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충격의 화제작 '토막'이 25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넷마블몬스터는 게임 출시 25주년을 기념해 육성 시뮬레이션 '토막: 지구를 지켜라 리제네레이션'을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통해 지난 4월 2일 출시했다. 4월 17일 0시까지 구매할 경우 비용 없이 라이브러리에 게임을 등록할 수 있다.
'토막'은 2001년 씨드나인엔터테인먼트(현 넷마블몬스터)가 개발한 PC 기반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인간에게 희망을 품은 유일한 신인 여신 에비앙이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화분에 머리만 심긴 채 인간에게 맡겨진다는 독특한 콘셉트를 지녔다.
발매 당시 연예기획사 등 여러 방향으로 사업을 계획했던 터라 사명이 씨드나인엔터테인먼트였고, 전체 이용가 판정을 받은 이 기이한 게임은 2003년 대한민국 게임대상 우수상을 받으며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과거 인디 개발사의 대표와 소니의 서드파티 담당자로 만나 20여 년을 함께한 넷마블몬스터 김건 대표와 에픽게임즈코리아 박성철 대표가 '토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의 인연은 한국 콘솔 게임 시장의 태동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한국 론칭을 위해 입사한 패기 넘치는 청년과, 고등학생 시절부터 게임 개발에 뛰어들었던 소년은 어느덧 업계의 중역이 됐다.
▲ (왼쪽부터) 에픽게임즈 코리아 박성철 대표, 넷마블몬스터 김건 대표 박성철 대표: 우리 만난 지 진짜 오래됐지. 내가 2009년에 에픽게임즈로 갔는데, 너도 계속 대표로 17년째 갇혀 있네. 넷마블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계열사 사장이 김건 대표니까 안 놔주는 거 아니야? 주식회사가 아니라서 주주총회 재선임 같은 것도 없을 테고.
김건 대표: 아니에요. 저도 얼마 전에 무사히 재계약을 마쳤기 때문에 이렇게 여유롭게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겁니다(웃음). 방준혁 의장님 환갑잔치까지는 해드려야 하는데, 살아남으려고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먼저, 형이 소니에 입사한 일부터 말해줘야 할 거 같은데요?
박성철: 옛날로 돌아가면, 대학 졸업할 때 팀플로 플레이스테이션 글로벌 성공 분석을 했었어. 그걸 바탕으로 한국 유통 정책, 가격 정책을 사장인 양 쫙 써서 집에 있는 플스 박스에 적힌 고객 센터 주소로 보냈지.
김건: 형이 그때 봉투 앞에다가 "너의 상급자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너희 회사에 문제가 될 거다"라고 협박 편지를 썼었죠(웃음).
박성철: 한 6개월 연락이 없길래 한미르(전화번호 검색 사이트)에서 번호를 뒤져 소니 뮤직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어. 그런데 번호 끝을 잘못 눌러서 바로 핵심임원한테 연결된 거야. 거기다 대고 대뜸 "한국 지사 곧 만드실 거죠?"라고 물었더니, 그분이 "그 비밀을 어떻게 알았냐"며 엄청 당황하시더라고. 사실 난 아는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그냥 한 번 찍어본 거였는데 말이야(웃음).
그 통화를 계기로 당시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코리아 창업을 하실 윤여을 대표님으로부터 전화받게 됐지. "뭐 하는 놈인데 SCEK를 알고 있냐, 내일 당장 와보라"는 전화였는데, 바로 간다고 하면 좀 간지가 안 날 것 같아서, 당시에 오락실에서 철권을 하고 있었는데, 굳이 나가서 전화받으면서 바쁜 척 내일은 안되고 며칠 뒤 언제 된다고 했었던 기억이 나네.
