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기 다른 배경을 지녔지만 라운드8 스튜디오 아래 모인 네 명의 베테랑 디렉터들의 견해를 엿볼 수 있는 특별하나 토론이었습니다. P의 거짓과 서곡, 여왕의 창기병, 베리드 스타즈와 회색도시, 검은 방, 하얀 로냐프강와 마영전 등 다양한 게임과 소설 집필들의 경험들이 나왔죠. 이상균, 진승호, 최지원, 권병수 디렉터가 한 자리에 모여 이종범 캠장(스토리캠프)의 진행 아래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들의 화두는 단 하나, '좋은 게임 내러티브'란 무엇인가 였습니다. 네 명의 디렉터는 각자 현장에서 직접 이야기를 쓰고, 겪어보면서 게임을 만들어 오면서 얻게된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게임의 내러티브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전달했습니다.
게임에 있어서 '좋은 내러티브'란 무엇인가?
이종범
=첫 질문부터 덕후들이 좋아하는 질문입니다. 각자가 생각이 같을 수 없는 부분인데요. 게임에 있어서 좋은 내러티브, 좋은 이야기라는 게 과연 뭘까? 오래 일을 하신 분들은 자기만의 정의를 좀 정리하게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거에 대해서 한번 최지원 디렉터님 말씀 좀 들어볼까요?
최지원
=네, 제가 생각하는 게임에서 좋은 내러티브란 지속적으로 동기나 목표가 제공이 되어야 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하다 보면 특정한 행동할 때 '그런 경험을 내가 왜 하고 있지?' 하다 보면은, 어떤 목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집중하는 이 몰입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행동 하나에 있어서도 '내가 어떤 명분이나 목표를 가지고 이런 행동을 한다'라는 게 느껴져야 게임에 몰입이 유지됩니다. 그러한 뜻에서 계속 지속적인 목표가 제공돼야 되는 게 게임에서는 좋은 내러티브라고 생각합니다.
이종범
=약간 그런 거잖아요? 계속 스스로를 고통받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들이 있잖아요. 그때 '나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야'라고 자문했을 때 이유를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최지원
=장르와 무관하게, 예를 들어서 스포츠 경기라 하더라도 최근에 어떤 특정 실제 선수가 등장하는 게임을 즐겼을 때도 몰입도가 달라지거든요. 왜냐하면 그 캐릭터의 서사가 있기 때문이죠.

권병수
=제가 말을 이어받아서 얘기를 하자면, 기본적으로 저도 지원 디렉터님이랑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게임을 할 때 좋은 내러티브라는 거는 게임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고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줘야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그런 점에서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조건이 과연 뭘까라고 생각을 해봤어요.
저는 좋은 몰입하고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라든가, 굉장히 관심을 갖고 흥미진진하게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지?' 하고 궁금해할 수 있는 어떤 흡입력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봅니다. 흔히 그런 얘기하잖아요? 게임을 켰는데, 끄고 보니까 새벽이었어. 그런 식으로 자기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할 수 있을 만큼 어떤 중력이라고 할까요? 중력을 갖고 끌어들이는 힘을 가진 게 가장 좋은 내러티브의 조건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이종범
=이게 재밌는 부분인데, 최지원 디렉터님은 출신지가 전투 기획 쪽이었잖아요. 전투 기획 쪽이 자기의 고향인 사람들은 '내가 이 전투를 왜 하고 있는지' 스토리에서 뭘 얻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반면에 소설가가 본진이면 '주인공에게 몰입하는 게 중요하다'라는 어떤 DNA를 갖고 계시단 말이죠. 각자 자신이 가져왔던 커리어와 본인이 원래 있었던 출신지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정의를 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두 분도 여기에 대해서 같이 한번 얘기해 보고 싶은 게 있으실까요?
진승호
=어쨌든 게임 플레이, 게임 시스템을 통해서, 플레이어가 어떤 조작/컨트롤을 통해서 어떤 감정의 움직임을 겪어야 된다. 이 부분이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어디서 저도 들은 말인데, 제가 생각한 말은 아니에요. 게임에 나온 캐릭터라든지 어떤 스토리가 단순한 데이터 쪼가리로 느껴지지 않는 그 차이를 만드는 부분, 어쨌든 그게 게임으로 좋은 내러티브의 조건이다라도 하시더라고요.
이상균
=저는 진승호 디렉터님과 생각이 거의 같은데, 저는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면... 서로 20이라는 숫자를 갖고 있는 주사위를 굴려서, 상대편의 20을 0으로 먼저 만드는 사람이 이기는 규칙이 있는 게임이 있다고 하면, 그렇게 하지 말고 "이 20이 기사의 HP고, 그다음에 우리가 들고 있는 주사위가 롱소드야. 롱소드의 공격력은 1에서부터 6까지야" 이렇게 보여드리게 되는 거죠. 게임 규칙 자체는 건조한데, 그 규칙이 건조한 것으로 끝나지 않게 하는 게 내러티브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내러티브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고 어떻게 숙성시키는가?

이종범
=평소에 이렇게 스토리나 내러티브를 구상할 때 아이디어를 주로 어디에서 얻는가? 혹은 평소에 어떤 식으로 그것들을 숙성하고, 좀 넣어놓고, 모으고, 메모하고 하는가? 이런 것들은 궁금하신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이상균 디렉터님 어떠신가요?
