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디지몬 '서바이브'

리뷰 | 김수진 기자 | 댓글: 18개 |
저는 흔히 말하는 디지몬 세대가 아닙니다. 아니, 좀 애매하게 걸쳐있어요. 초등학교 끝자락 즈음 한국에서 디지몬 어드벤처가 방영됐는데, 제 인생에 디지몬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죠. 물론 너무나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오프닝과 엔딩곡을 흥얼거리고, 등장했던 디지몬과 인물들의 이름을 자연스레 떠올릴 정도로요.

여튼, 무려 20년 전에 마지막으로 접했기에 디지몬이라는 IP를 잘은 모릅니다. 디지몬 어드벤처에서 봤던 아구몬, 파피몬, 파닥몬 등이 제가 아는 유일한 디지몬이죠. 그래서 디지몬 서바이브를 플레이하면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이해를 못 하면 어떻게 하지? 아무리 어둡다고 해도 혹시나 유치하게 느껴지면 어떻게 하지? 등등 유명 IP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할만한 수많은 걱정을 했어요.

하지만 그 모든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디지몬 팬들을 위한 외전격 이야기라고 했지만, 그래서일까요. 오히려 기존 디지몬 시리즈를 잘 몰라도 세계관을 비롯한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그 어떤 어려움도 없었어요. 플레이하는 몇십 시간 동안, 정말 오롯하게 '디지몬 서바이브'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엔딩 장면에서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말이죠.



게임명: 디지몬 서바이브
장르명: 비주얼 노벨, SRPG
출시일: 2022. 07. 29.
리뷰판: 출시버전
개발사: HYDE
서비스: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PC / PS / Xbox / NSW
플레이: PS

관련 링크: 메타크리틱 페이지 / 오픈크리틱 페이지


정말 너무나, 어두운 이야기

게임이 출시되기 전 가장 많이 들려왔던 사전 정보는 바로 '게임 스토리가 참 어둡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인터뷰에서도, 개발자 영상에서도 항상 언급되는 정보였죠. 하지만 솔직히 그래도 디지몬이 나오는 만큼 어두워 봐야 얼마나 어둡겠어라는 생각이 있긴 했어요.

그런데, 아니더군요. 스토리 전체를 통틀어 가볍게 웃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용이 묵직합니다. 분명 10대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함에도 담고 있는 이야기는 너무나 무겁고 너무나 어두우며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그저 쉽게 모든 것에 적응하고 히어로의 길을 걸어나간다는 전형적인 모습을 모두 걷어냈습니다. 디지몬 서바이브는 급작스럽게 아무것도 모르는 이세계에 떨어진 아이들이 어떤 공포를 느끼는지, 그들을 도와준다고 나타난 정체불명의 몬스터들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의심을 하는지 등을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다양한 인물들과 몬스터가 '유대감'이라는 것 하나로 너무나 평탄하게 모든 시련을 이겨나가는 그런 장면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신 그들이 그 유대감을 얻기까지 겪은 사건, 그리고 평범한 이들이 주인공이 되었을 때 시련에 어떤 방식으로 대처할 것인지, 그리고 미지의 세상과 죽음에 대한 공포 앞에 어떻게 갈등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바로 선택이라는 방식으로 말이죠.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우리는 끊임없이 다양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깨에 켜켜이 쌓인 부담과 책임을 나누기 위해, 또 때로는 자신의 공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뻔한 희망의 말 대신 다양한 고민이 담긴 말들을 던져야 하죠.

특히 아이마다 가지고 있는 성격에 따라 알맞은 선택을 하는 게 참 중요합니다. 그저 '넌 할 수 있어!'라든지 '넌 대단해!'라든지 '넌 이겨낼 수 있어!' 등의 뻔하고 뻔한 말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게임 속의 아이들은 10대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만한 고민, 걱정, 감정을 각자 지니고 있습니다. 의지할 어른이라고는 없는 상황에서 평범한 아이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를 보여주죠. 그리고 그 결과는 생각보다 너무나 잔혹합니다.




의외로 디지몬 서바이브의 이야기는 엔딩으로 갈수록 익숙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어찌 보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이야기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반대로 그 익숙함까지 가는 구간이 참 안 익숙합니다. 한 명의 강력한 주인공에게 기대는 히어로물의 모습보다는 여러 인물이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군상극에 가깝기 때문이죠.

물론 '가깝다' 일 뿐 흔히 말하는 왕도물에서 완벽히 벗어난 건 아닙니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고루 펼쳐지고, 그들 각각이 파트너 디지몬을 보유하고 있는 건 맞지만 분명 이야기 전개의 중심에는 주인공 타쿠마와 그의 파트너 아구몬이 있으니까요. 특히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 번씩은 겪는 고민과 갈등의 시간 또한 주인공 페어는 경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주인공 타쿠마 역시 고민하고 휘둘리는 평범한 10대 아이의 모습을 꽤나 많이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모두를 이끌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모두를 답으로 인도하는 멋진 리더십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굳게 피어나는 일반적인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어요.