그렇게 소니에 면접도 없이 다짜고짜 윤여을 대표님과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창업 사원 1호로 미팅부터 하게 되었다가, 나중에 정식으로 함께하자고 말씀해 주실 때, 옆방에 일본 본사에서 파견 나온 이와이 마코토 상과 쿠니키타 상이 내가 6개월 전에 보냈던 그 두꺼운 이력서 패키지를 들고 앉아 있더라고. 속으로 "아, 이 미친놈이 바로 그놈이구나" 해서, 결국 내가 소니 코리아의 첫 번째 사원으로 입사하게 된 거지. 초반엔 회사 임원분들이 날 일본 본사에서 파견 나온 직원인 줄 알았대. 신입사원이 먼저 뽑혀있을 리가 없으니까.
김건: 저도 고등학교 때 미리내 소프트웨어에 이력서를 보냈었어요. 병역 특례로 뽑아달라고 보냈는데, 어린애가 보냈으니 졸업하고 연락해라 하시더라고요.
박성철: 내가 입사하고 6개월 동안 국내 게임사를 한 200군데 만났는데, 손노리 이원술 대표님이랑 원더스쿼드 서관희 대표님을 첫날 만나서 포장마차에서 소주 마시며 밤새 게임 얘기를 했지. 내가 패키지 게임을 샀던 회사 사장들이랑 일 얘기를 한다니 진짜 좋았어. 그때 원술이 형이 똑똑한 개발자가 있다며 널 소개해 줬지. 지금도 정말 동안이지만 당시에 넌 진짜 고등학생같이 생겨서 되게 어리게 봤어.
"화분에 머리만 있는 게임이라니, 기획 의도가 진짜 특이했어"
박성철: 근데 씨드나인의 첫 메인 게임이었던 '토막', 화분에 머리만 있는 게임이라니 기획 의도가 진짜 특이했어. 난 사실 아수라 백작이나 마징가 Z에 나오는 자기 목을 빼서 들고 다니는 나쁜 놈 콘셉트인가 했거든. 아니면 남자 캐릭터 얼굴은 그리기 싫어서 안 그린거 아니야?
김건: 아이디어를 짜면서 그런 얘기도 나오긴 했어요. 세계관을 짤 때, 사랑이 고갈된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신들에게 사랑의 여신이 "아직 진실한 사랑이 있다"며 증명하겠다고 나서요. 그 여신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을 가졌는데, 순수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몸은 천계에 두고 머리만 화분에 담아 지구로 내려온다는 눈물겨운 설정이었죠.
사실 우리는 이 게임을 정식으로 출시할 생각이 없었어요. 원래는 '브루브루 그루브'라는 리듬 게임(훗날 '알투비트'가 됨)을 만들고 싶었고, 게임 개발 사전 제작 지원금도 받은 상태였거든요. 그 게임을 제대로 만들기 전에 일단 우리 회사가 누군지는 좀 알리자는 목적으로 3개월 만에 데모를 만들어 2000년 연말 카멕스(대한민국게임대전, 지스타의 전신)에 나간 거였어요.
조그만 부스 1개를 빌렸는데, 당시 카멕스의 왕이었던 게임사의 부스 앞을 계속 돌면서 호객을 했죠. 확성기를 들고 "저기 게임사에서 댄서분들 춤출 돈 모아서 저희는 게임 만들었습니다!", "사라져 가는 작은 게임 회사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 게임사에서 그걸 보고 쟤네 뭐지 하고 연락이 오기도 했고요.
'토막'은 원래 3년 동안 화분만 키우는 순수한 육성 시뮬레이션이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프린세스 메이커'나 '도키메키 메모리얼' 같은 연애 시뮬레이션을 좀 섞어보자고 해서 다른 여자도 만날 수 있게 바꿨죠. 그러다 바람을 피우면 지구가 멸망하게 되는 조건들을 넣었는데, 그 바람에 게임성이 급격히 산만해진 건 조금 아쉬워요.
박성철: 그런데도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히트를 쳤잖아. 게다가 신들 이름이 전부 음료수 이름이더라.
김건: 연애 시뮬레이션 파트를 추가해서 정식으로 냈는데, 무료 데모 때만큼 화제가 안 되는 거예요. 한국에서 초도 물량을 천 장 정도 찍었는데 조용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거 안 됐네, 그냥 원래 하려던 리듬 게임이나 하자' 생각했죠. 그런데 제 주변엔 하는 사람이 없는데 갑자기 판매량이 늘어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일본에서 팔리고 있던 거였죠.
