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충남 게임잼', 3일간 이어지는 '개발 마라톤'의 시작

게임뉴스 | 정재훈 기자 | 댓글: 5개 |



다들 아시듯, 대한민국 게임 산업을 지리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꽤 심하게 편중되어 있습니다. 전통의 성지인 구로디지털단지, 그리고 오늘날 산업의 메카라 할 수 있는 판교디지털밸리. 그리고 은근히 많은 개발사가 숨어 있는 강남권까지, 사실상 대한민국 게임 개발산업의 태반은 서울과 성남 인근에 몰려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이 그리 넓은 나라가 아님에도 말이죠.

이런 산업의 지리적 편중은 동전의 양면처럼, 다양한 긍,부정적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대규모 집적 단지가 구성되면서 거대한 산업 공동체가 탄생하는 건 비교적 좋은 결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안 그래도 심해진 이촌향도 현상과 이로 인한 지방 소멸의 가속화에 분명 영향을 준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문체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이런 게임 산업의 지역 집중을 막고, 전국 단위의 개발사 입지 조성을 위해 전국에 10개소의 '지역 글로벌게임센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죠. 그 중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센터이자, 이제 만으로 2년이 되어가는 신생 센터인 '충남글로벌게임센터'는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창립 2년 만에 24개 업체가 입주해 총 230여 명의 개발자들이 여러 게임을 개발하고 있으며, 지역 교육 기관과의 교류를 통해 충남 기반의 게임 개발자 양성 및 개발사 유치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11월 26일, 제2회 '충남 게임잼'을 개최했죠.



▲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되는 충남 게임잼

'게임잼'이 무엇인지는 아마 개발자 분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계실 겁니다. 특정 기간 동안 모인 개발자들이 무작위로 직군 비율만 맞춰 팀을 꾸린 후, 기간 안에 게임을 만들어 내는 행사죠. 빠르게 개발에 돌입할 수 있고, 합이 맞는 팀원들을 탐색하기에도 좋으며, 평소 생각만 하고 있던 아이디어를 풀어내기에 그만인 행사 특성 상 '게임잼'은 세계 곳곳에서 굉장히 많이 개최되어 왔습니다. 지금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인디 게임들의 시작 또한 이런 게임잼 중 하나였던 경우가 적지 않죠.

하지만, '게임잼'은 결국 수십 명의 개발자들이 오프라인에서 모여 진행하는 행사이고, 이 때문에 'COVID-19'가 유행을 한 작년 초 이후로는 사실상 제대로 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게임잼은 드문드문 열리지만, 게임잼의 매력은 게임 개발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의 고생을 공유하고, 언성을 높여 가며 아이디어를 쌓아가는 과정에도 있기 때문에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죠. 그 와중에, 충남게임센터는 철저히 방역을 갖춰 가며 두 번의 오프라인 게임잼을 개최한 겁니다.

자 이제 제가 천안까지 가게 된 이유는 충분히 설명을 드린 것 같습니다. 전염병의 시대인 요즘 참 보기 드문 행사인 만큼, 걱정과 기대, 반가움을 모두 안고 향한 길이었죠. 지금부터는, 현장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하나씩 보여드리려 합니다.



오후 5시, 충남글로벌게임센터 도착

천안아산역 인근에 위치한 충남게임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참가 개발자들은 오지 않았지만,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진행팀과 이번 게임잼을 총괄하는 이지연 책임을 만나 짧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충남게임센터 이지연 책임

Q. 만나서 반갑습니다. 게임센터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게임잼에 앞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먼저 '지역글로벌게임센터'의 개념과 역할은 무엇인가요?

이지연 책임: 지역글로벌게임센터는 문체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중인 기관으로, 전국 각지의 게임 산업 육성을 위해 10개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게임 산업의 지역 편중을 줄이고, 균형적인 발전을 이뤄내기 위한 주춧돌 역할을 하는 기관이죠.

실질적으로 저희가 하는 사업은 지역 게임사들을 지원하고, 이들이 각 지역 게임산업의 기반이 되게끔 자리잡는 과정을 돕는 겁니다. 각 게임센터마다 조금씩 지원체계나 조건이 다르긴 하지만, 충남의 경우 센터 설립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보니 선택과 집중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지사가 아닌, 본사가 센터에 입주하는 경우에만 지원을 해드리고 있으며, 지원의 범위는 마케팅과 퍼블리싱을 포함해 게임 출시까지의 모든 과정입니다.


Q. 요약하자면, 굳이 판교나 서울권으로 가지 않아도 충남에서도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자 하는 건가요?

이지연 책임: 목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충남권 개발자들에게 '게임을 만들려면 어디로 가야 한다'라는 인식을 없애는 게 아마 최종적인 목표라 할 수 있겠네요. 그 외에도 풀뿌리라 할 수 있는 개발자들의 양성과 게임 산업 교육 기관과도 꾸준히 협력하고 있어요. 오늘 진행하는 게임잼 또한 그 일환으로 볼 수 있죠.


