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아카이브, 솔직히 이 작품은 국내 서브컬쳐 유저들에게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작품입니다. 사실 최초 공개될 때부터 덕후들을 가슴뛰게 만들 요소들로 가득했으니까요. 당시 서브컬쳐의 주류였던 포스트아포칼립스풍과는 전혀 다른 밝고 청량한 분위기에 미소녀와 학원, 총기, 얼렁뚱땅 넘어가는 밝은 일상과 이를 한꺼풀 벗겨내면 숱하게 드러나는 알레고리 등등. 왜 이 작품에 서브컬쳐 유저들이 그렇게 빠져들었나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아마 지면을 다 할애하고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말 진짜들만이 가능한 '로망'을 다 긁어다가 찐으로 제련한 물건이니까요.
그런데 주로 이 게임에서 나온 밀리터리 요소가 총기, 혹은 탱크와 연결이 되어있다 보니 월드 오브 워쉽과 콜라보는 사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것도 심지어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진행하리라는 건 더더욱 그렇죠. 물론 월드 오브 워쉽이 '벽람항로'와 여러 차례 콜라보를 했으니 서브컬쳐 게임 콜라보는 이상하진 않지만, '함선'이 거의 등장하지 않던 게임을 월드 오브 워쉽이 또 선택할 줄은 몰랐죠.
서문이 길다 = 혓바닥이 길다는 것은 뭔가 있다는 뜻이죠. 그렇습니다. 작년에 콜라보를 체험한 정재훈 기자는 월드 오브 워쉽을 알지만 블루 아카이브를 전혀 모르는 기자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저는 정반대입니다.
블루 아카이브를 비롯해 각종 서브컬쳐 게임을 섭렵했지만, 월드 오브 워쉽을 하나도 모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런 제게, 미션이 떨어졌습니다.
"이번에 월드 오브 워쉽이 블루 아카이브 2차 콜라보 한다는데 한 번 해보려무나."
그래서 이번에는 월드 오브 워쉽을 전혀 모르는 시점에서 블루 아카이브 콜라보 체험기, 바로 들어갑니다.

아, 총력전과 최종편의 추억이여
알못이 봐도 눈에 튀지만, 멋지면 그걸로 OK

1차 콜라보에 대한 정보는 취재로 대략 알고 있긴 했습니다. 콜라보로 기존 함선에 외장을 더하고 블루 아카이브 함장이 탑승한 BA 몬태나, BA 티르피츠, BA 타카하시 세 척이 등장한다는 것 말이죠. 그 성능은 잘 모르긴 하지만, 그냥 겉으로 봤을 때 각 캐릭터별 테마 컬러나 헤일로 같은 고증은 나름 준수하게 지켰던 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번에 인게임에 몇 번 들어갔더니 헤일로가 종종 안 보일 때가 있는데, 몇 번 해보니까 왜 그렇게 했는지 알 거 같았습니다. 꽁무니에 반짝이는 게 있으면 그거를 마치 레이저 포인터처럼 잡고 쏘기 좋아보였거든요. 블루 아카이브 세계에서 학생들의 헤일로가 꺼진다 = 의식이 없다거나 혹은 정말 키보토스에서는 정말 드문 일이긴 하지만 죽었다는 의미라 처음엔 식겁하긴 했죠. 근데 또 다시 생각해보니 배에다가 헤일로를 달았다는 건 신비가 있다는 의미라 모호하기도 한데, 학생을 테마로 콜라보했다고 생각하면 못 받아들일 것도 없고 해서 그러려니 합니다.


