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C26] 120명에서 25명으로 - 아크 레이더스의 '리셋' 성공 신화

게임뉴스 | 김규만 기자 | 댓글: 3개 |


▲ 카이오 브라가(Caio Braga) 엠바크 스튜디오 프로덕션 디렉터

GDC 2026 셋째 날, 엠바크 스튜디오(Embark Studios)의 프로덕션 디렉터 카이오 브라가(Caio Braga)가 아크 레이더스(ARC Raiders) 개발 7년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기술적으로 작동하고 비주얼도 훌륭하지만 재미가 없었던 게임을 어떻게 구제했는가. 그것이 이번 강연의 핵심이었다.

브라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듀서'로 미국 드라마 '테드 라소'의 주인공을 꼽으며 강연을 시작했다. "내가 이것저것 세세하게 말할 순 없어. 여러분 스스로 선택하게 만들 것이다." 그는 이 말이 엠바크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방식의 핵심이라고 했다.



▲ 강연을 시작하며 보여준 테드 라소의 격언(?)

회사에 들어왔는데, 게임이 뭔지 아무도 몰랐다




▲저건 새야, 저건 비행기야, 아니 저건...!

아크 레이더스는 당초 코옵 기반 무료 플레이 게임으로 시작됐다. 브라가가 엠바크에 합류한 2020년, 개발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팀원에게 게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마다 대답이 달랐다.

"배틀로얄 vs 아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코옵 기반 완다와 거상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히어로 슈터라는 사람도 있었다. 세션 기반 레이드라는 말도 자주 나왔다. 코옵 소울류(어려운 기계와 싸우는)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보스를 향해 달리는 레이싱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각자가 생각하는 게임이 달랐던 만큼 플레이테스트도 혼란스러웠다. 무기 팀이 적을 버터처럼 녹이는 테스트를 진행하면 다음 날 AI 팀이 무기를 무력화시키는 수준으로 적 강도를 올렸다. 콘텐츠 팀이 UI를 최소화한 몰입형 버전을 내놓으면 UX 팀이 화면을 UI로 가득 채운 버전을 냈다. 그는 "매일 다른 게임 다섯, 여섯 개를 번갈아 플레이하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게임이 재미없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기




▲ 기반은 좋았지만, 현재 단계가 '재미없다는' 것은 인정해야 했다

두 번의 방향 전환이 실패한 뒤, 팀 내부에서는 여전히 게임이 생각보다 더 깊고 재미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브라가는 이 믿음을 데이터로 깨야 했다.

팀은 UXR 담당자를 투입해 외부 플레이어의 반응과 내부 평가를 비교했다. "시스템이 배우면서 보람을 느낄 만큼 깊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크 레이더스 개발팀 과반수는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외부 플레이어는 반대였다. "숙련하고 싶은 게임인가"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겁이 났다. 인정하기 두려웠다. 하지만 게임이 가끔만 재미있었고, 더 나은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했다"고 말했다.


120명에서 25명으로, 완전한 '리셋'




▲ 약 90명이 넘는 인원이 축소되는 과정과 함께한 '리셋'

3년간의 개발과 두 번의 실패한 피벗 끝에, 엠바크는 '리셋'을 결정했다. 이 시점에 게임이 취소됐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엠바크를 소유한 넥슨과의 파트너십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지속적인 소통 덕분이었다고 브라가는 말했다. "계속 대화했다. 그들은 한 번 더 기회를 줬다"

팀 규모는 120명에서 25명으로 축소됐다. 강제된 집중이었다.

"25명으로 내려가면 이미 좋은 것을 더 좋게 다듬을 여유가 없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복도를 뛰어다니며 아이디어를 가져올 때마다 나는 따분한 프로듀서 역할을 했다. '그게 지금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건가요?' 라고 하며... 아이디어가 훌륭해도 현재 해결해야 할 문제와 관계없으면 일단 보류했다."

동시에 이 시기에 엠바크의 PVP 경험이 강점으로 부각됐다. 많은 구성원이 PVP 게임 경험자였고, 익스트랙션 장르로의 전환을 통해 그 강점을 살릴 수 있었다.


방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주는 것, '기둥'과 '의도'





25명 체제에서 팀이 채택한 첫 번째 변화는 '기둥(pillar)'과 '의도(intent)' 중심의 소통 방식이었다.

아크 레이더스의 네 가지 핵심 기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높은 판돈(high stakes).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고위험·고보상 구조다. 둘째, 선택과 주도권(choice and agency). PVP든 PVE든 롤플레이든, 플레이어가 방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충실도와 깊이(fidelity and depth)는 몰입감을 뜻한다. 넷째, 접근성(accessibility)은 복잡한 시스템을 더 많은 플레이어가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브라가는 자동 재장전(auto-reload) 시스템을 둘러싼 논의를 예로 들었다. "재장전을 없애자"는 지시 대신 "조작이 몰입감 있으면서도 접근하기 쉬워야 한다"는 기둥을 제시했다. 그 결과 한 AI 애니메이터가 스스로 해결책을 내놓았다. 재장전 버튼을 누르면 빠른 재장전이 되고, 탄창이 비면 무기가 걸리는(jam) 방식이었다. 선택권이 있는 재장전, UI 없이 물리적 피드백만으로 전달되는 상태는 몰입감과 접근성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의도치 않게 '높은 판돈' 필라까지 충족됐다. 상대를 맞혔을 때 숫자 대신 연기와 피가 보이는 것은, 저 코너에 있는 플레이어의 체력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정보의 불확실성이 긴장감을 만들었다.