이상균
=저는 게임 스토리를 쓰기 전에도 이미 학생 때부터 거의 한 20년 정도 소설을 썼는데, 그래서 어떤 강박적으로 아이디어를 발견을 했을 때, 어렸을 때는 수첩을 갖고 다니면서 오프라인에다가 적었습니다. 지금은 이제 스마트폰에다가 적고 있는데, 아이디어가 길거리나 갑자기 지하철 기다리면서 갑자기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러면 일단 적습니다. 그게 당장 이야기로 연결될 것 같지 않더라도 일단 적어놓는데, 그 이유는 아이디어가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숙성이 되는 물리적인 기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당장은 이게 쓸모없어 보여도 일단 넣어놓으면 언젠가는 이야기가 되어서 다시 올라옵니다.
이종범
=그렇게 넣어두잖아요? 숙성이 되기도 하지만 썩기도 할 것 같은데요? 꺼내봤더니 '이건 웬 똥이냐' 할 때가 있잖아요. 그 차이는 어디서 나올까요?
이상균
=예를 들어서 제가 지금 되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놓고 한 20년 전에 쓴 미발표 단편 소설이 있어요. 근데 그걸 중단하게 되는 계기가, 그것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그 아이디어를 여기에 대입할 수가 없어졌기 때문이었죠. 그런 느낌이 들 때, 내가 더 성장했거나 더 나은 걸 발견했을 때는 과감하게 그 아이디어를 버리는 그런 행위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진승호
=저 같은 경우는 초창기에는 제가 좋아한 것들을 모사하는 것에 좀 중점을 뒀던 것 같고요. 근데 굉장히 밑천이 빠르게 떨어졌기도 합니다. 일단 살면서 이제 인생의 큰 경험들을 겪게 되는데, 그걸 겪게 되면 그 안에 빠져있다가 어느 순간 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 근데 이거를 어떤 내가 실제로 닥쳐서 경험하는 게 아니고, 뭔가 이런 게임 플레이 같은 걸로 경험하면 굉장히 재밌을 것 같다. 경험을 시켜보고 싶다. 나 혼자만 당할 수 없다." 약간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대부분 저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아이디어를 하나 얻게 되면한동안 계속 생각을 해봐요. 왜냐하면 이거를 이제 하겠다는 결심을 하면 이제는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를 알고 있어요. 막 피칭을 해야 되다보니 그런 식의 숙성을 하게 되는 거예요. 이게 말하자면 '똥인지 된장인지'를 사전에 어느 정도 판단을 해야 되니까요. '이거 진짜 이 고생을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경험이야? 그냥 너만 재밌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도 재미없는 그런 생각 아니야?'라는 거를 계속 자문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죠.
그러다가 이제 마지막에 생각을 해보는 거예요. '그러면 이거 나보다도 더 큰 자본으로 더 멋게 만들 사람이 있나?'라고 보고, '아, 근데 없는 것 같다. 이거는 솔직히 나 아니면 안 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면 이제 그때 비로소 결심을 하고 시작을 하게 되는 거죠.
이종범
=내가 살면서 어떤 경험을 했을 때 '나만 당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만드신 게 '검은방', '회색도시'... 힘내십시오. 최지원 디렉터님은 어떠신가요?
최지원
=저는 그냥 생각을 많이 할수록 아이디어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특정 경우에는 '메모를 많이 해라' 하는데, 저는 좀 특별하고 진짜 좋은 아이디어는 언젠가 다시 한번 생각나게 돼 있고, 되게 불현듯이 잠깐 스쳐 지나간 아이디어는 결국 나중에 보니까 좋지 않더라고요.
좋은 아이디어를 기록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그게 다시 돌아오거든요. 근데 그게 계속 생각나면은 굳이 메모하지 않아도 '이거는 개발의 어떤 중요한 요소이다'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각인이 되고, 그러면서 제가 가끔씩 옆에 계시는 병수님한테 "이거 어때요?"라고 하면...? 다음 병수님이 제 얘기를 이어가실 겁니다.
권병수
=아, 여기서 제가 할 말이 있는데, 지원님이 메모는 하지 않는다라고 하셨는데, 그거 다 저한테 오거든요. 인간 메모장처럼 저한테 다 던지시는데, 저도 다른 디렉터님들과 비슷하게 아이디어를 숙성하고 판단하고 싹 틔우고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거는 '거리두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맨 처음에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아니면 지원 디렉터님이 이렇게 툭 던지는 말을 들었을 때, 거기에 빠져가지고 계속 파고들면 딱 1인칭 시점으로 그것만 보게 됩니다. 쭉 가다가 막다른 길이 나오면 대부분 거기서 좌절을 하죠.
근데 저는 그런 아이디어들이 저한테 던져지거나 아니면 떠올랐을 때, 일단은 상자 속에 담아요. 담고 방치하고 딴 거를 하면서 의식적으로 '이게 완전히 머릿속에서 다 나갔다' 이렇게 생각을 했을 때, 그걸 다시 들여다보면 그때는 3인칭으로 보는 거예요.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거죠. 지원님이 한번 이렇게 던져주시는 아이디어가 '거짓말'에 관한 아이디어였는데, 그게 처음에는 영 아니었죠.
이종범
=아, '거짓말'이라는 그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처음 받았을 때는 아니라고 했어요?
권병수
="별로... 그거 이상한데요?"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죠. 어느 날 퇴근하고 집까지 운전해서 가는데 깜깜한 고속도로에서 혼자 운전을 하고 있는데 그게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예요. 떠오르고 나서 그 묵혀뒀던 아이디어들이 갑자기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었죠. "어, 이거 되겠는데? 어, 그러면 여기다가 이런 요소를 덧붙이면 괜찮아 보이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제3자적 시점으로 그걸 바라볼 수 있을 정도까지 거리를 한번 두는 게 좋다라고 생각합니다.

