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전, 그러니까 11일 이른 아침, 공항에 모인 기자들이 입을 열었다.
"서바이버겠죠?"
"그렇겠죠. 1편도 서바이버 재밌었는데"
"막 추운데 옷 찾아입고, 진짜 서바이벌 느낌 나고 좋았죠"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디비전2의 새로운 모드를 시연하게 될 거라는 것. 때마침 또 최근에 서바이버 모드를 개발 중이라는 언급이 있었으니, 당연히 서바이버 모드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일본에 입국해서도, 행사장에 도착해서도 아닌, 시연대에 앉아서야 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이름하야 '리얼리즘'모드. 디비전 프랜차이즈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애니버서리 이벤트에 도입되는 새로운 게임 모드다.
그렇게, 당황한 채 자리에 앉은 기자들. 하지만 이름 만으로도 풍기는 냄새와 뉘앙스가 있다. 우리 디비전. 아직 잘 살아 있지만 택티컬 슈터 중 손꼽힐 정도로 리얼리즘과는 담을 쌓은 아이 아니던가. 총알을 수천, 수만 발을 쏴야 겨우 죽는 적들과 충격력을 무시하는 방탄 방패, 2050년을 지금 보는 듯한 증강현실 UI까지. 리얼리즘을 붙이면 이 중 대부분이 사라질 거란 본능적 직감이 뒷통수를 얕게 스쳤다.
그렇게 정말 얼떨결에 시작한 '리얼리즘 모드', 게임적 허용을 대거 빼고, 담백한 팩트로 가득 채운 '디비전2'의 경험을 글로 정리해 보았다.
디비전이 이렇게 어두운 게임이었나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어둡다'라는 점. 마침 시연이 또 야간 미션이었는데, 일반적으로 디비전은 1편과 2편을 막론하고 야간 미션을 플레이해도 어두워서 잘 안 보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왜냐? 펄스 한 방 갈기거나, 색적 기능이 있는 가젯, 터렛이나 드론 등을 띄워 두면 적들을 알아서 찍어 주기 때문이다. 파티에 빌드 좀 깎은 전력맨 한 명만 있어도 화면이 어두울 일은 없다.
하지만, 리얼리즘 모드는 그 모든게 없다. 전력, 화기, 방어 같은 스탯도 없고, 옵션도 없으며, 당연히 어픽스도 없다. 게다가 커리어 시스템과 시그니처 무기까지 싹 뺐다. 말 그대로 총과 기본 스킬 두 개, 그리고 수류탄과 방탄판만 지닌 생짜 초보 요원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게임이다.

당연히 적도 안 보인다. 펄스와 터렛을 기본 스킬로 주긴 하지만, 리얼리즘 모드에서 스킬은 말 그대로 필살기다. 쿨다운이 무척 길고, 빌드를 통해 쿨다운을 줄이거나 지속 시간을 늘릴 수 없으니 결정적인 순간에만 써야 한다. 지금 적이 어디 있는지 모르면 바로 죽을 상황에서 말이다.
도리어 이 상태가 되니, 주변이 더 눈에 들어온다. 기존에는 AR로 지원되는 길찾기를 통해 뛰다가 펄스 한 방 갈기고 교전에 들어가는게 게임 흐름이었다면, 이제는 코너를 돌면서 적이 어디 있나 슬쩍슬쩍 살피고, 어두컴컴한 배경 사이에서 꿈틀대는 적의 실루엣을 찾아 숫자를 줄이며 나아가야 한다.