Q. 이번 게임잼에 총 30분의 개발자 분들이 참가하는거로 알고 있는데, 참가자 모집은 어렵지 않았나요?

이지연 책임: 재작년 이맘때, 그러니까 저희가 처음 센터를 창립했을 때만 해도 충남권의 게임 산업은 정말 불모지 그 자체였어요. 충남 전체의 개발사를 세도 다섯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적었죠. 그래도 지금은 꽤 많은 분들이 충남에 자리를 잡으셔서 그런지 참가자 모집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모집 공고를 내고 2시간만에 2배수의 지원자가 몰려 어려움 없이 참가자 분들을 모집할 수 있었죠.



▲ 이번 게임잼 참가자들의 명함, 다들 닉네임을 제출해 게임사 대통합의 장이 열렸습니다.


Q. 게임잼에 참가하는 분들이 게임센터에 입주한 개발사들과 연결될 가능성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현재 센터에 입주한 개발사와 개발자 분들의 수는 어느 정도인가요?

이지연 책임: 지금은 24개 업체, 총 229분의 개발자 분들이 일하고 계세요. 매달 네트워킹 시간을 가지면서 서로 교류하기도 하고, 게임 개발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집적 공동체로 발전되어가고 있죠. 개발사들의 실제 수익도 나날이 늘어 가는 추세고요.


Q. 올해가 두 번째 게임잼 개최인데, 앞으로도 충남 게임잼은 매년 개최되겠죠?

이지연 책임: 지금 오신 분들을 몇 분 보니 작년에 오셨던 분들도 보이더라고요. 저는 그 분들이 10년 후에도 충남 게임잼을 찾아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그때면 시니어 개발자가 되셨을 테니 어쩌면 심사위원으로 오실 수도 있겠죠.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을까요?



▲ 개발 과정에 쓰일 컴퓨터와 장비들도 속속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오후 6:30분, 행사 시작 30분 전

행사 준비로 바쁜 이지연 책임을 놓아드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행사장이 될 강당은 꽤 특이한 구조였습니다. 앞뒤로 길지 않고 좌우가 극단적으로 넓은 구조였는데, 프로젝터의 스크린이 되는 넓은 벽은 완만한 곡률을 지녀 마치 커브드 모니터와 같은 모양새를 띄고 있었습니다. 충남게임센터의 장성각 본부장은 이에 대해 "원래 앞뒤로 긴 강당을 생각했는데, 그래도 콘텐츠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평범하게 할 수 없다 싶어서 지금과 같은 모양으로 설계를 바꿨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좌우로 넓은 강당의 스크린이 되는 벽은 곡률이 적용되어 커브드 모니터의 느낌을 냅니다

'게임잼'인 만큼, 식량과 여가 시설은 충분히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충남 게임잼은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낮까지 3일간 계속되는 행사이기에 먹을 것과 쉴 수단은 필수지요. 산더미같은 과자와 냉장고를 꽉꽉 채운 음료수가 눈에 먼저 띄었고, 닌텐도 스위치와 PS4가 설치된 공용 게임 공간과 인형뽑기 기계가 양념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 압권은 인원수에 맞춰 6가지 색상, 5개씩 마련된 팀복과 의문의 더플백이었습니다.



▲ 팀워크를 다지는 방법은 여러가지입니다.



▲ 알찬 구성의 더플백, 1인당 하나씩 제공되었습니다.

개인에게 지급되는 생활용품이라는 설명에 궁금해 살짝 열어보니 유명 브랜드의 슬리퍼부터 에어셀 방석, 수건과 에코백, 텀블러에 이르기까지 3일간 지내며 쓸 수 있는 생필품이 가득 들어차 있었습니다. 몰래 하나 가지고 나오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냥 생각만 했습니다. 인원수에 맞춰 준비된 거니 그럴 수는 없죠. 이번 행사에는 3개 게임사의 후원이 있었습니다. 펄어비스와 NHN, 스마일게이트가 충남게임잼을 위해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이들의 흔적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 인형뽑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펄어비스의 향기

게임잼 기간 동안 머물 숙소는 게임센터측이 따로 준비했습니다. COVID-19 이전의 게임잼들은 숙식을 모두 행사장 안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 이전에 방문했던 게임잼의 경우 여기저기 침낭이 깔려 있고 심지어 텐트와 가스 버너를 목격하기도 했었는데, 이번 게임잼의 경우 방역과 행사장 환경을 고려해 따로 호텔 하나를 잡아 모두가 머물 수 있는 숙소로 지정했기에 그런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오후 7시 - 오리엔테이션 & 팀 업

한 분씩 참가자 분들이 들어서고 오후 7시가 되자 본격적으로 '충남 게임잼'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철도'. 인류가 다음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시작이 되었던 산업 혁명의 상징과도 같은 교통 수단이자, 세계의 크기를 크게 줄인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다는 의미를 지닌 철도는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새로운 사회상의 열쇠 중 하나인 게임과도 많은 부분에서 유사한 의미를 품은 소재입니다. 게임만큼이나 철도 그 자체를 좋아하고 파고드는 매니아들이 많다는 점 또한 생각해볼 만한 포인트였죠.

