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좀비 아포칼립스물로 주목을 받았던 '낙원'은 그해 말 프리 알파 테스트에서 한국식 아포칼립스하면 떠오르는 공식을 실감나게 풀어낸 모습을 보였다. 통상 좀비 아포칼립스하면 총을 떠올리지만, 총기류를 구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춰 갖가지 실생활에 쓰는 장비들로 근접전을 벌이는 양상으로 구성한 것도 눈에 띄었다. 여기에 좀비들이 조금만 많아져도 버거운 일반인들의 생존을 그려내면서 사실적인 좀비 아포칼립스 익스트랙션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게끔 했다.
그 뒤 약 2년도 더 지난 지금, '낙원'은 그 기조를 고집스럽게 이어가고 있었다. 이와 함께 게임적 허용을 조금씩 갖춰가면서 출시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소시민의 시선으로 담아낸 좀비 아포칼립스 내러티브
타르코프 등 익스트랙션 게임이 인기를 끈 이후, 여러 익스트랙션 신작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차별화된 포인트를 제시하지 못하고 하드코어하다는 장르 특유의 단점만 부각된 채 밀려난 작품도 부지기수였다. 특히 익스트랙션 장르는 로그라이크처럼 까딱 한 번 죽으면 다시 복구할 수 없는 손실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만큼, 그 상실감을 상쇄할 무언가가 주어지지 않으면 자연스레 이탈하게 되는 맹점이 있었다.
그런 맹점이 드러난 이후 여러 신작들이 이 부분을 완화해서 유저들의 리텐션을 높이고자 했다. '낙원'의 알파 테스트에서도 그러한 추세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다만 '낙원'은 조금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대체로 후발주자로 나온 익스트랙션이 파밍과 생존 그리고 전투라는 게임플레이의 코어에 좀 더 집중한 반면, '낙원'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게임의 제목인 '낙원'은 주로 탐사를 나가게 되는 종로 낙원상가 일대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기도 하지만, 감염 확산을 막아낸 작중 안전 지대를 일컫는 말이다. 튜토리얼에서 유저는 '홍수경'이라는 인물이 되어 낙원에 들어가기 위해 브로커와 탐사 계약을 맺고 좀비로 가득한 낙원상가 일대를 탐사하게 된다. 기본적인 조작법과 전투법을 익히면서 흐름을 파악한 뒤 가까스로 탐사를 마치고 탈출한 수경은 출구에 있던 좀비에게 물려서 감염, 결국 처분된다. 그리고 유저는 같은 출구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또다른 인물이 되어서 브로커로부터 시민증을 받고, 브로커의 부하가 되어서 시민 센터에서 내려오는 탐사 의뢰를 매번 떠나는 신세가 된다.
이러한 일련의 내러티브는 그간 한국형 좀비 영화 혹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자주 나온 만큼 친숙하게 느껴진다. 당장에 브로커부터가 족발 아니 우족으로 사람 몇 명은 죽여봤을 법한 비주얼이고, 실제로도 사람을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뒤에 무자비하게 쳐내기 일쑤다. 그러한 만행을 당한 가족들의 복수를 꿈꾸는 NPC들의 이야기부터 시민센터에서 내려오는 각종 위험도 높은 임무 중 알게 되는 여러 비밀까지, 그간 우리나라 영화를 보면서 익숙해진 내러티브들이 이어진다.



어찌 보면 클리셰로 폄하할 수 있겠지만,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더군다나 전투 파트에서 설명하겠지만, 유저의 분신인 주인공은 마석도나 윤상화 같은 인간병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에서 소시민이 부당한 일에 휘말리면서도 어찌저찌 생존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줘서 동질감을 느끼기 쉬웠다. 이를 통해 뻔히 아는 내러티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한 설계가 눈에 띄었다.
게임플레이 측면에서도 리텐션을 높이기 위한 시도도 엿보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익스트랙션 장르는 죽을 때마다 그간 파밍했던 것이 무로 돌아가는 만큼, 연달아 죽었을 때 스트레스가 크다. PVP와 PVE가 합쳐진 만큼 실력이 아니라 운이 나빠서 죽을 확률도 있다. 이런 리스크를 극복하고 값진 물자를 탈취해서 탈출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죽어서 매번 잃기만 하면 재미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낙원'은 탈출에 실패해도 탐사 시작 때 소지품의 가치를 어느 정도 마일리지로 환산해서 지급, 마일리지로 탐사에 필요한 물자를 다시금 확보할 수 있게끔 했다. 그렇게 해서 상실감을 완화하고, 다시 탐사에 나서도록 유도했다.



