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은 시리즈의 핵심적인 재미를 경험하기에 가장 접근이 쉬운 타이틀 중 하나다. 오히려 이 게임이야말로 30년 이상 이어오는 프랜차이즈에 발을 들이는 최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 1. 시리즈 넘버링 9편, 하지만 여기서 시작해도 됩니다
이 작품이 시리즈 입문에 최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 게임이 시리즈의 원점인 '라쿤 시티'로 돌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지구적 바이오 테러 사건의 출발점으로 회귀하는 구조 덕분에, 과거 작품을 플레이하지 않은 사람도 자연스레 세계관에 발을 들일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핵심 키워드를 세 가지만 짚어본다.

라쿤 시티

레온 S. 케네디

그레이스 애쉬크로프트
이 세 가지만 알고 나면,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의 문턱은 사실상 없어진다. 게임 자체가 과거를 되짚어가는 이야기인 만큼,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리즈의 맥락을 흡수하게 된다.
🎖️ 2. '바이오하자드'가 만든 우리의 영웅, 레온 S. 케네디의 28년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이 처음 등장했을 때, 약 30년 간 시리즈를 즐겨온 팬들을 열광하게 했던 건 단 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리즈의 최전성기부터 함께한 주인공, 레온이다. 이 남자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그의 여정이 이번 작품에 어떻게 녹아있는지를 알고 나면, '레퀴엠'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누구보다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레온의 시작은 1998년 '바이오하자드 2'였다. 라쿤 시티 경찰서에 첫 출근한 날(밤 늦게 출근한 이유는 전날 실연의 상처로 과음을 했기 때문이다), 도시는 이미 지옥이 되어 있었다. 경험도 장비도 없던 그는, 좀비가 들끓는 경찰서와 하수도를 총알 한 발씩 아끼며 빠져나가야 했다. 이 때 레온은 순수한 서바이벌 호러 게임의 주인공이었다.

6년 뒤 출시된 '바이오하자드4'에서, 레온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대통령의 부탁으로 딸 '애슐리'를 구하기 위해 스페인의 외딴 마을에 홀로 투입된다. 해당 작품은 '바이오하자드' 프랜차이즈의 장르 자체를 바꿨다. 고정 카메라 대신 숄더 뷰 시점을 도입했고, 좀비 대신 기생충에 감염된 '가나도'가 적으로 등장했다.
레온은 적들의 무릎에 총알을 심고, 저먼 수플렉스로 허리를 접으며 '바이오하자드'에 새로운 액션 DNA를 주입했다. 총알 한 발이 아까워 도망다니던 신참 경찰관은, 어느새 인간 병기가 되어 있었다.

그 뒤 레온은 '바이오하자드6'에서 또 다시 등장해 미국 본토에서 벌어진 대규모 바이오 테러에 맞선다. 전작으로 다져진 대통령과의 개인적 신뢰 관계, 조직 내 갈등, 글로벌 스케일로 퍼져나가는 위기가 한 데 뒤엉켰지만, 솔직히 '바이오하자드6'는 많은 팬들의 최애 작품으로 뽑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나친 액션으로의 편중은 오히려 시리즈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바이오하자드' 프랜차이즈는 다시 한 번 원점으로 돌아와, '공포' 요소를 한껏 강조한 7편을 출시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시리즈 사상 가장 무서운 작품이라 평했고, 이는 아마도 개발진이 의도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이후 8편에서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빌런을 앞세워 공포와 액션을 절묘하게 조합한 바이오하자드의 '완성형'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 레온의 모습은 없었다.
그리고 '바이오하자드 레퀴엠'. 신참 경찰관이었던 청년은 어느덧 산전수전을 다 겪은 중년의 베테랑이 됐다. 28년 만에 다시 밟는 라쿤 시티의 폐허 위에서, 레온은 그동안 쌓아온 모든 전투 경험을 쏟아붓는다. 그 결과가 시리즈 역사상 가장 호쾌하고, 또 다채로운 액션 시스템이다.

🪓 3. 도끼는 훌륭한 공격 수단이자 방어 수단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에서 레온의 전투 파트가 기분 좋은 이유는 꽤나 명확하다. 하나의 근접 무기를 축으로 여러 액션(사격, 패링, 처형, 무기 탈취 등)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액션 루프 때문이다.
그 축은 바로 레온이 기본으로 소지하는 손도끼(토마호크)가 담당했다. 바이오하자드4(RE4)에서 나이프가 쳐내기나 기본 공격을 위한 핵심 도구였다면, '레퀴엠'의 토마호크는 그 역할을 물려받되 한층 공격적으로 변모했다. 일반 공격과 강공격이 나뉘고, 사물함을 뜯어내는 도구로도 쓰이며, 무엇보다 전투 시스템의 핵심인 패링을 담당한다.
적의 공격이 닿는 순간 레온이 정확하게 손도끼를 들어 자세를 취하면, 거의 어떤 공격이든 손쉽게 쳐낼 수 있다. RE4 리메이크의 단검이 소모성이었던 것과 달리, 손도끼는 내구도가 떨어져도 언제든 숫돌을 사용해 복구할 수 있다. 사실상,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쳐내기가 가능하다는 뜻.

