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길 시리즈#4] 일본 인디씬과 함께 성장한 퍼블리셔, '플레이즘'

인터뷰 | 박광석 기자 | 댓글: 2개 |
'외길 시리즈'에서는 급변하는 세태와 외부 환경에 굴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철학에 의거하여 우직하게 외길을 걷는 국내외 게임 개발사들을 만나봅니다.

이번에도 '동인 게임'의 하위 분류로 구분되며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일본의 인디 업계를 조명했습니다. 네 번째로 만나본 기업은 일본의 인디 씬에서 독보적인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는 퍼블리셔인 '플레이즘(Playism)'입니다.

지난 2011년에 설립된 플레이즘은 현재까지 100종 이상의 인디 게임을 지원하고, 해외 진출을 도왔습니다. '이브', '살육의 천사', '매드 파더' 등 RPG 메이커로 만들어진 쟁쟁한 명작들은 물론, 모모도라, 반교, VA-11 HALL-A 등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여러 인디 게임들이 플레이즘을 통해 세상에 소개된 바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플레이즘의 수장인 미즈타니 슌지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인디 게임 전문 퍼블리셔, 플레이즘(Playism)



▲ 플레이즘 미즈타니 슌지 대표

Q. 먼저 기사를 보게 될 한국의 게이머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지금으로부터 11년 전부터 일본의 인디게임 퍼블리싱 브랜드 PLAYISM의 운영 전반을 담당하고 있는 미즈타니라고 합니다. 운영 책임자입니다만, 게임 발굴부터 프로모션까지 비교적 뭐든지 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인디 게임은 '페이퍼 플리즈'이고, 지금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를 즐겁게 플레이 중입니다.


Q. '플레이즘'이라는 이름이 한국의 게이머들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정확히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대표작으로는 어떤 작품이 있는지도 소개해주세요.

- 플레이즘에서는 소수정예로 만들어진 뛰어난 인디 게임과 개발자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현지화를 하거나, 이식하고, 프로모션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콘솔 혹은 스팀에서 일본의 인디 게임을 글로벌 시장에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플레이즘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인디게임 전문 판매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을 통해 인디 게임을 처음으로 선보이기도 했고, 스팀에서 그린라이트 시스템이 운영될 당시, 'La-Mulana'라는 게임을 최초로 통과시킨 적도 있죠. 이외에도 '아이돌 매니저'부터, 이브(Ib), 동방 루나 나이트 등 한국의 게이머분들도 한 번쯤 들어보셨을 만한 타이틀들을 다수 퍼블리싱한 회사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인디 개발자인 Somi씨의 작품인 '레플리카', '리갈 던전'의 판매도 플레이즘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인디 게임 퍼블리셔'로서 수립한 기록도 많다


Q. 전 세계의 수 많은 인디 게임 중에 배급작을 선정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면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는지, 그 기준이 궁금합니다.

- 게임의 완성도도 물론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 게임은 이 개발자가 없었다면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만 한, 오리지널리티가 높은 작품을 우선 선정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굉장히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지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게임이라면 가능한 선택하지 않으려고 할 것 같습니다.



▲ 플레이즘의 기조는 '오리지널리티'를 갖춘 인디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것에 있다
(VA-11 HALL-A의 경우, 플레이즘에서 일본어판 퍼블리싱을 담당했다)


Q. 배급작 선정 후, 인디 개발사와는 어떤 형태로 소통하는지 궁금합니다.

-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는 메일, 슬랙, 디스코드, 라인, 채팅워크, 스카이프, 줌 등 다양한 수단이 활용됩니다. 개발사 측이 활용하기에 편안한 것으로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단을 한정하면 연락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수단을 정했다면 대략적인 마일스톤을 결정하고, 매번 새롭게 완성되는 빌드를 받아 피드백을 돌려주고, 프로모션 플랜을 제안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지 묻는 식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정식 출시 시점까지 계속 반복하게 됩니다.


Q. 인디 개발자들 스스로가 '내가 만든 게임은 플레이즘과 어울린다'라고 생각하게 할만한, 퍼블리셔 플레이즘만의 특색이 있다면 어떤 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대표적으로 '디볼버'라면 다소 폭력적이고 아나키즘이 돋보이는 작품들, '안나푸르나'라면 좀 더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특정한 아트, 장르가 플레이즘의 스타일이라고 미리 결정해버리면 시대의 흐름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간 별다른 기준을 두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고요.