이종범
=지금 네 분의 말씀에 공통된 부분을 꼽자면, 좋은 이야기의 씨앗은 어디에서도 올 수 있지만 이걸 숙성시키는 과정을 각자 가지고 계신다는 느낌이에요.
최지원
=좀 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게, 이제 게임이란 게 물론 소수의 인원들로 만드는 것도 있고 또 여러 명이서 만드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또 제안을 많이 받기도 해요. 그러다 어떤 제안을 받게 되면 선입견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바쁜 상황 속에서 보면 그게 다른 색깔로 비춰질 때가 있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오해가 되게 많이 커질 수도 있는 걸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또 제안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보고 판단해서 "좋다", "안 좋다"라고 얘기하기보다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부분에서도 오히려 팀워크에도 되게 많이 도움이 됩니다.
권병수
=이게 개발 문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아이디어는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고, 그 아이디어가 좋은지 나쁜지는 그 자리에서 판단할 수 없어요. 자리에서 저울질해 가지고 판단하는 건 굉장히 리스크가 있는 행동이죠. 그래서 제가 회의 시간에 제일 많이 하는 행동은 "생각해 볼게요"에요.
진승호
=이 얘기 듣다 보니까 생각나는 건데, 저도 많이 듣고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너무 즉답하지 마라", "한 3초만 생각하는 척이라도 하고 말을 해달라"라는 얘기를 저도 많이 듣고 저도 이제 사람들한테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근데 그건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이제 저랑 오래 일한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제가 "생각 좀 해볼게요"라고 말하면 "저건 별로라는 거구나" 바로 이래버리더라구요.
이상균
=숙성하다가 버려진 것들에 대한 얘기가 갑자기 떠올라서 덧붙이면, 저는 이야기 설계가 완성되는 순간은 일종의 논리 퍼즐을 맞추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를테면 "A와 B가 사랑하는 사이인데, 알고 보니까 A가 B의 아버지를 옛날에 죽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B는 A를 용서해야 돼." 이런 것을 '이게 어떤 플롯을 쌓으면 이게 해결이 될까?'로 보면 이게 이제 퍼즐처럼 보이죠. 저는 이제 '큐브를 맞춘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근데 이런 과정에서 버려졌던 조각이 갑자기 자리를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타 매체와 비교한 게임 내러티브의 특성
이종범
=네 분 다 게임이라는 그릇의 이야기를 담을 때는 영화, 소설, 만화, 드라마 등등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라고 느끼실 것 같거든요. 타 매체에 비해 게임이 가진 내러티브적 특성, 이거는 이상균 디렉터님께 한번 여쭤보고 싶네요.
이상균
=저는 게임 만들기 전에는 소설가였고, 그래서 이제 이 질문에 대해서 많은 걸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가장 큰 다른 점은, 소설이나 영화 같은 매체들은 단선적 혹은 직선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연속적으로, 선형적으로 경험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데, 게임은 그렇지가 않아요.
게임은 플레이어의 경험 일반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앞에 문이 있는데 그 문 매트 밑에 열쇠를 숨겨 놓고 플레이어가 그걸 발견해 주길 바라는 경우, 어떤 플레이어는 죽어도 그 매트를 봐주지 않거든요. 이런 점에서는 플레이어의 경험 자체는 비선형적인데, 선형적인 스토리를 경험시켜야 한다는 그런 되게 어려운 점이 있어요.

반면, 다른 어떠한 매체도 가지지 못한 장점을 게임은 가졌습니다. 대표적인 게 관점, 시점에 대한 거죠. 예를 들어 '세븐'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의 연쇄 살인마가... 브래드 피트의 아내의 머리를 잘라서 소포로 보냈는데, 범인은 죽여보라고 도발을 하는 상황에서 브래드 피트는 고민을 하죠.
형사로서는 이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데, 아내의 남편으로서는 이 사람을 죽이고 싶어하는 상황이죠. 이때 정말 고통받는 표정을 짓는데, 관객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 '연민'을 느낍니다. 브래드 피트가 불쌍한 거죠. 이게 3인칭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거든요.
똑같은 상황이 '헤비 레인'이라고 하는 게임에 있습니다. 내 아들은 납치가 됐고, 범인은 이유 없이 어떤 내가 모르는 사람을 쏴 죽이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내가 트리거를 당기면 그 남자는 죽습니다. 물론 당기지 않는다는 선택도 있죠. 근데 만약에 당겼다면, 그때 플레이어가 느끼는 감정은 연민이 아니라 '죄책감'입니다. 이게 게임만 할 수 있는 장점인 겁니다. 관객을 계속 관객으로 놓아두지 않는다는 점이죠.
이종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걸 볼 사람들을 몰입시키고 싶어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지금 방금 말씀하셨던 그 특성 때문에 게임이 몰입시키게 만드는 도구로서는 거의 끝까지 가 있는 도구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진승호
='헤비 레인' 같은 경우에 QTE (퀵타임 이벤트), 그러니까 스틱을 조작한다든지 버튼을 누르는 행위들의 어떤 동작들을 연결해서 플레이어에게 수행을 시키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처음에 시작하면 굉장히 일상적인 행동부터 시작을 하거든요. 샤워기 핸들을 돌린다든지, 아니면 토스터를 킨다던가 하죠.
그거를 처음에 하면은 '왜 이런 사소한 것까지 이거를 시킬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제 진행을 하다 보면 아까 말씀하신 것 같은 굉장히 드라마틱한 상황이 나오고 거기에서 이제 트리거 조작을 하게 됩니다. 이미 플레이어는 굉장히 사소한 동작들부터 이 나의 조작이 어떤 식으로 이 행위에 반영되는지를 이미 다 경험을 했죠. 그렇기 때문에 그 트리거를 당기는 행위가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냥 FPS에서 그냥 당겨서 헤드샷 날리듯이 한 번 날리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 거죠.
