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디아블로3는 왜 '레저렉션' 하지 못했나

칼럼 | 강승진 기자 | 댓글: 330개 |



"아, 태학아! 대기열좀!"

팀원이 대체 언제 팀장 이름 마음대로 불러보랴. 하지만 이번엔 진짜 인정해 줘야 한다. 특히 콘솔로 즐기는 팬이라면 디아블로2 레저렉션 즐기기 너무 힘들다. 퇴근 후 저녁 시간에 게임 좀 해보려고 하면 기자든 블리자드 대표든 누구든 찾아야 겨우 데커드 케인 얼굴 구경할 수 있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서버를 만나기 워낙 어렵다지만 게임이 욕하고, 화내면서도 계속하고 싶을 만한 재미를 준다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개인의 감정만도 아니다. 인벤에서 집계하는 유저 투표는 물론 PC방 순위 등 각종 지표에서 20년 만에 돌아온 디아블로2의 이름이 다시 박혔다. 재미라도 없으면 모르겠는데 그래서 더 화나는 거겠지.

디아블로2에 관한 관심과 흥행에 대한 찬사, 분석, 그리고 아쉬움과 단점은 출시 후 더러 언급됐으니 오늘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20년 전에서 시간을 조금만 앞으로 돌려보려고 한다.

약 10년 전, 그때 블리자드에는 디아블로3가 있었다. 그리고 디아블로3는 분명 오늘날 레저렉션이 보여주는 디아블로 고유의 맛과는 다른 게임이었다.




디아블로3는 시리즈 전통을 따르는 쿼터뷰 시점의 파밍 기반 핵앤슬래시 RPG에 스토리도 전작들과 한 줄기로 이어졌다. 또 게임 만족감이야 어쨌든 관심과 흥행, 평단의 평가 등 쉽게 깎아내리지 못할 업적을 다수 이뤄냈다. 출시 하루 만에 350만 장이 판매되며 가장 많이 팔린 PC 비디오 게임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고 출시 당시에는 훗날 204주 연속 PC방 점유율 1위를 기록할 리그 오브 레전드를 1위에서 끌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디아블로3에서 유저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건 디아블로2와 다른 길을 가는 게임의 방향성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이런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는 개발진이 직접 다루고자 하는 경제 시스템, 나아가 경매장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디아블로2의 게임 디자인은 간략함 속에 여러 요소를 거미줄처럼 엮어내 확장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구성했다. 누구든 마우스 클릭과 키보드 몇 개로 퀘스트를 받고 던전에서 몬스터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파고들면 제한된 스킬 포인트와 장비의 여러 부속 옵션 조합, 참을 통한 인벤토리 내에서의 강화, 룬이나 주얼, 보석 등 장비에 결합되는 장식물 등 다양한 요소가 직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논문급으로 쏟아져 나오는 공략이나 분석에서 알 수 있듯 배우긴 쉽지만, 공략 없이 통달하기엔 파고들 요소가 한없이 많은 게임인 셈이다.

반면 디아블로3는 플레이어의 손이 가는 부분을 최대한 압축시켰다. 스탯은 레벨업에 따라 자동으로 결정되고 스킬은 언제든 다시 선택할 수 있어 효율 높은 빌드를 짜는 게 유리하도록 구성됐다. 정확히는 그렇게 강요됐다. 플레이어가 다룰 수 있는 영역이 한정되며 몬스터도 그저 단순히 진행에 따라 강해지는 식으로 그려졌다. 플레이어의 조작이나 잔꾀보다는 더 좋은 직업, 그리고 강력한 무기가 게임을 유리하게 만들도록 단순화됐다.

플레이어는 상위 레벨로 나아가기 위해서 좋은 직업에 말도 안 되는 확률을 뚫어 꼭 맞는 아이템을 얻어야 했다. 마땅한 아이템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게임에서 손을 떼거나 경매장을 뒤지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디아블로3의 이런 디자인은 얕아진 게임플레이의 깊이와 함께 이미 내 돈 주고 산 게임에서 또 돈을 내고 아이템을 구매해야 한다는 경매장의 심리적 저항감과 맞부딪혔다. 인게임 재화를 통한 현금 거래는 존속하던 외부 거래소로 옮겨가기도 했다.



▲ 현금 경매장은 국내에 도입조차 되지 못했다

결국 경매장으로 귀결되는 디아블로3의 경제는 파괴됐다. 팬들에게는 역적 취급을 받는 전 디렉터 제이 윌슨 역시 경매장의 실패,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이후 새로운 디렉터와 함께 공개된 확장팩은 경매장을 포함해 디아블로3의 많은 부분을 찢어 다시 붙였고 기존의 아쉬운 평을 뒤집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허술한 기존 게임의 틀 위에서 다져진 만큼 디아블로2가 걸었던 길로는 되돌아갈 수는 없었고 시즌제와 강력한 빌드로 게임 방향이 결정되는 오늘날의 디아블로3가 되었다.

게임 속 경제가 단순히 수요와 공급을 넘어 게임의 밸런스와 디자인에도 영향을 주는 만큼 경제를 통제하지 못한 경매장의 실패는 디아블로3 1.0의 실패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디아블로3의 경매장은 당시 꽤 이례적인 사업 모델이었다. 특히 블리자드의 그간 움직임을 보면 더욱 그랬고 말이다.

