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화는 성공적, 남은 것은 안정화 및 개선뿐
다수의 몬스터를 쓸어버리는 호쾌한 플레이가 가능한 핵 앤 슬래시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장르 중 하나다. 장르의 창시자인 디아블로 시리즈를 비롯해 '패스 오브 엑자일', '토치라이트' 등 수많은 핵 앤 슬래시 게임이 존재하며, 온라인 기준에서 무한 파밍을 필두로 한 빌드 제작과 일정 주기마다 리셋되는 시즌제 운영 방식을 게임의 주요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지난 13일 출시된 라인게임즈의 '언디셈버'도 핵 앤 슬래시 장르로서 무한 파밍과 내 맘대로 만드는 빌드 제작 등을 주요 콘텐츠로 선보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시즌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에피소드 업데이트를 통해 지속 가능한 핵 앤 슬래시를 표방한다는 것이다.
여타 다른 RPG와 달리 게임에서 제시하는 명확한 엔딩, 혹은 최종 콘텐츠가 없던 핵 앤 슬래시 게임에서 시즌제가 아닌 에피소드 방식으로 게임을 만들고 분기마다 최종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많은 유저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기존의 핵 앤 슬래시와 다른 독특한 룬 시스템도 시선을 끈 이유 중 하나다.
아쉽게도 첫날 불안정한 서버 운영을 보여주며, 좋지 못한 출발을 보여줬지만, 그 부분은 잠시 접어두고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니즈게임즈에서 제시하는 지속 가능한 핵 앤 슬래시, '언디셈버'의 이모저모를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게임명: 언디셈버(Undecember) | 개발 : 니즈게임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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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디셈버만의 차별화는?
핵 앤 슬래시 게임은 기본적으로 복잡한 게임이 아니다. 적 다수를 때려잡는 방식을 무한 반복할 뿐이라 일반적인 RPG에 비해 다소 지루한 면도 없지 않다. 오죽하면 핵 앤 슬래시 게임을 두고 수면제 게임이라 부르겠는가. 하지만 단순히 몬스터를 때려잡는 방식에도 많은 차별 요소를 둘 수 있고 핵 앤 슬래시 게임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파밍 시스템에도 변화를 줘 게임마다 다른 풍미를 낼 수도 있다.
언디셈버가 채택한 핵 앤 슬래시로서의 차별화 요소는 직업에 제한을 두지 않는 성장 시스템과 스킬룬 시스템이다. 먼저, 언디셈버는 별도의 직업이란 개념이 없다. 유저가 검을 들면 검사가 되고 활을 들면 궁수가 되는 방식이라 이해하면 된다. 어떤 무기를 들고 있는지에 따라서 쓸 수 있는 스킬도 달라지니 성장 과정에서 여러 무기를 써보며 마음에 드는 무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본인이 평소에 하나의 캐릭터만 쭉 플레이하는 스타일이라면 이런 방식에 쌍수 들고 환영할 법하다. 반대로 여러 직업의 캐릭터를 키우는 재미를 원한다면 아쉽지만 여러 장비와 스킬룬을 갖춰두고 그때마다 교체하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키워나가야 한다. 다른 전투 방식으로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재미를 느낄 순 없겠지만 언디셈버의 성장 과정은 시즌제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긴 호흡으로 이뤄져 있어 무기별 직업 구분 방식이 더 적절하다고 느껴졌다.
무기가 일종의 직업을 구분하는 프레임이라면 스킬룬과 조디악 시스템은 내부를 구성하는 주요 기관으로 볼 수 있다. 조디악은 특화 스탯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쉽다. 레벨이 오를수록 더 다양한 조디악 스탯을 선택할 수 있으며, 공격력 증가와 적중률 증가, 투사체 공격력 증가 등 플레이 스타일에 맞춰 입맛대로 고르면 된다.
