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중세 낙서 게임이 최고의 인디상을 수상한 이유

게임뉴스 | 정수형 기자 | 댓글: 1개 |



지난 2022 게임스컴에서 시선을 사로잡았던 게임이 있었다. 최고의 인디게임 상과 최고의 오리지널 IP 상을 수상한 Yaza Games의 '잉쿨리나티'가 그 주인공이다.

오랫동안 게임을 하다 보니 어떤 게임이던 딱 보는 순간 "아, 이건 이렇게 즐기는 게임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떠오른다. 평소에 다양한 게임을 즐겨왔다면 비슷한 경험을 해봤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잉쿨리나티는 이미지만 봐선 뭘 어떻게 하는 게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개성 넘치는 콘셉트를 보여줬다. 턴제 전략 장르의 게임이라고 하니 서로 턴 안에서 뭘 어떻게 싸우는 것 같긴 한데 전체적인 게임의 분위기가 "난 그렇게 뻔한 게임이 아니야"라고 하는 듯했다.

참을 수 없는 궁금증에 스팀 찜 목록에 올려주고 기다리길 수개월. 지난 2월 1일 앞서 해보기로 출시되어 드디어 게임을 해볼 수 있게 됐다. 얼마나 독창적이고 재미있길래 수많은 인디 게임을 뚫고 2관왕을 달성했을지 부푼 기대감을 안고 게임을 즐겨봤다.


잉쿨리나티는 필사본 스타일의 잉크 전략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필사본 페이지에서 그림으로 싸우는 전설의 집단 '잉크리나티'의 일원으로서 여정을 떠나게 된다. 세계 최강의 잉크리나티와 싸워서 죽은 스승을 살리거나 수많은 잉크 야수를 길들여 최강의 군단을 꾸리는 게 캠페인의 주요 스토리다.

개발사는 실제 중세 시대 책에서 발견한 낙서에서 영감을 받아 게임을 개발했다. 이러한 콘셉트를 적극 반영한 게임 디자인은 낙서 같은 느낌의 그래픽뿐만 아니라 게임 시스템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인들의 콘셉트에 맞춰 독창적인 턴제 전략 시스템을 구축한 셈이다.

일종의 '밈'에 가까운 낙서에서 시작했기 때문일까. 게임은 B급 감성이 듬뿍 담겨 있었다. 죽음과 절친한 친구였던 스승이 실수로 죽어서 죽음이 살려주겠다고 하거나 대화 선택지에서 상대방을 조롱하는 말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제일 압권은 손가락으로 상대 잉크를 찍어 누르거나 주먹으로 내려치는 일 등이다. 통쾌하면서도 이런 발상은 어떻게 했을까 하는 감탄이 나온다.



▲ 게임 밖에선 두 사람이 이렇게 그리면서 싸운다고 생각하면 더 웃기다

게임 플레이는 단순하지 않고 심오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복잡하진 않다. 익숙한 턴제 전략에 참신한 요소를 7:3 황금 비율로 섞은 느낌이다.

기본적인 맵 진행은 로그라이트와 같다. 줄기로 엮인 맵 중 원하는 지역을 선택해서 가면 그에 맞는 이벤트를 보고 보상을 받는다. 하나의 맵에는 야수와 싸우는 전투 지역과 상점, 교회 등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 지역, 그리고 보스에 해당하는 잉크리나티가 존재한다. 즉, 보스를 잡기 전 최대한 이득이 되는 루트를 선택해서 내 덱을 키우고 보스와 싸워서 승리하는 익숙한 방식이다.

전투 맵은 일반과 엘리트 난이도로 나뉘며, 엘리트를 상대로 승리할 경우 더 많은 금화와 위신 등을 획득할 수 있다. 대신 난이도가 꽤 높으니 이길 자신이 없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다만, 이 게임은 단순 전투력으로 승패가 나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전략에 자신 있다면 오히려 엘리트를 찾아가는 것도 좋다.



