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메타버스는 왜 꼰대가 되었나

기획기사 | 강승진 기자 | 댓글: 55개 |
오늘도 TV, 인터넷에서 수십 번은 들었을 메타버스. 그 기원을 따져 물었을 때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의 SF 장편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나왔다는 말은 꽤 들어봤을 겁니다.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워낙 뜨거워 30년이나 된 책이 새 번역과 함께 다시 나온 만큼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읽어봤어봄 직하기도 합니다.




'아, 이렇게 오래전 나온 개념이라서 꼰대라고 표현한 거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그런데 메타버스는 꼰대라고 하기엔 앞날이 창창한 미래 지향적 개념이자 우리 삶을 바꿀 수도 있는 차세대 먹거리일 수도 있습니다. 단어의 기원이 부정적인 디스토피아 세계관이라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이런 유망한 미래 사회 기반을 그저 '꼰' 한 글자로 표현하는 건 사실 어불성설일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우리 시야를 아득히 뛰어넘은 비전과 그 방향, 그리고 오늘날의 위치에 있습니다. 너도나도 메타버스에 대해 떠드는데 우리가 받아들이는 수준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거죠. 게임에 익숙한 여러분이라면 미래 기술보다는 이쪽에 더 와 닿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꼬집어 말하면 이미 메타버스라고 떠드는 것들을 온라인 게임이라는 생태계에서 충분히 경험해보셨다는 거죠.

그래서 메타버스 최일선에 있는 전 페이스북, 현 메타의 핵심 인물인 존 카맥의 발언은 내부에서의 거센 비난으로 보도되기도 합니다. 또 매체나 이용자 메타버스가 얼마나 의미 없는 비전인지 증명하고자 할 때 인용되기도 하고요.

메타버스는 정말 말 한마디에 널 뛰는 주가를 위한 거짓 키워드에 불과한 걸까요? 아니면 거부할 수 없는 미래일까요? 왜 전도유망한 기술인 메타버스가 꼰대가 될 수밖에 없던 걸까요?





메타버스와 현실-가상의 조화
AR, 게임, SNS, 이거 이미 전부 다 있는 거 아니냐?

후발 주자들이 인제야 사업 비전 최상단에 억지로 메타버스를 끌어올려 관심이 있는 척 움직이는 듯합니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메타버스를 차세대 핵심 시장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일찌감치 존재했죠. 미국미래학협회(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 ASF)는 메타버스 로드맵 서밋에서 나온 자료를 약 1년간 가다듬어 2007년 메타버스 로드맵 - 패스웨이 투 더 3D 웹이라는 결과물을 내놨습니다.

네. 2017년이 아니라 2007년이요. 그리고 이때 이미 현실과 가상, 증강기술과 시뮬레이션에 따라 어떤 방식의 메타버스가 구현될지 큰 틀이 잡혔습니다. 기술을 중심으로 메타버스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거죠.



▲ ASF가 공개한 메타버스의 큰 틀

ASF가 공개한 표를 통해 알 수 있듯 메타버스는 증강기술과 시뮬레이션, 내재적 요소와 외재적 요소의 조합에 따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라이프로깅(Lifelogging), 미러 월드(Mirror Worlds), 버추얼 월드(Virtual Worlds) 등 4개로 구현됩니다. 뭐 표현 자체는 낯설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이미 오늘날의 삶에 어느 정도 구현된 것들입니다.

증강현실은 이미 포켓몬GO 같은 게임으로도 익숙한 그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인식하는 실제 세계 위에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페이스를 붙인 거죠. 이전부터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영화에서 그 체계는 잡혀 있었던 개념이 AR 기술이 본격적으로 구체화 되면서 현실 위에 얹어지게 됐습니다.




버추얼 월드는 이름 그대로 가상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구현하고 이 안에서 몰입하고 상호작용하는 세계입니다. 포켓몬GO보다 더 고전적인 게임에 가까운 세계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온라인 게임을 떠올리면 될 것 같네요.