룬 시스템은 '패스 오브 엑자일'과 비슷하면서도 아주 다른 개념이다. '패스 오브 엑자일'이 무기의 소켓에 스킬룬을 장착하고 해당 스킬을 사용한다면 언디셈버는 별도의 스킬창에 스킬룬을 장착하고 이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무기는 단순히 어떤 방식의 스킬룬을 쓸 것인지와 능력치를 상승시켜주는 도구로만 사용된다고 보면 된다.
또한, 룬은 스킬룬에 효과를 부여하는 링크룬으로 나뉘며, 스킬룬과 링크룬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효과가 크게 달라진다. 룬으로 스킬을 사용하는 방식은 '패스 오브 엑자일'과 동일하나 장비와 룬을 별개로 구분해 접근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링크룬 중에서는 특정 행동을 할 때 연결된 스킬룬이 발동되게 만드는 시스템도 있기 때문에 초반에는 유아용 색깔 맞추기처럼 보이지만, 깊게 파고들수록 최상의 효과를 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장비도 따로 파밍해야 하고 룬도 파밍해야 하는 이중구조에 빠졌지만, 핵 앤 슬래시 장르 자체가 무한 파밍을 메인 콘텐츠로 삼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흥미롭게 다가온다.
무한 파밍, 나만의 빌드 구축은?
핵 앤 슬래시 게임은 기본적으로 다수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맛도 있지만,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육성의 재미 또한 빠트릴 수 없다. 몬스터를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잡기 위해 끊임없이 파밍하며, 점점 성장하는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가장 크다. 이를 위해선 전투의 재미뿐만 아니라 파밍의 재미와 더 나아가 빌드의 다채로움이 제공되어야 한다.
언디셈버의 파밍 시스템은 크게 결계의 첨탑, 레이드, 영광의 성전, 카오스 던전으로 나뉘며, 이중 카오스 던전은 모든 에피소드를 클리어한 뒤 진행할 수 있는 최종 콘텐츠로 보면 된다.
파밍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장비는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무기부터 머리, 가슴, 다리, 팔, 허리 등의 방어구와 반지,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가 있다. 강력한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선 룬도 파밍해야 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레이드에서만 얻을 수 있는 룬 스톤과 카오스 던전에서만 얻을 수 있는 부적도 얻어야 하니 생각보다 파밍할 장비가 매우 많은 편이다.
파밍 자체의 재미만 두고 보자면 성장 과정에서는 큰 메리트를 느끼지 못했다. 필드에서 떨어지는 장비의 성능은 등급에 따라 조금씩 성능에 차이가 있지만, 기존의 핵 앤 슬래시 게임인 '디아블로'와 '패스 오브 엑자일'과 비교했을 때 떨어지는 장비가 엄청나게 대단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이는 장비의 등급, 그리고 인챈트 시스템과 관계가 있다.
언디셈버는 인챈트를 통해 장비의 등급을 내 맘대로 바꿀 수 있다. 인챈트 재료만 넉넉하다면 일반 등급을 상위 등급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한 셈이다. 등급이 높아질수록 여러 개의 옵션을 보유할 수 있으니 당연히 높은 등급의 장비가 좋다. 하지만 장비 퀄리티라는 시스템에 의해 낮은 등급의 장비가 상위 등급보다 기본 스펙이 훨씬 좋을 수도 있고 이런 장비를 인챈트해서 등급을 올린 뒤 옵션을 돌려가며, 내 입맛대로 장비를 개조하는 방식이 더 효율이 높을 때가 많았다.
물론, 고유의 이름과 능력치를 갖춘 유물 등급의 아이템도 있다. 이러한 장비는 고성능의 옵션으로 중무장한 경우가 많으니 한 번 얻어두면 굳이 인챈트를 하지 않아도 완제품처럼 사용할 수가 있었다. 다만, 확률이 꽤 낮고 반드시 나에게 맞는 옵션의 유물이 나올 거란 보장이 없으니 대부분 인챈트에 의존하는 편이다.
