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컴 딜리버런스2' 속 등장인물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라틴어 문구는, 이번 작품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프레스 투어 도중 몇 차롄가 보고 들은 이 생소한 문구를 곱씹어 보니, '킹덤 컴'의 개발사인 워호스 스튜디오와 닮은 구석이 있어 보였다.
워호스 스튜디오는 마피아 시리즈를 개발하던 2K 체코 스튜디오의 개발자들이 모인 소규모 그룹으로 시작했다. 게임에 대한 열정은 있었지만 현실은 어두웠다. 자신들이 가진 아이디어로 프로토입을 만들 만한 자금마저 없었으니.
그래도 그들은 용감했고, 행운은 용감한 자를 좋아한다. '킹덤 컴 딜리버런스'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워호스 스튜디오에게는 무수히 많은 행운이 찾아왔다. 프로토타입을 개발할 자금을 투자해 준 체코의 부호도, 예상 모금액에 4배를 웃도는 킥스타터 펀딩에 성공한 것도. 물론 시련도 많았다. 출시 직후 무수한 버그와 최적화 문제는 그간 찾아온 행운조차 물거품으로 만들 정도로 치명적인 것이었지만, 이들은 용기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고생 끝에 탄생시킨 게임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누적 판매량 600만 장. 팰월드는 단 나흘 만에 기록한 수치라지만, 당시 워호스에게는 무엇보다 값진 성과였다. 전 세계에 자신들의 이름을 각인시켰고, 스튜디오의 규모도 커졌다. 첫 편 개발 초기 서른 명, 완성 직전 90명에 이르던 스튜디오 인원은 250명까지 늘었다.
다음엔 분명 쉬운 길을 택했을 수도 있었다. 프로토타입을 보고 거의 모든 퍼블리셔가 등돌린 게임의 후속작을 만드는 것보다는, '돈이 되는'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스튜디오의 미래를 봤을 때도 합리적인 결정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개발비가 들어가는 오픈월드 장르 대신 다른 장르를 선택하는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용감한 그들은 또 꿈을 좇았고, 고국의 역사, 그 일부를 담은 게임의 후속작을 선보이기로 한다.
이번엔 온 나라가 이들의 행보를 응원하고 나섰다. 게임의 배경이 되는 도시 '쿠트나 호라'는 시 정부가 직접 나서 개발사와 협업을 논의했고, 체코 조폐국은 '킹덤 컴'을 주제로 한 기념 주화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프로토타입 만들 돈도 없었던 프로젝트는 어느새 국가가 주의 깊게 지켜보는 '작품'이 되어 있었다.
틈만 나면 게임이 중독인지 아닌지부터가 화두가 되는 우리나라에선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한 개발사의 게임이 국가적인 관심을 받는 경우를 벌써 두 번씩이나 마주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국가가 가진 문화, 역사에 기반한 게임을 만든 것, 그리고 세계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좀 더 시선을 넓혀보면, 게임을 통해 자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중국 밖 게이머에게는 생소한 경극을 현지화 없이 그대로 선보이는 호요버스, 인도네시아 인디 게임 '묶이지 않은 자들을 위한 우주' 또한 현지 문화를 녹여내면서도 메타크리틱 85점을 받으며 글로벌 공감대를 입증했다.
우리나라 고유의 민담과 설화를 일련의 퀘스트로 풀어낸 검은사막 '아침의 나라'는 대형 게임사가 본격적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게임에 담아내기 시작했다는 데서 의미를 갖는다. 마땅한 성공 사례가 없는 영역에 도전하는, '용감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서울 업데이트를 통해 경복궁을 게임 속에 재현하며 그 규모와 깊이를 더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만 하다.
물론, 누구에게나 찾아오지 않기에 행운이라 부른다.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대담함은 행동의 시작이지만, 그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운명"이라고 했다. 대담함만 있다면, 무언가를 행동할지는 의지대로 정할 수 있다. 결과는 통제할 수 없으니,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 운과 관련한 속담이 유독 준비와 용기를 이야기하는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계의 공감을 살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게임. 물론 어렵고 험난한 길이다. 역사에 민감한 국내 정서 상, 어쩌면 영영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용감하게 도전하고 있는 이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보아하니, 행운만 용기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