나아가 제가 한 것도 얘기를 해보자면 '회차 플레이' 구상을 했던 적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이 게임을 하는데 첫 번째는 무조건 다 죽어버리는 어떤 전개를 하 겁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모든 등장인물이 싹 죽어버리는 거면 사실은 좀 화가 나죠.
"여러분이 이렇게 손 놓고 계시면 이들이 이렇게 됩니다"라는 걸 먼저 보여주는, 일종의 약간 선제적으로 대답을 먼저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가장 최악의 상황을 보여준 다음에, "이제 다시 이야기를 되돌렸습니다. 이제 이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보세요"라는 식으로 했죠. 그러면 이게 다릅니다. 그냥 일상적인 대사도 플레이어는 전 회차에서 이게 이 사람의 마지막 말인 거를 알게 되는 상황입니다.
성우분하고 이제 더빙을 할 때도 그냥 일상적으로 하셨어요. 그래서 녹음을 마치고 제가 "네, 이게 이분의 마지막 대사입니다" 그랬더니, 다시 한 번만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마지막 대사인 거를 알려주셨으면 조금만 더 여운을 넣어서 가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안 됩니다"하고 거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거는 이 캐릭터가 이 사실을 몰라야 되기 때문에요. 지금 이제 모른 상태에서 하신 게 맞는거죠. 예를 들면 그런 식의 내러티브적인 구성을 넣었던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최지원
=게임이 다른 매체와 다른 것 중 '플레이 시나리오'라는 게 있어요. 그래서 게임에서 제공한 내러티브 외에, 내가 플레이하는 로그라고 하죠? 하는 행동들은 어떤 발자취가 또 어떻게 시나리오가 될 수 있죠. 그런 부분에서 플레이 시나리오와 게임의 내러티브가 조화를 이루게 고려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례로 'P의 거짓' 같은 경우에는 노트라고 하죠. 이야기가 담긴 이런 쪽지를 얻을 때 전투가 없습니다. 전투를 하는 플레이 시나리오가 있는 가운데 그런 내러티브가 들어왔을 경우에 되게 몰입이 떨어져요. 내러티브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가가 게임이 또 다른 부분에 고민해야 될 또 하나의 과제이긴 하거든요.
그래서 게임에서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리듬감을 가지면서 내러티브가 적절한 시기에 들어오는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 한 가지, 노트를 얻었는데 그 옆에 만약에 엄청 좋은 성장 보상이 있다고 생각해 보면 그 노트는 폄하되거든요. 그래서 넣지 않았어요. 또, 최근에 소울라이크 장르의 게임을 보면은 인기가 많죠. 왜냐하면은 플레이 시나리오가 재미있거든요. 당황하면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고, 다양하게 골탕 먹는 여정을 겪는 영상들이 많이 올라오죠.
권병수
=게임이 영화랑 소설이랑 뭐가 다르냐라고 얘기를 했을 때, 영화나 소설 이런 류들은 '자기 완결성'을 가져요. 작품이 완성됨으로써 그 이야기와 그 내러티브는 고정이 되는 거예요.
근데 게임은 플레이를 하면서 플레이 경험이 더해집니다. 이게 어떻게 되는 거냐면, 스토리텔링이라는 X-Y 평면 위에 Z축이라는 플레이 경험이 들어가는 거예요. 게임 시나리오도 다 쓰고 성우 녹음하고 이벤트 컷씬 만들고 가면 고정된 거예요. 근데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그 플레이하는 유저의 경험은 다르죠. 즉, 그 플레이하는 사람마다 그 경험에 의해서, 반응에 의해서 다른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예를들어 어떤 인물이 계속 나한테 도움을 줬는데 나중에 그 인물을 찾아봤더니 인물은 없고, 앉았던 자리에 아이템이나 편지가 있다. 그러면 내가 이 인물과 계속 감정 교류를 하고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유대나 공감이 달라집니다. 게임에서 내가 다른 캐릭터들과 같이 어떤 전투를 함께 했다면 그들은 내 동료고 나랑 같이 싸운 사람이에요. 그러면 이 동료가 하는 얘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거죠.
이종범
=이거는 사실은 이상균 디렉터님이 저한테 해주셨던 말씀이 떠오르게 되는 얘기이긴 하거든요. 여관에 있었던 그 스토리 한번 또 얘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상균
='마비노기 영웅전' 시즌 1에 대한 얘기인데, 이 이야기는 초창기 게임 디자인을 담당했었던 이상균 개인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해주시면 좋겠고요. 이건 현재 넥슨의 입장이나 마영전 개발팀의 입장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마영전을 한참 디자인하던 시절이 2007년, 2008년이고 그때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불타는 성전과 리치 왕의 분노가 나왔던 시절이에요. MMORPG의 최전성기인데, 이 시절에 제가 가졌던 의문은 '퍼시스턴트한 월드(Persistent World, 지속적인 세계)'에 대한 의문이었어요.
어떤 남자가 집 앞에서 자기 아내가 죽을 병에 걸렸는데 뒷산의 '은방울꽃'을 다려다 먹이면 살릴 수가 있는데, 거기를 코볼트들이 지금 점령하고 있는 거죠. 뒷산에 가서 코볼트들을 죽이고 은방울꽃을 채집하다 주면 그걸 달여 먹고 아내가 살아납니다. 그럼 아내하고 남편이 같이 저한테 고맙다고 막 인사를 하는데, 30초쯤 지나가면 남자는 다시 울고 있고, 아내는 다시 침대에 가서 누워요. 다른 사람도 퀘스트를 해야 되니까.
