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피규어, 이제는 디지털 AR로 즐긴다

인터뷰 | 윤홍만 기자 | 댓글: 3개 |
형태가 없는 것에 마음을 주기란 참 어려운 법이다. 그렇기에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는 그들이 숭배하는 신들의 모습을 본뜬 조각상, 즉 우상을 만들어왔다. 이러한 우상의 역사는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대표적인 예로 약 29,500년 전 유물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들 수 있다. 풍요로움을 상징화한 이 우상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갈망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간은 고대부터 중세, 그리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믿는 대상에 형태를 부여하는 한편, 그 형상을 보며 동경하는 마음을 품어왔다.

놀랍게도 이러한 동경은 현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의 우상을 바라보던 시각과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숭배보다는 조금 더 친숙한 마음을 담고 있다는 점일까. 바로 현대의 우상, '피규어'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의 피규어를 모으는 것은 이제 소위 '덕후'라고 불리는 이들에게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화면이나 종이 속에만 존재하는 캐릭터를 가장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피규어의 형태 역시 최근 들어 큰 변화를 맞이했다. 수만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실물의 형태를 벗어나, 이제는 디지털과 AR(증강현실)로 그 영역을 넓힌 것이다. 그 선봉에는 일본의 기업 구겐카(Gugenka)의 '홀로모델'이 있다. 현재 홀로모델은 일본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디지털 피규어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서비스라 할 수 있다. 구겐카가 기존의 실물 피규어를 넘어 디지털 피규어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이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구겐카의 미카미 마사후미 대표와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그의 사업 비전을 들어보았다.



▲ 구겐카 미카미 마사후미 대표


구겐카(Gugenka, 구현화)라는 사명이 인상적이다. 회사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2005년 창업한 구겐카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IP와 첨단 기술을 융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목표로 하는 회사다. 여러 첨단 기술 중에서도 구겐카는 XR(VR, AR, MR) 분야가 특기다. 사명부터가 이런 기술과 연관이 있는데, 지금까지 세상에 없었던 서비스를 구현화한다는 뜻을 담아서 지었다.


2022년 즈음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을 때 구겐카의 소식을 들은 기억이 있다. 4년이 지난 지금, 메타버스 열풍이 예전 같지 않은데 이러한 흐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먼저 홀로모델은 디지털을 현실 세계로 확장하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메타버스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는 걸 분명히 하고 싶다.

이와 별개로 메타버스와 관련된 분위기에 대해서라면 비록 현시점에서는 전 인류가 메타버스에서 활동하는 단계까지는 오지 못했지만, 로블록스나 VR챗 등의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는 것을 보면 하나의 장르로 정착했다고 보고 있다. 동시에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비록 기대치에는 못 미쳤을지 몰라도 가상과 현실 공간이 맞물리며 시장은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 디지털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에서 시작한 홀로모델


어떤 계기로 '홀로모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나.

앞서 홀로모델에 대해 디지털을 현실 세계로 확장하는 서비스라고 했는데, 2011년 구글 글래스 발표를 보면서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기기라고 생각해 큰 기대를 가지게 됐다. 그게 홀로모델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AR 글래스와 연동된 디지털 펫 같은 걸 서비스하면 새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2017년 사업을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여러모로 잘되지 않았다. 그때의 AR 글래스는 진짜 성능이 별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발표와 달리 그다지 성능이 뛰어나지 않았음에도, AR 시장은 계속 발전할 것이고 디지털 펫 같은 서비스가 미래에는 일상화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사업을 이어 나간 게 지금에 이르게 됐다.

다행스러운 건 AR 글래스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 글래스가 일종의 실험작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메타를 비롯해 여러 기업들이 AR 글래스를 개발하는 등 긍정적인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어 여기에 발맞춰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홀로모델의 현재까지 성과나 실적은 어떠한가.

홀로모델의 핵심인 디지털 피규어에서 가장 중요한 건 IP다. 우리는 300종 이상의 공식 애니메이션 IP 판권을 확보한 상태인데, 이 정도 규모는 우리가 유일무이하다고 할 수 있다.

유저층 역시 꾸준히 성장하는 추세다. 코로나 시기에는 침체기를 겪었지만 이후 빠르게 회복했고, 특히 작년부터 여성 유저층이 많이 늘어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건 유저들의 이용 방식이다. 처음에는 AR 글래스로 일상 속에서 즐기는 개념으로 출발했지만, 실제로는 스마트폰에 최애 캐릭터의 디지털 피규어를 넣고 다니며 성지 순례를 하거나 여행지에서 AR로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예전에 실물 피규어나 인형으로 했던 활동들을 대체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여러모로 일상에 녹아든 모습이다.

앞으로 지원 기기가 늘어나고 더 많은 디지털 피규어가 출시됨에 따라 이용 형태 역시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홀로모델 사업은 전용 디스플레이 '홀로모델링크'와 '디지털 피규어' 2개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피규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입체감을 느끼기 위해선 홀로모델링크가 필수일 텐데 16,500엔으로 가격이 꽤 비싼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좋은 지적이다. 비싸다는 의견은 우리 역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대량 생산을 통해 가격대를 낮춰 더 많은 유저가 접하길 바라는 만큼, 현재 서드파티 기기(디스플레이) 제조사들과 계속 협의 중이다.