어쨌거나 그런 이슈(?) 때문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함선이 바로 '비나'였습니다. 아까 왜 괜히 '신비' 이야기를 했냐면, 그래서 총력전 보스 '비나'가 헤일로를 달고 있거든요. 비나는 블루 아카이브에서 '데카그라마톤', 즉 새로운 신의 도래와 말해질 수 없는 성스러운 10개의 글자에서 따온 예언자 중 하나죠. 그의 패스(Path)는 이해를 통한 합일, 이명은 '다름을 통감하는 숙고의 이해자'. 이런저런 설정이 있긴 하지만 오래 전부터 아비도스 사막에 있었고, 최근 활동을 개시하면서 이를 주기적으로 물리치기 위해 선생이 이런저런 신비를 갖고 있는 학생들을 죄다 끌어모아 '총력전'을 벌여야 할 정도죠.
아마 블루 아카이브를 한 선생이면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겁니다. 그렇습니다. 비나에 원래 있어야 할 헤일로가 이번에는 안 보여서 뭐지?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그러다 비나 머리의 선수에 문양을 헤일로 색으로 칠한 거 보고 적절히 타협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괜히 또 빛나는 거 둥실 떠있으면 저격당하기 쉬우니까, 아쉽지만 밸런스상 그렇게 설정한 걸 테니까요.


그 부분만 확인하고 난 뒤에 살펴본 '비나'는 꽤나 멋졌습니다. 비나 등의 미사일이 나오는 발사구가 열렸을 때 모습처럼 도색한 대공포나, 비나가 그로기 상태일 때 온몸에 튀는 오렌지색 스파크를 중간중간 뿜어내는 선체까지 각 요소를 전함에 잘 녹여낸 게 보였거든요.
사실 비나에 탑승하는 함장으로 마키를 선정한 것만 봐도, 적어도 총력전은 제대로 해보고 준비했다는 게 느껴집니다. 요즘 좀 메타가 바뀌긴 했어도 메인딜러에서 서브딜러, 방깎요원으로 역할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비나 전문가로 활약 중이니까요. 왜 이탈리아에 편성된 건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그쪽에 미켈란젤로의 이름을 딴 전함도 있고 하니 마키의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보고 그쪽에 넣은 거 아닌가 싶습니다.
그 다음에 눈에 띈 함선은 '아로나의 고래'였습니다. 일본 10티어 잠수함에 편성됐는데, 선수의 눈 장식을 본 순간부터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아로나 옆에 항상 붙어다니는 그 고래 눈 그 자체니까요. 그 눈가에 뜬금없이 하얀 장식이 붙은 건 잠수함 고증인가 했는데, 위에서 보니까 아로나의 고래가 달고 있는 리본을 형상화한 거더군요.



이외에도 아로나하면 떠오르는 요소들이 곳곳에 액세서리로 붙은 게 눈에 띄었습니다. 태블릿 홈버튼을 형상화한 옷깃의 장식이나, 콘솔 키패드 같이 생긴 치마의 장식도 빼먹지 않았죠. 핑크색으로 나풀거리는 건 순간 뭔가 했더니, 안쪽 헤어가 핑크색인 아로나의 투톤 헤어를 나타낸 거더군요. 그렇게 핑크색을 적게 배정한 건 아마도 머리카락색만 그런 걸 고증한 거겠지만, 핑크 봉투는 죽어라고 안 주는 아로나의 또다른 일면을 보여준 거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무료 100연차에서 결국 아스나(교복)은 못 뽑고 넘어가서 괜히 심통부리는 거 아닙니다. 세이아는 건졌으니 됐죠 뭐.
무기를 살펴보면 아로나의 우산총을 형상화한 갑판의 주포에, 잠수하면 곧 떨어질 것처럼 다소 아슬아슬하게 붙어있지만 고래와 우산까지 소소하게 붙인 게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선체가 은은하게 빛을 더해서 태블릿 온오프, 그리고 아로나의 신비까지도 살린 듯한 느낌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게 빛나면 쉽게 조준당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직접 플레이해보니 잠수함은 그냥 발견이 되자마자 바로 집중 마크 당하는 게 다반사라 별 차이는 없는 듯합니다.
블루 아카이브에서 배하면 빠질 수 없는, '우트나피쉬팀의 배'도 이번에 추가됐습니다. 함장은 최종편에서 오퍼레이터로 합류했던 학생 중 하야세 유우카가 낙점됐죠. 그런데 왜 프랑스에 속해있나 했는데, 바로 옆에 있는 브레스트 순양함과 거의 비슷한 걸 봐선 아마 최대한 비슷하게 외형을 뽑아낼 수 있는 함선을 마개조한 형태 아닌가 싶더군요. 뒤꽁무니에는 우트나피쉬팀의 배에 달려있는 추진구가 그대로 달려있었고, 전속 항행 시 바로 파랗게 불이 뿜어져나온 걸 보니 최종편에서 아트라하시스의 방주에 충각하던 그 장면이 얼핏 떠올랐습니다.