저는 이게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걸 얘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했던 설계가 있었죠. 그때 당시에 마영전을 시작하면 무조건 그 여관에서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티이'라고 하는 여자 주인공이 나를 맞아줘요. 심지어 일상적인 대사 몇개만 있어요. 일부러 그렇게 했어요. 이유는, 일부러 대사를 많지 않게 한 이유는 지루함을 유발하고 싶었어요.
조금만 지나가면 이제 플레이어들은 맨날 만나는 지겨운 주인공과 맨날 만나는 지겨운 여관, 그리고 맨날 듣던 지겨운 배경음악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떠나기' 버튼을 재빨리 누르고 밖으로 나가거든요. 굳이 어디에서나 로그아웃해도, 무조건 여관에서 로그인하도록 저는 디자인도 됐죠.
그런 다음에 스토리가 지나가다 보면 티이가 '모리안'이라는 여신이 되어야 하는 운명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카단과 함께 열심히 막아보려 하지만 결국 티이가 모리안이 되어서 떠나게 되죠. 그때 티이가 떠나기 직전에 뭐라고 말을 하냐면 "잊지 않을게요"하고 떠납니다.

그건 사실 말이 안돼요. 모리안이 되면 티이의 인격은 소멸하거든요. 되게 모순적인 스토리죠. 반드시 잊을 수밖에 없는데 "잊지 않겠다"고 말하고 티이가 떠납니다. 그리고 그 스토리를 마무리하고 다음날 플레이어가 로그인하면 여관에 배경음악이 사라집니다. 맨날 듣던 그 지겨운 배경음악이 없고, 맨날 봤던 그 지겨운 티이가 없어요. 그냥 '떠나기' 버튼만 딱 하나 있습니다. 이게 제가 의도했던, 퍼시스턴트한 월드의 '영원한 상실'을 시도를 해봤었던 것입니다.
저는 사실 실패했다고 생각을 해요. 이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그냥 게임을 접었어요(웃음). 티이가 없어지면서 그 포인트에서 사람들이 게임을 접으시더라구요. 그래서 개발팀이 그 이후로 여러 가지 노력을 했습니다.
앞서 말했던 Z축에 대응하는 플레이 플랜도 우리가 그때 당시 개발팀이 준비를 했었죠. 티이가 사라졌다는 걸 확인을 한 날, 홈페이지에서 그 마을 배경음악을 배포를 했어요. 그리고 그 노래 제목이 '잊지 않을게요'입니다. 그러니까 게임의 바깥에서 플레이어를 울리는 경험을 시도를 해봤었죠.
이종범
=음악 얘기하셨으니까 그렇게 게임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손에 들고 있는 도구라는게, 제가 게임을 부러워할 때가 뭐냐면 이런 종류의 다른 도구를 쓰는 걸 볼 때 되게 질투가 나거든요. 예를 들면 'P의 거짓'을 할 때, 음반이요. 그냥 '아 또 이렇게 수집 요소 넣어 놓으셨네' 그리고 투덜거렸는데, 그 음반 안에 있는 어떤 음악이 저를 강하게 감동시켰던 스토리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도 비슷한 의도 아닌가요?
최지원
=맞습니다. 게임 또 한 가지 장점이 뭐냐면 비언어적 표현을 하는 데 되게 유리한 매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P의 거짓' 같은 경우에는 전투가 계속 펼쳐지는 액션 장르예요. 그런 가운데 액션을 멈추게 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줘!'를 하면 문제가 됩니다.
액션을 하고 싶은 유저는 매력을 못 느끼고 다른 것을 못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저희들이 선택한 방법은, 액션을 안 하는 타이밍에 우리가 최대한 어떤 행동은 계속 유지하게 하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을 한번 고민했죠. 그래서 해서 나왔던 게 음반이었습니다. 또 저희들이 DJMAX 음악을 같이 했는데, DJMAX 음악이 멜로디의 접근성이 되게 좋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P의 거짓'과 접목하기에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작한 타이틀에서 전달하고 싶었던 핵심 경험
이종범
=이렇게 얘기를 쭉 들어보니까 각자 자신이 제작했던 타이틀에서 전달해 주고 싶었던 체험이나 주제 같은 게 있었을 것 같아요. 각자 작업했던 타이틀에서 '내가 이런 경험을 주고 싶었다' 직접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권병수 디렉터님부터 한번 들어볼까요?
권병수
=일단 저 같은 경우는 'P의 거짓'을 만들면서 원전은 여기 계시는 분들도 그렇지만 대부분 다 아는 얘기예요.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하면 코가 늘어지고 착한 일을 하면은 나중에 인간이 된다. 저희는 거기서 출발을 했고, 그때 이제 지원 디렉터님이 '거짓말' 시스템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주셨죠.
그 지점이 터닝 포인트가 어디였냐면은,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을 한다'는 심리적으로 '타자화'가 가능해야 됩니다. 나와 상대방이 다른 존재고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라는 걸 알아야 되거든요. 어린애들이 거짓말을 못한 이유가, 다 똑같이 생각한다라고 생각해서 타자화를 못합니다.