결국, 장비 파밍 자체가 필드 사냥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챈트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나에게 쓸만한 장비가 되니 파밍의 즐거움이 상대적으로 아쉽게 다가왔다. 물론, 장비 운이 없어도 얼마든지 인챈트를 통해 장비를 만들 수 있으니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만의 빌드를 만드는 과정을 생각한다면 인챈트를 통해 장비를 입맛대로 바꿀 수 있는 언디셈버의 방식이 더 효율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옵션에도 등급이 존재하고 등급마다 최소, 최대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좋은 옵션으로 인챈트를 성공했다 하더라도 옵션 레벨에 따라 또 다른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장비를 얻는다고 끝이 아니라 인챈트를 통해 계속해서 장비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점은 육성의 깊이를 장기적으로 끌고 가는 역할을 한다.
한편, 다채로운 빌드는 언디셈버의 가장 큰 장점이자 무기라고 생각한다. 언디셈버는 앞서 언급한 인챈트, 다양한 장비 파밍을 통해 캐릭터의 능력치를 세부적으로 육성할 수 있다. 여기에 스탯과 조디악, 룬 시스템, 부적 등을 합치면 수십, 수백 가지의 빌드가 탄생할 수 있으며, 같은 방식의 빌드를 사용해도 육성에 따라 성능 차이가 크게 날 수도 있다.
빌드의 유연함을 위해 무기와 스킬을 따로 구분해뒀으며, 같은 색상의 룬이라면 재료로 사용해 기존의 룬과 같은 레벨로 룬을 강화할 수도 있어 중간에 다른 빌드로 갈아타기도 나름 수월한 편이다. 아무래도 직업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캐릭터로 여러 빌드를 구축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러한 편의성을 넣은 것으로 보인다.
공격 방식도 다양하다. 큰 틀에서 근접과 원거리, 마법으로 구분할 수 있고 세부적으로 물리, 마법, 그리고 타격, 발사체, 소환수 등으로 구분된다. 링크룬 역시 이에 맞춰서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으니 검사이면서 동시에 마법도 쓸 수 있고 혹은 소환수만 운영하거나 쇠뇌를 활용한 마법사가 될 수도 있다.
현재 다양한 빌드가 출시 초부터 빠르게 연구되고 있으며, 인기 있는 빌드를 따라가거나 혹은 나만의 빌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만약 본인의 빌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굳이 새 캐릭터를 키우지 않고 얼마든지 중간에 바꿀 수 있다. 경매장을 이용해 장비를 교체하고 스탯 초기화도 언제든 가능하니 말이다. 정말 최상의 옵션으로 구축한 장비를 한순간에 똑같은 수준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빌드 변경에 따른 부담이 크지 않다는 점도 여러 빌드를 구축하는데 장점으로 다가온다.
지속 가능한 핵 앤 슬래시?
출시 전 간담회에서 언디셈버는 특정 기간 동안 캐릭터를 육성한 뒤 초기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반적인 RPG처럼 특정 주기마다 신규 콘텐츠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타 다른 핵 앤 슬래시 게임이 시즌제로 운영하는 것과 달리 지속 가능한 핵 앤 슬래시를 표방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핵 앤 슬래시를 시즌제로 운영하는 이유는 성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채로운 빌드와 무한 육성을 강점으로 꼽는 핵 앤 슬래시 게임이지만 반대로 여러 빌드를 키우고 육성도 어느 정도로 끝내두면 할 게 없는 게임이 되기도 한다. 유저끼리 모여 협동 콘텐츠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몬스터를 잡고 캐릭터를 육성하는 재미밖에 없으니 이를 길게 끌고 가기보단 시즌마다 육성을 초기화시키고 새로운 육성 콘텐츠를 내놓는 방식이 자리 잡게 됐다.
즉, 일반적인 RPG가 해당 시즌의 최고 레이드에 도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핵 앤 슬래시 게임은 시즌 캐릭터를 키워 랭킹에 오르거나 혹은 강해질 수 있을 때까지 쭉 캐릭터를 육성하다가 다음 시즌까지 기다리는 식으로 플레이한다.