아키하바라에 가보니까 한일 전자사전이랑 묶어서 고가에 팔더군요. 한국에서는 1만 5,000원 정도 하는 저가형 게임이었는데, 일본에서는 1만 엔 가까운 가격에 팔리고 있었죠. 속으로 '이걸 그냥 보따리로 내가 직접 팔면 인생이 바뀔 텐데' 싶더라고요(웃음).
마침 일본 퍼블리셔인 선소프트에서 먼저 연락을 주셔서 도쿄 게임쇼에서 만났어요. 거기서 일본에 PC판을 정식으로 다시 내기로 한 거죠. 저희 '토막'이 일본에 진출하고 나서 '라그나로크 온라인'도 일본에 나갔어요. 어떻게 보면 한국 게임의 물꼬를 튼 셈이죠. 당시 일본 팬들이 우리 게임을 좋아해 주셔서 동인지도 정말 많이 나왔습니다. 팬들이 회사로 동인지를 직접 보내주기도 했고요
박성철: 반응이 꽤 뜨거웠나 보네.
김건: 네, 그런데 저희가 사무실 주소를 옮기면서 사명도 '씨드나인'에서 바꾸는 바람에 연락이 끊겼어요. 아마 일본 팬분들은 저희가 망해서 없어진 줄 아실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 스토어에 등록하면서 옛날 씨드나인 로고도 띄우고, 옛날 도메인도 살려뒀어요. 우리 안 죽고 아직 영업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 후 일본 선소프트에서 연락이 와서 정식으로 PC판을 내게 됐죠.
박성철: 일본판은 파스 냄새가 나게 하거나 화분 모양 페트병 뚜껑 굿즈도 줬잖아. 성우도 엄청났고.
김건: 한국판은 아마추어 성우를 모집해서 여의도 오피스텔 저희 집에 다 모여서 녹음했어요. 일본판은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킨게츠 마미, '카레카노'의 에노모토 아츠코 같은 당대 유명 아이돌 성우들을 기용했죠. 킨게츠 마미가 질투의 여신 데자와, 에노모토 아츠코가 사랑의 여신 에비앙을 맡았어요. 나중에 그 여자 성우분을 한국 KBS '게임 천국' 스튜디오에 초청해서 공연도 했는데, 일본 가수가 스튜디오에서 노래 부른 게 처음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박성철: PS2 버전으로도 완전판이 출시되었는데, 한국 개발사 1호 타이틀이었지. 개발자 로열티로 한 5억 원은 받지 않았어?
김건: 토막만 붙잡고 3년 했으니까 아무튼 그걸로 먹고살았죠. 당시 한국에 퍼스트 파티 개발사가 없어서 개발 장비를 빌릴 데가 없었어요. 일본 선소프트가 빌려준 엄청 큰 PC만 한 PS2 장비를 제가 이코노미 타고 핸드캐리로 비행기에 들고 탔죠. 그때 플스를 병렬로 연결하면 슈퍼컴퓨터가 돼서 핵무기를 만든다는 루머가 돌던 때라, 일본을 벗어나면 안 되는 장비를 밀수하듯 가져온 거였어요.
박성철: 그때 쿠타라기 켄 상이 클라우드 컴퓨팅, 그리드 컴퓨팅 떠들던 시절이라 전 국민의 플스가 원기옥처럼 합쳐진다고 다들 믿었었지. 그 시절에 그리드 컴퓨팅을 얘기한 것도 대단하기는 해. 그러고 보면 GP32 론칭 타이틀로 슈팅 게임 '토막 어게인'도 냈었잖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랑 같이 킬러 콘텐츠였고.
김건: 맞아요. 화분 물 빠지는 구멍에서 불이 나면서 날아다니는 게임인데, 유럽에서 꽤 많이 팔렸어요. 그때 GP32를 만든 회사가 구로 공단역에 있어서 다시는 이런 곳에 올 일 없겠다 했는데 지금 구로에 20년째 살고 있네요.
