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ORX, 변수에 변수를 더한 타워 디펜스

게임뉴스 | 정수형 기자 | 댓글: 4개 |



초창기 타워 디펜스 게임은 단순했습니다. 정해진 길을 따라 쳐들어오는 적을 마찬가지로 정해진 구역에 타워를 지어 효과적으로 막아내면 됐죠. 타워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승패가 갈리는 타워 디펜스는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이미 정해진 대로 진행되는 시스템 특성상 재미를 더해줄 변수가 적고 게임의 깊이 얕다는 단점이 뒤따랐는데요.

이후 기존의 틀을 유지하되 단점을 보완해줄 다양한 시스템이 추가된 디펜스 게임이 등장해왔습니다. 유즈맵으로 인기를 얻은 랜덤 디펜스부터 병사를 길목에 배치에 저지해야 하는 킹덤 러쉬 시리즈, 마당에 식물을 심어 좀비를 막는 식물vs좀비 등이 이에 해당하죠.

ORX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로그라이트와 덱 빌딩 시스템의 퓨전을 통해 기존 타워 디펜스와 차별화된 플레이를 시도한 게임입니다. 정해진 길이 없어 사방에서 적이 쏟아지고 타워를 짓기 위한 구역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 플레이어가 길을 개척하면서 방어 구역을 넓혀야 하죠. 그리고 이러한 플레이가 전부 로그라이트와 덱 빌딩에 의해 랜덤으로 진행되어 엄청난 변수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게임 플레이에서 변수는 적으면 심심해서 문제가 되지만 너무 많아도 화를 돋워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ORX의 이런 시도는 과연 혁신일까요. 아니면 잘못된 융합일까요.



▲ 길을 내고 성을 짓는 독특한 디펜스 방식

ORX의 게임 플레이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플레이어는 성주가 되어 오크로부터 마을을 지켜내야 합니다. 오크는 일정 시간마다 웨이브 형식으로 쳐들어오니 웨이브가 시작되기 전에 최대한 타워를 건설해서 오크의 침략으로부터 본진을 방어하는 데 주력해야 하죠. 앞서 언급했듯 ORX에서는 정해진 길이 없고 사방에서 오크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맞춰 타워도 정해진 구역에만 지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원하는 타일에 건설할 수 있죠.

단, 타워를 짓기 위해선 몇 가지 필수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데요. 첫 번째는 타워 배치에 필요한 골드가 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길목 근처에만 건설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분명 아까는 길이 없다고 했는데 갑자기 길목이 나오니 이상할 텐데요. 여기서 말하는 길목은 적들이 침략할 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마을과 성을 연결하는 말 그대로 길이자 추가적인 골드를 벌 수 있는 일종의 자원으로 사용되는 장치입니다. 쉽게 말해 ORX에서 길목은 타워 건설과 자원 수급을 동시해 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러한 시스템도 ORX만의 차별화 요소 중 하나인데요. 보통 타워 디펜스는 자동 수급과 적 처치마다 추가 골드를 벌 수 있습니다. 적을 빨리 잡을수록 더 많은 골드를 벌 수 있죠. 이와 달리 ORX는 자동 수급 외에 적을 잡아서 얻는 골드가 없습니다. 대신 길을 설치하고 하나의 길을 완성했을 때 연결한 길에 따라 추가 골드를 획득할 수 있죠. 길을 연결하는 카드와 끝내는 카드가 별도로 존재하며, 특정 카드는 완성된 길에 한해 추가적인 골드를 얻을 수 있게 해주므로 골드 수급을 위해 계속해서 길을 깔아줘야 합니다.



▲ 성을 짓고 증축하면서 강화하는 방식



▲ 단순히 길을 짓는다고 골드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끝과 끝을 막아야 골드를 벌 수 있다

타워 건설 방식도 기존 타워 디펜스 게임과는 조금 다른데요. 일반적인 게임에서 타워는 성능이 정해진 완성형이며, 원하는 위치에 건설만 해두면 즉각 효과를 발휘합니다. 반면, ORX에서 타워 건설이란, 성을 짓는 것과 동일하게 진행됩니다. 성벽의 형태를 구성하는 파츠를 조합해 하나의 성을 완성하면 비로소 공격과 방어 성능을 갖춘 타워가 완성되는 것이죠. 타워의 차별점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돈을 투자해 강화하면 끝나는 기존 타워 디펜스의 업그레이드와 달리 ORX에서는 완성된 성에 파츠를 이어붙여 성을 증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증축된 성은 성에 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룬 슬롯이 증가하며, 더 많은 수의 룬을 장착해 성의 공격 및 방어 성능을 높일 수 있습니다. 말로 설명하면 꽤 복잡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 맞습니다. 실제로 게임 플레이도 굉장히 복잡하게 진행됩니다. 타워 디펜스 게임은 꽤 정적인 게임입니다.

정해진 웨이브에 맞춰 클릭 몇 번으로 타워만 증축해두면 이후에는 구경만 하다가 끝나는 게임입니다. 간혹 타이밍에 맞춰 특별한 타워 스킬을 써야 하거나 혹은 화망을 뚫고 빠져나오는 적을 견제하려고 추가적인 증축을 할 수 있겠으나 다른 장르의 게임을 생각한다면 긴박하다는 느낌이 들진 않죠.