그러면 '인형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라는 거는 무슨 뜻일까요? 기계적인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인형이 거짓말할 수 있다는 건, 나라는 인형이라는 존재랑 타인이라는 존재를 구별할 줄 알아야 되는 이 지점부터 거짓말이 성립을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아, 이게 우리 게임에서 인형이 인간이 되는 과정에서 거짓말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동할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들게 된 거죠.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선의의 거짓말'이 있잖아요?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라는 거는 대부분 상대의 감정을 고려를 하고 '진실을 말하는 게 반드시 옳지 않다'라는 걸 고민하게 그래서 저희는 이 거짓말들이, 플레이어분들이 두 개의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뭘 선택하게 해야 될까? 어떤 선택을 하고 싶어 할까? 하는 질문을 많이 고민하고 내부적으로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최지원
=그 '거짓말'이라는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되게 많이 고려했던 것 중 하나가 퀘스트입니다. 보통 퀘스트를 하고 정답을 맞추면 보상을 얻잖아요? 저희들은 오히려 과감하게 이 거짓말이라는 주제를 더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정답이 없다는 걸 알려줬죠. 그래서 보상이 웬만하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걸 선택하든 그것은 플레이어의 선택이고 의지다. 그것이 인간이고, 선택의 의지가 있는 부분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란 점을 좀 더 강조를 하자고 생각했죠.

진승호
=저도 바로 직전 프로젝트를 예시로 들어서 말씀을 드리자면 '베리드 스타즈'라는 타이틀을 작업을 했을 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정확히는 '커뮤니케이션이 되게 어렵다'고 이야기 하고 싶었죠. 커뮤니케이션이 힘든데, '그래도 해야 된다'라는 이야기가 저는 하고 싶었거든요.
그거를 이제 관철하려면 뭘 했어야 되냐면, 커뮤니케이션을 실제로 되게 힘들게 만들어야 된다는 그런 생각이 저에게 뿌리 박혀 있었어요. 쾌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커뮤니케이션은 힘드니까, 여러분도 힘드셔야 됩니다는 거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제작을 했어요.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이런 거였어요.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여러 사람한테 다 말을 걸어야만 되는 거를 고의적으로 만들었어요. 왜냐하면 실제로 커뮤니케이션이 그렇잖아요. 같은 이야기 또 하고 반복하고 힘들잖아요.
또, 간접적으로는 SNS에서 사이버불링을 당하고 있는 주인공의 상태가 있기 때문에, 타임라인을 선별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다 만들었죠. 게임이 콘솔이니까 커서를 옮겨가면서, 그렇게 하나하나 모든 글을 읽으면서 내려가게 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내가 커서를 옮기면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거예요.
이상균
=너무 옛날 소설이긴 하지만 '하얀 로냐프 강' 이야기를 좀 해보죠. '하얀 로냐프 강'은 이제 기사들의 이야기고 마지막에 이제 새드 엔딩으로 끝나요. 주인공이 자기가 이룩하려던 이상을 잃고, 국가가 이미 항복한 상태죠. 어차피 평화조약 혹은 항복이 성립을 하면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주인공이 단기필마로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이런 장면으로 이 이야기를 끝내게 된 계기는, 제가 어렸을 때 '에어리어 88'이라고 하는 오래된 고전 애니메이션이 있어요. 이 이야기도 거의 비슷하게 끝납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발을 막 쿵쿵 거리게 걷고 막 베개를 얼굴에 껴안고 고함을 지르고 그랬어요. 왜 이 엔딩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왜 이게 슬픈 장면인데 말이죠. 가만히 나중에 시간이 지난 다음에 나를 관찰해 봤더니 분노, 안타까움, 억울함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거예요.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어떤 다른 작품을 지금까지 본 적이 거의 없었죠. 그런 상태에서 갑자기 그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예요.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 본 작품을 내가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런 감정을 일으키는 작품을 써보자라고 하는 아이디어가 만들어진 겁니다. 그게 이제 '하얀 로냐프 강'의 주제였어요.
네오위즈 라운드8 스튜디오가 내러티브를 강조하는 배경은?
이종범
=최근에 네오위즈가 게임에서의 내러티브를 되게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제가 받았습니다. 갑자기 이렇게 내러티브를 강조하게 되는 어떤 배경이나 그런 게 좀 있을까요?
최지원
=일단 저희 팀너프 경우에는 좋은 내러티브를 가지게 되면 개발에 있어서도 어떤 창의력을 발휘합니다. '창발'이라고 하죠? 그런 부분을 얻어가는 데 되게 유리합니다. 그리고 "왜 이걸 만들어야 돼요?", "이거 왜 이렇게 힘을 들여야 돼요?"라는 질문이 개발에 정말 많이 나오죠? 내러티브가 제대로 구축이 돼서 이 과정을 한번 이해하게 되면 '왜'가 확 줄어요.
그리고 또 오히려 더 응용을 해서 더 좋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져오시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면 게임이 점점 풍부해지는데, 그러한 것들이 모이다 보면은 팀이나 스튜디오 자체의 어떤 조직력이나 아니면 그 자체의 색깔이 될 수가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빠르게 어떤 내러티브를 일찍 구축할수록 좋습니다. 먼저 설계되어 있는 뼈대라고 하는 이런 부분은 이렇게 구축됐으니까, 살을 붙이는 건 좀 나중에 하더라도 뼈대를 잘 구축하게 되면 개발하시면 많이 도움이 될 겁니다.
진승호
=확실히 그런 부분에 좀 공감을 하게 되고요. 어쨌든 확실히 좀 한 점으로 모인다고 하는 그런 부분이 좀 있습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일이 잘 안 일어납니다. 어쨌든 지금 우리가 구현하고자 하는 목표점이 어느 정도 명확하게 있으니까요. 어느 정도 목표점이 확실하면 아무래도 왔다 갔다 할 일이 적어지죠.