▲ 원하는 루트를 선택해서 덱을 성장시키는 방식

이벤트 지역은 대부분 가진 자원을 소모하는 대신 다른 무언가를 얻는 형태다. 가령, 상점은 금화를 소모해서 야수와 손 행동 등을 구매할 수 있고 기록실에선 코스트로 쓰이는 잉크의 양을 늘릴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명성과 비슷한 개념의 위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위신은 게임 플레이 중 다양한 방법으로 늘릴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전투에서 이겨서 얻기도 하고 혹은 이벤트 지역에서 정상적인 방법 외에 다른 선택지를 골라 위신을 높일 수 있다.

이렇게 얻은 위신은 이후 이벤트 지역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고르거나 더 좋은 덱으로 시작할 수 있다. 가령, 위신이 높다면 상점에서 본인의 위신을 깎는 대신 협박을 해서 더 좋은 상품을 얻을 수 있다.

특정 자원으로 선택지에서 또 다른 선택을 고를 수 있는 이러한 방식은 다른 로그라이트 게임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잉쿨리나티는 이를 당장 도움이 될 것인지 혹은 나중을 바라보고 선택지의 폭을 늘리는 또 다른 자원으로 쓸 것인지 유동적으로 고르게 해 단순하게 흘러갈 수 있는 맵에서도 나름의 재미를 주고자 했다.



▲ 위상만 높다면 공짜 술도 가능하다



▲ 욕망에 충실하다면 3번을 눌러보자

잉쿨리나티의 전투는 다른 턴제 전략 게임에서도 쉽게 겪어볼 수 없는 신선한 재미로 무장하고 있다. 기본적인 룰은 체스와 꽤 흡사하다. 전장이 되는 필사본 페이지에는 플레이어를 대변하는 초소형 잉크리나티가 존재한다. 체스에서 킹과 똑같은 포지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 초소형 잉크리나티가 죽으면 게임이 끝난다. 따라서 모든 전략은 무조건 공격보다는 내 초소형 잉크리나티를 지키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해야 한다.

전투는 체스처럼 내가 한 번 움직이면 다음에 적이 움직이는 교차 방식의 턴제로 진행된다. 원하는 캐릭터를 선택해서 움직일 수 있지만, 한 번 움직인 캐릭터는 수면 상태에 들어가고 특수 스킬을 쓰지 않는 한 모든 캐릭터의 행동이 종료되고 턴이 끝나기 전까진 움직일 수 없다.



▲ 플레이어를 대변하는 존재가 초소형 잉크리나티

초소형 잉크리나티는 직접 공격과 이동 능력이 없지만 대신 싸워줄 야수를 소환하거나 스킬 개념의 손 행동을 사용할 수 있다.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3마리의 야수, 3개의 손 행동, 1개의 재능을 고를 수 있고 이후 게임을 진행하면서 더 많은 것들을 얻게 된다.

게임 내에는 토끼, 개, 여우, 당나귀, 고양이, 염소 등 다양한 야수가 등장하며, 긴 몸통에 손만 달려 있거나 머리만 달린 상식을 벗어나는 괴상한 생명체도 등장한다.

이러한 야수들은 종족과 들고 있는 무기에 따라 능력이 다르므로 항상 능력을 신경 쓰면서 싸워야 했다.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하고 그만큼 독특한 능력도 많이 있으므로 이를 연계해서 싸우다 보면 마치 퍼즐을 푸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상식을 벗어난 야수와 게임 플레이가 특징

야수를 소환하기 위해선 잉크라는 코스트가 필요하며, 턴을 종료할 때마다 조금씩 얻거나 혹은 필드에 떨어진 잉크 위에 올라서서 획득할 수 있다. 강력한 야수일수록 더 많은 잉크를 필요하며, 같은 야수를 반복해서 소환할 때마다 다음 전투에서 해당 야수의 소환에 필요한 잉크가 높아지는 지루함 수치가 존재한다.

