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병찬 변호사 소개
어릴 때부터 게임을 사랑해온 변호사입니다. 손은 굳고 눈도 흐려졌지만, 오늘도 normal 난이도로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입니다. 게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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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약의 이해와 실무, 종합 '이병찬 칼럼' 모아보기
계약서에 필수적으로 삽입되는 중요 조항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고 있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계약의 해제와 해지 조항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약을 잘 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약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계약의 체결이나 이행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계약을 종료하는 경우 “파기한다.”, “취소한다.”, “해제한다.” 등의 표현을 구별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법에서는 각 용어를 엄격히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요건과 효과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계약의 해제 및 해지에 대해서 설명드리기에 앞서 이와 혼동하기 쉬운 무효와 취소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계약의 무효

무효란 계약이 성립했더라도 처음부터 법률상 효력이 없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예전에 설명드린 것처럼, 당사자가 계약을 체결하면, 국가는 강제집행 등을 통해 계약에 따라 발생한 권리가 강제로라도 실현될 수 있도록 조력합니다. 하지만 무효인 계약은 처음부터 효력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권리가 발생하지도 않고, 해당 권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국가가 조력하지도 않습니다.
계약이 무효가 되는 대표적인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강행규정을 위반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이자제한법에서 정한 것보다 더 많은 이자를 받기로 한 계약은 무효이기 때문에, 설사 돈을 빌려 간 사람이 약정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돈을 빌려준 사람은 한도를 초과한 이자를 청구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사회질서에 반하는 계약입니다(민법 제103조). 예를 들어, 장기 매매 계약이나 마약 매매 계약은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배되어 무효이기 때문에, 계약의 내용대로 채무를 이행하도록 강제할 수 없습니다.
무효의 가장 큰 특징은 처음부터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효력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계약을 무효로 하기 위해 별도의 의사표시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계약의 무효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반면, 취소의 경우에는 취소의 의사표시가 필요하며, 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2. 계약의 취소
취소는 일단 유효하게 성립한 계약을,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처음부터 무효였던 것으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계약을 체결한 경우입니다(민법 제5조 본문). 예를 들어, 미성년자가 부모의 동의 없이 고가의 게임용 컴퓨터를 구매했다면, 부모나 본인이 이를 취소할 수 있습니다(다만, 미성년자가 용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수준의 물건을 구매했다면 소위 “용돈 조항”에 따라 계약을 취소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착오로 인해 계약을 체결한 경우입니다(민법 제109조). 계약의 중요한 부분에 착오가 있고, 중대한 과실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라면 해당 계약은 취소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매수인이 서화(書畫)를 진품이라고 믿고 샀으나, 나중에 위작(僞作)임이 밝혀진 사안에서, 예술 작품의 진위(眞僞)는 그 작품의 가치와 계약 의사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이므로, 이는 계약 내용의 중요 부분에 관한 착오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계약의 취소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5다78703 판결).

마지막으로, 사기나 강박에 의해 계약을 체결한 경우입니다(민법 제110조). 예를 들어, A가 B에게 “이 마우스는 페이크가 롤챔스 결승전에서 사용한 것이다.”라고 거짓말을 해서 마우스를 팔았다면, B는 해당 계약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무효는 처음부터 당연히 효력이 없지만, 취소는 취소권자가 일정한 기간 내에 취소의 의사표시를 해야만 계약이 소급적으로 소멸한다는 점에서 무효와 차이가 있습니다.
3. 해제와 해지
이제 본격적으로 해제와 해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해제란 계약이 체결된 이후, 계약의 효력을 처음부터 없던 것으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즉, 계약 체결 시점으로 상황을 되돌리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A가 B에게 100만 원에 최신 게임기를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게임기를 인도했는데, 계약이 해제되면 A는 게임기를 돌려받고 B는 100만 원을 돌려받게 됩니다.
반면, 해지는 계약의 효력을 장래에 대해서만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미 이행된 부분에 대해서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앞으로의 계약 관계만 소멸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A는 B에게 1년간 매월 100만 원을 지급하고, B는 1년 동안 A의 게임을 홍보하는 마케팅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6개월 만에 계약이 해지되었다면, B는 이미 지급 받은 600만 원은 돌려줄 필요가 없으며, 해당 계약은 남은 6개월의 기간에 대해서만 효력을 상실합니다.
정리하자면, 일회적 계약 관계(매매 등)에서는 ‘해제’를, 계속적 계약 관계(임대차, 고용 등)에서는 ‘해지’를 주로 사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무효·취소와 해제·해지의 차이를 다시 정리해 보면, 무효와 취소는 강행규정 위반, 사기, 착오 등 계약의 ‘성립 과정’에 하자가 있었던 경우인 반면, 해제와 해지는 아무런 문제없이 체결된 계약을 전제로 ‘이후에 발생한 사정(채무불이행 등)’에 따라 계약을 종료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무효·취소는 ‘처음부터 잘못된 계약’을 바로잡는 것이고, 해제·해지는 ‘정상적으로 체결된 계약’을 특정 사유로 끝내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4. 해제권과 해지권의 발생 사유

