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된 국제 컨퍼런스 'G-CON' 첫날에는 아틀러스의 하시노 카츠라 프로듀서와 소에지마 시게노리 아트 디렉터가 참석해 페르소나 시리즈와 메타포: 리판타지오의 창작 철학을 공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번 강연에서 두 개발자는 '체험이 경험으로 변하는 순간'이라는 주제로, 지난 20여 년간 아틀러스가 만들어온 작품들의 내러티브와 아트 디자인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시노 프로듀서는 강연의 서두에서 체험과 경험의 차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체험은 게임을 하는 동안만 재미있고, 게임이 끝나면 잊어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반면 경험은 게임을 끝낸 후에도 마음에 무언가 남아있고, 문득 그것을 떠올리는, 기억에 남는 것이다" 그는 아틀러스가 만들어온 게임 타이틀들이 단순한 체험에 그치지 않고, 경험으로서 플레이어의 기억에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해왔다고 밝혔다.

페르소나3 - 죽음과 재생
2006년 발매된 페르소나 3는 '죽음과 재생'을 내러티브 테마로 삼았다. 하시노 프로듀서는 "죽음이라고 하면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가 있을 수 있지만, 페르소나의 모티프인 타로카드에서 죽음의 카드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죽음의 카드가 단순히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연애에서 누군가와 헤어져야만 하는 상황, 하지만 그것은 다음 만남의 시작이기도 하다. 단순히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페르소나 3는 이러한 사상을 담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작품에 담았다.

소에지마 아트 디렉터는 페르소나 3의 첫 번째 아트워크를 공개하며 당시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트의 역할은 실제 플레이했을 때 느껴지는 철학적인 요소를 소개하는 것이다. 첫인상으로 흥미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주인공 디자인의 변화 과정도 설명했다. "처음에는 소년만화의 주인공처럼 영원한 소년, 열혈 소년의 이미지로 그렸다. 하지만 스토리에서 '시간은 유한하다'는 메시지가 명확해지면서 주인공도 변화했다. 앞머리를 무겁게 내려 내성적인 분위기를 주고, 헤드폰으로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모습으로 작품을 표현할 수 있는 주인공을 목표로 했다."
페르소나 3의 패키지 아트는 죽음과 재생이라는 테마를 파란색 톤을 기조로 직선적으로 표현했다. 소에지마 디렉터는 "페르소나에는 학원 생활이나 밝은 면도 있지만, 페르소나 3의 패키지는 작품의 가장 진중한 부분을 의미 있게 담으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페르소나4 - 진실을 찾아서
2008년 발매된 페르소나 4는 시골 마을을 무대로 '진실'을 내러티브 테마로 삼았다. 하시노 프로듀서는 "페르소나 3에서 죽음과 재생을 다룬 후, 젊은 세대가 언젠가는 끝을 맞이한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 다음 과제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재생한 자신이 어떤 정보가 옳고 그른지, 무엇이 의심스러운 이야기인지,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소에지마 디렉터는 페르소나 4의 주인공 디자인 과정을 공유했다. "처음에는 시골이 무대라는 정보만으로 교복에 긴 머리로 시작했는데, 칼라 때문에 우등생 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다. 이야기를 다듬어가면서 더 성실하고, 스토리에서 제시되는 것들을 풀어나가는 전향적이고 힘찬 캐릭터로 만들어갔다."

패키지 디자인에서는 페르소나 4의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담으려 했다. "페르소나 4는 살인 사건을 쫓는 긴박하고 시리어스한 면과, 동료들과의 따뜻한 우정을 모두 담고 있다. 중앙의 주인공의 날카로운 표정과 캐릭터들의 웃는 모습을 함께 배치해 이 양면성을 표현했다."
하시노 프로듀서는 페르소나 4부터 특별한 반응을 받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게임 클리어가 가까워지면 '아직 클리어하고 싶지 않다', '아직 이 세계에 있고 싶다'는 목소리를 많이 받게 됐다. 이것이 바로 체험이 경험으로 변화한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캐서린 - 어른의 딜레마
페르소나 3, 4를 만든 후 팀은 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 캐서린을 제작했다. '어른들의 청춘물'이라는 콘셉트로 기획된 이 작품은 '유혹'과 '타락'을 테마로 삼았다. 하시노 프로듀서는 "페르소나 유저들은 실제로는 고등학생이 주인공이지만, 많은 플레이어는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른들이었다. 그들을 위해 어른의 과제, 연애의 수라장을 테마로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소에지마 디렉터는 캐서린의 주인공 빈센트 디자인에 대해 "페르소나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히어로상과는 다르다. 외모도 평범한 어른이고, 오히려 쫓기는 입장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매력적으로 그려야 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인간이 비일상적인 일에 휘말려 여러 일을 겪는다는 스토리로, 플레이어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캐릭터를 목표로 했다"라고 말했다.

