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게임마이스터고 교장이 학생과 캐치볼을 하는 이유

인터뷰 | 강승진 기자 | 댓글: 3개 |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학생 하나가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교장 선생님, 저희 야구 좀 하면 안 돼요?"

"그래? 야구 할 줄도 알아? 그럼 나가자"


어느덧 십수 년은 훌쩍 넘긴 내 이야기만은 아닐 거다. 또 무슨 사고를 쳤을 때 불려가는 것 정도가 아니라면 교무실에도 갈 일이 없었는데 교장실의 문턱을 넘다니. 대체 얼마나 큰 사고를 친 것인가. 뭐 이건 굳이 옛날 사람의 회상만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교장실은 일반 학생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장소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과 불쑥 찾아온 학생과 격 없는 캐치볼이라니. 되묻지 않고서는 썩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정석희 교장은 웃으며 말했다.

"던지는 폼을 보니 자세만 고치면 어깨 덜 아프게 던질 수 있겠더라고요."

정 교장은 야구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캐치볼을 하며 손에 낀 글러브를 봤다. 저렴한 제품에 찢어져 있더라. 제대로 야구를 가르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체육 선생님과 함께 인터넷에서 적당한 가격대의 글러브도 주문했다. 포수 미트, 1루수 글러브 이렇게. 하나는 관리를 제대로 받은 것으로, 다른 건 직접 관리하는 법까지 가르치면서 공을 던질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뒤적이다 주문해 받은 글러브 사진을 쑥 내밀며 웃었다.

어디 청춘 드라마에 나올법한 스토리지만, 이건 경기게임마이스터고등학교의 이야기다.






교육, 소통

전문적인 직업 교육을 담당하는 마이스터고의 이미지는 그 한 분야에 관한 교육만을 반복적으로 익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정 교장이 말한 교육 철학 안에서는 그런 부분도 절대로 허투루 생각할 부분이 아니었다.

"물론 학교의 목표 그 자체와는 상관없는 것일 수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에서는 정서적으로 아주 좋아요."

실제로 경기게임마이스터고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 최근 마이스터고 간의 축제가 열렸을 때는 공연은 보통 하는 밴드, 노래 대신 직접 만든 뮤지컬을 선보였다. 스튜디오에서 녹음도 하고, 영상도 만들었다. 그런 데서 나오는 게 스토리텔링이다.

또 책장에 아이들이 직접 큐레이션을 하기도 한다. 유명한 우리 역사와 관련된 책, 혹은 유명 게임 원화집 같은 것들을 주제로 내건다. 그럼 그에 맞춰 추천 책을 아이들이 큐레이션하며 이런저런 공부도 하고, 새로운 책을 찾아보기도 한다.




설명한 캐치볼 외에도 학교에는 밴드부도 있고 배드민턴, 테니스 등등 여러 스포츠를 시킨다. 앉아서 많은 작업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 활동적인 활동 시간을 이런 활동으로 채운다.

경험, 그리고 인문학적 이해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의 젊은 재능으로 꼽혔던 첼리스트 장한나는 줄리아드 음대 예비 스쿨 출신으로 수많은 음악 공부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음대에 진학하지 않았다. 하버드에 입학한 그녀는 철학과로 진학했다. 진정 위대한 음악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인문 고전에 관한 공부가 있어야 한다는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PD가 되든, 디렉터가 되든. 전공 분야가 기획이든 프로그램이든 결국은 인문학,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전제로 깔려야 더 높은 사람이 된다고 정 교장 역시 믿는다. 그게 그의 교육에 나타나 있다.



게임 개발자, 학생

정 교장은 스스로에 대해 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게임 개발자 협회에도 있고 대학의 교수로 가르침을 준 적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게임을 만들었다. 그런 그가 4년 임기의 교장이 됐다. 그리고 어느덧 올해로 3년 차를 맞았다.

그가 학교를 맡은 기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학교를 관리하고 있는지에 관해 검증하고자 하는 시선도 있다.