박성철: 아, 그때 SCEK에서 손노리에 8억 원을 투자했던 '소울리스'라는 프로젝트도 기억나.
김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세계관에 데빌메이크라이 같은 숄더뷰 3D 액션 게임이었던가...
▲ "(이원술) 형, 그 게임 뭐였죠?"
방금 원술이 형한테 전화해서 확인해 보니 결국 안 나왔다고 하네요. 아유, 그때 8억 원이 나한테 있었으면 강남 은마아파트를 사고 부자가 됐을 텐데 열받네요(웃음).
박성철: 손노리 측이 내부 사정으로 개발을 포기하고 8억 원을 돌려줬다는 기사가 아직도 남아있어. '악셀 임팩트'도 SCEK 퍼스트 파티로 냈었지.
25년 만에 다시 만난 토막, 왜 이렇게 늦었어요?
김건: 형, 옛날 얘기하니까 불법 복제가 생각나는데, 에픽게임즈는 언리얼 엔진에 왜 DRM(불법 복제 방지 시스템)을 안 걸었어요?
박성철: 원래는 엔진에 걸려고 했었어. 소스 코드를 공개하지 않고 DRM을 걸자는 임원진도 있었는데, 팀 스위니 대표가 절대 안 된다고 해서 소스 코드까지 개방해 버린 거야. 본인 철학이었던 거지.
김건: 와, 진짜 멋있다.
박성철: 에픽게임즈코리아 초기만 해도 넷마블은 언리얼을 안 썼잖아. 그래서 우리가 구로 넷마블 사옥 강당을 빌려서 '언리얼 서밋 웨스트'라고 넷마블 전용 세미나를 3년 넘게 따로 열어줬지. 네가 '마블 퓨처 레볼루션' 등에서 언리얼4를 쓰며 좋은 반응을 얻어 넷마블 전반으로 확산됐어.
김건: 마블 스튜디오랑 협업할 때, 마블 헤드였다가 현재 디즈니 게임 총괄 대표로 간 제이옹이 미국 식당에서 절 알아보고, 퇴사한 디즈니 OB들까지 다 모아서 부대찌개를 먹으면서 대우해 주기도 했어요.
박성철: 드디어 출시 25주년에 맞춰 에픽게임즈 스토어로 '토막 리제네레이션'을 무료 론칭하게 됐잖아. 복원 작업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김건: 서비스 게임은 아무리 오랫동안 유지를 해도 언젠간 종료를 하잖아요. 마치 식당 같은 거죠. 옛날에 어떤 식당 맛있었어, 해도 없어지면 끝이니까요. 근데 제가 만든 유일한 패키지 게임이 토막인데, 나중에 제가 죽을 때쯤 제 이름으로 남는 게임이라 꼭 다시 살리고 싶었어요.
지금 윈도우 11 환경에서 안 돌아가길래 열어봤더니 해상도가 무려 320x240인 거예요. 그래서 AI로 영상을 4배 올리고, 옛날 게임 감성을 살리려고 CRT 모니터 느낌이 나는 필터도 넣으면서 복원 작업을 했죠.
근데 번역이 진짜 지옥이었어요. 이번에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 국어를 지원하는데, 대사 스크립트에 이 말이 누구 대사인지가 안 적혀 있는 거예요. 결국 한국어 자막 자료조차 없어서 저랑 김준 CTO가 옛날 기억을 더듬으며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면서 대사를 다 받아 적어야 했거든요. 도저히 안 들리는 건 AI 음성 인식으로 돌려봤는데, 대뜸 "흑암의 혼돈 속에 조물주가 있었다" 같은 대사가 나오는 거예요.
알고 보니 당시 이 글을 써주신 분이 래퍼셨는데, 어휘력이 엄청나셔서 "빛이 시작되고... 딸은 딸을 낳고 둘은 넷이 되고" 같은 성경 구절 같은 랩 가사가 명대사로 꽉 차 있더라고요. 옛날엔 그냥 스킵하던 대사들을 직접 받아 쓰면서 이게 이렇게 감수성 넘치고 철학적인 게임이었나 하고 새삼 놀랐습니다.