그렇다면 계약은 언제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을까요? 우선 계약 당사자들이 계약서에 특정 사유가 발생하면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도록 미리 정해두는 경우입니다(약정 해제·해지권). 예를 들어, 주택을 임대하면서 실내에서 흡연을 하는 경우에는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정해둘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법률에서 해제권·해지권을 규정한 경우입니다(법정 해제·해지권). 민법은 일정한 경우 해제권이나 해지권이 발생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채무불이행의 경우입니다.
민법 제544조 본문에서는 “당사자 일방이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상대방은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그 이행을 최고하고 그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게임 개발을 맡겼는데 B가 납기일이 지나도록 게임을 완성하지 못했다면, A는 B에게 “10일 이내에 게임을 완성해서 인도하라.”고 최고한 다음, B가 해당 기간 내에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채무가 정기행위이거나 채무가 이행불능이 된 경우에는 최고 없이도 바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545조, 제546조). 여기서 정기행위란 정해진 시기에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계약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결혼식을 위해 케이크를 주문했다면, 결혼식 전에 케이크가 배달되지 않는다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이행을 최고하지 않고도 바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5. 해제·해지에 따른 원상회복 및 손해배상
계약이 해제되면 각 당사자는 원상회복의 의무를 부담합니다(민법 제548조). 즉, 이미 받은 것을 상대방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다만, 해지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장래에 대해서만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미 이행된 부분에 대해서는 원상회복의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한편,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하더라도, 손해배상 청구권은 여전히 행사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551조). 계약 해제의 효과는 계약이 체결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지만(원상회복),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서 발생한 손해 자체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신규 게임 홍보를 위한 영상 제작을 의뢰했는데, B가 납기일을 어기는 바람에 A가 급하게 다른 업체에 일을 맡기게 되었고, 이로 인해 게임의 출시가 늦어졌다면, A는 B에게 게임 출시 지연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6. 계약서 작성 시 유의 사항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민법에서는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는 사유 및 그 효과에 대해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계약서에 해제나 해지 사유를 별도로 기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법에서 정한 사유가 발생하면 계약의 해제·해지가 가능하고, 이에 따라 법에서 정해둔 효과가 발생합니다.
이처럼 기본적인 해제·해지 사유 및 그 효과에 대해서는 법에서 정해두고 있기 때문에, 계약서를 작성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은 법정 해제·해지 사유에는 해당하지 않으나, 당사자의 합의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는 사유를 명기해 두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주택을 임대하는 경우라면 임차인이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할 수 있고, 상가를 임대하는 경우라면 임차인이 임의로 업종을 변경하거나 임대인의 동의 없이 건물의 구조를 변경하는 경우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약정 해제·해지 사유를 명확히 규정해 두면 당사자 사이의 불필요한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핵심 내용 정리
- 무효는 처음부터 당연히 효력이 없고, 취소는 취소권자의 의사표시로 소급적으로 무효가 된다.
- 해제는 계약의 효력을 처음부터 없던 것으로 만들고, 해지는 계약이 장래에 효력을 잃도록 만든다.
- 계약이 해제·해지되더라도 손해배상청구권은 별도로 행사할 수 있다.
- 계약서에 약정 해제·해지 사유를 규정해 두면 분쟁 예방에 효과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