단순히 가격을 낮추는 것 외에도 디지털 피규어를 입체적으로 감상하고 장식할 수 있는 다양한 기기를 계속 개발할 계획이며, 향후 AR 글래스 시장이 성장하면 이를 이용한 전개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당장 홀로모델링크의 가격이 부담된다면 디지털 피규어만 구매해도 된다. 스마트폰과도 연동되는 만큼 스마트폰을 통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 전용 디스플레이 홀로모델링크를 이용하면 입체감까지 느낄 수 있다


이전에도 이런 류의 디지털 피규어, 전용 디스플레이는 더러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들과 차별화되는 홀로모델만의 장점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300개 이상의 모든 IP가 원작사의 감수를 거친 공식 제품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지 않을까 싶다. 유저 중에는 자신이 직접 만든 디지털 피규어를 불러오고 싶은 경우도 있을 텐데,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향후에는 마인크래프트나 로블록스처럼 모딩 등을 통해 유저가 참여할 수 있는 요소도 도입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홀로모델링크에는 스피커 기능이 없어서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업그레이드 계획은 없나.

현재 홀로모델링크에는 스피커가 없지만, 향후 스피커 기능이 추가된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을 계획이다. 지금은 성우 음성이나 BGM을 즐기려면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야 한다. 집에서는 전용 디스플레이에 장식하는 느낌으로, 밖에서는 스마트폰에 넣어 최애 피규어와 함께 돌아다니는 느낌으로 즐기길 추천한다.


피규어라고 한다면 다양한 각도에서 보는 재미도 있지 않나. 홀로모델의 디지털 피규어도 그런 식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하거나 포즈를 바꿀 수 있나.

가능하다.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으며, 디지털 피규어만의 특징으로 사이즈를 1cm부터 사람만 한 크기까지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포즈까지도 바꿀 수 있는데, 실물 피규어와 달리 자유롭게 포즈와 각도, 크기를 바꿔가며 즐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얼리어답터면서도 피규어를 모으는 걸 좋아하는 코어 팬층이 타겟일 것 같은데, 홀로모델의 정확한 타겟층은 누구인가.

그 부분이 재미있는 지점인데, 질문한 대로 얼핏 코어 팬층이 주로 살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놀랍게도 실물 피규어를 구매하던 유저들이 주로 홀로모델의 디지털 피규어를 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오사카 엑스포 등 오프라인 행사 전시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특히 여성 유저층의 반응이 좋았는데, 뱅드림처럼 본인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디지털 피규어를 자연스럽게 구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기존 실물 피규어 소비와 거의 같은 행보로, 디지털 피규어라고 해서 거부감을 느끼거나 다르게 대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실제 피규어는 회사가 도산해도 실물이 남는다. 반면 디지털 피규어는 그런 부분에서 취약할 것 같다. 국내에서는 혹시라도 홀로모델이 도산할 경우 어떻게 될지 걱정하는 의견이 많다.

영속성 문제는 전자책(e북)이나 온라인 게임처럼 디지털 서비스가 가진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서비스를 종료하면 그대로 끝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아직 명확한 해법은 없는 것 같다. 다만, 그렇다고 우리가 대충 서비스를 하겠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유저들이 가진 그런 걱정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으며, 우리로서도 어떻게 해야 유저들의 그런 걱정을 덜어낼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현시점에서는 최대한 영속적인 서비스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스마트폰이나 홀로모델링크에 디지털 피규어를 다운로드받았다면 기기를 버리지 않는 한 회사가 없어져도 콘텐츠를 계속 즐길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이건 기술적인 가능성일 뿐이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실물 피규어와의 차별점으로 캐릭터와의 상호작용 요소를 넣어도 좋을 것 같다.

AR 글래스를 이용한 상호작용 요소를 넣으면 몰입감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IP 판권사와의 협의가 필요해서 우리가 원한다고 바로 넣기는 힘들다는 점 이해 바란다. 가능하다면 모든 피규어에 상호작용을 넣고 싶지만, 판권사 정책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접근할 계획이다.





한국 진출을 결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양 국가의 문화가 시너지를 낼 거라고 판단했다. 한국은 K팝 아티스트 등 훌륭한 IP를 많이 보유하고 있지 않나. 일본에서도 K팝 디지털 피규어 수요가 꽤 있고, 동시에 한국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만큼 그 부분에 대한 수요가 클 거라 본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좋은 IP와 협업해서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게 목표다.


실물 피규어와 디지털 피규어를 결합할 계획은 없나. 예를 들어 실물 피규어 안에 홀로모델 NFC를 넣는다면 영속성 관련 약점도 사라질 텐데.

당연히 고려하고 있다. 아직은 없지만 실물 피규어에 NFC 칩을 부착하여 디지털 피규어도 함께 소장할 수 있는 형태 등 온오프라인을 잇는 모델을 검토 중이다.


앞으로의 계획과 한국 유저들을 위해 한마디 부탁한다.

구겐카라는 사명 그대로 새로운 미래를 계속 구현해나갈 계획이다. 아직 디지털 피규어가 생소하겠지만, 이 생소함이 유저들에게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홀로모델의 목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유저들의 아이디어와 결합해 그 영역을 더욱 확대하는 게 목표다. 그 시작으로 앱 기능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인데, 추후에는 앱 내에서 사진을 찍고 바로 SNS에 업로드할 수 있도록 기능을 추가해 유저들이 더 쉽게 즐길 수 있게 하겠다.

한국 시장에는 초기 5개 IP를 시작으로 일본의 인기 IP들을 적극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며, 오프라인 이벤트 등을 통해 유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한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