캐서린은 두 가지 버전의 패키지로 출시됐는데, 검은색 패키지에는 연인 캐서린, 흰색 패키지에는 유혹하는 또 다른 캐서린을 담았다. 이러한 시도는 기존 아틀러스 팬뿐 아니라 새로운 유저들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하시노 프로듀서는 "게임 속에서 인생관이나 연애관을 묻는 질문들을 던졌다. 예를 들어 '결혼은 시작인가 끝인가' 같은 질문에 선택하면 엔딩이 달라진다. 이런 요소들이 매우 기억에 남았다거나, 연인이나 가족 앞에서는 할 수 없는 본심이 나왔다는 흥미로운 감상을 많이 받았다"라고 회상했다.

페르소나5 - 희망을 말하는 이야기
페르소나 5는 '희망'을 키워드로 테마를 설정했다. 하시노 프로듀서는 "내용을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꽤나 옥죄어지고 자유가 없는 주인공들과 캐릭터들을 그리면서,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면 플레이어와 함께 이 세계에서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지를 테마로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소에지마 디렉터는 초기 스케치를 공개하며 "괴도라는 캐릭터를 처음 듣고 그대로 그렸다. 스피드감과 반역하는 이미지를 강하게 내세웠다. 훔친다는 행위가 단순한 악이 아니라 정의로 그리기 위해, 도전적인 눈빛의 캐릭터를 그렸다"라고 설명했다.

주인공 디자인은 일상과 괴도 모습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안경을 쓰고 교복을 입은 조용한 일상의 모습과, 이세계에서 대담하고 카리스마 있는 괴도복을 디자인했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가 변신해서 활약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대비를 주었다."
패키지는 페르소나 3의 블루와 대조적으로 빨강과 검정의 강한 대비로 정열적인 작품임을 표현했다.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힘찬 작품이라는 느낌을 담아 그렸다."
하시노 프로듀서는 페르소나 5의 성공에 대해 "이 작품으로 많은 분들이 페르소나 시리즈를 알게 됐다. 작품의 내러티브 테마를 진지하게 설정하고, 소에지마 씨 팀이 그것을 체험으로 어떻게 매력적으로 보여줄지 균형을 가장 잘 잡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평가했다.
메타포: 리판타지오 - 새로운 장르로의 도전
2024년 발매된 메타포: 리판타지오는 페르소나 시리즈를 벗어나 정통 판타지 장르로의 도전이었다. 하시노 프로듀서는 내러티브 테마에 대해 "이번 작품은 불안이라는 감정과 그것과는 반대로 영웅성을 다룬다. 정의는 이렇게 실현되어야 한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영웅성, 그리고 최종적으로 심판을 받는다는 구조다. 메타포는 판타지 세계의 왕 선거전에 입후보하는 게임으로, 그 심판을 받는 형태로 내러티브를 쌓아갔다"라고 설명했다.

소에지마 디렉터는 메타포의 아트 디자인 과정을 상세히 공개했다. "개발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정말 처음 시작할 때는 판타지를 만들자는 의기투합 정도였다. 페르소나 시리즈와 달리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아닌 곳을 그리려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기감, 어떤 분위기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인지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는 초기 스케치에서 최종 주인공까지의 변화를 설명하며 "처음에는 전통적인 영웅상, 빨간 망토를 걸친 모습으로 그렸다. 하지만 우리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현대의 감각으로 봐도 스타일리시하고 멋있다고 생각되는 코트를 입고, 가방을 든 일상적인 요소를 넣어 현실감 있는 디자인을 추구했다"라고 밝혔다.