성과는 좋았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취업 활동이 불가능하니 취업을 전제로 졸업까지 인턴십을 하는 채용약정형 현장 실습 프로그램이 있는데 3학년 학생 중 70%가 이렇게 회사에 다닌다. 아직 학생들이 졸업하지 않은 만큼 취업률은 더 높아질 수 있다. 일반 특성화 고등학교가 30% 내외 정도다.

주요 게임 시상식에서 13 ~ 4개 정도의 상을 받았다. 내신 점수는 180점 정도다. 200점 만점인데 180점 정도면 이름 있는 대학에 갈 수 있는 수준이란다.

매년 성과를 내고 있으니 학교에 대한 관심도, 이해도 높아지고 있다. 작년만 해도 4일간 진행된 신입생 모집 기간 중 3일에 모집이 마무리됐다면, 올해는 모집 첫날에 지원 정원이 가득 찼다.



▲ 온라인을 통해 입학설명회를 가진 정석희 교장

지금의 3학년 중에는 e스포츠 선수를 하려는 학생도 있고 게임 개발 외의 것을 꿈꾼 아이도 있지만, 올해는 학생들이 게임 개발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학교에 입학했다.

목적이 분명하니 동기 부여도 잘 된다. 게임잼 등 여러 학생, 개발자들이 모이는 여러 게임 대회에서는 학생들끼리 경쟁할 정도로 성과도 좋다. 정 교장은 한 전문가의 심사평을 빌려 '학생들이 전문대를 넘어선 것 같은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핵심 부분은 주로 프로그래밍이다. 프로그래머 양성을 기본으로 그래픽을 하거나 기획적 역량을 가진 학생들을 위해 선택 과목으로 교육 내용을 보강하기도 한다.

그런데 모든 학생이 이런 교육에 맞춰 따라오고,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아이들을 위한 플랜B를 생각하기도 했다. 게임 개발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는 국제 소프트웨어 테스팅 자격인 ISTQB 시험을 보게 했다. 이 자격증이 있다면 어느 회사의 QA로도 들어갈 수 있다.

물론 2학년까지는 최선을 다해 개발 쪽 내용을 교육하지만, 3학년 초쯤에 이런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하게 한다. 두 달 정도 공부했는데 올해 결과가 좋았다. 보통은 3개월 정도 공부하는데 더 적은 기간 90% 정도의 합격률을 보였다. 합격하지 못한 학생도 겨우 1점이 모자라 합격하지 못하는 정도였다.

정 교장은 게임 개발을 어려워하는 학생을 많게는 10명 정도까지 QA 업무에 지원시켜 취업시키겠다는 목표도 전했다. 물론 취업이 아니라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아이들도 있다.



신뢰, 동등

지금의 체계를 잡아나가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있었다. 2020년 학교가 개교했지만, 팬데믹 상황에 원격 교육이 진행돼야 했다. 여기에 전신인 경기글로벌통상고등학교 학생들 역시 여전히 학교를 다녔다. 기존의 상과, IT과, 뷰티과 학생들 등과 게임 개발을 위해 들어온 학생, 투트랙으로 학교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기존의 학생들을 차별하고 싶지는 않았다. 예산은 마이스터고로 받아 게임 개발 학생들을 위해서만 써야 했다.

처음에는 마땅한 실습실도 없었고 헤어 실습실 같은 기존 학생을 위한 공간도 남겨야 했다. 보통 학기 중에는 면학에 방해가 되니 별다른 공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니 좋은 구조도 만들고, 후배를 위해 빨리 공사를 진행해야 했다. 석면 같은 것도 뜯어내고.

정 교장은 그러한 상황을 해결하는 게 어쩌다 공무원이 된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학기 중 빠르게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학부모를 설득했다. 다행히도 신뢰를 해주고 학생들도 성과를 충분히 내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도전과 능력

지금은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수준의 기술을 가르친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름만 대면 알만 한 대형 게임사로, 누구는 독립 게임을 만들기 위해 독립하는 학생들도 있다.

