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날, 지가 사겠다고 미뤄온 밥 한 끼 하자던 친구와의 점심 약속. 대낮부터 남자 둘이서 먹기엔 좀 부담스러운 식당의 분위기와 가격. 머릿속에 온갖 상상이 몰려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얘 뭐 나한테 잘못한 게 있나, 급하게 돈이나 보증 필요한 거 아니야? 이야기의 끝은 청첩장이었지만 입을 떼기 전까지 친구의 어색한 입꼬리가 의미했던 것은 이럴 때만 연락한다는 미안함의 신호였을까, 아니면 커피 한 잔으로 퉁 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한 명에게 너무 비싼 밥을 사 먹인 거 아닌가라는 후회였을까.
당시의 그 긴장감과 불안함은 제3자 입장에서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해프닝 수준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날이 갈수록 신제품 출시 주기가 빠른 하드웨어 브랜드들 또한 "얘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것, 꽤 재밌다. 최신 부품에 맞춰 건조하지만 확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제품부터 편의성은 개나 줘버리고 브랜드 철학으로 똘똘 뭉친 장인 정신의 제품, 생각지도 못한 타 분야 특수 기술을 등에 업고 출시하는 제품들까지.
최근 HP의 노트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숙해할 단어를 발견하여 소개하게 되었다. 제품은 'HP Envy x360 15'. 이름만 들었을 땐 360도로 젖혀지는 2-in-1 컨버터블 노트북일 것이고, HP 사의 엔비는 크리에이터용의 고급형 울트라북 라인업이니 큰 특색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 단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IMAX.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관의 그것이 맞다. 영화에 대해 관심과 지식이 많은 분이 많기에 얄팍한 지식으로 짧고 굵게 요약하자면 일반 영화관보다 더 크고 선명하게 볼 수 있는 프리미엄 상영관에 들어가는 기술을 칭하고 있다. 일반 상영관과 IMAX 상영관의 스크린이 다르듯이, HP 엔비 x360 15 또한 일반 노트북과 다른, IMAX 콘텐츠에 최적화된 화면비를 제공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DTS:X 공간 오디오는 더 말할 것 없고.
최초의 IMAX 기능을 탑재한 노트북 HP 엔비 x360 15. 뭐가 좋냐고? 우리가 일반 노트북이나 화면으로 영화를 시청할 때 자연스레 생기는 레터박스, 즉 화면 밖의 검은색 스크린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IMAX와 관련된 디스플레이 및 음향 기술들은 고가의 TV나 프로젝터, 스피커와 AV 리시버 등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는데 HP 엔비 x360 15의 예상 가격은 1,000달러 미만(23.04.24 환율 기준 약 133만 원 미만)이 될 전망이니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라면 꽤 흥미로운 제품이 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단점은 무엇일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IMAX 콘텐츠를 취급하고 있는 플랫폼은 디즈니 플러스, 그중에도 마블 영화를 제외하곤 전무하다. 해외에서는 이후 독점적으로 리마스터된 HDR 콘텐츠를 취급하겠다는 얘기가 있긴 한데, 그럼 그게 먼저여야 되지 않을까?
하드웨어 브랜드의 움직임을 관망하는 입장에서는 꽤 흥미롭고 좋은 제품이다. 요즘 하드웨어 업체에서 유명한 협업은 에이수스 그래픽카드 x 녹투아 쿨러, 샤오미 폰 x 라이카 카메라 등으로, 단순 제품 홍보를 위한 마케팅이 아닌 정말 작정하고 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내용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분야를 이끄는 HP 같은 선도 기업에서 이런 브랜드 확장 사업을 견인하고 있기에 소비자들이 더 성능 좋고 재밌는 제품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일 테니까.
다만 내가 이걸 구매한다고 가정해 보자. 소비자 입장에서는 물음표가 가득한 제품이다. 더 적합한 화면비와 높은 해상도를 통해 또렷한 화질을 기대하며 시청하는 IMAX 콘텐츠에 웬 FHD 디스플레이? 너의 결혼식은 커피 한 잔, 아니 모바일 청첩장으로도 충분히 축하하며 참석했었을 텐데 이런 부담스러운 자리를 만든 이유, 결국 본인이 찔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음은 알겠는데 결론은 불편한 식사 자리였다는 것. 그러니까 차라리 평소에 연락을 좀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