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널리 오덕을 이롭게 한다! '사보텐스토어'를 방문하다.

인터뷰 | 최원준 기자 | 댓글: 227개 |
'오타쿠', 혹은 한국식으로 변형된 '오덕'. 이 단어에서 과연 어떤 장면, 혹은 인상이 떠오를까?

다양한 경로를 통해 종종 들어봤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 단어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을 바로 떠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얼핏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들도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피규어를 소중히 보관하고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일본어 형식의 말투를 쓰며 안경에 뚱뚱한 체구를 가진 남자나, 흔히 BL이라 칭해지는 동성애 만화와 소설을 즐기는 독특한 여자. 종종 개그나 비난의 소재가 될 정도로 인터넷에 떠도는 덕후의 이미지는 부정적인 의미가 대다수니까.


한국말로 좀 더 순화한다면 '동인'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오타쿠'는, 말그대로 같은 취미나 목표를 갖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일반적인 취미 생활보다 좀 더 깊게,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보유할 정도로 특정 분야에 파고든다는 특징이 있을 뿐 대다수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취미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스포츠나 영화 관람, 낚시와 바둑 등 오랜 역사를 통해 널리 대중화된 취미 생활과 달리, 게임과 애니메이션, 만화와 코스프레 등 역사가 짧은 분야인데다 폐쇄적인 문화를 유지하면서 기성 사회의 구성원들과 소통이 쉽지 않다보니 초창기에 떠오른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먼저 선입견을 남기게 된 것 뿐이다.


동인 문화의 원산지(?)인 일본의 오타쿠는 물론 할로윈 등 파티 문화에 익숙하고 취미에 대한 배려가 큰 서양의 'Geek'은 이미 서브컬쳐라 부르기 힘든 수준이다. 게다가 한국도 점차 인터넷과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가 늘어나면서 주변을 둘러보면 의외로 '오덕스러운'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체면과 주변의 평판을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관심이 있어도 드러내놓고 '내가 덕후다'를 외칠 사람이 많지 않다보니, 이런 분야에 흥미가 있다는 사람이 있어도 막상 어느 곳에서 관련 상품을 찾거나 접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널리 오덕을 이롭게 한다.' 한국에서 전면에 내세우기 쉽지 않은, 어찌 보면 불편하게 와닿을 수도 있는 캐치 프레이즈. 이른바 서브컬쳐의 전문점이라는 슬로건으로, 다양한 동인 문화 관련 물품과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희귀 상품들을 판매하는 오프라인 매장이 등장했다.


"오덕을 위한 전문 매장이 없어서 직접 만들었습니다."


'사보텐 스토어'한경철 대표. 동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덕력(?)을 자랑하는 인물이기도 하며, 이미 트위터나 블로그 활동을 통해 많이 알려진 유명인사. 한때는 게임 잡지의 필자로 근무하기도 했고 NC소프트의 개발자이기도 했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그의 첫인상은 비슷한 취미를 갖고 있다는 동질감때문인지 유난히 친근하게 느껴졌다.





[ ▲ 인터뷰는 샵 내부의 다다미 방에서 진행했다.(베개에 신경 쓰면 지는 겁니다.) ]




[ ▲ 화기애애한 한 때를 보내는 사보텐 스토어!]



"처음에는 게임 문화사라는 곳에서 게임잡지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어요. 게이머즈 창간호부터 참여해서 함께 했었는데, 게임 개발쪽이 하고 싶어져서 NC소프트에 입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게임을 좋아하는 오타쿠다보니 일본에 가고 싶어졌고 결국 일본의 회사까지 입사하게 되었어요. 제가 한국인이다보니 일본 활동을 하면서 처음에 오타쿠를 위한 구매 대행업을 부업으로 하게 되었는데 어쩌다보니 이게 본업이 되었네요."


국내의 척박한 토양에서 동인 문화 관련 물품을 구하기가 어렵다보니 대부분 구매 대행 업체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동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업체들을 통하다보니 만족스러운 물품을 구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폭리를 취하거나 심지어 사기를 당하는 등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다.


