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모글리' 코치 - 롤드컵 우승, '표식', 한화생명e스포츠

인터뷰 | 신연재, 남기백 기자 | 댓글: 16개 |
2022 시즌의 화려한 마지막을 장식한 DRX.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롤드컵 우승 스토리를 만든 여섯 명의 선수 뒤에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그들을 따라다니던 코칭스태프가 있었다. 누구보다 선수들의 성장과 승리를 갈망하고, 이를 위해 선수 못지 않은 열정을 선수들에게 쏟아붓는 사람들이다.

인벤은 월드 챔피언 DRX의 코치진 중 한 명인 '모글리' 이재하 코치를 만났다. 코치로 전향한 첫 해에 롤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린 '모글리' 코치는 이제 막 한화생명e스포츠에 새 둥지를 튼 참이었다.

'모글리' 코치는 인터뷰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가감 없이 풀어놨다. 코치가 된 이유부터 롤드컵 여정, 이적 과정, 한화생명e스포츠의 로스터에 대한 생각 등.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표식' 홍창현과의 일화였다. 이제는 각자 다른 리그서 활동하게 됐지만, 1호 제자의 눈부신 성장은 새내기 코치에게 큰 울림이 됐다.





Q. 대회장이 아닌 곳에서 인터뷰는 처음이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얼마 전에 워크숍도 다녀오고 하면서 새로운 코치진, 팀원들과 친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손대영 총감독님, '클리드' 태민이와 탁구로 커피 내기를 했는데, 태민이가 생각보다 탁구를 잘 치더라. 나도 내가 좀 친다고 생각해서 한 번 붙었는데, 져서 커피를 샀다.


Q. 현재는 한화생명e스포츠 소속이지만, 롤드컵과 DRX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코치 첫 해에 롤드컵 우승을 달성했다. 그 의미가 매우 클 것 같다.

코치로 전향하면서 선수로서 못다한 꿈을 이루겠다고 했었는데, 첫 해에 바로 그 꿈을 이루어서 약간 얼떨떨했다. 뱉은 말을 지켜서 스스로 뿌듯하기도 하지만, 자만하지 않고 높은 커리어를 꾸준히 쌓기 위해 계속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중이다.


Q. 사실 선수 은퇴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현역 선수들이 바로 옆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걸 보면서 복잡한 감정이 들었을 법도 한데.

우승을 하니까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럽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 다음은 스스로 뿌듯했고, 목표를 이뤘다는 성취감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이 성취감을 또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만약 선수로서 우승을 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었는데, 비슷하게 많이 기뻤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쉬움은 없다.


Q. 다소 이른 나이에 코치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스무 살 때, 최연성 감독님이 당장은 어려서 못 느끼겠지만, 운동을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을 간과했던 게 후회가 된다. 나이가 찰수록 손목과 허리의 통증이 너무 심해지면서 은퇴를 결심하고, 코치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또, 프로 생활을 할 때부터 주위에서 은퇴하고 코치를 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머리가 똑똑한 것 같고, 가르치거나 설명을 할 때 이해하기 쉽게 잘한다고 하더라. 그때부터 지도자의 길을 생각했었다.





Q. 주변의 판단이 옳았다는 걸 결과로 증명했다. DRX에서는 특히 '표식' 홍창현과의 시너지가 매우 좋았다고 들었다.

처음 DRX에 와서 '표식' 선수가 하는 게임을 봤는데, 정말 기본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때가 데뷔 3년 차를 바라보는 시점이었을 거다. 그간 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때도 분명 있었는데, 어떻게 해온 건가 싶더라. 물론 피지컬은 굉장히 좋았다. 그래서 따로 카페로 불러서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표식'아, 너 지금까지 피지컬로만 게임을 어떻게 해온 거냐. 콜, 동선, 승리 플랜 같은 건 하나도 생각 안 하고 게임을 너무 어렵게 하고 있다. 올해 너가 형한테 뇌지컬만 흡수해도 프로 인생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거다. 또, 지금 우리 팀에도 그런 정글러가 필요해 보인다. 그러니까 믿고 잘 따라와 줘라.'