원래 우트나피쉬팀의 배는 고증대로 하자면 좌우측 후방에 추진구가 두 개 달린 형태입니다. 그렇게 하면 군함의 전체적인 형태가 흐트러져서 그런지 최후방에 프로펠러처럼 하나 다는 식으로 협상을 한 느낌이었죠.
그것보다 먼저 눈에 띄는 건, 갑판의 모래였습니다. 저는 해군이 아니고 포병 출신이긴 한데, 정비를 마치고 막 출발한 장비 윗판에 모래 같은 게 고스란히 남아있다면 대체 뭔 일이 일어날지는 뻔하죠. 그럼 바로 포반장, 아니 여기선 배니까 갑판장이라고 해야겠죠? 아무튼 와서 바로 내 밑 니 위를 시전하리라는 건 불보듯 뻔합니다.
그런데 군필자에겐 PTSD가 올 법한 이 모래가 고증은 맞을 겁니다. 왜냐하면 선생이 카이저 코퍼레이션이 아비도스 사막 지하에서 발굴하려다가 말았던 이 전함을 입수한 뒤, 사막의 모래층을 뚫고 발진해서 아트라하시스의 방주로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 최종편 3장의 초반부 내용이었으니까요. 한시라도 빨리 방주를 공략하지 않으면 키보토스가 멸망할 판이었으니, 갑판에 모래가 좀 묻어있어도 이상하진 않을 겁니다. 우주전함급 속도로 발진하긴 했는데 장비 위에 묻은 모래가 제대로 각잡고 안 털면 진짜로 안 떨어지는 것도 어찌보면 고증이겠고요.


마지막은 소련 9티어 전함으로 합류한 또다른 총력전 보스, '호버크래프트'였습니다. 물론 그 호버크래프트를 타고 리조트를 습격했던 와카모가 함장으로 추가됐죠. 뭐 이름부터 죄다 일본식인 블루 아카이브 세계관에서 이런 거 말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색이 강한 백귀야행의 와카모가 왜 소련으로 왔나 의문이긴 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와카모가 빨치...파르티잔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 거 같긴 합니다. 지금도 절찬리에 패러디되고 있는 심영급의 선동전은 아니더라도, 와카모 특기가 헬멧단이나 불량배들 선동해서 온갖 난리를 치고 그 사이 게릴라전을 하는 거였으니까요. 맨 처음 등장할 때는 물론, 호버크래프트를 처음 끌고 왔던 '아비도스 리조트 복구 대책위원회' 이벤트에서도 라브를 비롯해 헬멧단원 다수를 선동해서 온갖 난리를 쳤던 걸 보면 그럭저럭 끼워맞추기는 되겠구나 싶습니다.