사뭇 다시 느끼게 된다. 디비전, 상당히 어두운 게임이었구나
선생님, 나 총알이 부족해요
어두운 배경보다 더 플레이어의 목을 조이는 건 부족한 탄약이다. 디비전1은 배낭에 탄약 휴대량 증가 옵션이 있었고, 2편은 빌드에 따라 탄약을 계속 보충해주는 기능을 활용할 수 있었기에 사실 탄약을 다 쓸 정도로 몰리는 경우는 고난도 전투를 제외하면 좀처럼 없었는데, 리얼리즘 모드는 기본 휴행 탄수부터가 상당히 적다.
AR의 경우 휴행 탄수는 150발 내외, 다행인 점은 기존 게임처럼 탄약을 스프레이처럼 뿌릴 일은 없는데, '리얼리즘' 모드 답게 적들도 무척 쉽게 죽는다. 잡졸들은 총기 종류를 막론하고 헤드샷 한 방에 사망, 엘리트나 정예 적들은 꽤 버티긴 하지만 그래도 한 탄창 내에서 정리된다. 때문에, 한 방 한 방을 신중하게 써야 하고, 최대한 탄약을 아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권총은 여전히 탄약이 무한이다. 때문에 권총의 역할이 본편 이상으로 중요해졌는데, 웬만큼 화력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권총으로 전투를 치르게 된다. 첫 시도에 그걸 모르고 소드오프 더블 배럴 샷건을 가져갔다가 아주 죽을 고생을 하고서야 권총을 바꿨다. 탄약은 무척 적게 떨어지는데, 본편에서는 적들이 탄약을 드랍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에 큰 부족함을 느끼기 어려우나, 리얼리즘 모드에서는 한 구간에서 한 번 보기도 어렵다.
'총기 파츠'도 상당히 달라진 부분이다. 저격 소총을 예로 들면, 본편에서 저격 소총으로 조준 시 1차적으로 3인칭 조준이 되고, 한 번 더 조작해야 스코프를 통해 적을 보게 된다. 때문에 정확도를 높인 채 3인칭 조준만 쓰면서 빠르게 조작 - 사격을 반복하는게 스코프를 통해 조준하는 것 보다 DPS면에서 월등했는데, 리얼리즘 모드는 이 3인칭 조준이 아예 안 된다. 그래서 중간부터 스코프를 아예 떼 버렸다. 어차피 파츠에 스탯도 없으니, 굳이 달 이유도 없다.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은 아니지만 하여튼 많이 아픔
총기의 대미지 모델도 리얼리즘 모드가 되면서 상당히 달라졌다. 일단, 머리에 맞으면 죽는다. 정예 적들도 머리를 잘 노리면 금방 눕힐 수 있을 정도로 피해량이 커졌다. 고스트 리콘을 플레이 해 본 플레이어가 있다면, 그와 비슷한 정도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문제는, 나도 아프다. 나의 아픔을 달래주는 힐링 돌돌이나 비하이브도 없고, 기관총을 정면에서 막아내며 '역 불릿 스펀지'를 보여주는 방패도 없으니, 일단 방탄판이 다 깨지고 체력이 달기 시작하면 비상사태다. 다행히 방탄판은 기존처럼 V키를 꾹 눌러 보충할 수 있지만, 이 또한 드랍율이 상당히 낮고 갯수가 제한되다 보니 그냥 자동적으로 몸을 사리면서 플레이하게 된다.

적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상황에서, 오브젝트를 탈취하는 미션의 경우 기존 디비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불합리의 폭풍이 불어닥친다. 본편 같으면 그냥 터렛 하나 세워두거나, 드론을 띄워 두고 콧노래를 부르며 작업할 수 있으나, 리얼리즘의 설치물은 보통 설치 후 5초 안에 터져나간다. 적을 피해 숨고, 가까이 오는 적에게 모잠비크 드릴을 박아주며 꾸역꾸역 전진하다 보면 같은 구간도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집중을 기울여야 문제 없이 클리어가 가능하다.
정리하면, '리얼리즘' 모드는 '더 디비전' 시리즈가 RPG적 접근 없이 순수 슈터로서 개발되었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보여주는 모드다. 본편의 요소 중 상당수가 사라진 만큼, 본편만큼의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직관적이고, 간단하며, 본능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처음에는 '왜 이런 모드를?'이라 생각했지만, 지형지물을 활용하고, 수류탄 하나까지 아끼며 싸우다 결국 적을 다 물리쳤을 때의 카타르시스는 산책하듯 적을 휩쓰는 본편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리얼리즘' 모드는 올해 3월, 디비전 프랜차이즈의 10주년 애니버서리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리얼리즘 모드에는 레벨 업도, 경험치도 없으며, 장비의 스탯 또한 없다. 게임은 '뉴욕의 지배자' 구간에만 적용되어 플레이할 수 있으며, 본편과는 아무것도 연동되지 않은 채 신규 캐릭터를 만들어 플레이하게 되는 스탠드 얼론 모드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놀랐다. 자리에 앉는 순간까지 서바이버 모드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게임을 끝낼 때 쯤엔 놀라움의 결이 조금 달라졌다. 같은 디비전인데,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본편과 재미를 저울질하려 해도 너무 다른 접근이라 느껴질 정도로, '리얼리즘' 모드는 색다른 시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