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쉼 없이 달려온 9년, 마침표 앞의 '데프트'를 지탱하는 것

인터뷰 | 박태균, 남기백 기자 | 댓글: 44개 |



2년 전, 오류동의 한 카페에서 '데프트' 김혁규와 나눴던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느긋하고도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 흘러나온 특유의 침착한 말투는 귀를 자극했고, 질문에 대한 성숙하면서도 진중한 답변은 심장을 자극했다. 프로게이머로서 살아온 7년과 그동안 겪은 산전수전은 철부지 소년을 리더 역할이 당연한 청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데프트' 김혁규는 지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잠깐의 대화로도 이것이 섣부른 판단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프로게이머로서 더 발전할 부분이 없어 보였던 그의 태도와 마음가짐은 해탈 수준에 이르렀던 것이다. 초월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압박이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그는 결코 초연함을 잃지 않은 채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피할 수 없는 마침표 앞에 선, 지금의 '데프트' 김혁규를 지탱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 변호사와 검사, 팀 같은 팀을 위해

휴가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스프링 스플릿 동안 무엇을 잘 했고, 무엇을 못 했는지... 그런데 잘했던 건 딱히 생각이 안 나더라. 개인적으로나 팀적으로나 부족했던 부분이 많았었고, 그래서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우리 팀을 보다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었는데 최대치를 내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스프링 스플릿 때도, 지금도, 우리 팀원들의 개인 기량에 대한 의심은 전혀 없다. 그래서 서머 스플릿에선 좀 더 팀 같은 팀이 됐으면 한다. 스프링 스플릿에선 각 선수가 다른 선수들의 변호사가 되어주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의 실수를 보완해 주며 플레이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됐던 것 같다.

오히려 변호사가 아니라 검사처럼, 서로의 잘못이나 실수를 찾고 지적하는 분위기가 잡혔다. 물론 두 방식 모두 장단점이 있다. 검사처럼 했을 땐 특정 선수의 실수를 명확하고 잡고 수정하여 발전할 수 있겠지만, 한 명이 피드백을 계속 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팀원들의 실력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최상위권 팀 간의 대결에선 그렇게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상위권에서 경쟁하기 위해선 결국 팀원들이 서로의 변호사가 되어주어야 한다.





- 돌아온 DRX, 바뀐 게 많다

1년 만에 돌아왔는데, 모든 게 좋은 쪽으로 변화됐다. 시스템적으로 게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큰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다. 또 여태까지 있었던 팀들에 비해 주장 역할을 보다 가볍게 수행할 수 있었는데, 여기엔 코치진과 '베릴' 선수의 영향이 매우 컸다. 서머 스플릿에서는 내가 그 사람들보다 잘할 수 있는 역할을 잘 찾아서 확실히 해줄 생각이다.

'킹겐-제카' 선수의 경우 라인전은 그 누구와 붙어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이 안 든다. 또 외적으로 둘 다 매우 강해 보여서, 게임 밖에서 싸워도 질 것 같지 않다(웃음). '표식' 선수는 게임을 잘 하는 건 당연한 거고, 외적으로도 성격이 좋아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존재다. 또 '베릴' 선수는 인게임과 현실의 분리가 확실하다. 인게임에서 불편한 부분이 있었더라도 상황이 끝나고 나면 다시 친근하고 바보 같은 친구로 돌아가서 재밌다.

팬분들이 잘한다고 할 때나 못한다고 할 때나, 내 개인 실력은 지금까지 항상 비슷했다고 생각한다. 그저 내가 팀적으로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만드느냐에 따라 비춰지는 모습이 달라지는 것 같다.



- 연기된 아시안게임

아시안게임은 가장 최근 경기에서 가장 잘 한 팀이나 선수가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후보 명단에 들어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스럽고 좋았다. 다만 연기가 된 지금은 감흥이 사라졌다. 물론 연기된 상황이 분하긴 하지만... 분명 기회는 주어졌었는데, 내 실력이 스스로 생각한 기준치에 다다르지 못했다.

만약 내가 은퇴한 상태였다면 '구마유시' 선수의 자신감을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난 바로 옆에서 경쟁하는 입장이지 않나. 그래서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당장에는 그런 느낌이다(웃음). '케리아'의 경우엔 잘할 수밖에 없는 선수였고, 당연히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대로 잘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 '데프트' 김혁규의 이야기

LoL을 처음 접한 건 2011년 북미 서버에서다. AOS 장르 자체가 처음이었고, 외국 게임 같은 느낌이 들어 신선했다. 또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가장 못했었기에 분해서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덕분에 랭크가 쉬지 않고 올라갔는데, 한동안 프로게이머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랭크 게임을 하면 상대 팀이든 우리 팀이든 프로게이머들이 있더라. 그리고 한 선수가 프로 테스트를 볼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을 때 느낌이 딱 왔다. 아, 이거는 해야겠다.

어렸을 때부터 뭘 하든 지는 걸 싫어했다. 승부욕이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많이 센 것 같다. 일례로 솔로 랭크에서 연승을 하거나, 상대와 실력 차이가 많이 나거나, 상대가 못한다고 느껴지면 재미가 없다. 반대로 연패를 하면 의욕이 생겨서 계속 게임을 하게 된다.

지금은 허리 건강이 연습이나 경기에 지장이 전혀 없을 정도로 호전됐다. 고생하기 전까지는 몸이 아파도 하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았는데, 이젠 그게 아닌 걸 알게 됐다... 이에 항상 컨디션 관리에 신경을 쓰고 무식한 연습 방법을 안 쓰게 됐다.

한 명을 꼽기 정말 어렵지만, 함께했던 선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서포터는 '마타' 선수다. 인게임에서든,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든 내게 매우 큰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마타' 선수는 정말로 24시간 내내 LoL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생각을 하거나 무엇을 봤다. kt 롤스터에서 2년간 함께하며 힘든 기억도 많았지만 매우 재밌었다.

선수 생활을 돌이켜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단연 EDG 소속 당시의 일이다. LCK로 돌아오기 전에 LPL 시상식이 있었는데, 수많은 팬이 내 닉네임을 불러줬던 일이 항상 떠오른다. 이에 작년 EDG가 롤드컵에서 우승했을 땐 감회가 새로웠다. '메이코' 선수와 '스카웃' 선수 모두 롤드컵에서 우승할 자격이 있다는 걸 아니까 축하를 하면서도... 내가 되게 초라해지는, 복잡한 감정이었다.





- 피할 수 없는 마침표

작년까지만 해도 프로게이머가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더 하고 싶고, 아쉽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걸 받아들여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오히려 뭔가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금은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다 보여주고 가자, 이런 느낌이다.

선수로서든, 코치진으로서든 롤드컵 우승을 하겠다는 목표는 아직 유효하다. 하지만 그것도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안다. 내가 나를 객관화했을 때, 지도자로서 최고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때 할 것 같다. 어중간한 코치진은 하기 싫으니까.

은퇴 후 각자의 길을 걷는 전 동료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내 차례도 오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른 걸 느낀다. 되돌아보면... 아쉽지 않은 시즌이 없었다. 다만 지금의 괴로운 기억들도 은퇴 후에는 재밌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 지금의 '데프트'를 지탱하는 것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팬분들의 응원이 가장 많이 포함된다. 또 내가 프로게이머로서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나에 대한 팬분들의 신뢰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 신뢰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걸 직접적으로 느낀다. 하지만 '많이 남지 않은 것'과 '아예 없는 것'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지 않나. 남은 시간 안에 내가 원하고 팬분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 본 인터뷰는 5월 10일(화)에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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