메인 비주얼은 주인공을 중심에 두고 상징적인 모티프인 아카데미아의 청색과 노란색 분위기를 담았다. 패키지 아트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선거전을 승리하는 주인공을 표현했다. "단순히 캐릭터와 파티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주인공을 지지하는 사람들, 함께하는 동료들, 그리고 적대하는 존재까지 담아 이 게임에서 무엇을 즐길 수 있는지를 하나의 비주얼에 담았다."
하시노 프로듀서는 "메타포는 '체험을 경험으로'라는 오늘의 테마에 딱 맞는, 어떤 의미에서는 집대성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곳곳에서 특히 내러티브 만드는 방식을 중심으로 평가받아 매우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 타로카드가 밝혀낸 '거대한 흐름'
강연의 하이라이트는 페르소나 시리즈의 모티프인 타로카드를 통해 아틀러스 작품들의 숨겨진 내러티브 흐름을 밝힌 부분이었다. 하시노 프로듀서는 각 작품에 해당하는 타로카드를 제시했다. 그는 "개별 작품들의 이야기와 직접 관계는 없지만, 연속으로 만들어온 타이틀들을 되돌아보니 실제로 흐름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 페르소나 3: 죽음(Death)
■ 페르소나 4: 절제(Temperance)
■ 캐서린: 악마(Devil)와 탑(Tower)
■ 페르소나 5: 별(Star)
■ 메타포: 달(Moon), 태양(Sun), 심판(Judgement)
타로카드의 메이저 아르카나는 0번 '바보(The Fool)'부터 21번 '세계(The World)'까지 인간의 정신적 성장 과정을 상징한다. 하시노 프로듀서는 "바보는 무지한 존재가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앞으로 많은 것을 알아갈 순수한 카드다. 이것이 다양한 사회적 체험을 거쳐, 12번 '매달린 사람(The Hanged Man)'에서 꼼짝못하게 된다. 이는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로부터 여러 고정관념을 받아들이지만 자신의 세대에서는 그것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매달린 사람은 그 후, 13번 죽음과 재생을 맞이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목표로 하기 위해 절제의 지혜를 얻고, 악마와 유혹, 타락을 경험하며, 희망을 찾고 불안과 마주하고, 마지막으로 심판을 받아 자신만의 세계를 손에 넣는다.
그는 "우연히도 타로를 연구했던 덕분인지, 우리가 만든 작품들도 13번 페르소나 3에서 시작해 각각의 내러티브 설계가 작품 속에 순서대로 들어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나 의도했는지는 지금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지만, 돌이켜보니 이렇게 되어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소에지마 디렉터는 "타로를 흉내 내려고 작품을 만든 것은 아니다. 작품 단독의 스토리나 철학만의 이야기도 아니고, 많은 작품을 만들어오면서 여러 타이틀에 걸친 브랜드로서의 생존 방식, 아틀러스라는 스튜디오나 제작자 측도 의식하고 설정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예시로 "페르소나 3를 만들 때 경영진으로부터 '실패하면 아틀러스는 해산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물론 플레이어는 작품을 하면서 그런 걸 느끼지 못하지만, 확실히 만드는 우리에게는 내러티브가 존재하고, 그것이 작품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하시노 프로듀서는 "타로 이야기를 들으시고 놀라셨을지 모르지만, 전달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우연히도 우리는 페르소나 시리즈에서 타로 모티프를 사용했기에 이런 예시가 가능했지만, 하나하나의 내러티브 뒤에는 큰 내러티브의 흐름이 있고, 그것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된다. 직접적으로는 끌어당기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작품에 파워를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청중을 향해 "여기 계신 분들도 각자의 내러티브가 있을 것이다. 과거에 어떤 도전을 해왔고, 지금 어떤 것에 맞서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단계나 무엇을 실현하고 싶은지. 여러 회사, 여러 개인이 다양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어느 정도 자각적이 되고, 그것을 작품 속에 녹여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JRPG 3.0을 향하여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시노 프로듀서는 앞으로의 JRPG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메타포로 일단 구분점을 맞이했다고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단의 구분점이다." 그는 JRPG 1.0을 고전적인 RPG, 2.0을 보다 반응이 좋고 시나리오, 전개, 연출이 발전한 시대로 구분하며, 메타포도 그 흐름에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 틀에만 얽매이지 않고, 더욱 체험을 경험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테크닉을 추구하려 한다. 그것은 플레이 시간일 수도, 연출 방법일 수도, 보컬 테크닉일 수도 있다. 그런 것들에 큰 프레임 체인지를 하고 싶다."

그는 "그것이 실현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소중히 여겨온 내러티브의 중요성이 더욱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소에지마 디렉터는 디자인 관점에서 미래를 이야기했다. "한국의 패션이나 K-POP을 비롯한 엔터테인먼트는 지금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를 인식하고 있다."
그는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아트 작업은 많은 사람이 가진 인식, 인지하고 있는 것들을 활용해서 우리의 크리에이티브가 어떤 스탠스로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수용자 측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흥미 있는 것이나 아는 것이 포함되어 있으면 자신들을 향해 발신되는 것이라고 느껴 흥미로 이어진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최근에는 같은 것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일본에서 일본인이 만든 것을 일본인만 즐기고, 한국에서는 한국만 즐기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정말 같은 것을 즐겨주시니 제작자로서는 매우 기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하시노 프로듀서는 "앞으로 JRPG 3.0을 어떻게 진행할지 생각해보면, 저를 포함해 제작진도 많은 문화와 다양한 것들을 흡수하고 싶다. 또한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을 다시 한번 바라보며 발신해가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라고 전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