'거의 어떤 공격이든 쳐낼 수 있다'는 것은 패리의 적용 범위가 상당히 파격적이라는 의미다. 좀비의 맨손 공격은 물론이고 휘두르는 무기, 투척물까지 쳐낼 수 있고, 심지어는 RPG-7 로켓런처의 발사체까지도 튕겨낸다.
출시 직후 커뮤니티에서는 레온이 로켓을 토마호크로 쳐내는 클립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 장면은 '바이오하자드5'에서 크리스 레드필드가 바위를 주먹으로 때리는 것과 비견되는 레퀴엠만의 상징적 순간이 됐다.
도끼를 이용한 카운터 외에도, 특정 조건 안에서 발동되는 '건 카운터' 또한 레퀴엠만의 별미다. 적의 체력이 일정 이하일 때, 근접 공격을 해 오는 적 앞에서 총을 조준하면 영화 '존 윅'이 생각나는 멋진 액션으로 적을 처단한다.
물론, RE4에서부터 이어지는 전투의 정석은 그대로 통용된다. 적의 무릎이나 머리를 쏴 비틀거리게 만든 뒤 다가가 근접 공격을 가할 수 있으며, 여기에 지형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처형'연출이 더해졌다. 거대 좀비에게 내려치는 도끼질, 비틀거리는 적에게 작렬하는 발차기, 그리고 스텔스로 접근해 뒤통수를 가격한 뒤 바닥에 내리꽂는 암살까지. 전투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원동력은 이 처형의 손맛에 있다.

한편, '레퀴엠'의 레온은 적이 들고 있던 무기를 빼앗아 사용하거나, 또 던져서 공격할 수도 있다. 전기톱을 든 좀비를 쏴 무기를 떨어뜨린 뒤, 그 전기톱으로 좀비 무리를 소탕하는 식이다. 전투에 즉흥성과 변수를 만들어내는 요소이며, '주어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적을 처치하는' 레온 파트의 설계 철학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결국, 이 모든 액션은 하나의 루프로 연결된다. 사격으로 적을 취약하게 만들고 → 패리로 반격 기회를 만들고 → 처형이나 건 카운터로 마무리하고 → 필요하면 적의 무기를 빼앗아 전세를 뒤집는다. RE4가 정립한 '바이오하자드식 TPS 액션'의 공식을 계승하되, 패리의 범용성과 무기 탈취라는 새 변수를 더해 전투의 선택지를 크게 넓힌 셈이다.

🧬 4. 9편에서 완성된 시리즈 30년의 DNA

기본 루프만으로도 충분히 즐겁지만,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의 레온 액션이 진짜 빛나는 건 이 시스템이 다양한 상황에서 변주될 때다. 보스전, 차량 시퀀스, 그리고 시리즈 30년의 유산이 하나로 뒤섞이는 순간들 말이다.
'레퀴엠'의 보스전은 레온 액션의 정수가 집약된 무대다. 특히 타이런트와의 대결은 일반 전투에서 연습한 패리 메카닉이 보스전에서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설계다. 성공적인 패링만이 반격의 기회를 열어준다. 두 개의 페이즈로 나뉜 최종 보스 빅터 기디언은 매우 '전통적인' 보스전으로, 서로 다른 패턴을 빠르게 숙지해 전투를 이어나가기를 요구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이 과거 시리즈에서 사라졌던 괴물들까지 다시 불러왔다는 점이다. 원작 '바이오하자드2'에는 하수도에서 T-바이러스에 감염된 거대 거미가 등장했지만, 2019년 RE2 리메이크에서는 삭제됐다.