나중에 롤드컵 우승을 하고 나서 또 '표식' 선수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 '표식' 선수가 저 말을 당시에는 잘 이해를 못 했었다고 하더라. 근데, 다 겪고 나니 이제 형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고, 고맙다고 했다. 정말 뿌듯한 마음이었다.


Q. 지난 1년 간 '표식' 선수와 굉장히 깊은 교감을 나눈 듯 하다.

'줄탁동시'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알이 부화하려면 병아리도 안쪽에서 쪼아야 하고, 어미 닭도 밖에서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도 그렇다. 어느 한쪽만 잘해서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창현이가 기복도 있고 힘들었을 텐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많이 배웠다. 어떻게 보면 내 1호 제자다. 정말 자랑스럽다.


Q. 또, 팀에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을 법도 한데.

처음 만나보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나보다 형들이니까 불편함이 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국에 유교 사상이 좀 있지 않나. 그런데, '데프트' 선수와 '베릴' 선수 모두 프로페셔널하게 공과 사를 잘 구별해주어서 그런 건 전혀 느끼지 못했다.


Q. 2022 시즌 DRX에서 정말 많은 것을 경험했다. 그만큼 얻은 것도 많을 것 같다.

엄청난 경험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롤드컵을 치르면서 단순히 실력만으로는 우승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실력 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조건들이 잘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임적인 것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말이다. 양보도, 배려도 많이 해야 하고, 서로 도움을 주면서 신뢰도 굉장히 두터워야 한다. 또,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는데, 운도 잘 따라줘야 하는 것 같다.





Q. 차기 행선지로 한화생명e스포츠를 택했다. 우승 멤버인 '킹겐' 황성훈-'제카' 김건우도 함께. 선택의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 코치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손대영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는 결국 DRX를 가게 됐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같이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또, DRX에서 FA가 된 후 새로운 팀을 알아볼 때, 선수단과의 시너지를 제일 잘 낼 수 있는 팀을 선택하려 했고, 그게 한화생명e스포츠라고 생각했다.


Q. '댄디' 최인규 감독과는 어떤가. 원래 친분이 있는 사이인지.

'댄디' 감독님은 예전에 중국에서 한 번 뵀다. 내가 바이탈리티에 있을 때, RNG와 협력해서 중국에 부트캠프를 간 적이 있다. 그때 '댄디' 감독님이 RNG 코치를 하고 계셨다. 그래서 같이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한 번 본 사이라 친분이 깊지는 않지만, '댄디' 감독님은 선수 시절 롤드컵에서 우승을 한 경력이 있다. 대단한 분이라는 건 정글러 출신으로서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굉장히 리스펙한다. 팀에 처음 와서 '댄디' 감독님과 면담을 바로 했었는데, 대회가 잘 통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많이 배우고 싶고, 시너지도 잘 날 것 같다.


Q. 공교롭게도 둘 다 정글러다. 장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선수 시절 포지션은 크게 상관이 없다고 본다. 보통 어느 라인 출신이면 그 라인을 특정해 봐준다고 생각한다. 나도 올해 DRX에서 정글 전담이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근데, 사실 그런 건 없었다. 부족한 라인을 더 많이 봐주기는 해도, 코치의 역할은 팀이 함께 승리할 수 있도록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며 선수단 모두를 지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글러는 보통 게임을 큰 틀에서 잘 본다. 그런 의미에서 '댄디' 감독님과 같은 정글러 출신이라는 건 오히려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Q. 한화생명e스포츠의 2023 로스터를 보면, 하나하나 대단한 선수들이다. 그래서 선수 각각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 질문을 준비했다.

많은 분들이 우리 팀의 오더나 운영적인 부분을 걱정하시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게임 하는 걸 보니까 전혀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계속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고, 서로의 성향을 알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충분히 강팀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다들 게임을 너무 잘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각자의 라인에서 제 역할을 다 알고 있다.