대신 디지몬 서바이브는 등장인물 각자에게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완벽한 한 명의 지도 하에 어려움을 깔끔하게 극복하는 그런 이야기 대신, 결정 하나하나 의견 충돌이 발생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여준달까요. 절대적 영웅이라면 고민하지 않을 부분을 디지몬 서바이브의 주인공들은 모두 수번의 고뇌와 갈등 끝에 이루어냅니다.






익숙한, 하지만 개성 없는 전투

디지몬 서바이브는 텍스트 어드벤처와 택틱스 배틀이라는 아주 고전적인 장르를 택했습니다. 다만 그 무게가 어디에 가 있는지는 너무나 확실하게 드러나는 편이죠.

바로 스토리와 그를 풀어내는 텍스트 어드벤처 쪽입니다. 그중에서도 '텍스트'쪽에요. 좀 더 쉽게 보자면 비주얼 노벨에 고전적인 SPRG의 전략적인 전투가 합쳐진 느낌입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메인은 '스토리' 전개에 맞춰져 있습니다. 전투는 게임을 좀 더 흥미롭게 할 수 있도록 가미되어 있는 향신료에 가깝고요.




전투의 경우, 한때 고전 SRPG를 많이 즐긴 게이머라면 튜토리얼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익숙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킬이나 장비를 얻어 장착하고, 성장 아이템을 소모해 스탯을 추가로 상승시키고, 전투 역시 턴에 따라 이동하고, 공격하거나 아이템을 쓰거나 방어를 하는 방식이죠.

하지만 그 전략성이 과연 단독으로 두고 봤을 때 뛰어나냐고 한다면 대답은 '글쎄'입니다. 전투와 관련된 부분은 디지몬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본다면 그저 평범할 뿐입니다.

특히 스킬과 장비를 모두 합쳐 단 두 개만 착용할 수 있다 보니, 속성이나 디지몬의 특성에 맞춰 셋팅하고 전투를 진행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냥 가지고 있는 장비 아이템 중 스탯 상 가장 좋은 것 두 가지를 장착시키면 그만이니까요.




전투 시스템 자체를 두고 본다면 특별한 게 없습니다. 너무나 평범하죠.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분명 있습니다. 스토리와 전투를 연계했기 때문이에요.

디지몬 서바이브는 언급했듯 유저의 선택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파라미터가 쌓이게 됩니다. 그 중 눈여겨볼 건 바로 '친밀도'입니다. 인물들의 성격을 잘 파악한 뒤 내린 선택들은 그들과의 친밀도를 상승시키고, 그렇게 쌓인 친밀도는 전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어시스턴스를 통해서요.

친한 친구일수록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줄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인만큼, 스토리 부분에서 열심히 쌓은 친밀도는 전투 시 추가 공격이나 회복의 빈도로 돌아옵니다. 전투는 전투, 스토리는 스토리, 딱 잘라 선을 긋기보다 이런 소소한 부분을 통해 두 섹션을 자연스레 연결시킨 거죠.

그리고 조금은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다회차를 진행하면서 스토리 상 선택했던 카르마에 따라 아구몬의 진화 방향이 달라지는 것, 등장인물들의 파트너 디지몬의 경우 친밀도를 높여야만 추가적인 진화를 확인할 수 있는 것 등도 그렇습니다. 스토리의 전개에 따라, 그리고 그 방향에 따라 전투 역시 일정 부분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친절한 전개, 부족한 연출

디지몬 서바이브는 생각보다 매우 대중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가장 놀라운 건 디지몬이라는 유명하고도 유명한, 벌써 몇십 년이나 된 IP를 사용했음에도 전혀 그 진입 장벽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죠.

오래된 IP는 그 세월 동안 매우 단단하고 견고하며, 아주 섬세하고 다양한 세계관과 설정을 가지게 되죠. 결국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하지만, 반대로 유명하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접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가끔은 고정된 이미지가 생기기도 하죠.

당장 저에게 디지몬은 어릴 적 봤던 디지몬 어드벤처,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밝은 이야기로 굳어져 있었어요. 디지몬들의 진화 역시 디지몬 어드벤처에서 봤던 그 모습이 다였고, 디지털 세계와 관련되어 있다는 내용 정도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죠.



▲ 익숙한 디지몬들

하지만 디지몬 서바이브는 기존 디지몬 시리즈의 내용을 아예 모르더라도 게임을 즐기고, 몰입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대중적입니다. 심지어 디지몬을 디지몬이라고 부르지도 않으니까요. 이 게임에서 디지몬은 '수신'으로, 그리고 '짐승'으로 불리며, 아이들이 떨어진 세계는 현실과 비슷하지만 너무나 다른 '이세계' 정도로만 나옵니다.

