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때로는 범작이 전작의 후광을 입고 초반 반짝 성과를 달성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슬레이 더 스파이어2의 경우는 달랐다. IP 구축 그리고 함께 하는 재미까지 더 큰 비전을 제시하면서도 그간 검증된 플레이를 한층 더 갈고 닦아서 기반까지 확실히 다진 명작이었기 때문이다.
선구자의 노하우로 간단명료하게 다듬은 로그라이크 덱빌딩

슬레이 더 스파이어가 한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인 만큼 인디 게임에 관심이 없는 유저들도 대부분 이름은 들어봤거나 어떤 장르인지는 알 것이다. 그래서 슬레이 더 스파이어부터 이어진 재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사족이 될 여지가 있다. 아마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설명하려고 해도, 로그라이크 덱빌딩의 일반적인 플레이 방식과 특장점을 이야기하게 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 클리셰라고 불리는 것을 일궈냈던 여타 클래식 명작을 설명할 때처럼 말이다.
실제로 그 뒤로 이어진 슬레이 더 스파이어2의 플레이 방식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막부터 시작해서 3막까지, 매번 뒤바뀌는 경로에서 최적의 루트를 계산, 덱을 만들어가면서 난적들을 물리쳐가는 구성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매번 다른 적들의 조합과 경로 그리고 보상이 나오는 만큼 상황에 맞춰 판단하고 수를 짜내는 로그라이크에 카드 패와 효과를 잘 읽어보고 최적의 순서를 조합해 승리하는 덱빌딩의 재미를 효과적으로 결합한 것이 슬레이 더 스파이어 시리즈의 핵심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원조'라는 것 외에 이후 나오게 된 다른 로그라이크 덱빌딩과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슬레이 더 스파이어, 그리고 이번 2까지 이어진 최대 강점은 바로 간단명료함이다. 군더더기 없이 로그라이크 그리고 덱빌딩에서 추구하는 코어 플레이에 필요한 요소만 확고히 갖춰서 최적화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슬레이 더 스파이어를 해보면 카드의 효과나 키워드는 물론이고, 텍스트도 굉장히 간결해서 한두 번만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스테이지의 적 구성도 단순하게, 그러면서도 기본기를 빠르게 익힐 수 있는 구성인 것도 눈에 띈다. 일례로 카드 게임을 안 해봤다고 하면 소멸 같은 키워드의 가치가 처음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런 유저들도 몇 판 더 해보면 불필요한 패를 최소화하는 최적화의 가치를 알게 된다. 시도 때도 없이 상태이상 카드를 뱉어대는 적을 만나다 보면 쓸데없는 카드가 쌓일 때 손이 얼마나 꼬이는지 몸으로 직접 체감해보기 때문이다.



이번 슬레이 더 스파이어2 또한 이러한 설계 위에서 각 캐릭터마다 독특한 전략과 개성을 다듬어낸 전작의 전통을 계승하고 다듬었다. 더 나아가 단순히 과거의 답습에 그치지 않고, 리젠트와 네크로바인더라는 두 신규 캐릭터를 통해 또다른 재미를 창출해내기까지 했다.
그 중 '리젠트'는 전 캐릭터 공통 코스트인 에너지뿐만 아니라 별의 힘이라는 별도의 코스트도 보유한 캐릭터다. 별의 힘은 에너지와 달리 다음 턴에 자동으로 회복되지 않고, 별도의 충전 효과가 있는 카드들을 사용해야만 충전된다. 그래서 리젠트는 전반적으로 핵심 카드의 에너지 코스트가 낮고 효과가 강력한 대신, 별의 힘을 사용하는 카드들이 많아 충전 카드를 적절히 섞을 필요가 있었다. 코스트 계산과 카운팅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라면 이러한 이중 코스트 시스템을 활용하기 까다로운데, 이를 위해 군주의 검을 소환, 강화시켜서 피해량을 높이는 '단조'라는 전용 키워드와 여러 대안 빌드를 마련한 것도 눈에 띄었다.




또다른 신규 캐릭터, 네크로바인더는 자신이 미처 못 막아낸 공격을 대신 맞아주는 골골이를 소환하는 특성을 보유한 캐릭터다. 그래서 타 캐릭터에 비해 체력이 낮은 대신, 골골이의 HP를 높여서 피해를 덜 입을 수 있다. 상대의 HP가 턴 종료 시에 지정된 수치 이하로 낮아지면 사망하게 되는 '종말'이 핵심 키워드로, 상대방에게 종말 수치를 꾸준히 쌓으면서 골골이로 탱킹하는 빌드나 골골이를 키워서 골골이로 연타를 날리는 빌드 등이 특징이다.
이런 특징들이 두어 판을 하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 전작부터 이어진 묘미였다. 그리고 그 비결은, 하나의 핵심 키워드를 바탕으로 카드를 설계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여러 유물 혹은 다른 캐릭터 카드를 조커로 삼아서 플레이하는 것까지도 고려한 유연함에 있었다. 이러한 설계가 좀 더 확장되어 새로 추가된 멀티 파트도 호평이 이어진 것은 물론, 빌드를 전혀 모르는 초보도 적당히 카드를 잡고 운이 따라주면 보스전까지는 노려볼 수 있는 탄력적인 레벨 디자인을 구현한 셈이다.


