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스타 2025 GCON의 둘째 날, 애니플렉스의 하시모토 신지 프로듀서가 연단에 올랐다. ‘글로벌 IP 시대에서 프로듀서의 역할’이라는 이름의 강연. 하시모토 신지 프로듀서는 '디렉터'와 '프로듀서'가 혼용되는 시대에서, 이를 정확히 분별하고 프로듀서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연의 시작에서, 하시모토 프로듀서는 자신을 “한때는 하시모토 명인으로 TV에 나오던 사람이고, 지금은 은퇴 후에도 현역으로 뛰는 프로듀서”라 소개했다. 반다이를 거쳐 스퀘어(현 스퀘어에닉스)에 입사해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브랜드 매니저, 스퀘어 에닉스 이사를 맡았고, 정년을 맞은 뒤에는 애니플렉스와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에서 시니어 어드바이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 개발사 조이시티와 함께 ‘바이오하자드’ 기반 모바일 신작인 '바이오 하자드 서바이벌 유닛'을 전 세계 서비스 목표로 준비하는 중이다.
강연의 핵심은 이 문장으로 정리된다.
“디렉터는 좋은 것을 만들고, 프로듀서는 돈을 쓰고 회수한다.”
그리고, 글로벌 IP를 다루는 시대에 그 말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30분간의 압축 설명이 시작되었다.

디렉터와 프로듀서, 하나의 프로젝트와 두 개의 기둥
하시모토는 먼저 “프로듀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꺼냈다. 슬라이드에는 디렉터와 프로듀서의 역할 차이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디렉터는 자신의 재능과 감성으로 콘텐츠를 창조하고, 혁신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크리에이티브 자체를 책임지고, 한 편의 게임이 어떤 재미와 세계를 보여줄지 결정한다.
반대로 프로듀서는 팀 전체의 힘을 끌어내 비전을 실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제작비와 일정, 리스크를 관리하고, 프로젝트를 전략적으로 성공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는 “디렉터는 다이아몬드 원석”이라고 표현했다. 프로듀서의 일은 그 원석이 최대한 빛나도록, 디렉터가 예산과 계약, 마케팅 같은 ‘귀찮은 것’에서 최대한 자유로워지게 받쳐 주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만큼 책임도 무겁다. 하시모토는 프로듀서의 위치를 “프로젝트 책임자이자 총책임자”라고 못박았다. 실패하면 모든 책임을 지고, 결과로만 평가받는다. 슬라이드에도 “변명은 할 수 없고, 결과로 평가받음”이라는 문장이 크게 적혀 있었다. 디렉터가 얼마나 뛰어나든, 프로젝트가 적자를 내면 회사와 투자자는 프로듀서를 다시 믿어주지 않는다.

예산과 일정, 그리고 10년짜리 프로젝트를 버티는 직업
연차가 쌓인 뒤 하시모토는 수십 년 동안 다양한 플랫폼과 규모의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패미컴과 슈퍼 패미컴 시대의 게임 워치부터 플레이스테이션, 스마트폰까지 거의 모든 세대의 하드웨어를 거쳤다. 그는 “고예산이 아니면 히트작을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을 강하게 부정했다. 예산의 크기가 아니라 ‘게임의 재미의 핵심’을 찾아내는 아이디어가 성패를 가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산과 일정이 가벼운 화제는 아니다. 하시모토는 “한 달 일정이 늦어지면 월급일이 한 번 더 온다”고 말하며, 그 한 달이 손익분기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강조했다. 개발자가 “한 달만 더 주면 훨씬 좋아진다”고 말하는 장면을 수없이 봤지만, 그 한 달이 누적되면 프로듀서의 목을 조르는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마스터 직전에는 항상 ‘무엇을 더 남길 것인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의 줄다리기”라며, 발매 후에도 10년, 20년 지나서까지 “그때 조금만 더 버텼어야 했나” 하는 후회를 한다고 털어놨다.