스킬이 있어도 소시민적인, 그래서 더 조심하게 되는 전투

위험 구역에서 여러 가지 값나가는 물건을 획득한 뒤, 위험 요소들을 피해서 탈출하는 과정 자체는 '낙원'도 여타 익스트랙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전투가 차지하는 비중과, 이를 다루는 방식이 차별화 포인트였다.
'낙원'에서 유저는 지극히 소시민적인 인물이다. 튜토리얼 때부터 좀비가 두어 명 달려들면 상대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컨트롤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가 그렇다. 소울라이크처럼 스태미나를 소모하면서 공격과 방어를 해야 하는데 그 스태미나 총량과 소모량 그리고 회복량이 소울라이크의 전사들보다 낮고 무기 위력도 낮은 편이다. 그러니 무턱대고 좀비 사냥에 나섰다간 오히려 좀비들에게 뜯어먹히거나 다른 유저들에게 기습을 당해서 눕기 십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유저가 좀비를 아예 못 상대하는 건 아니었다. 좀비들은 대체로 소리에 민감한 대신, 시력이 상당히 좋지 않기 때문에 뒤나 옆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간 뒤 F키로 단번에 사살할 수도 있었다. 혹은 빈병이나 돌을 던져서 주의를 끈 뒤, 우회해서 돌아가는 방법도 있었다.
이러한 '낙원'의 구성은 그간 어느 정도 전투를 감수하면서 들어가는 익스트랙션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줬다. 오리걸음으로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면서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여야만 했고, 전투도 최대한 소음을 유발하지 않게끔 주변을 살피면서 휘두르게 됐다. 실제로 첫 판에 멋도 모르고 좀비에게 벽돌망치를 휘두르다가 차를 강타했는데, 도난 방지음 때문에 주변에 있던 좀비들이 그 소리를 듣고 죄다 달려들어서 그대로 쓰러졌었다.

혹은 이를 역이용한 전법도 '낙원'만의 묘미였다. 상대하기 버거운 적과 마주치면 일부러 차량을 치도록 유도, 좀비를 불러와서 난전을 유도한 뒤 도주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혹은 다른 유저들을 미리 보고서 그 인근에 병이나 소음을 유발하는 각종 도구들을 투척해 좀비들을 유도, 정신 없이 싸우고 있는 사이에 뒤를 쳐서 노획하는 맛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인 만큼 '낙원'에서는 여타 익스트랙션처럼 총이 활약하기는 어려웠다. 종로 일대를 무대로 한 만큼, 총기를 구하는 것부터 어렵지만 막상 구해도 소음 때문에 좀비들이 몰려오기 십상이었다. 심지어 프리 알파 때와 달리 이번 테스트에서는 탈출 후 총기는 시민 센터에서 압수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써먹을 수가 없었다. 물론 총기가 구하기 어려운 만큼, 그에 걸맞는 보상은 지급하지만 좀비를 총으로 쏘며 무쌍하는 구상은 어떻게 해도 나오기 어려웠다.


이처럼 조심스럽게 가면서 물자를 확보하고 탈출하는 과정이 처음에는 신선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를 반복하다 보면 지루해지기 쉬웠다. 은밀 기동 후 암살하거나 소음 유발 후 도주나 기습이라는 단조로운 패턴이 계속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테스트에서는 다양한 스킬을 추가해서 변주를 주었다. 소시민적인 전투를 언급하다가 갑자기 스킬이라고 하니 결이 안 맞아보이지만, '낙원'의 스킬들은 게임의 성격을 완전히 뒤바꿀 정도로 위력이 크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덫이나 로프 걸어 넘어뜨리기, 연막, 은신 등 위험한 상황을 탈출하고 반격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최후의 수단에 가깝게 설계가 되어 있었다. 혹은 플레이어끼리 전투에서 그저 거리재기와 소음 유발로 이어지는 단조로운 패턴을 벗어나, 조금 더 다양한 수단으로 싸우게끔 준비한 장치로 봐도 무방했다. 물론 박스에 숨기처럼 유명 게임을 오마주한 스킬들은 다소 결이 달라서 의아하게 보일 수는 있긴 하다. 그러나 스킬이 있다고 해서 양상이 바뀐 건 아닌 만큼, 그간 탈출하며 얻은 경험치로 여러 가지를 시도하며 전투도 벌여보되 어디까지나 일반인이라는 걸 강조하는 기조는 변함이 없었다.