라이프로깅과 미러 월드는 게임 외에서의 메타버스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삶을 기록한다는 말처럼 라이프로깅은 애플워치로 내 운동량을 기록하고 페이스북에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유튜브에 Vlog를 남기고 카카오톡 프로필에 중요한 날이 다가오는 걸 적은 것도 기록으로 남겠죠. 미러 월드도 말 그대로입니다. 우리 현실을 가상에 복제하는 것. 구글 지도에 실제 지도 정보를 넣고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과 비슷하죠.

기술 발전과 함께 라이프로깅은 빅 데이터와 AI를 활용해 나에게 맞는 정보를 제공하고 생활 패턴을 파악하는 역할도 합니다. 미러 월드는 IoT, AI로 더 고도화된 정보를 활용해 현실을 예측하는 디지털 트윈으로 확장되고 있죠.

자, 여기까지가 십수 년 전 기술을 중심으로 개념이 잡힌 메타버스입니다. 상상도 못할 미래의 기술인가요? 아니면 허무맹랑한 소설 속 이야기인가요? PC와 모바일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SNS도 하고, 영상도 보는 이들이라면 아마 여기 기술된 메타버스의 체계화된 개념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 버추얼 월드 개념에서 생각한다면 가상에 세계에서 활동하는 WoW 같은 게임은 메타버스와 크게 다를 게 없죠

결국, 메타버스의 기본 개념은 우리가 지금 즐기고 이용하는 수준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용자들이 마치 미래를 바꿀 무언가라고 떠들어대던 메타버스가 별거 아니라고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네요. '메타버스니 뭐니 해도 결국 기존의 게임, SNS, AR/VR과 다를 게 없잖아'라고요.

그런데 앞서 말한 2가지 기억하시나요? 기본적인 메타버스의 개념은 '십수 년 전 발표된 내용'이고, 또 '기술을 중심으로 개념이 잡혔다'라고요.

실제로 기술 발전, 그리고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쓰는 이용자 중심의 메타버스 개념이 다시 잡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미국 정보 기술의 첨단에 있는 거대 기업, 일명 빅테크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이게 지금까지 설명한 것과는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빅테크 기업의 서로 다른 메타버스와 탈중앙화까지
전부 다른데 다 메타버스라고?

메타버스라는 이름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기업인 페이스북. 이제는 아예 메타버스를 따 이름까지 바꾼 메타(Meta)를 떠올리면 메타버스의 현 상황을 그나마 얼추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2014년 페이스북이던 메타는 오큘러스 VR을 인수했습니다. 오큘러스 VR의 설립자 팔머 럭키는 알아주는 게임광이었고 가상현실을 보다 현실적인 게임의 해답으로 생각했습니다. 베데스다와의 갈등도 이유로 꼽히긴 하지만 둠의 아버지, 존 카맥의 오큘러스 합류도 이런 가상현실을 게임의 미래로 생각한 것이 한몫했죠.

그런데 당시 페이스북의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오큘러스 인수 이후 메타버스를 가리켰습니다. 2년 뒤에는 소셜VR 팀을 구성해 VR을 통한 가상 소셜 네트워킹을 비전으로 제시했죠. 커뮤니티인 레딧을 중심으로는 왜 게임에 소셜이 들어가야 하느냐는 비판도 많았습니다만, 어쨌든 저커버그는 오큘러스라는 VR 하드웨어를 통해 보다 점진적인 가상 세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광장과도 같은 호라이즌 월드를 기반으로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근황을 공유하기도 하고 업무 회의도 하고, 함께 게임을 즐길 수도 있죠. 특히 한층 낮아진 가격의 오큘러스 퀘스트2를 통해 VR HMD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 낮은 진입 장벽을 거뜬히 넘어가도록 만드는 콘텐츠 확장도 시도하고 있고요. VR의 최종 목표가 게임은 아닐지언정 어쨌든 핵심 콘텐츠로서의 게임은 무시할 수 없다는 거죠.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포르노와 게임의 핵심 콘텐츠가 기기 대중화에 영향이 있다는 글도 남긴 적이 있습니다.



