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C26] 개발 취소가 개발자의 실패는 아니다

게임뉴스 | 이두현 기자 | 댓글: 1개 |
노블로봇 소속 마크 라크루아 디렉터는 10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GDC)에서 프로젝트 취소와 해고를 겪은 개발자들을 위한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했다.

이번 세션은 마치 전쟁을 겪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는 참전 용사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치유하는 자리와 같았다. 라크루아 디렉터는 행사의 성격을 "일종의 심리 치료 세션이자 정보 교환의 장"이라고 규정하며 개발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했다.



▲ 노블로봇 마크 라크루아(Mark LaCroix) 디렉터

수년간 작업한 게임이 하루아침에 취소되는 업계 현실 속에서, 참가자들은 서로의 상실감을 위로하고 이를 커리어 발전의 자산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했다. 라크루아 디렉터는 업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나 해결책을 논하기보다 철저히 개인의 '다음 행보'와 내적 성장에 초점을 맞춰 세션을 이끌었다.

참석자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겪은 프로젝트 취소 경험을 상세히 공유하며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프리랜서 에디터인 엘리아나는 작업을 완전히 마무리한 지 6~8개월이 지나서야 프로젝트 매니저를 통해 취소 소식을 전해 들었던 당혹스러운 일화를 털어놨다. 그는 "이미 다른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어 고용에 타격은 없었으나, 요구에 따라 완성했던 모든 작업물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된 것은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오디오 디렉터는 퍼블리셔의 변심으로 인한 참사를 고발했다. 그의 팀은 약 1년간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었고 퍼블리셔 역시 이를 극찬했으나, 불과 3일 만에 특정 틈새 장르에 집중하겠다는 전략 변경을 통보받았다. 이로 인해 해당 퍼블리셔 산하의 활성 프로젝트 10개 중 9개가 일방적으로 취소됐고 대규모 인력 감축이 뒤따랐다.

재정적, 시간적 압박으로 인한 취소 사례도 다수 보고됐다. '퍼펙트 다크' 리부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개발자는 개발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시간은 곧 돈'이라는 내부 재무 시스템상의 한계선에 도달해 결국 프로젝트가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디아블로' 원작자들이 설립했던 한 소규모 스튜디오의 사례도 제시됐다. 이들은 1980년대 유명 IP를 바탕으로 수년간 베테랑들과 함께 게임을 개발해 왔다. 하지만 높은 라이선스 비용과 최소 1~2년이 더 필요한 추가 개발 기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경영진은, 결국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튜디오 전체를 폐쇄하고 전원을 해고했다.

진행 중인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 타격을 입는 경우도 있었다. 엘리아나는 '니어 리[인]카네이션'의 시즌 1, 2 영어 더빙을 완료했으나 시즌 3 더빙이 돌연 취소됐고, 모바일 가챠 게임이었던 해당 게임 자체가 오프라인 버전을 끝으로 서비스를 종료하며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다만 그는 "인터넷상에 게임을 보존하는 영상들이 다수 남아있어 내 작업물이 어떤 형태로든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취소된 게임이 남기는 가장 큰 상처 중 하나는 수년간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이를 포트폴리오로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20명 규모의 게임플레이 부문을 이끌었던 한 리드 엔지니어는 30명이었던 회사가 2년 만에 200명 규모로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은 진통을 토로했다. 그는 "사내 문화와 프로세스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니어 개발자들을 대거 채용해 자체 AAA 게임을 만들려다 결국 자금난으로 프로젝트가 취소됐다"고 밝혔다.

이어 "첫 직장에서 4~5년을 바친 주니어 개발자들이 자신이 어떤 전투 시스템이나 NPC, 보스 몬스터를 만들었는지 외부에 증명할 구체적인 자료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 리더로서 가장 고통스럽다"고 덧붙였다.

