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삼손'은 스웨덴의 게임 개발사인 '리퀴드 소드'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리퀴드 소드'라는 스튜디오의 슬로건이 참 독특한데, 바로 '제로 넌센스 개발'이다. 의미를 쉽게 풀어 설명하면, 개발 코스트만 잡아먹는 사족들은 다 쳐내고, 게임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수, 핵심 경험만 진득하게 우려내서 전달하겠다는, 일종의 '안티 AAA'다.
과정도 그럴싸하다. 불필요한 크런치나 과잉 개발을 줄이고, 소수의 팀이 퀄리티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개발한다. 창업주인 '크리스토퍼 선드버그'는 무려 아발란체 스튜디오의 공동 창업주이기도 했으며, 저스트 코즈 시리즈와 매드 맥스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거대한 오픈월드 게임을 개발해온 개발사의 공동창업주가 나와 독립한 '안티 AAA'스튜디오가 개발하는 오픈월드 액션 게임. 넷이즈가 선물한 낭낭한 주머니를 차고, 크런치와 불필요한 과정을 배제한 채 '필요한 요소'에만 집중해서 만들어진 게임.
'삼손'이 어떤 게임인지 살펴보자.
'선택과 집중'에서 집중을 뺐을 때
'삼손'의 배경은 '틴달스턴'이라는 대도시의 작은 슬럼가다. 주인공 '삼손 맥크레이'는 길거리 깡패이자 범죄 전문 도주 운전사이며, 한탕 하려다 거하게 말아먹고 조직에 큰 빚을 져버렸다. 그렇게 인생이 끝나려는 순간, 여동생이 자발적으로 인질이 되며 예정되어 있던 형이 유예되고, 삼손은 여동생과 자신의 삶을 위해 하루 벌어 하루 갚는 삶을 시작하게 되면서 '삼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사의 시작부터 알 수 있듯, '삼손'은 압박에서 시작되는 오픈월드 액션 게임이다. 뭇 오픈월드 게임들의 경우, 튜토리얼을 끝내고 월드로 나오는 순간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즐거운 당혹감이 생긴다. 넓은 맵에 널려있는 너무도 많은 즐길거리. 거기에 대략적인 이정표가 되어주는 메인 서사가 일반적인 오픈월드 게임의 디자인이다.
반면, 삼손은 시작부터 '빚 안에 갇힌 채' 시작한다. 게임의 하루는 셋으로 나뉘어있다. 점심, 저녁, 그리고 밤. 헤비 게이머 못지 않은 야행성 인간인 삼손에게 아침은 없다. 게이머는 이 3개의 시간으로 나뉜 타임 테이블을 자기만의 범죄 계획서로 꽉꽉 채워 놔야 한다. 안 그러면 불법 추심꾼들이 따라오니 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삼손이 하는 일은 단 둘. 주먹질과 운전이다.
'삼손'의 게임 디자인은, 개발사가 밝힌 포부만큼 엄청나게 압축되어 있다. 삼손의 흐름은 이렇다. 잠에서 깨면 전화를 받아 생존형 범죄를 수주한다. 이후 점심, 저녁, 밤에 맞춰 현장으로 가서 범죄를 저지르고 돈을 벌면 된다. 그리고, 하루가 끝날 때마다 이렇게 번 범죄 수익을 다시 회수해간다. 주인공은 빚쟁이니까.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먹질과 운전 외에 다른 건 그 어떤 것도 없다. 옷을 사 입든지, 헤어 스타일을 바꾸는 콘텐츠, 골 때리는 주변 인물이나 서브 퀘스트 따위도 없다. 그냥 일어나서 하루 세 번 감기약 먹듯 범죄를 저질러 주고, 쓰레기 더미 같은 집으로 와서 소파에 누워 자는 게 삼손의 일과다.

어떻게 보면 극도의 선택과 집중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그 '집중'마저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말 놀랍게도, 삼손은 주먹질과 운전이 메인인 게임임에도 이 맨손 격투와 운전의 완성도와 감각 굉장히 좋지 않다다. 락 온 시스템이 없어 일일이 캐릭터가 바라보는 방향을 맞춰 주어야 하고, 주먹질의 모션마저 어설프다. 강공격은 왜 그런지 몰라도 할 때마다 모션의 길이가 다른데, 어떤 경우엔 펀치 머신을 치듯 온 힘을 모아 치느라 주먹 한 방에 한 세월이다. 물론, 그 와중 적들은 멍청하게 날아오는 주먹을 바라보고만 있으니 걱정할 건 없다.


'운전'또한 마찬가지다. 후술하겠지만, 삼손의 맵은 정말 작고, 꼬불꼬불 이어지는 골목길과 막다른 길, 왜 있는지 모를 비포장 도로가 즐비하다. 때문에 넓고 쭉 뻗은 길에서 풀악셀을 밟는 건 꿈도 못 꿀 일인데다, 90도 이상 꺾어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 핸들링 한 번도 조심해서 뻗어야 한다. GTA5에서는 온갖 묘기 드라이빙을 다 했고, 오픈월드 멀티플레이 게임에서 주로 운전대를 잡을 정도로 게임 내 운전에 능숙한 나조차도 이 게임의 운전은 영 쉽지가 않았다.