▲ 만나고, 게임하고, 회의하고, 떠들고. 메타는 페이스북을 넘는 일종의 가상 소셜 공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그간 메타와 다른 전략을 펼쳤습니다. MS는 실제 공간의 개념과 디지털 개념을 아우르는 통합형 공간에서의 협업 구조를 강조해왔죠. 메타가 라이프로깅과 버추얼 월드의 조합으로서의 메타버스를 강조하고 있다면, MS는 앞서 말한 디지털 트윈 개념으로서의 메타버스를 그리고 있죠.

실제로 MS 루프는 엑셀, 파워포인트 등의 마이크로소프트365 앱 안에서의 동기화가 이루어지는 협업 프로그램입니다. 거리의 제약 없이 가상과 현실을 한데 묶는 데 특화됐죠. 이런 여러 비즈니스 툴과 함께 기업에 맞춰나가는 MS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는 건 바로 MS의 AR HMD 홀로렌즈2입니다.

홀로렌즈2는 보다 낮은 가격으로 일반 대중에게까지 다가가려는 메타의 오큘러스 퀘스트와 달리 가격 대중화는 아예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299달러면 손에 넣을 수 있는 오큘러스 퀘스트2와 달리 홀로렌즈2의 기본 모델은 3,500달러. 우리 돈으로 400만 원이 넘습니다. 상위 모델도 클린룸에서 쓰거나 안전모와 통합된 형태로 무려 5,000달러에 가깝습니다. 사실상 개인이 아니라 기업에서 활용하는 목적으로 개발된 거죠. 성능도 그에 맞춰졌고요.

재밌는 건 MS가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인수한 일입니다. 인수 발표 당시 MS의 CEO 사티아 나델라와 MS 게이밍의 CEO 필 스펜서 모두 메타버스를 강조했습니다. 상거래든 산업이든 결국 여기 접근하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 콘텐츠 중 하나가 게임이었고요. 콜오브듀티, 디아블로, 오버워치 등 탄탄한 프랜차이즈가 그런 생태계 조성에 힘을 실을 거라는 거였고요.



▲ 홀로렌즈의 비즈니스적 역량에 실제로 MS의 비전도 업무 중심의 디지털 트윈을 중점적으로 다뤘지만,



▲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이후 게임과 메타버스의 관련성을 직접 강조하며 게임콘텐츠의 중요성을 어필했습니다.
게임이 곧 메타버스라는 건 아니고요

게임 팬들에겐 그래픽카드로 친숙한 엔비디아도 메타버스 핵심 기업 중 하나입니다. 사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과 딥 러닝 기술 거물로 꼽히는데요. 이 AI 기술과 엔비디아의 그래픽 구현 기술로 아바타 제작부터 현실적인 그래픽 등 가상 세계 구현이 가능한 툴을 제공하고 있죠.

아직까지 전선에 몸을 던지진 않았지만, 애플도 메타버스에 큰 관심을 보이는 기업입니다. 이미 아이폰을 활용한 AR 기술은 다른 업체들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여기에 AR 글래스까지 특허니 유출된 문서니 하며 언제 발표할지만 남아 있죠. 애플은 이미 앱스토어를 통해 탄탄한 플랫폼, 안정적인 콘텐츠 수급이 가능한 기업입니다. 언제든 메타버스에 대한 비전을 밝혀도 다른 기업에 뒤처지지 않을 곳이란 뜻이죠. 일찌감치 AR 글래스로 쓴맛을 본 구글도 다시금 AR HMD에 도전한다는 루머도 있고요.