게다가 게임이 너무 어려워서 저희 기존 멤버들도 해피엔딩은커녕 자꾸 지구가 멸망하는 배드 엔딩만 보는 거예요. 여신을 3년 동안 키우는 건데 한 턴에 할 수 있는 게 눈 깜빡이기 운동, 숨 쉬기 운동 같은 것들이거든요. 예를 들어 물을 주면 갈증은 줄어들어야 하는데, 여신의 기분이나 위치에 따라 수치가 맥락 없이 변해서 파라미터 간의 연관 관계 파악이 아예 불가능했어요.
저희가 그 게임을 짤 때 다들 20대 초반 한창 연애할 때였는데, "여자는 진짜 이렇게 어려운 존재다"라는 걸 게임에 절절하게 담고 싶었나 봐요. 하나를 맞춰주면 다른 걸 또 싫어하고, 여신이 삐져 있으면 원래 좋았던 파라미터도 오히려 나쁜 역할을 하게 만들었죠. 도대체 왜 그렇게 무식하게 설계했는지 저도 기억이 안 납니다(웃음). 사내 QA 팀에서도 이런 어려운 게임은 처음 겪는다고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서, 부랴부랴 난이도를 대폭 낮춰서 냈습니다.
박성철: 넷마블몬스터 자체 콜라보로, '몬길: STAR DIVE'랑 '토막'의 크로스 마케팅 계획은 없어? 재밌을 거 같은데.
김건: 사업팀이랑 "몬길 다운로드 오프닝 시간에 토막 연동 어떨까요?" 하고 회의했는데, 몬길 PD가 "안정성 잡느라 새로운 거 안 할 거니까, 하실 거면 직접 하세요"라고 철벽을 치더라고요. 대신 토막 타이틀 화면에 우리의 최신작 몬길 STAR DIVE를 확인하세요라고 아이콘은 넣어뒀습니다.
왜 수많은 플랫폼 중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선택했냐고 묻는 분들도 계시는데, 에픽은 진짜 게임 개발자가 만든 스토어라는 느낌이 들어요. 에픽의 수수료 정책 덕분에 넷마블을 비롯한 한국 게임사들이 혜택을 입고 있기도 하고요. 에픽이 총대를 메고 많은 비용을 쓰면서 생태계를 만들어주셨잖아요.
이제 저희도 에픽게임즈와 공동 운명체니까 스토어가 더 잘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스토어 팀이 진짜 매일 핫라인으로 일정이 말이 안 되는데도 스크린샷 보내라, 우리가 해줄게라며 거짓말처럼 도와주고 계시기도 하고요.
박성철: 방 고문님은 토막 재출시를 흔쾌히 허락해 주셨어?
김건: 네, 당연하죠. 옛날 고속버스터미널 사옥 시절에 이원술 대표님이 너 좀 보자고 하시는 분이 계시다며 방준혁 고문님을 처음 뵀을 때가 생각나네요. 당시 절 부르시길래 속으로 혹시 우리 회사를 인수하시려고 부르셨나 하고 바짝 긴장해서 갔거든요. 내심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비싸게 불러야지 할 생각도 했고요(웃음).
그런데 영입 같은 무거운 말씀은 전혀 안 하시고, 어린 나이에 회사를 이끄는 절 신기해하시며 "이런 게임은 어때?" 하시면서 순수하게 게임 아이디어만 한참 쏟아내셨어요. 그분이 워낙 창발적이고 생각이 많으신 분이라 웹 게임부터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된 거죠.
이번에 스토어 출시는 회사 안에서도 의장님 정도밖에 모르셨는데, 제가 '토막'을 다시 내겠다고 허락을 받을 때 의장님께서 걱정을 좀 하셨어요. "요즘 애들은 이게 25년 전 옛날 게임인지 모를 텐데, 자칫 신작 '몬길: STAR DIVE'의 퀄리티까지 이런 수준인 줄 알고 나쁜 평가를 주면 어떡하냐"는 우려였죠.