반대로 언디셈버는 핵 앤 슬래시 게임처럼 육성과 빌드 구축에 온라인 요소를 다수 넣은 것이 특징이다. 협동 콘텐츠인 레이드와 영광의 성전 등이 육성한 캐릭터로 도전할 수 있는 또 다른 엔딩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강력해진 캐릭터를 시험해볼 수 있는 콘텐츠가 있다는 점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파밍만 하는 방식에서 새로운 목표를 제시해줄 수 있다.
업데이트 주기에 맞춰 메인 스토리를 포함한 신규 액트도 추가될 예정이고 신규 룬과 새로운 아이템도 등장한다면 굳이 새로운 육성을 위해 캐릭터를 키울 필요없이 기존의 캐릭터를 계속 성장시키면서 다음 콘텐츠를 준비하면 될 것이다.
액트마다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최대치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겠지만 인챈트를 필두로 한 장비 세팅과 부적 파밍 등을 합친다면 하나의 빌드를 완성하는 데만 꽤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단순 반복 사냥 외에 여러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으니 신규 콘텐츠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공백은 충분히 메꿀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아직은 오픈 초창기인 만큼 신규 콘텐츠가 어떤 방식으로 언제 출시되느냐에 따라서 게임 운영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쌓여가는 골드를 소모할 방법도 필요하고 캐릭터가 너무 강력해진다면 다음 액트가 나와도 큰 어려움 없이 클리어하게 되면서 콘텐츠의 소모가 점차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를 초기화시키지 않고 콘텐츠를 쌓아가는 방식이니 필연적으로 발생할 파워 인플레 역시 앞으로 언디셈버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종합해보면 언디셈버는 기존의 핵 앤 슬래시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기본적인 전투의 느낌 자체는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다양한 패턴으로 유저를 괴롭히는 보스전과 레이드. 다양한 빌드를 창출할 수 있는 룬 시스템과 인챈트까지 생각보다 짜임새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아쉬운 점도 몇 가지 보였다. 개선이 이뤄지긴 했으나 여전히 밋밋한 느낌의 타격감과 초반 구간이 너무 단조로워서 시작부터 게임의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 다양한 스킬과 장비를 얻게 되는 액트 3부터 게임이 점점 재미있어졌지만, 상대적으로 초입이 지루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현재까지는 스토리가 썩 흡입력 있는 방식은 아니므로 앞으로 스토리의 비중을 높이고 싶다면 어느 정도 흥미를 끌 만한 변화를 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으로 스토리의 비중이 높아진다면 게임을 장기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또 다른 무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한편, 언디셈버는 PC와 모바일 간의 크로스 플레이를 지원해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모바일 빌드의 완성도도 높아 PC와 모바일을 병행하면서 플레이하더라도 딱히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정식 출시 과정을 거치면서 PC의 그래픽 품질 향상과 조작감 향상도 이뤄졌으니 PC에서 플레이할 때의 장점도 충분하다.
정식 출시 첫날부터 다소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는 앞으로 서비스하면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게임이 정말 못 만들었다면 굉장히 치명적으로 작용했을 테지만 실제로 게임을 해보면 생각보다 재미있다. 초보자를 위한 세세한 튜토리얼과 조금씩 바뀌는 육성 방식으로 쉽게 게임에 익숙해질 수 있고 후반으로 갈수록 깊이 있는 파밍 및 육성 시스템을 통해 나만의 캐릭터를 키우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부족했던 가방과 초반 난이도와 관련된 후속 패치가 이뤄져 나름 쾌적한 게임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아직 불안정한 서버만 확실하게 보강한다면 더 좋을 듯 싶다. 평소 핵 앤 슬래시 게임에 관심이 있었거나 새로운 RPG를 찾고 있다면 언디셈버를 한 번 주목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