여기에 블록체인과 NFT가 더해지며 탈중앙화된 메타버스를 구현하자는 목소리도 커진 상황입니다. 블록체인과 NFT는 따로 설명해도 모자랄 테니 간단하게만 설명하자면 메타버스 플랫폼 주체에 의해 휘둘리는 자산이 아니라 이더리움 같은 퍼블릭 블록체인을 통한 가상 자산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메타버스를 구축하자는 움직임이죠.



▲ 딥 러닝, AI 등에 강점을 드러낸 엔비디아도 두각을 드러낸 기업 중 하나죠

첫 섹션에서 기본적인 개념을 통해 메타버스가 뭔지에 대한 감이 잡혔을 것 같은데 각각의 기업들의 메타버스 행보를 보면 또 대체 어떤 게 메타버스인지 쉽게 감이 오지 않을 겁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럴듯한 혁신, IT 기술이 모두 메타버스의 울타리 안에 있다고 느끼실 겁니다.

앞서 설명하지 않았지만, 자율주행이나 교육, 의료, 창작 등도 메타버스 울타리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가상 세계, 혹은 가상인 척하는 현실 세계가 진짜 현실과 같은 모양새를 그려나가면 결국 소셜과 게임을 넘어 상거래와 산업, 문화 활동 등 현실의 모든 게 일어나니까요(혹은 그걸 목표로 하는 거고요).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생길 겁니다. 현실과 같은 세계의 구현이라는 큰 틀은 같을지 모르지만, 기업과 기술 구현 정도에 따라 저마다 방향과 비전이 다른 이 모든 걸 '메타버스'라는 한 단어로 묶어도 되느냐는 거죠. 그리고 바로 여기가 메타버스라는 말 자체에 대한 의문과 반감이 더해지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너도나도 뛰어드는 전도유망 미래 먹거리
그래서 아직 준비도 안된 것 아니냐?

그럼 조금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도록 하죠. 2007년에 대중적으로 공유할 만한 개념이 잡히고 2010년대 중반부터 빅테크를 중심으로 논의되던 메타버스가 왜 지금 이렇게 화제가 되고 있느냐는 점입니다. 사실 이건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와 기업마다 다른 상황을 함께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 대중적인 이유로는 AR, VR, AI, IoT를 포함한 기반 기술의 발달. 그리고 5G와 엣지 컴퓨팅을 통한 데이터 처리 방식의 진화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힘을 더한 게 바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대의 경험이고요.

실제로 얼굴을 마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서히 이루어졌던 디지털 이주는 이제 현실이 됐습니다.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놓고 스파링을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강제로 12라운드 챔피언십 매치에 뛰어든 겁니다. 단순히 시험해보지 못했던 기술에 대한 데이터 수집에, '가상환경을 통해서라도' 라는 갈증이 더해진 상황이었죠. 이용자의 말에 따라 3D 캐릭터가 손짓이나 표정, 입 모양 같은 비언어적 행동을 대신 해주는 MS의 메시 포 팀즈는 팬데믹 상황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늦게 공개됐을지도 모르죠.



▲ 손짓이나 표정 같은 비언어적 의사전달까지 구현한 메시 포 팀즈

하지만 사람들이 가상 세계로 이주하며 물리적 현실에서는 외면받는 곳도 있었습니다.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VR 기업들은 쓴 눈물을 삼켜야 했죠. 대신 여러 VR 기업들이 메타버스로 터를 옮겼습니다. 이들은 메타와 같은 기업이 이미 보여준 것처럼 VR 디바이스를 기반으로 하는 버추얼 월드 개념 메타버스를 통한 플랫폼화, 혹은 세계 구축을 그리고 있습니다.