블리자드는 잘 만든 게임을 많이 팔아 수익을 내는 회사였다. 게임과 달리 획기적인 사업 모델을 만들거나 놀라운 비즈니스 포인트를 잡아내는 곳은 아니었다. 블리자드를 손꼽히는 대형 게임사로 만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여러 온라인 게임이 부분 유료화로 넘어가기 시작한 상황에서 정액제를 고수했고 하스스톤과 오버워치에 루트박스가 도입된 건 루트박스 시스템이 전 세계에 자리 잡은 팀 포트리스2에서 수년이 지난 후였다.

그런 의미에서 성공과 실패를 떠나 디아블로3의 경매장 도입은 꽤 큰 도전이었으며 이런 선택 뒤에 있는 기존 디아블로의 흥행 방식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디아블로 시리즈는 캐릭터를 키우고 보스를 잡아 나간다는 전통적인 싱글 플레이 문법을 가진 게임이다. 그래서 게임도 단일 패키지 형태로 판매됐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한 번에 조작할 수 있는 캐릭터는 다양한 직업 중 한 하나에 불과하다. 여러 직업의 캐릭터가 서로 만나 팀을 이루고 수많은 장비, 그리고 스토리 최종 보스 이후의 콘텐츠가 더해지며 게임은 싱글 플레이 게임이면서도 멀티 플레이 게임의 색을 더 강하게 냈다.

출시 이후 게임은 멀티플레이에 점점 더 가까워지지만, 여전히 단일 패키지 게임이다. 게임을 통해 수익을 내는 방법은 아직 게임을 사지 않은 사람들에게 게임을 판매하는 법뿐이며 그러면서도 플레이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세계, 서버는 꾸준히 돌아가야 한다. 즉, 유지비가 계속 나가는 구조다.

대신 디아블로2를 통해 수익을 내는 블리자드 바깥의 사람들은 수없이 많았다. 다른 이들의 캐릭터를 빠르게 성장시켜주는 버스 기사는 하루에 수십 번 같은 장소를 돌며 버스비를 챙겼다. 온종일 '앵벌이'를 반복하며 아이템을 챙긴 이들은 수요와 희귀성을 명목으로 가상의 아이템을 현금화했다. 그리고 블리자드와는 관계 없는 곳들이 중간 단계에서 수수료를 챙겼다. 그리고 그건 20년이 지난 오늘날 레저렉션과 함께 다시 반복되고 있다.

이들은 블리자드가 하지 않은 역할을 대신하며 돈을 번 것이지만, 블리자드에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역할로 보일 법했다. 어쩌면 블리자드는 경매장을 '스스로 만든 게임으로 자신들이 챙겨야 할 이익을 얻으려는 정당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물론 유저들이 구축한 경제 체제를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으리라 얕잡아봤고, 그 얕잡아 본 시스템에 취해 정작 게임이 가져야할 만듦새를 놓쳐버렸지만 말이다.




이제 시계를 20년 전, 10년 전에서 오늘날로 맞춰보자.

드롭 아이템이 아니라 뽑기 아이템이 더 큰 가치를 가지는 MMORPG에서는 아이템 거래가 가능한 경매장 신설을 요구하는 이야기가 채팅창을 뒤덮는다. 부족한 창고의 추가는 게임의 과금 아이템이 된 지 오래고 플레이에 따라 보상을 얻는 배틀 패스는 시즌제로 돌아가는 게임에 필수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게임사들은 단순히 과금 시스템의 분화를 넘어 게임 속 경제를 이해하는 데도 많은 애를 들이고 있다. 밸브는 가상 경제 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훗날 그리스 재무장관까지 맡게 되는 경제학자 야니스 파루파키스를 영입하기도 했을 정도. 게임 경제의 완성도가 곧 게임의 성공과 연결되는 다수의 모바일 MMORPG 역시 이쪽 연구에 힘쓰고 있다.

즉, 블리자드가 새로운 디아블로에서 참고할 만한, 시도할 만한 검증된 수입원이 꽤 많다는 의미다. 특정한 시스템에 맞춰 게임 밸런스를 어그러트릴 디자인을 감행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모바일 버전의 디아블로 이모탈에는 착용 장비의 거래는 제외한 새로운 경제 체제 기반의 경매장이 준비 중이며 배틀 패스도 예고되어 있다.

디아블로2 레저렉션이 보여준 성공 역시 게임이 나아갈 방향성을 다시금 검증하기도 했다. 디아블로3는 게임의 복잡한 개성을 불편함이라는 이유로 압축했고 잔혹함과 불쾌함은 더 넓은 판매 타깃층을 위해 순화했다. 하지만 예전 디아블로의 복잡하고 기괴함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먹혀들었다. 굳이 모두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만들지 않아도 게임은 통한다.

여기에 유저들이 뭘 불편해하는지 제대로 짚어낸 디아블로3 확장팩 이후의 업데이트 행보를 보면 게임 편의성 개선 능력은 이미 검증됐다. 밸런스 탓에 손을 대기 어려운 디아블로2 레저렉션과 달리 새로운 신작들은 편의성마저 챙길 수 있다. 어쩌면 서버 이슈가 좀 잠잠해진다면 추가 인벤토리나 배틀패스 등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템을 디아블로2 레저렉션에 추가할 수도 있고 말이다.




복잡함에서 나오는 선택권은 유지하면서 불편함은 덜어내며 유저들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 레저렉션을 통해 20년 만에 증명된 공식과 오늘날의 상황은 어설픈 디자인으로 디아블로3가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디아블로 시리즈만의 묘미를 디아블로 이모탈, 디아블로4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충분히 심어줄 만하다.

물론 일단 그전에 태학 팀장님이 레저렉션 서버 좀 안정적으로 열어줬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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