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플레이 하는 많은 게임 중 상당수가 익숙한 IP를 활용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처음 보는 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게 얼마나 어렵던가. 학교를 생각하면 된다. 1학년 1학기, 처음 보는 수십 명 앞에서 날 소개하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그런데 여기서, 내가 이미 전국구로 이름을 알린 슈퍼 스타라고 가정해보자. 입학식 날 안 나와도 된다.
그렇기에, 게임에서도 IP는 중요하다. 그냥 지나칠 걸 한 번은 바라보게 하니까. 솔직히 게임이 별로여도, 팬이라면 한 번은 플레이 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괜히 과거 삼국지를 가져다 쓴 게임들이 우수수 쏟아졌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드디어 지상 최강의 IP를 활용한 게임이 나와 버렸다. 예상 판매량만 50억 부 이상. 비유로도 쓰이는 '바이블' 그 자체. '성경'(신약이지만)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담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다'가 그 주인공이다.
제목부터 맛있는 리뷰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 게임. 누가 리뷰 할 지 정해야 하는 그 순간에, 어려서부터 온갖 절을 돌아다니고, 방학만 되면 영월 구인사로 일주일 간 기도를 떠나고, 지금도 자동차에 금강저가 뚜렷한 천태종 표식을 달고 다니는 대한불교인(군대에선 햄버거 때문에 잠시 배교하긴 했지만)인 내가 손을 들었다.
왜냐고?
나만 혼자 '스포 안 당한' 사람이었으니까.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마 4:23)
'나는 예수 그리스도다'는 나사렛에서 시작한다. 예수의 고향이자, 몽키스페너의 전설을 써나간 그 고장이다. 이후, 예수는 갈릴리의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모험을 반복한다. 그래. 이 게임은 무려 '오픈월드 어드벤처' 게임이다. 갈릴리부터 예루살렘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 오픈월드로 구현되어 있고, 열 곳이 넘는 마을에 각각 콘텐츠가 숨어 있다.

물론, 대부분의 광경은 거의 비슷하다. 예루살렘 정도 되면 대도시의 품격을 보여주기에 조금 다른 시야가 나오지만 게임 속 대부분의 지역은 광야와 벌판, 그리고 촌락이다. 물론, 딱히 단점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애초에 국밥 한 그릇 가격의 게임에 대단한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을 뿐더러, 기원 원년경의 세계가 다 그렇게 생겨 먹은 걸 뭐 어쩌겠나.