'삼손'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극도로 선택과 집중을 한 게임 디자인인데, 알고 보니 선택만 했고 집중은 안 했다. 그럼 이 게임을 이제 무슨 재미로 해야 할까?
우리 집 아파트 단지보다 작은 오픈월드
다행히 삼손에겐 아직 '오픈월드'가 남아 있다. 오픈월드 게임에서 '오픈월드'가 강조되는 이유는 이 월드를 어떻게 디자인했냐에 따라 월드 자체가 곧 재미이며 콘텐츠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게임의 주 무대인 '틴달스턴'의 슬럼가는 온갖 범죄가 일어나는 우범지대다. 한국에서는 이런 거리가 사실상 없으니 실제 이런 분위기를 느끼려면 외국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내가 가 본 곳 기준으로는 대충 LA 다운타운 밑 '스키드로'나 베이 에이리어의 오클랜드 정도면 비슷한 느낌이다.

하지만, 게임 속 틴달스턴의 시장은 짐작컨대 일을 무척 잘 하는 참된 공무원일 거다. 이유인 즉, 이 '슬럼가'가 엄청나게 작다. 멀리서 보이는 도시 원경은 딱 봐도 상당히 큰 규모의 대도시인데, 슬럼가가 고작 이 정도 크기만 남아있는 걸 보면 대부분의 도시민들은 아주 평화로운 환경에서 빵빵한 치안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비유하자면, 오픈월드 전체가 인천 구월동에 있는 우리 부모님 댁 아파트 단지보다 작은 느낌이다. 물론 그 단지가 좀 큰 편이긴 하지만 말이다. 차를 타고 맵을 한 바퀴 빙 돌면 채 1분이 안 걸리고, 이 사이사이를 수놓는 길은 죄다 골목길들이다. 운전하다 가끔 네비게이션이 알려줘서 들어갔다가 직감적으로 '잘못 들어왔나?'싶은 생각이 드는 작은 골목길 말이다. 주요 지역 밖으로도 지형이 조금은 만들어져 있긴 하지만, 중요한 곳은 없다. 게임의 무대가 되는 슬럼가는 그저 작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작은 맵에 딱히 콘텐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구조물이라고는 차를 수리하거나, 니트로 부스터를 충전할 수 있는 카센터 너댓 곳 뿐, 나머지는 그냥 삼손이 하루 세 번 수행하는 생계형 일용직 범죄의 무대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게임 시간으로 3일 정도만 게임을 플레이해도 계속 '갔던 곳'을 가게 된다. 오늘 점심엔 201동에서 깡패들 좀 패주고, 밤엔 202동에서 범죄자 한 명 도주시켜 주고, 내일 점심 되니 어? 또 201동이네? 범죄가 복사가 된다고?

이 '작은 맵'이 거슬리는 이유는 또 있다. 앞서 말했듯, 삼손의 메인 콘텐츠 중 하나가 '운전'이다. 광란의 질주나 로드 레이스까지는 안 바라도 경찰과 추격전이 붙으면 시원하게 거리를 벌려 따돌리는 쾌감 정도는 있어야 맞는데, 삼손의 추격전은 조금 다른 의미로 숨이 막힌다. 마치 5일장이 서는 날 재래시장의 한 가운데로 차를 몰고 가는 듯한 압박감. 그 와중에 경찰이 사이렌을 울리며 따라오는 느낌이라 생각하면 좀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오픈월드 게임을 리뷰하면서, 완성도가 부족한 게임을 말할 때 '넓기만 하고 텅 비어있는 오픈월드'라는 표현을 자주 썼던 것 같다. 지난 날의 나를 반성한다. 그래도 넓은 게, 좁은데도 텅 비어있는 오픈월드 보다는 낫다.

남은 건 언리얼5 그래픽과 느와르 감성 뿐
결국, '삼손'에 남은 건 몇 가지 없다. 직업 범죄자 주제에 사연 있어 보이는 세숫대야를 지닌 주인공 '삼손', 그리고 그럴싸 해 보이는 서사와 어반 느와르의 감성 뿐이다.
개인적으로, '삼손'에 건 기대는 무척 컸다.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는 액션도 그 나름의 맛은 있지만, 주먹과 무릎으로 승부하는 맨손 액션은 또 그만의 맛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말마따나 최근 게임의 기조가 일단 잡탕밥을 깔고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선택과 집중이 제대로 이뤄졌을 때, 그 선택에서 오는 매력과 집중에서 오는 깊이가 주는 카타르시스의 각별함은 최근 게임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감상이다.

하지만, '삼손'은 그 어떤 것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선택은 했으나 집중을 하지 못했을 때, 게임이 얼마나 볼품없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가 바로 삼손이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리퀴드 소드의 슬로건은 '불필요한 절차를 덜어내고, 크런치를 줄이는 것'이었으니까. 게임 산업의 과로 문제는 언제나 툭 튀어나온 사마귀처럼 도드라지는 고질병이었고, 이를 줄이기 위한 해결 방안에 대한 논의는 지금 이 시간에도 이뤄지고 있는 일이다.

'삼손'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퀄리티를 보여주었다면, 크런치의 불필요성에 대한 근거가 하나 더 마련되는 셈이었겠지만, 게임이 이렇게 나와버린 이상 미래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마치, 빚더미에 허덕이는 삼손의 앞날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