아직 알파임에도 특유의 색 보여준 익스트랙션, '낙원'

국내 게이머에게 친숙한 공간을 말세적으로 색다르게 담아낸 작품인 만큼, '낙원'에 처음 들어간 순간부터 반가움과 친숙함 그리고 이색적인 느낌을 곧바로 받을 것이다. 처음 탐색을 나서는 종로 남부의 낙원상가 일대부터 어느 정도 시민 등급이 올라가면 해금되는 종로 북부, 그리고 낙원으로 지칭되는 여의도 인근의 광경은 그만큼 생생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을 정밀하게, 낯설게 그려낸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투나 탐색, 그리고 내러티브도 소시민적인 부분에 더 포커스를 맞추면서 신중하게 플레이할 수밖에 없는 특유의 무드를 만들어낸 것도 인상적이었다. 조금 과장을 섞어서 종로 한복판에 좀비 아포칼립스가 펼쳐졌다면, 주변에 널브러진 물건 아무거나 들고서 그렇게 조심스럽게 나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 느린 템포가 쭉 이어지면 답답하기 때문에 템포를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들도 눈에 띄었다. 대체로 위험 구간이 아닌 건물 안에도 나름 쓸만한 물자들이 많아서 로우 리스크 미들 리턴하기가 좋았는데, 그런 구간에는 대체로 비교적 좀비가 적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전투 소음이 발생해도 좀비가 떼거지로 덮쳐와 혼파망이 되는 일은 적었고, 자연히 플레이어들이 보상을 두고서 좀 더 적극적으로 전투를 벌이도록 유도했다.
또한 시스템적으로도 그런 위험을 어느 정도 무릅쓰게끔 설계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포만감은 목요일에만 나오는 배급이나 탐사 구역에서 얻는 음식들로만 채울 수 있는데, 포만감을 확실히 채울 만한 음식이나 재료들은 대체로 건물 안에 있었다. 포만감이 떨어져서 배고픔 상태가 되면 인벤토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자연히 파밍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한두 번은 위험을 감수하게 됐다.




이러한 큰 그림이 파악되는 설계는 인상적이었지만, '낙원'이 갈 길은 조금 더 남아있었다. 우선 UI/UX의 편의성과 시인성은 다소 애매했다. 전투 화면은 프리 알파 대비 정보가 확실히 드러났지만, 지도는 이전 대비 오히려 더 불명확하게 표기되어 있어 경로를 찾기가 힘들었다. 또한 듀오에서 음성 채팅이 안 될 때를 대비한 핑 시스템도 기초적인 위치 지정 정도만 되어 있었고, 또한 게임이 끝난 뒤 파티 탈퇴 같은 기능도 바로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다만 이런 세세한 부분들은 아직 알파 단계인 만큼, 테스트 이후 피드백을 거쳐서 충분히 개선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지도 관련 사항은 테스트 중간에도 조금씩 피드백을 반영해 어느 정도 개선이 된 상태고, 그래서 첫날 대비 훨씬 빠르게 진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소소한 불편함들이 어찌 보면, 소시민들이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의 불합리함을 절절히 겪는 그런 느낌이기도 했다. 그만큼 '낙원'은 당장 서울 한복판이 좀비 아포칼립스 상태가 된다면? 이라는 가정을 나름의 방식으로 잘 풀어냈다. 그 특유의 색은 알파 단계에서도 확실히 보여준 만큼, 피드백을 거친 그 다음에는 과연 어떤 경험을 제공할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