늦게 발표안이 문제가 발생하자 그걸 몇 시간 뒤 새벽에 바로 개선안을 내놓는 등 자세를 보이면서 유저들의 화는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렇지만 미리 보여준 게임플레이의 밀도나 양이 적었기 때문에, 다시 수습해서 내놓는다고 해서 얼마나 개선될까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에 트릭컬은 그간 캐릭터만 일부 공개하던 것과 달리, 유저들이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피드백을 받기 위한 자리들을 하나둘씩 마련하며 부족했던 것을 보충하고자 하고 있다. 현재 GM 노트를 주간으로 연재하면서 유저들의 주요 질문에 답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리세계정 판매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론 트래픽을 감당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해외 IP를 차단했다는 다소 부끄러울 수 있는 고백까지도 털어놓았다. 아울러 GM 노트 말미에는 투표를 통해서 피드백을 거치고 있다. PVP나 콘텐츠 방향 등, 유저들이 민감해할 수 있는 방향도 가감없이 털어놓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원래 10월 재출시 예정이었으나 무기한으로 연장하고, 연내 최소 한 번의 CBT를 약속하는 등 트릭컬은 다시금 수습하기 위한 기나긴 과정에 돌입했다. 물론 디얍이라는 치트키를 썼음에도 첫 인상이 너무도 실망스러운 나머지 시니컬하게 돌아선 유저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트릭컬만이 갖고 있는 유니크함, 그리고 개선 약속과 수습하는 과정을 믿고 지켜보고 있는 유저도 있다. 한 번 엎질러졌어도, 그걸 수습해서 다시 살린 케이스가 아예 없진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개발진이 지금 꽤나 절박한 상황이니, 그 상황에서 장난을 치겠냐는 그런 반응이 있기도 하다.

트릭컬은 이제 기적적으로 한 번, 엎어졌던 걸 수습해서 다시 내놓을 기회를 쓰고 있다. 엎어진 물을 다시 주워담을 수 없으니 처음부터 잘한다는 건 이미 지나간 상황. 물론 다신 그런 일이 없도록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임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다. 그것이 지나친 나머지 신중함을 가장해서 이도저도 못하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인데, 트릭컬은 치부까지 드러내고 유저들의 피드백을 더 적극적으로 받기 위한 투표도 하는 등 과감하게 나서고 있다. 테스트를 거치면서 게임이 확연히 발전한 사례는 꽤 있으니,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귀여운 볼따구만으로는 유저들이 만족하지 못한다는 걸 안 트릭컬이 이번에 어렵게 잡은 기회는 놓치지 않길 바란다. 한 번은 어렵게라도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 있을지 몰라도, 두 번째는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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