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X일지] 해외 게임쇼를 취재하는 기자의 좌충우돌 출장기

칼럼 | 김수진 기자 |


▲ '해외 게임쇼에 온 걸 환영해!'

보스턴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니 지금은 사실 저녁이에요. 오늘 취재를 위해 아침 일찍 나섰다는 그런 말이죠. 팍스일지 2편은 해외 게임쇼를 취재하는 기자의 좌충우돌 출장기라는 주제로 한 번 써볼까 합니다.

팍스 이스트 2024의 첫날, 두근거리는 마음과 조금은 걱정되는 마음, 그리고 시차 때문에 또 조금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보스턴 컨벤션 센터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어제까지만 해도 이쯤이면 그저 조금 쌀쌀한 걸 싶었던 날씨는 어디로 가고, 온몸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어마어마한 바람과 밤사이 꽝꽝 얼어버린 얼음들이 저를 반기더군요.

진짜 너무 추웠어요. 제 앞에 걸어가던 외국인 친구들이 오 마이 갓을 연달아 외칠 정도로, 바람에 날려간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몰아치더라고요. 온도를 보고 혹시나 하고 가져온 겨울 모자와 패딩 점퍼가 저를 살렸습니다. 저 앞에 걸어가던 반소매 티셔츠을 입은 외국인의 팔이 그야말로 시뻘겋게 변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날씨였죠.



▲ 정말 너무 너무너무 추워서 오늘은 차마 찍지 못한 컨벤션 센터 (어제 사진)

물론 행사가 진행되는 컨벤션센터 내부는 매우 따뜻했기 때문에 수월한 팍스 구경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잠깐 봤던 컨벤션센터는 역시나, 정말 크더군요. 미디어 입장을 위해 한참동안이나 걸어가야 할 정도로요.

분명 입구의 안내원이 쭉 가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또 쭉 가서 또 오른쪽으로 꺾은 뒤 내려가서 다른 안내원한테 물어보라고 했는데, 아무리 쭉 가서 또 꺾어서 쭉 가도 내려가는 길이 안보이지 뭐에요.

하지만 현장에서 헤매는 기자는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한참 찾고 있는데 외국인 친구 한 명이 안내원에게 미디어 입장은 도대체 어디서 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있더군요. 그래서 슬쩍 끼여서 '나도 모르겠는데 같이 가자 친구'를 시전 했습니다.

그렇게 두 명의 길 잃은 기자를 친절한 팍스 안내원이 에스컬레이터까지 이끌어줬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자마자 관성처럼 오른쪽으로 꺾으려는 저희의 미디어 패스를 보고, 또 다른 안내원이 빠르게 잡아 왼쪽에 있는 입구로 보내줬죠.

행사장이 너무나 크고, 층도 3층이나 되고, 또 입구도 많다 보니 벌어진 웃지 못할 해프닝이랄까요. 특히 팍스의 경우 미디어 안내 메일에 홀 번호가 적힌 지도 없이 몇 홀 앞에 작년이랑 같은 장소야! 라고만 적혀있어서 더욱 헤매게 되더군요. 외국인 친구도 같이 헤맨 걸 보면 저만 길이 어려웠던 게 아닌 것 같습니다.



▲ 일반 입장 30분 남겨 놓고 들어온 미디어 아워, 쾌적합니다

그렇게 헤매고 헤매서 미디어 입장을 겨우겨우 하고 나니, 일반 입장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남짓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분명 컨벤션 센터에 8시 50분쯤 도착했건만 무려 40분 가까이 헤맨 겁니다. 팍스의 경우 미디어 입장도 딱 한 시간만 먼저 시켜주더군요. 역시 일반 관람객들이 메인이 되는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행사장이 다른 해외 게임쇼들처럼 나뉘어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거대한 홀 한 곳에서 모든 것이 진행됐거든요. 덕분에 짧은 시간에도 눈에 보이는 게임들을 두 개 플레이해 볼 수 있었죠.

일반 입장이 시작된 뒤에는 풍경기를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고 다녔습니다. 뭔가 생각했던 것보다 코스프레나 조그맣게라도 분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적어서 아쉽긴 했지만, 넓고 넓은 홀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사진도 찍고, 줄이 짧으면 시연도 하고, 굿즈도 보다 보니 어느새 2만보 가까이를 걸었더군요.