슬라이드에서는 미래 프로듀서를 꿈꾸는 이들을 향해 “성공하면 승진, 실패하면 재도전”이라는 냉정한 현실도 언급됐다. 샐러리맨 프로듀서는 한 번 실패했다고 바로 해고되지는 않지만, 승진과 다음 기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프리랜서라면 더 엄격하다. “다섯 번 중 다섯 번 연속으로 실패하면 다음 프로젝트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은, 이 직업이 결국 결과로만 평가받는 자리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글로벌 동시 전개,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싸움
강연의 중반부는 ‘글로벌 IP 시대’라는 제목에 맞게 세계 동시 전개 전략에 집중됐다. 하시모토는 과거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를 예로 들며, 텍스트량이 많은 롤플레잉 게임의 로컬라이징이 얼마나 큰 부담이었는지 설명했다. 일본어판이 먼저 발매되고, 유럽판이 나오기까지 1년이 걸리던 시절에는 공략 정보가 먼저 퍼져 나가 후발 지역의 재미가 반감되곤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초기 기획 단계부터 다국어 지원과 동시 발매를 전제로 일정과 예산을 짜야 한다고 했다. 영어 음성과 현지 더빙, 각국 성우 섭외, 특히 코로나 시기의 녹음 환경 조정 등은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조율이 필요했다”고 회상했다. 디즈니와 협업한 킹덤 하츠에서는 판권이 디즈니에 있으므로, 자신들이 결정한 사항이 그대로 통과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만큼 글로벌 IP의 전개에는 끝없는 협상이 뒤따른다는 이야기다.
슬라이드에는 ‘글로벌 전개 전에 판단해야 할 포인트’도 정리돼 있었다.
캐릭터 특성과 타깃 분석, 운영형인지 단발성 판매형인지에 대한 운영 스타일 판단, 경쟁작과 성공·실패 사례 조사, 그리고 무엇보다 현지 파트너 선정이다. 그는 “모든 국가에 지사가 있는 대기업이라면 내부 인력을 쓰면 되겠지만, 대부분의 팀은 그렇지 않다”며 “직원일 필요는 없고, 프리랜서여도 좋으니 각 나라에서 믿고 일할 수 있는 ‘아군’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전개에서 프로듀서의 역할은 단순한 계약을 넘어 ‘캐스팅’에 가깝다. 개발사와 아트팀, 메인 프로그래머, 디렉터, 캐릭터 디자이너, 성우, 마케팅 파트너까지 모든 조합을 설계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팀 구성을 만드는 일”이 바로 프로듀서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라는 설명이다. 수백 명 규모의 프로젝트에서는 파트별 리더를 세우고, 매주 그들과 미팅을 하며 전체를 조율해야 한다. 그는 “프로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라인의 상태를 신경 쓰며 매일 상담을 받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
강연의 마지막은 커리어와 태도에 대한 조언으로 채워졌다. 하시모토는 세계 곳곳에서 만난 팬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멕시코와 브라질, 독일, 영국에서 “그때 그 게임을 만나지 않았으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오랜 기간 버텨온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지진으로 교통이 마비된 날, 여러 수단을 갈아타며 간신히 행사장에 도착해 자신의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던 이탈리아 팬의 일화는 지금도 잊지 못하는 기억이라고 했다.
그는 게임이 영화나 스포츠와 다른 점을 “인터랙티브한 체험”이라고 정의했다. 플레이어가 직접 참여해 선택하고 움직인 기억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도 강하게 남는다. 그래서 “어차피 할 거라면, 역사에 남고 사람들 마음에 남을 무언가에 참여해 달라”고 참석자들에게 당부했다.
프로듀서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을 한 단어로 꼽아 달라는 질문에는 주저 없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들었다. 가보지 않은 나라, 처음 만난 사람과도 계속 대화하며 프로젝트에 무엇이 필요한지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플랫폼이 바뀌고, 코로나를 거치며 세상의 조건이 계속 변하는 상황에서 남 탓을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며, 프로듀서는 개발 현장과 유저, 경영과 투자자를 모두 사이에 두고 책임을 떠안는 자리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하시모토는 게임·만화·애니메이션·음악을 잇는 ‘연결자’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웹툰과 애니메이션, 케이팝이 세계적인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이를 하나의 IP로 묶어 전 세계에 남기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각 분야의 논리와 수익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AI로 대체되기 어려운 인간의 역할”이 생긴다고 그는 본다. 서로 다른 산업을 이해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결과를 집요하게 만들어내는 사람. 그가 말하는 ‘글로벌 IP 시대의 프로듀서’는 바로 그런 직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