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이콘 매치로 바라본 e스포츠

칼럼 | 김홍제 기자 | 댓글: 2개 |
지난 9월 13, 14일,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아이콘 매치가 대흥행을 거두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아이콘 매치는 넥슨이 주최한 이벤트 경기로 루니, 베일, 마이콘, 제라드, 호나우지뉴, 드록바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레전드 선수들이 공격팀과 수비팀으로 나뉘어 맞붙은 이벤트 매치다. 이들의 방한 자체만으로도 ‘해버지’ 박지성을 통해 해외 축구를 접한 많은 팬들에겐 그 시절의 낭만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이콘 매치의 흥행을 단순히 과거의 향수 때문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과거를 미화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현대 축구가 채워주지 못하는 어떤 허전함이 존재하기에, 이번 매치는 그 빈자리를 정확히 관통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축구 팬들은 현대 축구의 변화를 이끈 가장 큰 분기점으로 펩 과르디올라 감독을 꼽는다. 2000년대 후반부터 펩의 포지션 플레이는 세계 축구의 판을 흔들었고, 수많은 감독들이 이를 벤치마킹했다. 하지만 전술과 시스템이 정교해진 만큼, 과거 ‘판타지 스타’라 불리던 선수 한 명의 압도적 존재감은 줄어들었고, 개인의 창의성이 빛날 여지는 좁아졌다는 지적이 많다. 쉽게 말해, 팀, 선수마다 뚜렷한 개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물론 재미라는 건 지극히 주관적인 요소다. 요즘 축구가 더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이들의 목소리 역시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고, 바로 그 점이 아이콘 매치가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한국 e스포츠의 출발점이자 황금기로 불렸던 스타크래프트 시대 역시 비슷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도전하던 시절, 정형화되지 않은 개성 넘치는 선수들이 즐비했다. 가난하지만 폭풍처럼 몰아치던 폭풍 저그, 휘어질지언정 꺾이지 않는 대나무 테란, 수비의 끝을 보여준 우주방어 테란, 한방으로 승부를 보는 한방 토스 등, 단 세 가지 종족의 게임이었음에도 선수들의 다양한 스타일 덕분에 보는 재미는 상당했다. '오늘은 어떤 전략이 나올까'라는 기대감만으로도 팬들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승리를 위한 최적화가 깊이 연구되자, 개성보다는 효율을 따르는 ‘양산형 게이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경기 수준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는 재미가 그만큼 배가되었는지 묻는다면 ‘글쎄’라는 답을 내놓게 된다. 무엇이든 정형화되면 결국 '누가 더 잘하느냐'의 싸움이 되고, 끝내는 괴물 같은 피지컬을 자랑하는 선수들의 경이로움에 감탄할 뿐, 이전이 주던 설렘은 점차 사라져 갔다.




올해로 15주년을 맞이한 LoL도 마찬가지다. 물론 LCK는 여전히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하며 e스포츠의 중심에 서 있다. 하지만 특정 팀이나 선수에게 인기가 집중된 현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롤파크만 봐도 레전드 그룹의 경기와 라이즈 그룹의 경기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돌이켜보면 LCK에도 낭만의 시절이 있었다. 특정 챔피언을 특출나게 다루던 ‘장인’ 선수들이 넘쳐나던 때는 ‘그 챔피언이 이번에 등장할까?’라는 기대감만으로도 밴픽부터 눈을 떼기 어려웠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기발한 조합이나 독창적인 전략을 자주 볼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LoL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승리를 위한 체계가 갖춰졌고, 결국 다재다능한 ‘육각형 선수’들만 살아남았다. 팀 게임도 이제는 돌발적인 슈퍼 플레이보다는 확률과 근거에 기반한 안정성이 우선시되며, 비슷한 형태의 경기 양상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으며, 팀의 개성이나 감독의 색깔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지금의 재미도 프로 레벨의 뛰어난 경기력보단 오래된 베테랑 선수들 개개인이 주는 서사에서 오는 재미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라이엇도 이런 흐름을 인지해 꾸준히 변화를 시도해 왔다. 대격변 패치를 단행하기도 하고, 메타 변화를 지속적으로 유도하며, 올해부터는 고착화된 밴픽을 조금이나마 유연하게 하기 위해 피어리스 드래프트까지 도입했다. 게임이 오래될수록 신규 유입은 쉽지 않고, 결국 장기적인 흥행을 위해서는 올드 팬들을 붙잡을 매력이 필요하다. 아이콘 매치가 남긴 여운처럼, 언젠가 LoL e스포츠 무대에도 다시금 판도를 뒤흔들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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