취미활동의 일환으로 시작했지만 몇년간 꾸준히 이어진 신뢰와 활동으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취미가 생업이 되었다. 부업으로 시작한 일이 본업이 되어버린 상황, 본명보다 인터넷의 '사보텐'이라는 닉네임이 더 잘 어울리는 한경철 대표.


"사보텐은 거창한 뜻이 있거나 한것은 아닙니다. 파이널 판타지라는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 사보텐더라고, 도망가는 선인장 모양의 소환수가 있었거든요. '침 천개'라는 스킬을 사용하는 귀여운 모습의 몬스터이자 소환수인데 예전에 나우누리에서 활동하면서 사용했던 아이디가 굳어져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네요.

당시에 그런 게임 동호회가 몇군데 있었는데 만약 제가 나우누리가 아니라 하이텔에서 활동했다면 지금쯤 하고 있는 직업이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네요. 현재 국내 게임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시는 많은 분들이 대부분 하이텔 게임동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거든요."








[ ▲ 국산 라이트 노벨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



단지 취미라면, 게임을 좋아하거나 동인 쪽에 관심이 많은 유저들끼리 이런 매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행동에 옮긴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 막말로 기존 사회의 인식대로라면 성공하기 쉽지 않는 분야가 아닐까? 그러나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찾아와주셔서 힘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이쪽 계통의 물건을 판매한다는게 스스로 취미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전 게임쪽으로 워낙 관심도 많기 때문에 조금 편하게 선정할 수 있었죠. 일본에서 살면서 가장 부러웠던것이 굳이 아키하바라와 같이 대형 밀집 상가에 가지 않더라도 동네 근처에서 원하는 상품을 손쉽게 접하고 또 구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한국에도 그런곳이 한군데쯤은 있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게 되었죠.

물론 다양한 물품을 소량 입고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물건이 다소 비싸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이런 물건을 원하시는 매니아 층이 많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어요. 물론 엔화로 인한 환율 문제도 있긴 하지만... 그래서 일본과의 제휴나 도매로 물건을 받아올 수 있는 정식 루트를 찾아보고 있어요. 성공한다면 기존의 구매 대행 업체들보다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되겠죠."



실제로 현재 사보텐 스토어 매장의 경품으로 나눠주고 있는 카드 케이스에 그려진 보컬로이드 시유와 사보리 캐릭터의 콜라보레이션도 정식 라이센스를 취득하여 만들어낸 물품 중 하나이다. 단순한 구매 대행을 넘어서서 진짜 한국의 동인 문화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굿즈'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라는 사보텐 스토어.




[ ▲ 3D로 감상하는 프로젝트 디바!! ]




[ ▲ 보컬로이드 시유의 라이브러리도 준비되어 있다. ]




[ ▲ 시유와 사보리의 만남. 정식 라이센스 제품으로 일러스트레이터 'KKUEM'님의 작품(우) ]



사실 인터넷 쇼핑몰의 발전으로 정식 발매된 타이틀을 손에 넣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예전처럼 게임이나 피규어 하나 구하러 보따리상을 찾아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되지만, 정식 발매가 되지 않거나 다소 희귀한 상품을 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상당히 어려운 일. 이런 물건을 한 곳에 모아둔 매장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오랜만에 가슴속에 숨겨뒀던 덕심을 자극하는 일대 사건이 아닐까?


"한국에서 매니아를 위한 사업을 시작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죠. 말하자면 틈새 시장이라고 할까요? 큰 규모의 회사가 뛰어들기에는 다소 어렵거든요. 그리고 저 스스로가 덕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물건을 고르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최근에는 '아이돌 마스터' 종류가 상당히 인기가 있어요. 최근에 아이돌 마스터의 애니메이션이 끝나기도 했고, 실제로 판매에서도 가장 호응이 좋은 상품이죠.