게임 업계도 이런 모습이 더러 드러났습니다. 메타버스와 게임 자체가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보니 기본적인 개념의 메타버스를 구축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죠. 특히 일상생활 담아내는 라이프 게임의 개발사라면 굳이 메타버스 이름을 떼고 시장 공략을 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고요. 규제로부터 자유롭다는 블록체인 코인을 기반으로 하는 업체들도 그 자산을 통화화 하려는 움직임과 함께 메타버스를 핵심을 꼽았습니다.

각자의 상황과 쏠린 관심에 따라 자연스레 메타버스는 기업들의 돌파구이자 키워드가 됐고 이는 더 큰 관심을 불러왔습니다. 당연히 메타버스를 비전으로 밝힌 기업은 더 늘어났고요.




여기서 서두에 말했던 메타의 존 카맥 이야기를 잠깐 꺼낼까 합니다. 꽤 중요한 얘기예요.

지난해 10월 메타가 페이스북 커넥트에서 사명 변경을 발표한 날, 존 카맥은 기조 연설에서 꽤 거친 표현을 늘어놨습니다. 존 카맥은 이날 저커버그가 발표한 메타버스의 이상이 오늘날 구현할 수 없다고 하기도 했고 기술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추상적 의견을 꺼내는 이들을 건축설계 우주비행사에 빗대 표현하며 메타버스의 허황함을 비판하기도 했죠. 이런 이야기는 공개된 사전 준비 자료에는 없던 내용이기도 했고요.

일각에서는 작심 비판이라느니 도전이라느니 하는 표현도 오갔지만,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평도 있습니다. 아무리 일선에서 물러났더라도 상식적으로 이곳은 회사의 새로운 비전이 공개되는 자리. 대표의 비전을 정면 반박하는 주장을 기조 연설에서 하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오히려 존 카맥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임을 설명하는 동시에 그걸 해낼 비전이 있는 것도 메타라는 점을 역설하는 쪽으로 이해하는 게 더 맞을 겁니다.

사실 해외에서도 게이밍 매체에 가까울수록 존 카맥의 발언을 부정적으로, 투자나 기업 비즈니스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일수록 비교적 긍정적인 해석을 하기도 했죠. 이건 게임사 헤드들의 관점에 따라 메타버스를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비슷한 모양새죠.



▲ 존 카맥의 발언은 그 저의를 두고 꽤 화제가 되긴 했습니다

어쨋든 여기서 중요한 건, VR 디바이스 시장 점유율 선두주자이자 10년 가까이 메타버스를 준비해 온 메타 조차 메타버스의 미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겨우 발을 들여놨을 뿐이죠. 그걸 회사 핵심 인물이 공공연하게 말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건 메타버스의 청사진을 보여주고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단계인 다른 선두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뛰어든 곳이 앞서 나갈 수 있고, 후발 주자들이 기술적 혁신이나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할 수도 있죠.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마땅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그려낸 세계의 완성도도 여기 미치지 못하는 기업이 훨씬 많을 겁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이 추측이 아니라 현실로 드러났을 때. 그들이 '그저 메타버스로'라고만 설명했던 기술, 비전을 '우리 메타버스는 저 거대 기업들이 상상하는 메타버스와는 다르다고요'라고 말 바꾸는 걸 누구도 이해하지 않을 테고요.


여전히 발전하는 미래의 플랫폼
그런데 왜 모두 다 이룬 것처럼 떠드는 건데?