Q. '클리드' 김태민은 어떤 선수인가.

굉장히 공격적이면서도 영리한 선수다. 피지컬과 운영,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보다는 둘 다 된다. 예전에는 정글이 메타에 따라 피지컬이 필요하거나, 운영 능력이 필요하거나 했는데, 이제는 게임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정글러가 강한 정글러라고 생각한다. 그게 '클리드' 선수다.

또, 우리 팀 라이너인 '킹겐', '제카', '바이퍼' 모두 체급이 굉장히 세다. 그래서 '클리드' 선수가 그 안에 잘 녹아들어서 크게 활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너지가 금방 날 것으로 본다.


Q. '바이퍼' 박도현 선수도 오랜만에 LCK로 복귀했다.

실력이나 마인드가, 왜 2021 시즌에 롤드컵에서 우승을 했는지 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나보기 전에는 좀 과묵한 선수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활기차고 굉장히 재미있는 친구더라. 그 부분은 조금 의외였다.


Q. '킹겐-제카'와는 이미 1년 간 합을 맞추고, 함께 우승도 한 사이라 척하면 척하는 관계일 것 같은데.

이 선수들이과는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굉장히 잘하는 선수들이고, 함께 역경을 헤쳐나가면서 우승까지 했던 선수들이라 유대감도 깊다. 이미 서로 간의 신뢰나 믿음은 확실히 있다.


Q. 마지막으로 '라이프' 김정민 선수다. '라이프' 선수를 이야기할 땐 챔피언 풀에 대한 지적을 따라오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라이프' 선수가 정석 서포터에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 '라이프' 선수가 사파 서포터를 특히 잘해서 상대적으로 정석 서포터를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그런 면에서 약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스크림 하는 걸 보니 인게임 콜이나 오더에 강점이 있더라. 또, 멘탈도 좋고, 팀원들에게 잘 맞춰준다. 서포터로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Q. 많은 주목을 받을 만큼, 탄탄한 로스터다. 월드 챔피언이 세 명이나 있기도 하고. 부담감은 없나.

일단 우리의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고, 목표가 크고 기대를 많이 받는 만큼 나 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건 사실이다. 다만 그런 부담감에 사로잡히지 말고, 오히려 부담감을 이겨내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Q. 우승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재 LCK 내 가장 경계해야 할 팀은 어디인가.

T1이나 담원 기아일 거라고 생각한다. T1은 항상 꾸준히 잘해왔고, 높은 커리어와 잘하는 선수들을 보유한 팀이다. 또, 합도 굉장히 오래 맞춰서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담원은 개개인의 체급도 높고, '데프트' 선수가 합류하면서 더 위협적인 팀이 된 것 같다.


Q. 이제 인터뷰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도 철학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은데, 선수들을 코칭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농담이고(웃음).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통이라는 걸 인체에 비유하자면, 사람이 자극을 받으면 반응하기까지 여러 감각 기관과 뉴런을 거친다. 게임도 똑같다. 자극이 개개인의 플레이로 생기는 상황이고, 감각 기관과 뉴런을 거치는 과정을 소통이라고 본다. 빠르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결국 소통이 제일 중요한 거다.

또한,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자는 게 내 철학이다. 사사로운 것에 얽매이지 않고, 큰 그림을 항상 생각해야 그 안에서 방향성을 잃지 않고 끝까지 옳음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Q. 데뷔 첫 해에 큰 목표를 이뤘지만, 또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을 것 같다. 차기 시즌 목표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LCK 우승을 못 해봐서 그걸 첫 번째 목표로 삼고 있다. 그리고, 롤드컵에서 2회 연속 우승이라는 타이틀도 달고 싶다. 팀적으로는, 이미 우승을 경험한 선수가 여럿이지만, 선수단 모두 우승을 목표로 동기부여가 잘 되어 있는 상태다. 다같이 열심히 해서 어떤 대회에서든 우승을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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