일단 지금까지 봤던 함선 중에서 개인적으로 호버크래프트가 가장 평이한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중 원본이 배에 가장 가깝게 평범한(?) 느낌인 것도 있고 하니까요. 돌고래 깃발은 아트북을 봐도 진짜 있었나 확인은 안 됐는데, 갑판 컬러나 깃발 모두가 호버크래프트에 달렸던 신호기의 3색 즉 오렌지색, 파란색, 회색을 바탕으로 제작한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뒤에 우트나피쉬팀의 배처럼 프로펠러가 구현이 되어있을까 했는데, 그건 구현이 안 되어있었습니다. 인터뷰 때 듣기로 개발진이 배에 대한 최소한의 고증을 지키려고 프로펠러는 못 달겠다 이랬다는 거 같은데, 아마 SF식 추진기로는 그렇게 배가 움직일 수 있어도 프로펠러 풍력으론 어지간해선 무리다 판단한 모양입니다. 대신 함포 옆에 장식처럼 달아두는 걸로 아쉬움을 달랬고, 호버크래프트 원본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갑판에 미니어처를 양쪽에 올려두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 와카모의 여러 장식이나 특유의 색은 없어서 좀 아쉽긴 한데, 화포 사격을 할 때마다 꽃잎처럼 흐드러지는 포연과 와카모 특유의 광기어린 웃음을 들으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익숙한 브금과 함께 닻을 올려라
승리의 메시지는 자주 듣지 못하기에 더 값진 것
격납고를 이리저리 훑어보는 것도 잠시, 이제는 '실전'의 시간이 왔습니다. 솔직히 여태 게임에서 차량이나 탱크, 비행기는 몰아본 적이 있어도 배는 처음이라 긴장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수함 게임은 아주 오래 전, '배틀마린'에 한창 빠져있던 적이 있긴 한데 그건 턴제로 자리잡고 어뢰 쏘는 거라 감각이 다를 수밖에 없죠.
어쨌거나 배 말고 가장 이질적인 잠수함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나 보려고 아로나의 고래부터 골랐는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선배 기자가 잠수함 나오기 전에 접어서 주변에 조언을 받을 곳이 없었다는 거죠. 뭘 해도 결국 디코이 정도밖에 안 될 거 같으니, 그냥 일단 못먹어도 GO 이런 심정으로 연습 전투 한 판 뛰고 바로 실전 갔습니다.

일단 전투 개시하자마자 바로 터져나온 'Mechanical Jungle'의 흥겨운 그루브가 들썩거리게 만들었습니다. 블루 아카이브 유저라면 전투 BGM으로 숱하게 들었을 곡이지만, 아마 2분 풀로 제대로 들을 일은 많이 없었을 겁니다. 통상 그 전에 끝내야 3별 클리어가 되니까 스킬을 쏟아붓고 하다 보면 BGM이 묻히고, 그렇게 하다 보면 곡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바로 승리 BGM으로 이어지니까요.
월드 오브 워쉽은 그래도 초반에 바로 접전이 붙는 게임은 아니라 그런지, 블루 아카이브에서도 온전히 듣지 못한 그 곡을 제대로 들으며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입장에선 그저 다른 잠수함 가는 길을 웨이포인트 찍고 자동항해로 고스란히 따라갔을 뿐이지만요.
그 사이에 함장이 뭔가 조언이라도 해주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아로나에 대한 연구가 이래저래 잘 됐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적 발견할 때 쇼트 케이크 운운하다가 그게 아니고 적함 발견입니다 이러는 게 아로나가 종종 엉뚱한 소리하는 그런 모습과 겹쳐졌으니까요. 물론 침수되거나 파손되어서 물 차고 그런 위급 상황에선 그러진 않으니, 일본어 좀 아는 덕후면 그 사태를 바로 파악해서 대처할 수는 있습니다.
어쨌거나 잠수함이 어뢰를 맞추려면 소나 파장을 명중시켜야 한다는데, 그러려면 잠망경 심도까지 올라와서 조준해야 한다는 걸 처음에 몰라서 계속 잠수만 하다가 배터리 문제로 올라오고는 그대로 폭격맞아 리타이어했습니다. 나중에 그거 알고서 몇 번 쏴보긴 했는데, 제가 좋게 말하면 이니시에이터 나쁘게 말하면 박치기 공룡이라 그냥 어그로만 줄창 끌고 폭사했죠. 그렇게 제가 어그로 끄는 동안 다른 잠수함이 옆에서 전함들 몰래 털어먹어서 이기긴 했지만, 이래저래 초보가 쓸 만한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AOS의 암살자처럼 기동력이나 한 방 딜은 좋지만, 체력이 낮아서 자칫하면 역습맞고 그냥 뻗어버리니까요.