앞서 봤듯 수많은 개념이 얽히며 '메타버스는 무엇이다'라고 콕 찍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웬만한 개념이 담겨있다면 그저 이것마저도 메타버스라는 말로 축약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죠. 수십 년 전에 나와도 구리다고 하지 않았을 허접스러운 그래픽에 이런저런 데이터 정보를 때려 넣은 3D 세계도. 이미 다 만들어진 게임에 몇 가지 요소만 덧칠한 것도 모두 메타버스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너무 게임적인 마인드로 접근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기술적인 부분에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메타버스의 현 상황, 다가올 미래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메타가 공개한 호라이즌 워크룸을 생각해보죠. 여기서 실제로는 원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만나 악수를 한다고 봅시다. 악수 자체는 정말 간단한 행위입니다. 손을 맞잡고 흔드는 게 전부죠. 하지만 이게 데이터화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손을 맞잡았을 때 이용자가 제대로 손을 감싸 쥐었다고 느끼는 감각 전달. 두 사람의 손이 내 움직임에 정확히 움직일 수 있도록 동기화하는 빠른 반응속도. 그리고 그 반응속도에 맞도록 먼 거리의 이용자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이 모든 게 필요하죠. 그리고 현재는 그 어느 것 하나 완벽하다라고 말할 정도로는 구현되지 못했습니다. 악수의 감각은 그저 그럴듯한 진동이며 여전히 움직임을 완벽히 읽어내지 못하는 기기들의 손 추척(핸드 트래킹). 그리고 엣지 컴퓨팅 시대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지연 등이 있죠.

악수를 넘어 동기화된 상태에서의 의료 행위까지도 품고 있는 메타버스를 떠올리면 지금의 기술적 부족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거고요. 원격 진료의 행위가 단순히 진찰을 넘어 응급 치료나 외과적 수술 영역으로 넘어갔을 때 기술적 불완전성으로 인한 순간적인 지연, 그리고 조작 미스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상상도 하기 싫을 겁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기업 단계에서의 노력은 이미 진행 중입니다. 메타는 시각적인 정보 전달에 치중하던 VR HMD 외에 뇌가 근육에 보내는 신호를 감지해 손동작을 읽는 팔찌를 제작하고 있고, VR을 넘어 혼합 현실, 나아가 확장 현실을 구현할 AR 글래스를 만들고 있죠. MS는 AT&T의 5G 코어 운영망 소프트웨어와 기술, 인력을 인수하며 5G 코어망을 자사의 애저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로 전환하는 거래를 성사하기도 했습니다. 향상된 연산 처리가 가능한 코어도 있죠.




빅테크 기업이 바라보는 메타버스라는 영역은 단순히 현재 존재하는 기술 아래에서 알아서 바뀌는 게 아니라 분명한 비전 아래 적극적인 투자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내일, 그리고 미래의 무언가라는 거죠. 그 투자가 이미 돈과 인력,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기술력 모두를 아우르는 단계에서 진행되고 있고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탈중앙화, NFT도 비슷한 단계에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메타버스의 확장과 함께 거래와 생산 활동이 가능해질 텐데 이게 만약 중앙화된 자산. 그러니까 플랫폼 사가 운영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죠. 플랫폼 사가 시중에 재화를 잔뜩 뿌린다면 이용자들이 가진 자산의 가치는 폭락해버릴 겁니다. 퍼블릭 블록체인을 통해 탈중앙화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접근이죠.

물론 이 역시 지금 단계에서는 완벽한 건 아닙니다. 변동성이 매우 심한 코인이 통화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는 거죠. 플랫폼 사가 자상 자산을 발행하는 상태라면 이를 몰래 다량 매수, 매도해 시세를 움직일 수도 있죠. 주식과 달리 별다른 제재가 없으니 주식에서는 위법 행위가 될 수 있지만, 블록체인 코인은 다른 상황이니까요.

또 디지털 자산의 소유 권리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알리고 주어지는지 제대로 된 규칙이 없습니다. NFT 자체를 구매한 사람이 소유하는지, 또 다른 거래 가능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바를 정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는 거죠. 기록된 소유자 정보는 사라지지 않기에 그럴 리 없다고 하지만, NFT 규제 논의에 자금세탁을 우려하는 국가도 늘어나고 있고요.

NFT의 시작을 본격적인 디지털 자산의 시작으로 볼지, 아니면 단순히 젊은 부호들의 히피적인 문화와 거기에서 돈 나올 구멍을 알아본 선구자들의 승률 높은 도박으로 볼지는 이번에 다 소개할 수 없으니 뒤로 미뤄두더라도요. 부작용보다는 변화하는 미래에 맞춰보는 긍정적인 부분에 더 집중하고 있는 거죠.