하지만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시는 게이머들이 보시기엔 '이브'나 '매드 파더' 같은 2D 쯔꾸르 호러 어드벤처나 '동방 루나 나이츠', '로도스도 전기- 디드리트 인 원더 라비린스' 같은 메트로배니아 장르의 게임이 플레이즘의 색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외에도 거점이 일본이라서 그런지, 애니메이션 계열의 아트가 돋보이는 타이틀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Q. 한국 인디 게임 개발사 중 주목하고 있는 곳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인디 개발자 Somi의 게임은 그야말로 '인디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인생관이 묻어나 매우 개성적이고 개인적인 타이틀이 많죠. 스튜디오HG도 관심있게 보고 있는 인디 개발자입니다. '스매싱 더 배틀'이 처음 나왔을 땐, 개인 개발의 퀄리티가 한 단계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프로젝트문의 작품들도 관심있게 보고 있고요. 이외에도 플레이즘과 연결고리가 있는 터틀 크림, '루시'의 개발사인 M-VIZLAB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 "플레이즘은 한국의 인디 개발사, 개발자들도 주목하고 있다"


Q. 인디 게임 개발자가 자신의 게임을 플레이즘을 통해 서비스하고 싶다면, 먼저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하나요?

- 먼저 플레이가 가능한 알파 버전의 버티컬 슬라이스 빌드와 게임 설명 자료를 준비해야만 합니다. 게임 설명 자료에는 게임의 특색, 개발자 경력, 개발 일정, 개발 예산, 또 퍼블리셔에게 원하는 부분을 기재해두면 좋습니다. 더 디테일하게는 상정하고 있는 전체 문자 수, 게임 엔진 등도 검토 시에 필요한 정보입니다.



▲ 공식 홈페이지에도 인디 개발자들을 위한 상담 창구가 마련되어 있다


Q. 유통이 결정된 신작 타이틀 라인업을 소개하는 쇼케이스를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PLAYISM Game Show'라고 하는 온라인 이벤트를 통해 신규 타이틀을 소개하는 자리를 1년에 적어도 1회 이상 마련하고 있습니다. 아직 한국어는 지원하지 않고 있어 한국의 게이머들에게는 죄송할 따름입니다.


Q. 플레이즘을 통해 발매를 앞두고 있는 신작들의 소식도 궁금합니다.

- 다가오는 7월 21일에는 '브라이트 메모리: 인피니트'가 닌텐도 스위치, PS5, XSX 플랫폼을 통해 발매됩니다. 이어서 8월 7일에는 'Timothy and Tower of Mu'가 스팀에서, 8월 25일에는 '아이돌 매니저'의 스위치, PS4, PS5 버전 빌드 출시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곧 스팀판 'Ib'의 한국어판 발매도 준비하고 있으니, 한국 게이머들의 많은 기대를 부탁드립니다.



▲ 이브(Ib)의 한국어 버전도 곧 출시될 예정


Q. 플레이즘을 통해 유통된 작품 중, 한국의 게이머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인디 게임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한국어도 지원하고 있는 작품이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액션 장르를 좋아하시는 게이머라면 '모모도라: Reverie Under the Moonlight'를, FPS 장르를 선호하는 게이머라면 '브라이트 메모리: 인피니트'를, 사슴을 좋아하시는 분에게는 '사아아아아슴 시뮬레이터'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 하나로 특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다양한 색깔의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



■ 플레이즘이 바라보는 '인디 게임', 그리고 인디 게임 시장

Q. 플레이즘이 생각하는 인디 게임의 정의가 궁금합니다.

- 처음에는 독립된 자신의 자금으로 온전히 게임을 만들고, 홀로 판매까지 모두 전담하는 것을 인디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 퍼블리셔가 붙고, 투자가 이뤄지고, 대규모로 팀을 꾸려서 게임을 만드는 일이 늘어나다 보니 뚜렷하게 정의를 내리기가 굉장히 어렵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지금은 '게임 개발 권한'과 '게임 판매 권한'이 일치한다면 인디 게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투자를 받아서 게임을 만들고, 또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게임을 만들더라도 그것을 만들고, 또 파는 것에 대한 최종 결정을 한 명, 또는 팀에서 결정할 수 있는지에 그 여부가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모회사가 개발 중지를 명령하거나, 혹은 퍼블리셔가 명령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인디 게임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상대적으로 가볍게 취급되는 '인디 게임'에 대한 인식 때문에 표절 등 불미스러운 일이 자주 발생하곤 합니다. 이런 상황이 있을 때 플레이즘에서는 퍼블리셔로서 어떤 조처를 하고 있는지, 같은 형태의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상표 신청을 하거나, 사용 소재에 관한 계약의 확인 등을 실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디 게임 개발자 중에서는 계약이나 법적인 절차에 관한 인식이 낮거나, 없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있으므로, 해당 과정의 절차 시정이나 지원도 함께 실시하고 있습니다.