그래도, 그 배경이 되는 갈릴리 호수와 호수를 둘러싼 여러 마을, 앞서 말한 예루살렘까지 상당히 넓은 영역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무려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그 넓은 지역을 '뛰어서' 탐험한다... 후반에 이르면 갑자기 당나귀를 타고 다니는 구간이 생기기도 하지만, 특정 퀘스트가 있어 빠른 이동을 지원하는 경우가 아니면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동 수단은 튼튼한 두 다리다. 어떻게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과 싸우면서 생존할 수 있었는지 설명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게임 속에 구현된 대부분의 장소가 무려 '성지'에 속하는 지역이다. 예수전설의 시작인 나사렛부터 겟세마네, 가버르니움, 다볼산, 그리고 그 골고다까지 말이다. 기독교인이라면 게임 내에 구현된 이 성지들을 바라보는 기분도 꽤 생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난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그것까진 와닿지 않는다. 심지어 저 지역들의 이름도 게임을 하면서 알았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20)
그렇다면, 이 사막과 호수의 고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는가?
게임의 서사는 온전히 1인칭 시점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다 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를 각성한 후 세례자 요한을 찾아 나사렛을 떠나는 과정, 잘 살던 어부 시몬에게 "지금부터 니 이름은 베드로여"를 시전하며 12사도를 모으는 과정, 바리새인들과의 나락퀴즈쇼, 질량보존의 법칙을 믿음으로 격파하는 오병이어의 기적,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지는 두 번의 잡도리와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걸어가는 과정까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을 비춘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예수는 수많은 설교를 나누고, 기적을 선보이며 이름 없는 예언자에서 전국구 인기몰이를 하는 '신의 아들'이 되어간다. 여기에 오픈월드 콘텐츠가 더해지면서 예수는 총 5종의 기적을 사용하게 된다.
기적은 각각 '치유', '퇴마', '변형', '부활', '등평도수(?)'다. 이 중 부활과 변형, 수면보행의 기적은 스토리 진행 중에만 사용하게 되고 오픈월드 과제로서 사용하지는 않기에 다소 존재감이 약하지만, '치유'와 '퇴마'는 꽤 여러 번 사용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퇴마'는 뜬금없이 액션 향이 들어간 콘텐츠인데, 갑자기 화면이 지옥같이 변하면서 시뻘건 귀신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본적으로 무적인데다, 체력 게이지 같은 것도 없기에 당할 일이 없음에도 요상하게 섬뜩한 연출인데, 이 귀신을 향해 무려 '홀리볼트(...)'를 날려 기절시키고 퇴치할 수 있다. 묘하게 웅장한 전투 BGM까지 겹쳐져 나름 액션 느낌이 난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콘텐츠를 하나하나 해결할 때마다 '신자'수와 '믿음'의 힘이 강해지고, 이 믿음의 힘이 곧 메인 퀘스트에서 '체력'의 역할을 한다. 후반, 사탄의 시험을 받거나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구간에서 경비병 두 명에게 끌려가게 되는데, 이 때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치면 얻어맞으면서 '믿음'이 깎여나간다. 그리고 이 '믿음'이 다 깎여버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기에 믿음은 많이 확보해 둘 수록 좋다.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마 5:2)
게임에 대한 설명은 적당히 한 것 같으니, '감상'에 대해 말해보자. 성경에 대해 잘 모르는 내 입장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다'에 대해 느끼는 감상은 게임화 된 성경공부다. 그냥 대놓고 가르치면 도망치기 딱 좋은 소재를 최대한 접근성 좋게 풀어낸 결과물이라 해야 할까? 마법천자문이 자꾸 생각나는 게 아마 그런 느낌이라서일 것이다.
그 감상 그대로, 이 게임은 지독하게 홀리하며, 동시에 A to Z로 성경이 가득 차있는, 성경 그 자체의 게임화다. 게임 속 지식란에서는 출애굽기부터 마태, 마가, 누가에 이르기까지 구약과 신약의 내용들이 펼쳐지고, 예수와 인물들의 대화는 구절 하나까지도 성스러움이 느껴진다. 심지어 사운드트랙과 효과음까지도 경건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이 과정이 엄청나게 재미있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교인이 아닌 입장에서 게임으로만 바라본 예수의 생애는 다소 비약적이고, 동시에 과하게 극적이다. 환전상을 장풍으로 부숴버리는 예수나, 이미 죽은 지 며칠이 지난 이를 그냥 원한다는 이유로 부활시켜버리는 건 머릿속에 물음표가 켜지는 부분이다.
도리어 그런 부분들이 다소 인간적으로 느껴지긴 했다. 게임 속에서 연출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라기엔 너무나 초월적이지만, 초월자라고 하기엔 다분히 인간적이다. 게임 내에서 예수는 보이스 액팅이 없다. 12사도나 엑스트라, 심지어 로마 군인까지 VA가 들어가 있음에도 예수는 목소리 없는 주인공으로 그려지는데, 십자가에 매달려 하늘을 바라보는 마지막 순간, 처음으로 예수가 목소리를 낸다.

선지자로서 군중을 이끄는 과정에서는 경계를 두기 위해 목소리 없는 인물로 남았다가, 십자가에 매달린 채 아버지(하나님)의 말을 들을 땐 비로소 인간으로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듯한 의미심장한 연출이다.
물론 게임으로 풀어내기엔 성경 분량이 만만치 않으니 아마 다소 생략된 부분도 있을 거고, 비약해서 연출한 부분도 있을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무언가가 있으리라 짐작되지만 원전을 잘 모르니 그냥 그렇게 다가온다. 비판보다는 그냥 '잘 모르겠다'정도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좋겠다. 여러분도 불경 안 읽어 봤을 테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다'는 그런 게임이다. 실물 성경보다 싼 가격에 할 수 있는 성경 공부 수단. 갈릴리 호수를 두 다리로 달리며 귀신들과 드잡이질을 하고, 바리새인들과 랩배틀을 하는 전무후무한 게임. 인디 게임의 티를 지울 수 없는 어설픔이 보이지만, 게임으로서 부족한 완성도를 집요함이 느껴지는 성경 인용으로 감싸버렸다. 게임의 재미보다는 성경의 '가르침'이 더 독하게 묻어난, 독특하기 짝이 없는 홀리 어드벤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