저는 보통 게임쇼들의 현장 취재는 최대한 빠르게 끝내려고 하는 편입니다. 보통 오후가 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몰아치거든요. 하지만 해외 게임쇼는 기본적으로 행사장이 너무, 너무나 커서 대충 한두 바퀴 정도만 돌아도 4~5시간 정도는 훌쩍 지나갑니다.

오늘도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보드게임 존까지 두세 바퀴를 돌고 나니 오후 2시가 다 되어 가더라고요. 슬슬 미디어 룸으로 이동해서 1차로 기사를 정리하고 필요한 사진들을 체크할 시간이었습니다.



▲ 저기 투명한 벽 같은 게 행사장 끝이 아니라, 중간 쯤 있는 구름다리 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미디어룸은 미리 호수를 알려줬기에 크게 헤매지 않고 바로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들어간 팍스의 미디어룸은.. 생각보다 정말 작고 휑했어요. 정말로요!

지금 같이 고생하고 있는 저기 GDC 미디어룸에는 빵도 있고, 마실 것도 있고 뭐 이리저리 있다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에 그래도 어느 정도는 기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어지간한 해외 행사들의 경우에도, 미디어룸에는 커피와 기본적인 주전부리 정도는 있었거든요.

하지만 팍스의 미디어룸에는 딱 하나, 정수기 뿐이었습니다. 그래요 물이라도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게 어디에요. 충전기도 준비되어 있었고요. 나름 미디어 와이파이도 있었어요. 물론 이 미디어 와이파이가 그냥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보스턴 컨벤션센터 자체 무료 와이파이보다 느렸다는 건 좀 당황스러운 사실이었죠.

미디어룸에 들어오는 기자들 대부분이 "아니 미디어 와이파이 왜 이렇게 느려? 핫스팟이 빠르겠어!"를 중얼거릴 정도로 느렸습니다.

그렇게 휑하지만 그만큼 깔끔한 미디어룸에서 1차로 텍스트들을 쓰고, 필요한 사진들을 체크했습니다. 부족한 사진이 있다면 호텔 복귀 전 행사장에 다시 가서 찍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 사이에 얼른 내려가서 정말 맛없지만 팁까지 무려 16달러나 하는 오렌지 치킨+볶음밥을 사왔습니다. 이게 하나의 메뉴입니다. 두 개를 시킨 게 아니에요.



▲ 기사도 쓰고 밥도 먹고, 근데 진짜 너무나 맛 없던 볶음밥...

해외 미디어룸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음식이나 마실 것 등등을 마음대로 가져와서 먹어도 된다는 겁니다. 미디어룸은 미디어들을 위한 공간일 뿐, 엄숙하게 기사만 쓸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다른 기자나 크리에이터들과 신나게 떠들면서 친목을 쌓아도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습니다. 실제로 누군가 질문을 하면, 그 자리에 있는 수 명의 기자들이 동시에 대답하는 상황도 자주 연출될 정도로요.

그렇게 밥도 먹고, 옆에 있던 다른 기자랑 발더스 게이트3와 파이널판타지16에 대해 수다도 조금 떨고, 미디어 와이파이 욕도 좀 하고, 다시 기사도 쓰고 사진도 체크하고 나니 어느새 3시가 훌쩍 지났습니다. 이제는 현장을 마무리하고 얼른 복귀해서 본격적으로 기사를 써야 할 타임인 거죠.

이 다음에는 크게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없습니다. 다시 보스턴의 칼바람을 맞으며 복귀한 뒤 지금까지 기사를 쓰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행복한 건, 호텔 근처에 퀄리티도 좋고, 맛도 좋고, 점원도 친절하고, 가격까지 저렴한 샌드위치 집이 있어서 무사히 이틀 치 저녁을 해결했다는 점입니다.

팍스 이스트의 첫날은 이 기사로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틀차 취재를 준비할 시간이 왔네요. 과연 팍스일지 3편이 나올 수 있을까요? 내일 현장에서도 열심히 두 눈 크게 뜨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 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요런 사진이 바로 복귀하면서 촬영한 추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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