즉, 그저 배틀이 가미된 어두운 내용의 비주얼 노벨 정도로 이해하고 게임을 하더라도 전혀 어색한 점이 없다는 것이죠. 분명 디지몬 게임임에도 정립된 디지몬 세계관을 활용하지 않았어요. 그 결과 '이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떨어져 버린 등장 인물들의 감정을 훨씬 더 몰입해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디지몬이라는 IP를 사용했음에도 누구나 쉽게 접하고 플레이할 수 있도록 그 복잡성을 많이 줄였다고 보면 좋을 것 같네요. 어쨌든 '디지몬' 시리즈의 게임이기에 아예 디지몬을 모르는 사람이 선뜻 게임을 구매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디지몬을 추억 속에 간직하고 있던 사람, 혹은 조금이라도 들어본 사람에게는 오히려 아주 친절한 게임이 될 수 있다는 거죠.



▲ 인게임에서 '수신'과 '짐승'으로 불리는 디지몬

다만 게임의 연출적 부분은 참 아쉽게 다가옵니다. 몰입도를 확 높여줬던 애니메이션은 초반 프롤로그에만 삽입되었고, 제대로 된 이벤트 컷신도 거의 없는 편입니다. 이벤트 장면에서는 화면 전체 컷신 대신 화면 중앙에 컷 형식의 일러스트가 나타날 뿐이죠.

가장 큰 아쉬움은 바로 게임의 백미라고 볼 수 있는 디지몬의 첫 번째 진화 연출입니다. 스토리상 가장 극적인 순간, 감정의 고점에서 이루어지는 장면임에도 단순히 하얗게 점멸 후 나타나는 일러스트로 모든 게 끝납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중요한 부분임에도 단순한 연출로 인해 그 두근거림이 팍 가라앉아 버리는 역효과를 가져온달까요. 성우들의 열연이 아까울 정도입니다.




그외에도 화면은 돌아가지만 그래픽은 고정이라 배경 오브젝트의 잘린 부분이 보이는 등 완성도적 측면뿐 아니라, 등장인물이 쓰러질 때 그저 일러스트가 밑으로 쑥 사라지는 것처럼 기본적인 그래픽적 단순함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일러스트 그래픽은 나쁘지 않고, 시간이나 장소에 따른 빛의 색감이 들어간 것, 주인공의 시선에 따라 장면 전체가 움직이는 연출 등은 괜찮은 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픽의 전체적인 단조로움을 빛과 색감이 어느 정도 중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의 분위기 역시 색감 덕에 나름 자연스레 잘 살아났고요.









▲ 빛의 색감으로 달라지는 분위기




디지몬 서바이브는 글쎄요, 코어팬을 위한 외전작이기도 하지만 '디지몬'이라는 이름을 달았을 뿐 본편과는 뚝 떨어진 단편작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디지몬이라는 시리즈를 떼고 보더라도 충분히 재미있을 만한 그런 게임이거든요.

오히려 디지몬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유대감'에 대한 깊고도 고민할만한 이야기를 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내용 역시 디지털 세계가 아닌 조금은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배경과 함께 가볍고 활발한 영웅적 이야기 대신 평범한 이들의 고민과 갈등, 노력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죠.

다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들의 길은 평탄하지 않습니다. 특히 중반부 전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무겁습니다. 희망적이고, 발랄하고, 아름다운 디지몬의 이야기를 바란다면 플레이를 권하지 않을 정도로요.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가라앉고, 어둡고, 슬픈 내용만을 담은 건 아닙니다. 회차별 분기별 이야기가 나뉜 만큼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고 이해하는 과정도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디지몬 서바이브, 혹시나 먼 기억 속 어딘가에 디지몬이 남아 있다면, 그리고 스토리 중심의 고전 JRPG를 즐겨 했던 사람이라면, 그리고 또는 고뇌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몰입해서 플레이할 수 있을만한 그런 게임입니다. 특히 어렸을 적 디지몬 어드벤처를 시청했던 이라면 더욱요. 그 추억 속에서 마주했던 디지몬들을 만나볼 수 있거든요.






▲ 이번에야말로 귀엽고 예쁜 모습이 되도록!!
  • 몰입감 있게 풀어낸 무거운 이야기
  • 시리즈를 몰라도 즐길 수 있는 전개
  • 선택에 따라 변하는 아구몬의 진화
  • 전투와 스토리를 연계한 시스템
  • 전략이 불가능할 정도로 부족한 장비 슬롯
  • 단순하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연출

리뷰 플랫폼: PS (출시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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