연대기로 설정까지 파고드는 맛도 UP

만일 신규 직업 및 키워드 추가에 그쳤다면, 여러 대작들이 그렇듯 후속작 대신 DLC로 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후속작을 발표한 것은, 단순히 새로운 요소를 선보이는 게 아니라 IP와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한 더 큰 한 발로 보였다.
전작 슬레이 더 스파이어는 각 캐릭터들이 첨탑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NPC들과 대화를 나누고, 또 엔딩을 통해서 이야기와 세계관이 단편적으로 언급됐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각자 다른 사정의 캐릭터들이 매번 그 고생을 하면서 첨탑을 정복하기 위해 계속 도전하는지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각 캐릭터의 정보나 과거, 첨탑에 대한 정보는 대체로 여백처럼 비어있었고, 상상에 맡길 부분이 많았다.
이러한 구성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해 알아서 채워가게 하는 묘미가 있기는 하다. 특히나 로그라이크 덱빌딩처럼 게임플레이 자체에 굉장히 집중해야 하는 장르는 한 번 진입하게 되면 스토리 대신 빌드나 세팅으로 관심이 바로 쏠리는 경향이 짙다. 그렇다고는 해도 허전하다고 느낄 여지가 있는데, 그런 아쉬움을 이번 후속작에서 채운 셈이었다.


뿐만 아니라 왜 슬레이 더 스파이어2라는 후속작이 필요했는지, 그 후속작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제시하고 싶었는지 개발진의 의도를 전달하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전작으로부터 천 년이 지나서 세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첨탑 정복 후에 잠든 전작의 인물들이 다시 첨탑으로 오게 된 이야기 그리고 첨탑이 어째서 다시 부활했는지 플레이를 지속하다 보면 그 의문이 저절로 풀리게끔 했기 때문이다.
물론 각각의 이야기가 플레이버 텍스트에 가까울 정도로 짧게 서술된 만큼, 해금 특전에 딸려 나오는 부록 정도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촘촘하게 잘 짜인 내러티브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플레이하면서 얻게 되는 힌트들로 미싱링크를 파헤치는 재미를 사이드 디시로 곁들였다고 볼 수 있었다. 로그라이크 덱빌딩이라는 장르 자체가 매번 무작위로 등장하는 스테이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도전하는 재미에 치중한 만큼, 그 코어보다 비중이 높지 않게 조율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각기 특색 있는 캐릭터들을 내세운 만큼, 왜 그들이 그런 도전을 반복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팬층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전작에서 한 차례 정복했다면, 더더욱 그런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문에 나름의 답을 제시해서 납득이 가게 하고, 전작부터 이어지는 세계관이 어떻게 나아갈지 기대하게 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효율적인 시도로 보였다.



검증된 싱글에 멀티의 재미까지 확실한 슬레이 더 스파이어2

로그라이크 덱빌딩이라는 장르가 널리 알려진 이후, 유저들 사이에서는 이 장르를 협동으로 플레이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이어졌다. 실제로 전작에서는 유저들이 직접 모드로 구현했을 만큼, 이러한 열망은 단순히 소수 의견에 그치지 않았다. 이를 반영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번에는 개발진이 그 상상을 직접 멀티플레이로 구현해낸 것이 눈에 띈다.
최대 4인까지 가능한 이번 멀티플레이 모드는 전작에서 유저들이 만든 모드와 달리, 각자 캐릭터를 골라서 같이 모험을 떠나는 구도로 되어 있다. 캐릭터 선택은 중복도 가능하며, 경로 선택은 다수결로 진행되는 방식이다. 2인이면 둘이 합의해야만 다음 경로로 넘어갈 수 있다.
실제로 플레이한 멀티 모드는 싱글플레이에 비해서 상당히 어려웠다. 2인 기준으로 몹 체력이 2배에서 3배 이상으로 맞춰져 있고, 기믹도 그에 맞춰서 설계가 되어 있어서 치밀한 협동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발을 착착 맞추지 않으면 클리어하기 까다롭지만,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맞춰가면서 깨는 쾌감은 확실했다. 특히 그간 싱글플레이 중에 다른 캐릭터 카드를 가끔씩 갖고 올 때마다 생각만 했던 콤보들이 실제로 구현됐을 때의 카타르시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리모트 플레이 투게더가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슬레이 더 스파이어2를 가지고 있는 유저끼리만 플레이가 가능한 건 아쉬웠다. 그래서 아직 게임을 구매한 친구가 없다면, 영업하기는 다소 까다로롭긴 했다. 장르 특유의 그윽한 맛을 바로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게임이라 한 번만 플레이해봐도 계속 하게 되겠지만, 그 한 번 끌어들이는 것이 막상 쉽지는 않다. 앞서 군더더기 없이 쾌적한 심플함을 장점으로 꼽았지만, 이 말은 곧 외견이 수수해서 겉으로만 봐서는 눈에 차지 않는다는 단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진가를 아는 사람에게는 사실 별 문제가 되진 않지만, 아직 모르는 사람에게 영업하려고 하면 때로는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선입견을 깨고 소위 '츄라이츄라이'하게 만들어줄 리모트 플레이 투게더가 아쉽긴 한데, 이외에도 슬레이 더 스파이어2는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이 좀 더 있었다. 이전에 닫았던 메뉴창이 미처 닫히기도 전에 씬이 전환되거나, 아이템을 수령받지 못해서 다시 껐다 켜야 하는 등 다양한 오류들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멀티플레이 모드의 경우 채팅이나 음성 채팅 같은 기능을 게임 내에서 지원하지 않는 게 좀 아쉽기도 했다. 이런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유저들의 피드백도 받아서 완성하기 위한 단계가 얼리액세스인 만큼, 이 단계를 거친 슬레이 더 스파이어2가 전작에 이어 과연 어떤 파급력을 발휘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