▲ 인디 개발자들이 인지하지 못했거나, 놓친 부분에 대해 지원하는 것도 퍼블리셔의 역할이다


Q. 플레이즘이 인디 게임 퍼블리셔로 활동한 지 어언 11년이 지났는데요. 그간 인디 게임 시장의 트렌드 변화 등을 현업 종사자로서 더 빠르게 피부로 느껴왔을 것 같습니다.

- 그간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11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인디 게임이 뭐죠?'라고 자주 물었습니다만, 지금은 이러한 질문을 듣지 않게 됐습니다. 인디 게임의 평균 단가가 오르고, 개발비가 급등하고, 인기 장르가 변하거나 닌텐도 스위치 플랫폼이 등장하는 등, 지금도 인디 게임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플레이즘은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안테나를 세우고, 항상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 9주년을 넘어 11주년까지, 플레이즘은 일본 인디 게임 시장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본 산증인이다


Q. 인디 시장의 부흥을 위해 퍼블리셔로서 어떤 지원 정책 등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게임 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도 그렇고 어떤 작품이든 원래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은 개인, 또는 소수의 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인디 게임은 큰 규모의 기업 단위 작품들에 크게 뒤지지 않는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케팅, 개발 자금 마련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피하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이러한 부분을 지원하는 것이 퍼블리셔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매일 이런 부분에 지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한국의 게임 시장, 그리고 한국 게이머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 사용하는 언어부터 문화, 습관이 크게 다르므로 '거리적으로는 가깝지만,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다만 일본인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한국에서도 동일하게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점에서 취미나 기호 같은 것에 친근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반대로 한국의 게임이 일본에서도 인기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Q. 한국 게이머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은 작품들이 그간 알게 모르게 플레이즘을 통해 많이 서비스되어 왔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지금보다 더 키우기 위해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전면적으로 유통되지 못한 점은 반성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홍보에 힘을 쏟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판로 확대는 항상 고민하고 있는 과제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현지화와 포팅 범위를 넓혀나 가려 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앞으로 한국어 대응에 더 힘을 쏟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외에도 현재 플레이즘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들 대부분은 일본 인디 게임들이지만, 앞으로 외국 개발자들의 인디 게임들도 많이 발굴하고, 취급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더 많은 플레이즘의 작품 속 한국어화 대응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Q. 현지화가 진행되지 않은 몇몇 게임의 경우, 사용자가 모여 비공식 언어 패치를 만들고 배포하기도 합니다. 플레이즘은 이러한 유저 활동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궁금합니다.

- 팬에 의해 진행되는 번역 작업은 기본적으로 매우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일본어를 지원하지 않는 게임에 일본어 모드가 추가되면 도움을 받고 있기도 하고 있죠. 최근 '그노시아'의 한국어 패치가 공개된 사실 역시 파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팬 번역을 정식 번역으로 채용하는 사례도 많고, 팬들에게 정식으로 일을 의뢰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게임의 매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현지화를 진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일도 많습니다. 다만, 막상 정식으로 팬 번역을 채용하려고 하면 개발사 측이 이미 신작을 만들고 있는 등의 현실적인 문제도 있어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게 되는 경우도 많으니, 이점은 참고 부탁합니다.



▲ 혼자서 즐기는 마피아 게임 '그노시아'엔 최근 비공식 한국어 패치가 추가됐다


Q. 플레이즘이 생각하는 '재미있는 게임'의 기준, 그리고 앞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과 포부가 궁금합니다.

- 몬스터헌터 시리즈,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용과 같이 시리즈 등등 재미있는 게임은 정말 많이 있지만, 플레이즘은 새로운 체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개발자를 계속 지원하는 것이 그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방향성은 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나더라도 결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Q. 끝으로 한국의 인디 게임 개발자, 그리고 게이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한국의 인디 게임 축제인 BIC에 한번 쯤 꼭 참가해보고 싶지만, 매번 TGS와 시기가 겹쳐 방문하지 못하는 것이 한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한국의 인기 게임 시장을 공부하러 꼭 방문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인디 게임 팬분들도, 그렇지 않은 유저분들도 퍼블리셔에 플레이즘의 이름이 보인다면 꼭 한번 즐겨봐 주시길 바랍니다.



▲ "새로운 재미를 창조해내는 인디 개발자를 지원하는 것이 플레이즘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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