하지만 글로벌 시장, 특히 북미 같은 곳은 우리를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무플보단 악플이 낫다고, 어떻게든 알려질 수 있는 계기라면 해보고 싶었습니다. 심지어 게임 시작할 때 옛날 '씨드나인' 로고가 뜨게 만들고, 잊혔던 옛날 도메인도 다시 살려뒀어요. 우리 아직 안 죽고 영업하고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이번에 게임을 테스트하면서 여신 에비앙과 이어지는 진엔딩을 보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울컥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여신이 지상으로 내려오는데 시간이 3년이나 걸린 거예요. 알고 보니 신계의 하루가 인간계 1년이라, 사랑의 여신 자리를 질투의 여신 데자와에게 3일 동안 인수인계하느라 늦은 거였죠. 그래서 그 이후로 인류의 모든 사랑은 질투와 함께 있게 되었다는 철학적인 내용입니다. 우주를 관장하는 신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한다는 마지막 대사가 이렇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데... 하지만 꼭 다시 만날 거라 믿고 있었어요."
25년 만에 제 이름을 단 패키지 게임을 다시 세상에 내놓으며 듣는 이 대사가 꼭 저에게 하는 말 같았습니다.
박성철: 에픽스토어도 넷마블의 신작과 토막 무료 배포를 통해 서로 좋은 시너지가 났으면 좋겠어. 작년부터 스토어의 서드파티 매출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거든.
예전에 네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중에 은퇴하고 나면 방구석 인디 개발자로 살겠다고 했잖아. 그땐 우리 에픽의 'UEFN(포트나이트 언리얼 에디터)'를 활용해서 1인 개발로 게임을 만들고 플랫폼에 올려봐도 참 재밌을 것 같네.
생각해 보면 옛날에 네가 어릴 때 처음 게임을 만들 때는 딱 네 또래 게이머들을 타깃으로 했었지. 개발자와 유저의 연령대가 비슷하니까 뭘 좋아하는지 취향이 아주 잘 맞았잖아. 그런데 지금 세대 개발자들은 이미 다들 아빠가 되었단 말이지. 실제 게임의 주 소비층인 10대 자녀 세대가 지금 뭘 좋아하고 어떤 감성을 원하는지, 아빠 세대인 개발자들이 정확히 맞추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여.
김건: 맞아요, 그게 요즘 개발사들의 참 큰 딜레마예요. 일반적인 메이저 게임 개발 시스템으로는 기획부터 출시까지 최소 몇 년씩 걸리잖아요. 그런데 요즘 유저들의 유행 소비 속도는 유튜브 쇼츠나 틱톡처럼 너무 빨리 변하고 또 순식간에 사라지니까 개발 타이밍을 잡기가 정말 어렵죠.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 출시할 때쯤이면 이미 유행이 다 지나가 버린 후일 수도 있으니까요.
박성철: 그래서 결국 포트나이트,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처럼 유저들이 직접 생태계 안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UGC(사용자 제작 콘텐츠) 플랫폼이 앞으로 더 뜰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어떤 밈이나 유행이 생기면, 그걸 개발사가 만드는 게 아니라 유저들끼리 그 안에서 바로바로 게임으로 만들어 버리니까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거지.
앞으로는 AI 기술이 더 발전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웹툰 세계관에 원하는 캐릭터와 스토리를 넣고 실시간으로 드라마를 만들어서 친구들과 돌려보는 시대가 곧 올 거야. 게임도 마찬가지로 틱톡 영상 만들듯 누구나 빠르고 쉽게 만들어서 전 세계 유저들과 공유하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하거든.
김건: 제가 28년을 같은 회사에서 일하며 내년이면 벌써 쉰입니다. 한창 슬럼프에 빠져 힘들 땐 형이랑 만나서 "우리 언제 은퇴하냐"며 은퇴 얘기만 줄기차게 했었죠. 그런데 이제는 서로 "어떻게든 계속 살아남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번에 25년 전의 '토막'을 다시 세상에 내놓은 일이 제게는 아주 큰 자극과 계기가 됐어요. 앞으로도 계속 제 가슴을 뛰게 하는 패키지 게임의 꿈을 꾸며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