그런고로 올해 게임잼의 목표는 이 '철도'를 소재로 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행사의 시작을 알린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충남글로벌게임센터에 입주해 실제로 철도 관련 게임을 개발중인 싱크홀 스튜디오의 권중규 대표가 나와 철도 게임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습니다. 싱크홀 스튜디오는 현재 철도 노선 설립과 철도사 운영, 채권 거래 등을 소재로 하는 보드게임 '18'시리즈의 한국 버전인 '18korea'의 디지털 버전 '1897 Korea'를 개발 중이며 근시일 내에 출시 예정이라는 소식도 덧붙였습니다.



▲ 굉장히 복잡한 룰의 철도 회사 운영 보드게임 18xx 시리즈


이후엔 '팀 업'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충남 게임잼에는 총 30분의 개발자가 참가했고, 6명의 기획자와 각각 12명의 아티스트, 프로그래머가 참여했습니다. 사용 엔진에 따라 약간의 예외가 있긴 하지만, 이들이 각각 1인의 기획자, 2명의 아티스트와 2명의 프로그래머로 5인 팀을 짜서 총 6개 팀이 나오는 구조입니다.



▲ 팀 업 과정은 수많은 구애와 밀당, 눈치싸움으로 이뤄집니다.

모든 게임잼에서 가장 먼저 진행되는 과정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절차가 바로 이 '팀 업'입니다. 어떤 개발자를 팀원으로 삼느냐에 따라 기획자의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는 한계의 총량이 달라지고, 또 어떤 기획자를 만나냐에 따라 개발자가 본인의 개발 능력을 어디까지 발휘할 수 있는지 달라지거든요. 서로 자신이 지닌 능력을 어필하고, 스스로를 드러내면서 최적의 팀을 찾아가는 '팀 업'은 게임 개발에서 소통과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 과정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



오후 10시 - '게임잼'의 시작

밤이 깊어지면서, 게임잼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참가자들은 자유롭게 숙소와 행사장을 오가면서 게임 개발을 진행하게 됩니다. 행사장에서 밤을 새며 개발을 할 수도 있고, 적절한 규칙적인 휴식을 통해 효율적인 업무 스케쥴을 고안할 수도 있죠. 일요일 종료 시간이 될 때까지 참가자들은 만들 수 있는 최선의 게임을 만들어내고, 시상식이 이어지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이 시점까지만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소식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고, 단기간에 집중해서 개발을 해야 하는 참가자들을 방해할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지요. 기사가 올라간 시점을 기준으로 참가자 분들은 지금도 게임 개발을 이어가고 있을 겁니다. 일요일이 지나고 나면 참가자 분들이 어떤 게임을 만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진 개발이 끝나지 않았을 테니 가능하다면 나중에 별도의 기사를 통해 이를 다뤄볼 생각입니다.



▲ 본격적으로 아이디어를 나누기 시작하는 참가자들

하루짜리 짧은 취재였지만, '게임잼'이라는 행사가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할 계기로는 충분했습니다. 오늘날 기계화 농업의 시작에 마을 주민들의 품앗이가 존재했고, 의정활동의 시작에 그리스의 아고라가 존재했듯, 게임 개발이라는 산업의 풀뿌리가 있다면 바로 '게임잼'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상업적 목적이 아닌 정말 만들고 싶었던 게임, 늘 생각은 했지만 같이 만들 이들이 없어 상상 속 노트에만 남겨 두었던 기획안들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이자, 개발자들이 다른 개발자들을 만나 게임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네트워킹의 장이고, 나아가 추후 정말 대단한 게임의 개발자들이 될 지도 모르는 이들이 만나는 순간이기도 할 테니까요.



▲ 게임 개발은 끊임없는 소통과 언쟁, 합의의 과정입니다.

전염병의 확산으로 개최 자체가 어려워진 지금이지만, 그렇다고 정지 상태로 머물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철저한 방역 대책과 함께 리스크를 줄이면서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한 순간이죠. 충남글로벌게임센터의 의지는 이를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노력이 최종적으로 게임 산업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 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입니다만, 게임 산업 전체의 양적, 질적 발전에 어떤 형태로든 이바지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것 만으로도 이번 게임잼은 충분한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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