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노보딩 원툴 게임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6개 |

보드의, 보드를 위한, 보드에 의한


저는 보드를 못 탑니다. 타 보긴 했습니다. 보드에 발을 얹고 슬로프를 몇 번 내려와보긴 했으니 말이죠. 하지만 그 몇 번의 강하 동안 수도 없이 굴렀고 스키장 입장료와 장비 대여료보다 더 병원비가 더 나올 뻔 했습니다. 그 이후로, 어디서 보드 탔다는 말은 안 합니다.

하지만, 타고는 싶습니다. 익스트림 스포츠가 보통 그렇습니다. 그저 로망만 품고 있죠. 자칫하면 저승행 편도티켓을 끊기 딱 좋은 위험한 스포츠들은 감히 못 하겠지만, 스노보드 정도는 언젠가 꼭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습니다. 사실 좀 늦은 나이긴 하지만요.

그래서 눈을 돌린게 게임입니다. 스노보드 게임은 매우 드물지만, 나름 끊이지 않고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보드 위에서 윈드밀을 도는 초인들의 게임인 SSX 시리즈부터 게임 내내 뼈가 박살나는 'Amped' 시리즈, 비교적 최근엔 유비소프트가 만든 'Stip'과 '라이더스 리퍼블릭'이 있죠.

그리고, 지난 3월 중순에 그 맥을 잇는 타이틀 '슈레더스'가 출시되었습니다.



게임명: 슈레더스(Shredders)
장르명: 스포츠
출시일: 2022.3.17
개발사: Foam Punch
서비스: Foam Punch
플랫폼: PC, XBO, XSX|S

● 관련 링크: '슈레더스' 오픈크리틱 페이지


스노보딩의 A to Z

슈레더스는 스노보딩 게임입니다. 익스트림 스포츠 게임, 혹은 동계 스포츠 게임이 아닌 딱 그대로 '스노보딩' 게임이죠. 스키나 다른 장비는 일체 없이 오로지 보드만 존재합니다. 게임 콘텐츠 또한 이 '스노보딩'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보다 자세히 말하면, '스노보딩'이 이 게임의 알파이자 곧 오메가입니다. 치우쳐 있다는 거죠. 그리고, 치우쳐 있다는 건 상반된 시각이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스노보딩'이라는 게임의 소재 자체만큼은 지금껏 나온 어떤 게임보다도 더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설질에 따라 달라지는 주행 소음과 점프 및 트릭의 현실성, 그리고 보딩 시의 쾌감과 속도감 또한 지금껏 나온 모든 스노보딩 게임 중엔 최고라 할 만합니다. 그래픽 수준이 월등히 좋은 것도 아니고, 배경 또한 지금껏 등장한 다른 게임과 비슷한 수준임에도 디테일을 통해 한 단계 위의 수준을 만든 것이죠.



▲ 그래픽을 의식하지 않으면, 실제 장면을 구현해 둔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게임 상에 실존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장비가 구현되어 있다는 점도 슈레더스의 현실성을 더하는 요소입니다. 가령 레드불 소속의 선수인 젭 파월(Zeb Powell)은 게임 초반 튜토리얼에서 등장하는데, 아마 스노보딩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상황을 보다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지나가는 NPC중 하나로 보이겠지만요.

문제는 '슈레더스'가 어디까지나 스노보딩이 아닌, '스노보딩 게임'이라는 겁니다. 현실에서 스노보딩을 즐기는 이들은 타는 것 그 자체로 재미를 느낍니다. 속도감부터 각 근육에 걸리는 부하와 귓전을 때리는 파설음까지, 일천한 경험이지만 저 또한 슬로프를 구르기 전까진 무서우면서도 동시에 재미있었습니다.



▲ 게임에서 등장하는 Zeb Powell(어차피 고글에 마스크라 얼굴은 안 보입니다)

하지만, 스노보딩이 아닌 '스노보딩 게임'에서 추구하는 재미는 약간 결이 다릅니다. 우리가 실제 사격장에서 실탄 사격을 체험할 때랑, FPS게임을 할 때 느끼는 재미가 다르듯 말이죠. 슈레더스는 스노보딩 자체에 대해서는 지금껏 나온 어떤 게임보다도 디테일하게 다듬었지만, 스노보딩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는 썩 좋지 않은 편입니다.



▲ 개방감과 속도감은 지금껏 나온 동종 게임 중 최고 수준



스노보딩은 Good, '게임'으로서는?