2019년 당시, 프로듀서 칸다 츠요시는 외신 GameRevolution과의 인터뷰에서 "포토리얼리즘 방향으로 전환하면서 과거의 환상적인 크리처를 현대적 그래픽에 맞추는 것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공동 프로듀서 히라바야시 요시아키 역시 사실적인 환경에서 거대 동물이 "정말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같은 이유로 거대 나방과 좀비 까마귀도 함께 삭제되었고, 식물형 B.O.W. '플랜트 43' 역시 크게 변형됐다.
'레퀴엠'은 이렇게 리메이크 과정에서 빠진 구작의 적을 현대적 그래픽과 메커니즘으로 복원해 보스전에 배치했다. 거대 거미뿐 아니라 플랜트 43 계열 보스도 재등장한다. 골수 팬들에게는 반가운 재회이며, 신규 유저에게는 '바이오하자드'가 원래 가지고 있던 B급 공포의 매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이처럼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의 레온 파트를 플레이하다 보면, 시리즈의 역사가 장면 단위로 스며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RE4 리메이크의 나이프 패리가 손도끼 패리로 진화했고, 테트리스만큼 재밌는(?) 가방 정리 시스템은 그대로 가져왔다.
후반부 라쿤 시티에 진입하면 RE2 리메이크의 배경이 28년 뒤의 모습으로 정밀하게 재현되어 있어, 건물과 차량의 위치를 서로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과거작에서 영감을 받은 보스 디자인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요컨대 '레퀴엠'은 시리즈를 몰라도 즐길 수 있지만, 알면 알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이는 게임이다.

🔦 5. 그레이스가 있어 레온이 더 빛난다

레온의 액션이 이토록 통쾌하게 느껴지는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은 두 주인공의 파트가 하나의 스토리 안에서 교차하며, 그 대비가 감정의 진폭을 극대화하는 설계를 택했다.
그레이스 파트는 기본 1인칭 시점의 전통적 서바이벌 호러다. 자원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고, 전투보다 은신과 퍼즐에 의존해야 한다. 적 앞에서 손을 떨고 숨이 가빠지는 그레이스의 반응과 연출은 플레이어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바이오하자드 7'과 RE2의 공포를 직접적으로 계승한 파트라고 할 수 있겠다.
이윽고 레온으로 시점이 전환되는 순간 전혀 다른 게임이 시작된다. 그레이스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적을 레온은 정면에서 도끼로 머리를 쪼개고 샷건으로 날려버린다. 이 전환이 주는 해방감은 단순히 레온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레이스 파트에서 축적된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로운 건 두 캐릭터의 동선이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그레이스가 특정 구역에서 좀비를 처리하면, 나중에 같은 공간을 지나는 레온 파트에서 적이 줄어들고, 반대로 남겨두면 레온이 직접 상대해야 한다. 다회차에서는 이 시스템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플레이도 가능하다.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은 이 대비를 통해 오래된 딜레마, 즉 '바이오하자드는 공포 게임이냐 액션 게임이냐'에 대해 "둘 다"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레이스가 시리즈 초기작의 서바이벌 호러를 담당하고, 레온이 4편 이후의 호쾌한 액션을 담당한다. 두 장르를 하나의 게임에 녹여내되, 서로를 보강하는 구조로 만든 것이다. 게다가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는 시스템은 이 설계를 더욱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 6. 팬에게는 보물찾기, 처음이라면 여기서 시작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은 시리즈의 30주년을 기념하며 출시된 작품답게, 곳곳에 과거작에 대한 오마쥬와 팬서비스가 숨어 있다.
1998년 이후 지도에서 사라졌던 라쿤 시티가 28년 뒤의 모습으로 정밀하게 재현된 것은 물론이고, 후반부 보스전 대부분에는 2편과 3편에 대한 레퍼런스가 녹아 있다. 시리즈의 인기 캐릭터 쉐리 버킨이 재등장하는 것도 팬들의 호평을 받은 요소다. 디럭스 에디션의 '드미트리스쿠' 코스튬, 레온의 과거 코스튬 등 놓치기 아까운 요소도 다수 배치되어 있다.
다만 이런 요소를 모른다고 해서 게임이 덜 재미있어지는 건 아니다. 이스터에그를 모르면 못 찾을 뿐이고, 찾지 못해도 게임의 핵심 경험은 온전히 성립한다. '레퀴엠'의 진짜 강점은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도 공포와 액션의 교차가 주는 긴장과 쾌감을 온전히 전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레퀴엠'을 계기로 과거 시리즈에 관심이 생긴다면, 그때 RE2 리메이크나 RE4 리메이크로 돌아가도 늦지 않다.
또한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의 세분화된 난이도 덕분에, 처음 시리즈를 입문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조준 지원 기능과 적들의 체력이 하향되는 '캐주얼'은 가장 쉬운 난이도 입문자에게 적합하고, 원작에 가까운 '바이오하자드'를 즐기기 원하는 이들을 위해 보통 난이도 또한 '모던'과 '클래식'으로 구분되어 있다. 보통(클래식) 난이도에서는 게임을 저장할 때 '잉크 리본'이라는 아이템이 필요하기에, 가방 관리가 더욱 까다로워진다. 게임을 클리어한 뒤 해금되는 '광기' 난이도는 더욱 도전적인 게임플레이를 원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레온의 손도끼가 로켓을 쳐내는 순간, 시리즈의 역사를 알든 모르든 누구나 웃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이 가진 보편적인 힘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