아로나를 좋아하긴 하지만 잠수함은 그런 이유로 몇 번 하고 패스, 바로 전함으로 잡았습니다. 군함이 소재인 게임 중에서 그나마 오래 한 게임이 벽람항로라 후열에서 뻥뻥 주포 쏴대던 것만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까 일제사격으로 다른 배들을 압도하는 화력을 발휘하는 선봉장 느낌이더군요.
박치기와 화력 본능에 딱 맞는 배다 싶어서 일단 비나부터 몰고 갔습니다. 무장이 뭐 달려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원작에 미사일 패턴이 있는 애니까 함포 발사한 후에 뭔가 이거저거 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죠. 아니나 다를까 그 미사일 발사구에 달린 부무장들도 일제히 포연을 뿜어내는 장관이 바로 눈에 띄었습니다. 아, 이거다. 그 화력에 취해서, 그리고 비나라는 데카그라마톤의 신비를 믿고 개돌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시죠? 총력전 보스 중에 비나가 제일 쉽게 털리는 거 말이죠. 이미 2년 전부터 인세인클 정도론 오줌...골드단을 유지할 수 없는 수준이니까요. 토먼트 이상으로 가면 얘기가 다르긴 한데, 토먼트 비나급의 패턴을 보여주지 못한 저는 그냥 그저 꼬르륵, 뱀구이 아니 뱀탕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쩐지 마키가 뭐 할 때마다 계속 돌아와! 위험하다고! 이렇게 절규하듯 외치나 싶었더니만, 역시 비나 전문가는 다른가봅니다. 하긴 마키가 약간 센스가 좀 튀고 엉뚱하긴 해도, 혼날 것 같은 상황에선 칼 같이 사리는 애라서 어찌 보면 제때 제때 긴급 경보가 필요한 초보에겐 잘 어울리는 함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와카모의 호버크래프트는 비나보다는 포문은 좀 적은 대신, 전투기를 호출해 대공 구획을 강화하는 등 유틸적으로 좀 더 괜찮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와카모가 굉장히 호전적이면서도 선생바라기인 걸 너무 충실히 반영해서 그런지, 어지간해서는 위험하다거나 뭐 대처해야 한다 이런 소리를 안 하더군요.
불이 난 상황에서도 "불과 연기 속에서도 당신이 너무도 잘 보여요 아하하하하!" 이런 식이라 나중에 다 불타고 나서야 불이 났었네 이걸 알 정도였으니까요. 정면에서의 공격도 무의미합니다 이렇게 말하는데 옆에 함선 상황 보면 전혀 그런 게 아니었던 적이 한두 번도 아니었습니다. 얘가 괜히 일곱 수인이 아니라는 걸 여기서도 잘 보여주긴 하는데, 아무튼 초보라면 당분간 사이토 치와 성우의 그 꿀 보이스는 그냥 귀로 흘려듣고 화면에 집중하는 편이 좋습니다. 키보토스의 학생들은 포격이 쏟아져도 구급상자 드롭 받으면 금방 낫지만, 우리 배는 집중포화 맞을 상황되면 바로 뚫릴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하야세 유우카와 함께 최종편의 각오를 담아, 우트나피쉬팀의 배로 출전했습니다. 아까 '벽람항로' 얘기를 했을 때 아마 눈치챈 분도 있을 겁니다. 네, 벽람항로에서 전열은 순양함과 구축함이 맡고 있습니다. 그 말인 즉슨, 저 그냥 얘도 아무 생각 없이 전열처럼 돌진했습니다. 구축함이 라인 잡고 순양함이 전황 각을 보면서 지원해야 한다는 소리 듣고 왜 유우카가 함장 됐나 이해했던 것도 잠시, 그냥 익숙한 대로 한 거죠.
어쨌거나 계산을 입에 달고 사는 유우카답게, 함장 중에서는 제일 상황을 제대로 체크해서 보고하는 유형이었습니다. 역시 거액을 횡령한 생활력 제로 아방가르드 회장과 해킹으로 채권 무단 발행해서 그 돈을 카지노에 박은 도파민 중독자 후배 사이에 치이는 세미나의 양심이자 살림꾼인 유우카답다고 할까요. 물론 그래서인지 "연비 효율을 중시하는 설정 아니었어요?", "연비가 신경 쓰이는데요", "수리비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등 짠내 나는 멘트가 살짝 안쓰럽기도 합니다. 특히 피탄 당할 때마다 말끝이 흐려지는 게 매번 구멍나는 밀레니엄 장부와 샬레 서류를 보고 한숨쉬는 유우카가 떠오른다고 할까요.
어쨌든 상황에 맞는 말을 착착 다 한 다음에 끝에 저렇게 말해주니, 일본어가 가능하다면 그 함장 보이스 듣고서 정확하게 상황 판단해서 움직이기엔 좋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는 상황 판단 자체가 안 되서 거점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집중 포화맞고 죽긴 했는데, 저 터뜨리겠다고 적들이 집중포화 날리는 동안에 아군이 알아서 잘 타격해줘서 이겼습니다.