데이터, 그리고 검증 - "내 취향이 아니다"는 답이 될 수 없다




▲ 데이터 - 우선순위 - 문제 해결의 순환 속에서 아크 레이더스의 '리셋'은 차근차근 진행됐다

두 번째 변화는 데이터 팀을 기능 팀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데이터를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않았지만, 데이터가 문제의 위치를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했다.

브라가는 '3일 단위 버스트(3-day burst)' 방식을 설명했다. 1일차에는 팀 전체가 문제를 정의하고 더 작은 단위로 분해한다. 가령 "AI가 싸울 가치가 없다"는 문제는 "보상이 부족한가", "전투 자체가 재미없는가"로 나뉜다. 2일차에는 전 팀원이 솔루션을 브레인스토밍한다. 3일차에는 디렉션과 함께 우선순위를 정하고 실행으로 넘어간다.

우선순위 바구니는 세 단계로 구성됐다. 첫 바구니에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상위 3개 문제를 담고, 두 번째는 여력이 생기면 개선할 상위 10개를 담는다. 마지막 바구니에는 브라가가 "이미 충분히 좋다"고 판단해 그냥 두는 것들이었다. 그는 "아트 디렉터가 환경이 더 좋아져야 한다고 오면, 데이터를 보여주며 말한다. 환경은 우리가 가장 잘하는 부분 중 하나다. 그 인력은 다른 곳에 써라"고 조언하곤 했다.

이 구조는 주관적 논쟁을 줄였다. "내가 이 솔루션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지금 내 플레이테스트에서 안 좋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실제로 문제가 있는 것인가" 그 판단을 데이터가 대신했다.


검증 사례 1: "PVP가 싫다"는 피드백의 실체




▲ 데이터는 거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 때로는 불만족의 원인까지도

리셋 직후 첫 번째 외부 테스트에서 PVP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팀 일부에서는 PVP 자체를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데이터 팀이 제동을 걸었다. "문제는 PVP가 아니다. 무기 밸런싱과 PVP 피드백, 그리고 솔로 플레이어가 스쿼드를 만났을 때 일방적으로 패배하는 상황이다." 세 가지 구체적 문제가 확인됐다.

매치메이킹 개선 논의에서 UX 팀은 솔로와 스쿼드를 분리하는 버튼을 별도로 두는 것에 반대했다. "접근성 측면에서 플레이 버튼은 하나여야 한다." 버튼은 하나로 유지하되, 백엔드에서 소프트 스플릿으로 솔로는 솔로끼리, 스쿼드는 스쿼드끼리 매칭되도록 설계했다. 높은 판돈이라는 기둥도 지켜졌다. 플레이어는 코너를 돌았을 때 누구를 만날지 여전히 모르니까.


검증 사례 2: 루팅이 재미가 없는데요




▲ 전리품의 '쓸모'를 높이는 방식으로 루팅의 재미를 더한 과정

아크 레이더스에서 플레이어가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루팅이다. 그런데 첫 외부 테스트에서 루팅 만족도는 기대치 3점 대비 1.4점이 나왔다. 두 번째 테스트에서도 목표치를 밑돌았다.

근본 원인은 획득물의 목적 불명확과 낮은 보상감이었다. 팀이 택한 방향은 루팅에 실질적 유용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천 조각은 조금이나마 회복에 쓸 수 있게 됐다. 고무 오리 인형은 아크를 유인하는 아이템이 됐다. 재료를 직접 쓸 것인가, 더 좋은 아이템 제작에 넣을 것인가. 선택의 폭이 생기자 루팅에 의미가 붙었다.


검증 사례 3: 야간 습격 더 어둡게 해달라니까요




▲ 그러다 보니 이제는 팀원들이 먼저 의도를 묻게 됐다고

출시 3주 전 진행한 서버 슬램 테스트, 처음으로 야간 습격 모드를 도입했다. 고위험·고보상이 컨셉이었지만 플레이테스트에서 그 느낌이 전달되지 않았다. 브라가는 팀 슬랙 채널에 단 한 줄을 남겼다. "야간 습격을 더 어둡게 만들죠?"

팀의 반응은 날카로웠다. "어둡게 만들 방법은 너무 많은데, 의도가 뭔데요. 데이터가 있나요?" 데이터 팀과 함께 앉아 확인하니, 플레이어들이 더 나은 보상을 얻고 있었지만 PVP 및 PVE 교전 위험도는 일반 레이드와 동일했다.

실제 적용된 핵심 변화는 단순히 화면을 어둡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중거리 가시성을 제한하는 안개를 써서 정보를 줄이는 방식이었다. 충분히 짙어질 때까지 반복 검증했고, 위험 체감과 플레이어 만족도 모두 올라갔다.

브라가는 "그날 이후 팀은 이런 요청이 오면 먼저 의도와 데이터부터 묻는다. 그게 지금의 우리 방식이 됐다"고 덧붙였다.


25명의 개발진이 증명한 것들





브라가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리셋 시기가 남긴 교훈 세 가지를 정리했다.

의도가 정렬을 만든다. 모두가 같은 문제를 향하면, 간접적으로 기여하더라도 더 나은 결과가 나온다. 명확함이 통제를 이긴다. 팀이 목표를 알면 방법은 그들이 더 잘 찾으니까. 데이터는 우리를 정직하게 만든다. 새 적 유형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와도 데이터가 기존 적을 먼저 고치라고 하면, 그쪽이 더 좋은 결과를 낼 것이다.

끝으로 그는 "25명이었던 그 시절, 자율성과 공유된 목표가 비로소 빛을 발했다. 규모가 작아서 가능했다기보다, 집중이 강제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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