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가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던 유토피아는 현실이 되고 있을까?
2022년 말, 챗GPT가 세상에 처음 풀렸을 때를 기억하는가. 회원가입 하나로 누구나 접속할 수 있었고, 비용은 없었다. 변호사에게 물어봐야 했던 계약서 검토를, 번역가에게 맡겨야 했던 외국어 문서를, 선생님께 여쭤봐야 했던 개념 설명을, 이제 누구든 새벽 두 시에 혼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열광에는 단순한 편리함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AI 기술이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이었다. 일론 머스크 같은 선구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 AI가 인류의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고, 그 잉여가 사회 전체에 고루 분배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난한 나라의 아이도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돈이 없어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세상. 어떤 이들은 더 대담하게 말했다. 생산성이 충분히 폭발하면 언젠가 돈의 개념 자체가 흐릿해질 것이라고.
틀린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실제로 AI가 그렇게 작동할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2025년이 지나고 2026년에 접어들면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변화처럼 느껴졌다. 오픈AI가 무료 사용자의 GPT-4 접근을 하루 몇 번으로 제한했다. 구글은 제미나이 무료 플랜의 이미지 생성 한도를 하루 세 장에서 두 장으로 줄였다. 안내문은 늘 비슷했다. "폭발적인 수요로 인해 일시적으로 제한합니다." "안정적인 서비스를 위한 조치입니다." 납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 서버가 버겁다는데 어쩌겠나. 잠깐 불편하더라도 기다리면 나아지겠지, 싶었다.
하지만 제한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꾸준히 더 좁아지고 있다.

앤트로픽은 클로드에서 외부 자동화 도구 연동을 차단하며 피크 타임 사용 한도를 낮췄다. xAI의 그록은 이미지 생성 기능을 유료 구독자 전용으로 전환했다. 무료로 쓸 수 있는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그 자리에 요금제가 들어섰다. 월 20달러, 월 200달러, 기업용은 별도 문의. 더 좋은 모델을 쓰고 싶다면 더 많이 내야 했다.
기업들의 설명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오픈AI는 올해만 약 50억 달러의 운영 비용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 영상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연산 비용은 텍스트 수백 개를 처리하는 것과 맞먹는다. GPU는 전기를 먹고, 전기는 돈이 든다. AI는 공기처럼 공짜인 자원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다. 다만 초기에는 기업들이 그 비용을 감추고 있었을 뿐이다. 사용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그 전략이 통했고, 이제 청구서가 날아오고 있다. 우리에게.
여기까지는 그저 '비즈니스의 논리'로 읽힐 수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 뭐 그런 이야기. 그런데 머지 않은 미래를 한번 생각해보자. AI가 지금의 핸드폰처럼 일상이 된 세상을.
한 사람은 무료 플랜을 쓴다. 하루에 쓸 수 있는 토큰이 정해져 있다. 아침에 이메일 몇 통을 정리하고, 회의 자료 초안을 잡다 보면 오후가 되기도 전에 한도에 걸린다.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도 멈춰야 한다. 내일 다시 시작하면 된다.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다른 한 사람은 제약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AI와 대화한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읽어야 할 문서를 요약시키고, 결정을 앞둔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바로 물어본다. 틀린 방향이 보이면 즉시 수정한다. AI가 생각의 속도에 맞춰 함께 달린다.
둘은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AI를 쓴다. 하지만 하루가 끝날 때 두 사람이 만들어낸 것의 차이는 작지 않다. 그 차이가 매일 쌓인다. 1년이 쌓이고 5년이 쌓인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안다. 그 거리가 개인의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쓸 수 있는 토큰의 차이라는 걸. 그리고 유료 AI 모델이 발전할 수록 그 차이는 더 벌어질 거다. 월 20달러에서 200달러로 커지듯이.

토큰. AI 세계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최소 단위. 질문을 던지고 답을 받을 때마다 소모되는 연산 자원의 기본 단위.
이 단어가 새로운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예전에 '정보 격차'라는 말이 있었다.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의 간극. 그 격차는 스마트폰의 보급과 통신 인프라의 확장으로 상당 부분 좁혀졌다. 하지만 AI 시대의 격차는 단순히 '접근 가능 여부'가 아니다. 얼마나 깊이, 얼마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느냐의 문제다. 같은 도구를 쓰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실제로는 전혀 다른 버전의 미래를 살고 있는 셈이다.
2022년에 모두가 열광했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자. 누구나 접속할 수 있었고, 비용은 없었고, 세상이 달라질 것 같았다. 그 감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AI는 실제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다만 그 변화의 방향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잉여가 고루 분배되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연산 자원을 가진 자가 더 빠르게 더 멀리 나아가는 세상. 화폐의 개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토큰이라는 새로운 화폐가 등장하는 세상. 그리고 그 토큰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이전의 어떤 자산보다 강력한 권력이 되는 세상.
우리는 지금 그 세상의 초입에 서 있다.
AI가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던 유토피아는 현실이 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