손 행동은 초소형 잉크리나티 턴에 쓸 수 있는 스킬이다. 사용 시 별도의 코스트가 들진 않지만, 능력에 따라 쿨타임이 존재한다. 원하는 방향으로 1칸 이동, 직접 피해 주기, 야수 치유 및 축복 등 다양한 스킬이 준비되어 있으며, 최대 4개의 손 행동을 덱에 넣어서 사용한다.

전투가 시작되면 초소형 잉크리나티 턴에 가진 잉크를 사용해서 나를 보호해줄 야수를 소환한다. 이후 전장 상황에 따라 알맞은 전략을 세우면 되는데 야수로 적을 직접 공격하거나 혹은 지형을 이용해서 밀어 죽이는 등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이 꽤 다양했다.

특히, 낭떠러지에서 밀어서 낙사시키는 방법은 적을 한 번에 없앨 수 있는 효율 높은 방법이다. 이 때문인지 적 AI도 밀기가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밀어서 나를 죽이려고 하므로 전장에 병사를 배치하는 것도 꽤 눈치 싸움이 필요하다.



▲ 낙사 각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



▲ 이것이 바로 체크메이트

처음 게임을 할 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생소한 방식의 게임이기 때문이리라. 다행인 점은 아카데미라는 콘텐츠를 통해 게임에서 쓰이는 전략 대부분을 아주 쉽게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꽤 자세히 알려주고 있으므로 여기서 기본적인 것들만 익혀도 게임을 즐기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게임에 슬슬 익숙해지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전투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턴 정말 퍼즐을 풀듯 머리를 써가며 싸우게 되고 내가 구상한 전략이 먹혔을 때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체스에서 상대와 치밀한 수 싸움 끝에 체크 메이트에 성공했을 때의 느낌이 이러할까. 일반 난이도에서도 수준 높은 전략을 보여준 AI 덕분에 승리가 더욱 달콤하게 느껴진다.

복잡하고 머리 많이 써야 하는 전략 게임 특성 상 게임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지치기 쉽다. 플레이 타임이 길어지면서 게임이 루즈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도 이쪽 장르의 게임이 가지는 공통적인 단점 중 하나다.



▲ 이렇게 친절한 인디 게임은 꽤 오랜만에 본다

잉쿨리나티도 계산해야 할 부분이 많아 복잡한 게임은 맞지만 생각보다 지루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이는 게이머 성향에 따라 편차가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게임의 독특한 컨셉과 플레이의 전략을 제한하는 종말 시스템 덕분에 그렇게 느꼈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 게임은 B급 감성을 자극하는 여러 요소로 중무장했다. 야수를 소환할 때 캐릭터의 손이 나와서 낙서를 하듯 그림을 그리면 그에 맞춰 주변에서 환호성이 들린다. 손 행동 역시 손가락이 나와서 쿡 찌르거나 문지르는 행동을 취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귀엽고 유쾌하게 느껴진다.

종말 시스템은 전투가 이유 없이 질질 끌리는 것을 막아주고 전투의 긴박함을 더해주는 윤활제와 같은 존재다. 몇 번째 턴 이후 맵 끝에 죽음의 불길이 치솟는데 이곳에 닿으면 바로 즉사하므로 어떻게든 그 안에 끝을 봐야 한다. 오히려 이걸 이용해서 상대방을 없앨 수도 있으니 사용에 따라선 충분히 전략적 요소로 쓰일 수도 있는 셈이다.



▲ 적당한 피지컬도 필요한 편

신선한 컨셉과 이를 받쳐주는 게임 플레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잉쿨리나티는 하면 할수록 각종 게임쇼에서 최고의 인디 게임 상을 받을만 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임이었다. 앞서 해보기임에도 이미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게임 플레이는 정식 출시를 기대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Yaza Games는 1년간의 앞서 해보기를 진행하고 이후 멀티 플레이와 다양한 야수, 마스터, 전장 및 기타 콘텐츠가 추가된 정식 버전을 선보일 계획이다. 참신한 전략 게임을 해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잉쿨리나티를 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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