경계가 불분명한 혁신 개념. 여전히 부족한 기술과 구현력. 그럼에도 컴퓨터, 모바일 시대를 뒤잇는 제4의 물결로 뽑힐 정도로 촉망받는 미래 기술. 그리고 이에 대한 탄탄한 미래 계획과 함께 열정적인 투자와 지원, 연구개발을 아끼지 않는 기업들.

결국 이러한 특징의 기술이 가진 단점은 확실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메타버스라는 네 글자가 그저 그럴듯한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주주들의 돈을 당기고 세간의 이목을 끌 훌륭한 무기가 되어버린다는 거죠.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바로 지금을 위한, 투자를 위한 투자가가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결국, 누군가의 메타버스는 투자자에게만 매력적인 아이템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른바 회사의, 업계의 높으신 분들이 '이게 바로 메타버스라니까'라며 미래를 이야기하는 모습은 높으신 어른들, 이른바 꼰대가 '메타버스라니까 따르라'며 훈수 두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을 겁니다.




자, 그럼 이 큰 변화의 시대에서 메타버스 정확히 뭔지, 우리가 알아야 할까요?

PC가 등장하던 시대를 떠올려보죠. 개인용 컴퓨터는 스포츠 중계도 듣고, 뉴스도 보고, 사진을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라디오를 통해서도 할 수 있었고 신문을 보는 걸로도 가능했죠. 컴퓨터의 개념이 뭔지, 제작 기술은 어떻게 되는지, 어떤 분야에서 투자되어야 하는지 현업 기술자, 그리고 투자자가 아니고서는 아는 이들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PC, 그리고 그만큼의 시대 변화를 이끈 모바일 기술이 결국 우리 삶에 안착하지 못했을까요? 도리어 이 기술들은 없으면 안 될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습니다.

메타버스도 비슷할 겁니다. 우리는 이미 로블록스에서 게임을 하고, 제페토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 서로 여러 활동을 합니다. 동물의 숲에서 다른 친구의 섬을 놀러 가는 것도 있을 수 있겠죠. 가상의 아바타로 만들어진 아이돌 그룹의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가상 인간의 라이브커머스를 보고 상품도 구매하죠.

매체나 기업은 몰라도 적어도 이용자는 이걸 메타버스 했다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누구는 로블록스를, 제페토를, 스위치로 게임을, 혹은 음악을 감상하고 쇼핑을 했다고 말했겠죠.



▲ "나 오늘 섬을 기반으로 한 버추얼 월드에서 낚시도 하고 소셜 활동을 하며 메타버스 했어!"
아무도 이렇게 말 안한다

이게 정말 거대한 변화를 이끌 물결이라면. 그에 따른 연구와 개발, 인프라가 탄탄히 구축된다면. 그리고 그 플랫폼을 채울 든든한 콘텐츠가 자리 잡는다면. 누군가 '이게 바로 메타버스'라고 악을 쓰며 떠들지 않아도 결국 시대는 바뀔 겁니다. 지금도 서서히 그 변화가 시작되고 있고요. 오히려 완벽하지 않은, 지금까지와 비슷한 무언가를 가지고 뚜렷한 미래비전 없이 메타버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도태될 겁니다. 메타버스가 단순히 투자를 위한 투자가 된 꼰대들에게 말이죠.

그리고 거대한 울타리 안에 수많은 요소를 메타버스라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한. '장대한 비전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기업'과 '투자만을 위한 무기로 쓰는 기업'이 하나의 메타버스로 표현되는 한. 메타버스라는 거대한 물결이 우리 삶을 완전히 뒤집어 놓기 전까지 밝은 미래의, 내일의 메타버스는 '꼰대'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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