그 뒤로도 몇 판을 하면서, '월드 오브 워쉽'을 겉핥기로나마 맛봤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와! 블루 아카이브 학생들 와! 총력전과 최종편 테마 배네 이런 정도였는데, 실제로 해보니까 해상전만의 묘미 그리고 그를 토대로 풀어낸 콜라보의 묘미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빈틈을 채워주는 성우들의 보이스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엄격, 근엄, 진지한 레귤러 함장이 더 낫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출발하고 진형 잡기까지 그 시간 동안은 뭔가 좀 허전했을 거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그 틈새에 익히 잘 아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니까 새로운 느낌이더군요. 슈퍼 아로나 호 발진이라던가, 자동항해 온했으니 그래피티 그리러 간다던가 등등, 그 캐릭터들이 할 법한 색다른 대사들까지 들리니 호오, 이런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그런 컨셉에 좀 집중한 나머지 일부 함장은 위기 상황 멘트가 전혀 긴급하게 닿지 않는 부작용은 있긴 했습니다. 화면에 경고메시지가 큼지막하게 뜨니까 상황 파악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키보토스에 온 거 같아서 그러려니하다가 그대로 침몰해버린다고 할까요.

아마 월드 오브 워쉽에도 정통하고, 블루 아카이브도 잘 알고 있다면 그냥 가볍게 코웃음치고서 상황을 모면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블루 아카이브만 알고 월드 오브 워쉽을 모른 저로서는 그저 어어어? 뭐야? 얘 왜 갑자기 이런 소리하는 거야? 이러다가 꼬르륵 당하기 일쑤였죠.
그래도 한 번 어떻게든 격침은 시켜봐야겠다 싶어서 좀 더 뛰어봤고, 어떻게 주포 겨우 맞춰서 성공했을 때의 쾌감은 남달랐습니다. 아, 이 맛에 월드 오브 워쉽하는구나라고요. 레귤러 함장이나 함선은 해군 출신은 아니어도 군대 재입대하는 기분이라 쉽게 손이 가진 않겠지만, 만약 개인 계정에 콜라보 함선과 함장이 오면 계속 몰기는 할 거 같습니다. 다음 번에 만일 콜라보를 하게 된다면, 그땐 워쉽은 알지만 블루 아카이브 모르는 정재훈 기자와 페어로 함께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