▲ 다양한 기믹이 존재하는 보스전도 준비되어 있다

반면, ORX의 플레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바쁘게 돌아갑니다. 시작부터 웨이브의 방향을 파악한 뒤 그쪽으로 길을 깔면서 돈을 벌고 타워를 지으면서 증축시켜야 하죠. 골드는 항상 써도 써도 모자라니 계속 길을 깔아줘야 하고 오크도 가면 갈수록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침략을 해대니 타워 증축에도 게을러질 수 없습니다. 플레이어가 쉴 수 있는 타이밍은 오직 전투를 시작하기 전과 패배했을 때뿐이죠.

그리고 이 모든 플레이가 덱 빌딩 시스템으로 이뤄진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나만의 덱을 만들게 되고 그 덱에서 또 몇 장의 카드가 랜덤으로 계속 뽑히는 방식인데요. 원하는 카드가 매번 나올 수는 없으니 결국 리로드를 선택하게 되는데 문제는 카드 리로드를 몇 회 이상 하면 웨이브 시간이 단축돼 적이 더 빠르게 쳐들어올 수 있습니다. 결국, 리로드를 조심하려면 최대한 빠르게 핸드의 카드를 소진해야 하는데 고코스트의 카드만 덱이 넣으면 골드 수급에 문제가 생겨 덱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을 수 있고 이는 패망의 지름길이 돼버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저코스트의 덱으로 구성하면 갈수록 강력해지는 오크 군단을 상대하기 힘들어지니 덱 빌딩 또한 신경 써가면서 스테이지를 진행해야 하죠. 변수에 변수를 더하는 시스템을 넣었으나 그 안에 치밀한 설계를 더해 게임 플레이의 모든 선택이 플레이의 방향에 귀결될 수 있게 한 셈입니다. 내 마음대로 안 풀리면 당연히 짜증 날 수 있겠지만, 무조건 1개의 변수에서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 3개의 범위에서 선택할 수 있으니 변수에 변수가 더해지는 상황에서도 일정 이상의 재미를 유지할 수 있게 했습니다.



▲ 전투 외에 카드 강화와 아티팩트 등의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다



▲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게임의 난이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밖에도 설명하지 못한 많은 시스템이 존재하는데요. 중요한 것은 변수가 많아서 복잡하고 어려운 게임이 돼버린 것은 맞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순간 다른 타워 디펜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설계의 손맛과 타임 어택 퍼즐을 푸는 듯한 뇌지컬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게임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덱 빌딩이 조금이라도 일그러졌을 때 골드 수급이 어려워진다는 점과 랜덤에 의존한 성장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단이 없다는 것입니다.

적을 막기 위해선 타워를 건설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막대한 골드가 필요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골드를 얻기 위해선 길을 완성하거나 골드 획득량을 단기간에 늘려주는 특수한 카드를 사용해야 하는데요.



▲ 적들 역시 스테이지를 진행할수록 강력해지니 후반의 스펙업까지 생각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카드를 초반에 얻지 못했을 때 발생합니다. 정말 랜덤 뽑기에서 운이 없어 골드 수급에 도움을 주는 카드를 얻지 못한다면 중후반 스테이지부터 골드 부족에 허덕이다 끝내 게임 오버되버리는 상황이 정말 자주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두 번째 문제점인 성장의 한계가 발목을 잡습니다. 타워 디펜스 게임은 유저가 컨트롤할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ORX는 덱을 회전시키면서 계속해서 길을 깔고 타워를 지어야 하니 어느 정도 컨트롤 요소가 있는 편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덱의 성장의 한계를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갖출 수는 없었습니다.

변수가 따라주지 않아 적절한 성장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아무리 열심히 카드를 굴려도 깰 수 없는 스테이지가 존재합니다. 액션 게임처럼 스펙이 부족해도 컨트롤과 전략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수단 자체가 적은 편이죠. 이처럼 변수에 의한 허탈감이 반복된다면 게임의 흥미가 식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로그라이트 요소가 있어 반복할 때마다 상위 카드가 해금되고 전에는 못했던 전략을 풀어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 길목에 설치하는 병사의 존재감이 미약하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 중 하나

개발사에 따르면 ORX는 1년 동안 얼리 엑세스를 진행하면서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고 이후 정식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정식 버전은 4개의 팩션과 기타 콘텐츠가 추가될 예정이죠. 현재 얼리 엑세스 버전은 ORX만의 핵심 체계와 게임 메카닉이 갖춰진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총평하자면 얼리 엑세스로 출시한 게임이지만 게임 플레이 전반적으로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타워 디펜스와 로그라이트, 덱 빌딩의 융합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보였으며,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해줘 기존 타워 디펜스와 차별되는 재미를 선사해줬습니다.

평소에 타워 디펜스의 정적인 플레이 때문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게이머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이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현재는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데요. 현재 첫 번째 패치로 한국어 추가를 준비 중이라고 하니 언어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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