한편으로는 그런 단점 같은 것도 있어요. 사람들이 항상 내러티브나 아니면 스토리 같은 거를 항상 해왔던 사람에게는 항상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맨날 이제 물어봅니다. "이거 왜 이렇게 하시는 거예요?"하는 질문이요. 가끔은 그걸 마치 있었던 것 처럼 자연스럽게 대답해드릴 수도 있지만, 가끔은 제발 좀 봐주세요 하기도 하게 됩니다.
권병수
=비슷한 얘기인데, 개발 문화가 달라지는 게 일단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초반에 핵심이 되는 이야기, 핵심이 되는 가치를 굉장히 빠르게 공유를 해요.
이것 중에 장점 중에 하나는 검증이 된다고 할까요? 처음에는 괜찮은 아이디어일 것 같아서 했는데, 굉장히 여러 분들이 똑같은 걸 물으러 오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은 적신호죠. 개발팀 내부에서도 이해를 못하는데 플레이어들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할 수가 없죠. 이러면 이제 전략을 수정해야 됩니다.
반대로 구성원들이 되게 적극적으로 참여를 원하게 돼요. "아, 나 이거 마음에 들었는데 이렇게 하면 안 되냐?" 하는 식으로 적극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개발 문화를 만들수 있죠. 그러면 조직에서 소위 말하는 정치질 같은 거 없이 게임 하나만 바라볼 수 있는 문화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게 굉장히 중요한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종범
=추가로 라운드8이 유저 입장에서 보자면 트리플A 타이틀로 승부를 보는 조직체는 아니라고 느꼈던 것 같은데, 내러티브를 전달하기 위해서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이상균
=라운드8 스튜디오는 중규모 정도? AA 정도 사이즈로 날카로운 게임의 어떤 부분을 갈아서 승부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는 그런 스튜디오입니다. 흔히 생각하면 이제 게임의 내러티브라고 그러면 거대한 컷신이잖아요. 뭐가 무너진다든지 부서진다든지 폭발하고 이런 것들인데, 그런 쪽은 가격이 굉장히 비싸기 때문에 라운드8이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아니었죠.
'P의 거짓'에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거 입사하기도 전에 막 보고 막 펑펑 울었던 장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안토니아라고 하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아름다웠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화석병에 걸려 죽어가는 여인이죠. 휠체어에 앉아서 별 스토리도 없고, 과거에 아름다웠던 자신을 보면서 회한같은게 느껴지는 캐릭터죠. 그런데 이야기가 쭉 진행하다 보면 안토니아가 갑자기 죽어요.
만약에 우리 라운드8이 AAA를 만들어 내는 거대한 스튜디오였다면, 안토니아가 이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인간의 존엄을 잃고 고통스럽게 고함을 지르고 바닥을 뒹굴면서 천천히 죽어가는 컷신을 보며 플레이어에게 고통을 느끼게 했겠죠.
근데 라운드8은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까, 그런 컷신이 없습니다. 컷신이 없고 그냥 가 보면 안토니아가 없어요. 그리고 주변 NPC들한테 물어보면 안토니아가 죽었다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내가 안토니아를 애도할, 안토니아의 죽음을 슬퍼할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뭐야, 나는 이걸 보고 슬퍼할 수가 없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에 음반을 받습니다. 그렇죠. 그리고 그게 이제 'Memory of Beach'라는 노래인데, 그걸 딱 틀어놓는 순간에 어떤 느낌이 드냐면, 그 순간에 슬픔을 허락받는 느낌인 겁니다. 그 상황에서 제가 한 새벽 한 두시였던 것 같은데 펑펑 울었던 게 기억에 남네요.
최지원
=대표님과 식사를 나눌 때 하셨던 말씀이 있어요. "고민이 많을 때, 제약이 있을 때 창의력이 발휘된다"고요. 저희도 마찬가지로 저희들이 안토니아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되게 많았어요. 하다 보니 오히려 여러 방식들을 고민했고, 어떻게 보면 창의성이 된다고 하거든요.
상황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 플레이어분들은 그 게임의 규모를 이미 다 알아요. 오히려 반대로 말씀하셨던 안토니아의 죽음 씬에서 AAA 급 컷신 연출이 나왔다고 하면 "갑자기 얘 왜 이렇게 힘주지?하고 어색했을 것 같습니다. 불편, 아쉽다고 하기보다는 반대로 생각해서 그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좋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승호
=그리고 이게 재밌는 지점도 있어요. 저희가 어떤 로직을 설계를 하잖아요? 이게 눈앞에서 바로 보여주지는 않는데, 약간 옆구리를 찌른다든지 아니면 뒤로 돌아서 무릎으로 치는 듯한 느낌? 그런 식으로 쳐주는 이런 재미가 있거든요. 이 캐릭터가 있다/없다, 내지는 여기에 음반/아이템이 있다/없다 같은 식으로 로직을 짜서 그걸로 플래그를 제어하는 거죠. 그걸 바탕으로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지만 플레이어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부분이, 어떻게 보면은 되게 챌린지가 있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안에서 이거를 해냈을 때 만드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즐거움도 있어요. 이거 근데 아무도 안 보고 넘어가면 어떡하나 했는데, 해보면 누군가 실제로 이거를 보고 아는 거에요. 그 다음에 '야, 이거를 알았어'하면, 그럼 이제 그때 느껴지는 그런 즐거움이 분명히 있는 거죠.
원작이 있는 내러티브를 개발할 때의 특징
이종범
=그러면 오리지널이 아니라, 원작에 있는 캐릭터 내러티브라고 할까요? 그런 것들을 개발할 때만 겪게 되는 특별한 경험 혹은 제약, 혹은 장점 같은 게 좀 있을까요?