스노보딩 게임 하면 빠지지 않는 타이틀이 PS 시절의 명작이자 앞에서도 한 번 언급한 SSX 시리즈입니다. 솔직히 말해 SSX시리즈는 소재만 스노보딩일 뿐, 현실성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점프대조차 없는 맨바닥에서도 플립이 가능한 높이(그것도 보드를 차고)로 서전트 점프를 하는가 하면, 제대로 빅 에어 점프를 하면 건물 4~5층 높이로 솟아올랐다가 그보다 더 큰 폭으로 낙하합니다. 그 와중에 보드 위에서 브레이크댄스를 추고 아크로바틱을 하고 아주 오만 난리를 다 치죠.



▲ 나름 서사도 잡아보려 한 것 같지만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SSX 시리즈가 사랑받았던 이유는 이 게임이 스노보딩의 원형은 보여주지 못했을지언정, 게임으로서는 굉장히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스노보딩 게임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하늘을 가르듯 날아올라 온갖 트릭을 보여주고 착지할 때의 쾌감입니다. 그리고 이를 어떻게 시스템적으로 보조하느냐가 지금껏 스노보딩 게임들이 걸어온 길이었죠.

반면, '슈레더스'는 기존의 게임들에 비하면 훨씬 현실적입니다. 점프대 없는 점프는 말 그대로 '폴짝' 수준이며, 웬만한 점프대에서도 플립으로 두 바퀴를 도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물론,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슈레더스에서도 SSX까지는 아니지만 얼핏 비현실적으로 보일 만한 고난이도의 트릭을 수행할 수는 있지요. 하지만, 이를 잘 하려면 스노보딩이라는 스포츠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 다른 스노보딩 게임에 비하면 움직임이 좀 둔중한 편

결론을 말하자면, '슈레더스'는 매우 잘 만든 스노보딩 게임이지만, 스노보딩 팬층을 넘어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에는 썩 좋은 게임이 아닙니다. 흔히 말하는 '호불호의 영역'에 정확히 걸쳐 있다고 볼 수 있죠. 게임 리뷰 사이트에서 평균 6점대라는 애매한 저점에 머무르면서도 스팀 리뷰란은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중심'을 잡았다면 달랐을지도

현실 소재를 바탕으로 게임을 기획할 때 항상 고심해야 하는 부분이 '시뮬레이션'과 '게임' 사이의 선을 잡는 일입니다. 너무나 '게임'에 치우쳐 있으면 비현실적이기에 문제가 되고, 너무 '시뮬레이션'이 되어 버리면 반대로 과하게 어려워서 인기가 없어집니다. 결국, 게임사 입장에서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시뮬레이션과 게임 사이에서 중심을 잡을 것인지, 혹은 아예 컨셉을 잡고 한 방향으로 밀어버릴지 말이죠.

그리고 대부분의 게임은 현실성과 게임 사이에서 중심을 잡습니다. 그리고 몇몇 게임들은 아예 그 지독한 현실성이나 한없는 가벼움을 특색으로 밀어붙이죠. 가령 앞서 말한 SSX 시리즈의 경우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에 모든 것을 올인한 사례입니다. 현실성은 없지만, 그냥 게임이 재밌어서 평가가 좋지요. 반대로 MS의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는 아예 현실성을 특징적으로 내세워 인기를 끈 케이스입니다.



▲ '스노보딩'의 구현도는 확실하지만

그리고 '슈레더스'는 게임과 현실성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는 시도가 보이지만, 완벽히 맞추진 못한 게임입니다. 현실성으로 무게추가 쏠렸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13개에 이르는 가상의 설원과 윈치 시스템, 드론 시스템 등 다양한 방법을 고안했지만, 게임으로서의 재미는 타 작품들에 비해 손색이 있는 편이죠.

그 결과 스노보더들에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꽤나 호불호가 갈리는 게임이 되었습니다. '게임'으로서의 재미를 채워 줄 무언가를 만들어 중심을 잡았더라면, 혹은 아예 '시뮬레이터'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밀었다면 아마 더 좋은 게임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인 점이라면, 가격 경쟁력은 있다는 정도입니다. 스팀에서 판매하는 '슈레더스'의 정가는 31,000 원. AAA급 정규 게임의 절반 정도인 '하프 프라이스'로 출시되었습니다. 엑스박스 진영의 인디 게임 푸시 프로젝트인 ID@XBOX 태생의 게임이기에 정해진 가격이겠지만, 이 정도면 지나가다 한 번쯤 찍어먹어보기에 크게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죠. 스노보딩 팬들에게는 분명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는 게임입니다. PC 포팅 과정에서 컨트롤 부분이 꼬여 키보드 플레이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PC로 플레이하려면 패드를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요.



▲ 한국어화도 꽤 깔끔하게 되어 있습니다.
  • 최고의 속도감과 개방감
  • 현실 인물들과 장비들의 등장
  • 게임의 맛을 살리는 BGM
  • 다소 부족한 콘텐츠
  • 리얼함에 비해 부족한 게임성
  • 컨트롤러 필수 요구

리뷰 플랫폼: PC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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