메이저 기업에 취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쪽은 조건이 까다롭기도 하다. 병역을 끝마치거나 대학교를 졸업하거나. 하지만 경기게임마이스터고 졸업생의 경우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군대를 다녀왔을 리도 없다.




대학 졸업이라는 요건 역시 단순히 기술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술적으로는 여러 곳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며 배우는 사회성, 경험 같은 쪽에서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정 교장은 학생들에게 중소기업 취직을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한다. 마이스터고의 설립 취지, 세금을 들여서 너희들을 교육하는 것은 게임 개발 생태계를 조금 더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의 결과였다고. 그리고 그 결과를 통해 다양한 교육을 받은 너희들이 그걸 사회의 산업에 돌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메이저 회사에 들어갔다고 해서 평생 그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마음 맞는 사람들이 손발을 맞춰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하기도 한다. 새로 생기는 기업들 역시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많았던 만큼 함께 일하면 일에 직접 관여하고 배울 수 있다.

게임 회사는 학벌이 다르다고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보수의 차별보다는 성과에 따른 보상이 있고, 같은 공간에 앉아서 같은 조건의 일을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학생들의 능력을 믿기에 가능했다. 시작은 다를지언정, 너희들은 모두 대기업에 가서 근무할 수 있고, 그럴 능력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예산, 지원, 어려움

경기게임마이스터고는 공립 기관이다. 안양시가 지원하는 예산 일부와 문체부의 예산으로 학교의 많은 부분이 운영된다. 예산은 일몰법으로 3년간 책정됐다. 하지만 문체부가 지원하는 예산이 줄어버렸고 지난해보다 20억 가까운 예산이 사라져버렸다.




예산 삭감이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늦게까지 관리하던 학생들 문제다.

일반적인 학교는 하교 전까지 필요한 교육을 하고 교사는 퇴근한다. 경기게임마이스터고는 기숙사가 있고 교사들은 늦게까지 아이들을 관리한다. 이 아이들을 위해 방과 후 프로그램이 정부 지원 운영비로 이루어졌고, 훌륭한 선생님들을 데려다 교육을 진행했다.

예산이 줄어들면 그 교육이 수익자 부담으로 바뀐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아이들이야 계속 교육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 안에서 혼자 공부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일찌감치 시설이나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했다.

현업에서 일하거나 잠시 이직 준비를 하는 이들이 교사로서 한 학기 정도를 맡아주는 산학겸임교사도 있다. 하지만 근래 개발자 연봉이 크게 오르며 핵심 인력이나 강의가 가능한 인재 협력 역시 어려워졌다.



자부심

예산 삭감이 결정된 이후 진행된 인터뷰인 만큼 이에 대한 아쉬움, 보다 적극적인 지원에 관한 요청이 주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였다. 그동안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었던 문체부와 한콘진의 헌신적 노력에도 쉽지 않은 예산 편성. 그리고 기업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하지만 정 교장은 호소가 아니라 학교의 강점, 자신의 철학, 그리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의 재능에 대한 자부심을 전했다.

"오히려 우리 학교가 가지는 장점, 분위기를 전달하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만든 새로운 학교, 여기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회로 내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성과도 내고 있다는 것. 그걸 알아주신다면 학교 운영상의 어려움에 산업계의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걸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니까요."

마이스터고는 올해 지스타 BTC관에 부스를 냈고, 학생들은 봉사활동의 개념으로 부스에서 사람들을 맞았다. 학생들은 선배, 친구들이 만든 게임을 소개하고 안내했다.

어떤 게임을 추천해줄 수 있느냐는 조금은 우둔한 질문에 선배, 친구들의 게임은 모두 만듦새가 훌륭하다며 현명한 답을 준 학생의 눈에서도 정 교장이 말하는 재능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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