권병수
=일단 원작이 있는 부분이라는 게 굉장히 제작에 있어서는 양날의 검입니다. 일단 장점으로는, 원작이 있고 그 원작이 유명하면 유명할수록 우리가 설명해야 되는 코스트가 줄어들어요.누구나 보고 '왜 있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거든요.
단점은 이걸 그대로 만들면 안 된다라는 거죠. 우리만의 식으로 해석을 하고 우리만의 식으로 재구성을 해야 되는데, 이때 깊은 고민과 고난의 길을 걷게 됩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까하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 이 이야기의 본질에서 더 이상 덜어낼 수 없는 핵심적인 가치는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하고요. 피노키오가 인간이 되는 여정을 쭉 나열을 했을 때, 불필요한 부분들과 우리 식으로 해석이 가능한 부분들이 뭐가 있을까를 잘 잡아야 합니다.
나아가 그런 부분들이 또 의외성을 가져야 해요. 플레이어분들이나 원작을 아는 사람들이 미리 예측할 수 없을 만한, 그걸 뛰어넘는 뭔가의 아이디어를 내야 돼요. 그래야지 사람들이 감탄을 하니까요. 이 부분을 가늠하고 판단하는 과정, 이게 제일 힘든 것 같습니다.
최지원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저희가 개발을 하다가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가 공개가 됐어요.
이종범
=그게 개발 언제쯤이었어요?
최지원
=한창 개발 피크 때였습니다. 그래서 스튜디오가 발칵 뒤집혔죠. 아이고, 어떡하지하고요. 예를 들어서 아들 이름이 '카를로'기도 하고요. 저희들은 '아, 이거를 히든카드로 생각하고 강력한 무기로 하자'고 했는데 '먼저 노출되면 어떡하지?'하기도 했죠. 저희가 이야기를 소신껏 잘하기도 했는데, 이런 부분도 어려운 거 같습니다.
이종범
=누가 먼저 먹어버리면 안 되는 '한입'이 존재하는거네요.
내러티브에 대한 조언, 그리고 제작 철학
이종범
=여기 앉아 계신 동료분도 계시고, 업계 후배분들도 계시고, 지망생도 있을 텐데, 내러티브가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하는 많은 분들께 조언 내지는 제안, 모든 좋습니다. 한마디 해주고 싶은게 있을까요? 나아가 철학도 여쭤보려고 합니다.
이상균
=저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그러니까 자신의 지식의 지평이 상상력의 지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더 먼 지평까지 가서 이야기를 가져오고 싶으면 많은 것, 많은 매체를 접했으면 좋겠어요. 책, 영화나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는 매체들을 접하면서 자신의 지평을 넓혀가시기를 바랍니다.
진승호
=저도 이제 들은 얘긴데, 아마 박찬욱 감독이 이런 얘기를 했나 봐요. '가능한 한 이 일을 하는 걸 말리고 싶지만, 어쨌든 여기 와 있다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상태'라고요. 기본적으로 이제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말씀드리자면, 해볼 만한 일이고요. 쉽지 않은 일인데,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경험이나 사람이 되게 중요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그래서 그것들을 좀 주의 깊게 관찰해 보셨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최지원
=게임은 이야기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가 존재를 해요. 그래서 플레이와 이야기가 적절하게 조화되고 시너지를 이루는 거 되게 중요하죠. 플레이하는 가운데 이야기의 어떤 리듬이 어떻게 잘 살아나는지를 판단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려면 개발자는 게이머가 돼야 됩니다. 그래서 각자 게이머인 입장에서 여러 가지 게임을 접해봐야해요. 그렇게 생긴 경험을 통해 '내가 만들고 있는 게임의 이야기가 잘 전달이 되는가?'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공부도 하고 판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병수
=한마디로 딱 얘기를 하면은, '완성을 시켜봐라'라고 하고 싶습니다. 일단 이야기가 됐던 게임이 됐던 뭐가 됐건 하나를 완결을 지어 봤을 때 얻어지는 경험의 폭이라는 게, 이것 시도해 보다가 저것 시도해 보다 해서 얻게 되는 경험이랑 비교가 안 돼요. 그냥 근본적으로 뭔가를 하나를 시작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 보고 완결을 시켜 버리는 거죠. 그 완성품을 보게 됐을 때 되게 많은 걸 배우게 될 거예요.
이종범
=내가 이야기와 게임을 만들면서 갖고 있는 철학이 있다면 여기서 말씀해 주세요.
권병수
='몰입'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몰입할 수 있는 어떤 세계,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 몰입할 수 있는 경험 등등. 왜냐하면은 게임을 하게 되면은 20시간 플레이든 40시간 플레이든 그 시간 동안 플레이어의 시간을 쓰게 되는 거잖아요? 그랬을 때 그 시간 동안 어떤 한 사람의 인간, 한 사람의 플레이어를 붙잡아 줄 수 있는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최지원
=저는 게임을 하는 동안 사소한 행위에서도 '내가 이것을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와 같은, '목적과 명분'이 계속 주어져야지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승호
=게임 플레이를 통해서, 조작이라든지 아니면 버튼 입력 같은 거를 아마 의미하겠죠? 그런 걸 통해서 '잊을 수 없는 한 번의 조작'을 만들어내는 것이, 제가 계속해서 생각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상균
=저는 지금까지 늘 약간 특별한 도전들을 많이 해왔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여자 주인공이 영원히 사라져 보이는 그런 게임도 만들어 봤고, 최근까지는 VR 게임을 만들어 봤었고요. 누군가는 이 시대의 최고의 게임에 도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음 세대의 게임'에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저는 '문학적인 게임'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네, 그래서 지금까지 사람들이 느끼지 않았던, 전달되지 않았던 방법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임을 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