과도한 보안 정책과 비밀유지계약(NDA)에 대한 원성도 쏟아졌다. 30년 역사를 지닌 '모놀리스' 스튜디오를 워너브라더스가 폐쇄할 당시, 개발자들은 오래된 데모 CD와 각종 기념품 등 게임의 역사가 담긴 물품을 비디오 게임 역사 박물관에 기증하려 했다. 하지만 해고를 면한 한 직원이 카트를 끌고 와 기증품을 모두 압수했고, 이 물품들은 결국 퍼블리셔 창고의 어둠 속으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반면 긍정적인 대응 사례도 소개됐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자스민은 "회사가 아티스트들을 배려해 비밀번호가 걸린 아트 저장소를 따로 만들어 주었고, 라이브 화상 인터뷰 과정에서 화면 공유 방식을 통해서나마 작업물을 보여줄 수 있도록 허용했다"며 스튜디오 내 옹호자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라크루아 디렉터 역시 프리랜서 인디 개발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참여한 결과물을 당당히 가져갈 수 있도록 계약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기업들이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를 노리고 과장되게 보안을 강제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법적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작업물을 적극적으로 외부와 공유할 용기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게임은 출시되지 못했더라도 개발자 개인의 성장과 에피소드는 남는다. 엘리아나는 게임 취소라는 악재 속에서도 면접관을 사로잡은 성공적인 인터뷰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당시 주요 악당을 맡은 성우가 초반 녹음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계속 잘못 발음해 20여 개의 주요 대사를 전면 재녹음해야 할 위기에 처했었다.

엘리아나는 "올바르게 발음된 후반부 세션의 테이크에서 정확한 음절을 찾아낸 뒤, 이를 이퀄라이저(EQ) 작업을 통해 잘못된 발음 위치에 자연스럽게 덧붙여 불필요한 재녹음 비용과 시간을 절약했다"며, 이러한 문제 해결 능력이 실제 구직 시장에서 큰 무기가 되고 있음을 증명했다.




이날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취소된 프로젝트를 이력서에 유리하게 녹여내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노하우가 오갔다.

예를 들어 이력서에 프로젝트를 기재할 때 '미출시'나 '취소됨'이라는 부정적인 단어 대신 '프로토타입'이라는 명칭으로 프레임을 전환해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식이다. 또한 증명할 영상이나 시각적 증거 자료가 부족하다는 표면적 단점을 오히려 역이용해, 세부 사항을 조심스럽게 각색하여 자신이 프로젝트에서 기여한 성과를 더욱 폭넓게 어필하는 방법도 제시됐다. 아울러 미국 H1B 비자 등 행정 절차 문제에 대비해 이력서를 상시 업데이트하는 습관을 들여, 갑작스러운 해고나 프로젝트 취소 통보에도 즉각적으로 커리어를 방어할 준비 태세를 갖추라고 조언했다.

해고와 프로젝트 취소는 심각한 사회적 고립감과 우울증을 동반한다. 11년간 한 직장에서 리드 직군으로 헌신하다 스튜디오 폐쇄의 직격탄을 맞은 한 참석자는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재능 있는 동료들과의 유대감"이라며, 매주 수요일마다 디스코드 채널에 접속해 예전 팀원들과 일상을 나누며 심리적 버팀목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예 게임 업계를 떠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사례도 주목을 받았다. 10년간 게임 업계 취업을 준비했으나 계속된 조기 퇴사와 번아웃으로 극심한 좌절을 겪었던 조셉은, 결국 타 산업군에 취직해 재정적, 정신적 안정을 되찾았다. 그는 "처음 꿈꿨던 완벽한 포지션이 아니더라도, 개인으로서 행복을 느끼고 재정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며 커리어 선택에서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라크루아 디렉터는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게임개발자협회(IGDA) 지부나 '시애틀 인디즈(Seattle Indies)'와 같은 지역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네트워킹을 유지할 것을 강하게 권장했다. 덧붙여 구직 활동과 멘탈 관리에 유용한 실질적 자원으로 게임 업계 커뮤니티 조력자인 아미르 사트바트(Amir Satvat)를 지목하며 적극적인 정보 탐색과 연락을 독려했다.




취소된 게임에 대한 실패 경험담을 나누는 행위는 단순한 신세 한탄이나 자기 연민을 넘어선다. 고립된 시야를 벗어나 다른 이들의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고, 예상치 못한 교훈을 얻어 자신의 상실을 산업 전반의 커다란 문맥 속에서 객관화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치유이자 생존 전략 수립의 과정이다. 조셉이 조언했듯 "이전 프로젝트의 슬픔을 잊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기꺼이 다시 말안장에 올라타 다음 프로젝트에 온전히 전념하는 것"이다.

라크루아 디렉터는 "이번 라운드테이블은 끝없는 해고와 프로젝트 무산이 반복되는 현 게임 업계에서, 개발자들이 잃어버린 기회를 복구하고 회복탄력성을 다지는 굳건한 연대의 장으로 기능했다"며 "무너진 게임은 돌아오지 않지만, 그 과정을 치열하게 겪어낸 개발자들의 역량과 경험은 결코 취소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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