그리고 보컬로이드 관련 상품도 상당히 인기를 얻고 있어요. 특히, 매장에 있는 프로젝트 디바 아케이드 버전 컨트롤러도 많은 분들이 관심있게 봐주시거든요. 실제로 가게에 놀러와서 게임을 해보시고 가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보컬로이드는 원래 동인 문화에서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저는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관련된 게임을 즐기고 있죠.

사실 매니아라는 것이 층이 이루어져 있거든요. 게임을 좋아하는 층과 캐릭터나 동인쪽을 좋아하는 분들이 정확하게 나뉘어져 있거든요. 제가 게임쪽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직까지 가게의 대부분은 동인쪽 분들이 많이 찾아주세요."









[ ▲ 다수의 동인 관련 상품도 전시 및 판매 ]



오프라인의 사보텐 스토어와 온라인의 사보텐 하우스. 현재 구매대행도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보텐 스토어와 사보텐 하우스가 차이가 있는건지 궁금해졌다.


"말하자면 긴 이야기인데, 사보텐 하우스의 경우 제가 일본에서 일하게 되면서 만들게 된 구매 대행 사이트거든요. 당시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워낙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셔서 도무지 부업으로 감당하기 힘들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그래서 회사에 이야기를 해서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운영을 하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회사를 나온 후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을 해서 만든 것이 사보텐 스토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사보텐 하우스와 사보텐 스토어는 다른 업체라고 볼 수 있으나, 최근 한경철 대표가 원만한 합의를 통해 함께 운영하기로 결정되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사보텐 하우스라는 구매 대행 사이트 또한 과거 한경철 대표가 운영했던 사이트. 현재 사보텐 스토어에서도 구매 대행을 하고 있지만, 이전과 다르게 단순히 구매대행만을 위한 샵이 아니라고 한다.


"일본에서 물건을 가지고 오는 형태로 구매 대행을 진행하게 되는데 그것만을 주력으로 스토어를 설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가 다음 단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국내 매니아들에게 받아들일 만한 다양한 물품과 사보텐 스토어의 캐릭터를 이용하여 사보텐만의 물품들을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일본 게이머즈의 디지캐럿이 처음에는 단순한 홍보용 캐릭터로 제작되었다가 큰 인기를 얻으며 발전한 것처럼 저희 샵의 사보리란 캐릭터도 그런 인기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디지캐럿 : 일본 아키하바라에 있는 유명 캐릭터 상품 체인점인 '게이머즈'에서 홍보용으로 제작된 캐릭터. 이후 큰 인기를 얻어 전용 애니메이션과 각종 상품이 등장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 ▲ 사보텐스토어의 공식 마스코트 사보리! ]



이야기를 듣고 보니 커피가 담겨져 있는 머그컵에 사보텐스토어의 마스코트인 사보리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일반 매장의 캐릭터가 인기를 얻어 애니부터 다양한 물품으로 발전한 전례가 많기 때문에 귀여운 사보리 캐릭터도 그렇게 발전되길 기대한다는 한경철 대표.

그런데 아무래도 오타쿠 문화라는 것이 이른바 대중적인 취향과는 다소 동떨어져있는 것이 사실이니, 오타쿠 문화에 대한 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될런지는 기자도 감이 잘 오질 않았다. 한국에서 전문 매장을 열 수 있을 정도의 규모가 될까.


"아무래도 일본 현지와 비교하면 한국의 서브 컬쳐 시장이 작은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인구수에 비한다면 한국의 매니아가 일본보다 훨씬 구매력이 높다는 분석이 등장할 정도로 상당히 매력있는 시장입니다.

일본의 경우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자체의 콘텐츠 외에도 다양한 상품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해냅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작품 하나만으로 모든 수익을 내려고 하고 있어요. 일본의 경우 본편보다 캐릭터 상품으로 얻는 산업이 더욱 발달되어 있습니다.

국내는 아직까지 전문적으로 시행하는 업체도 없는데다 제대로 매니아를 위한 시장이 확립되어 있지도 않아요.제가 원하는 사보텐 스토어는 그런 캐릭터나 매니아 시장을 타겟으로 하는 프리미엄 매니아 샵의 선두주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 멋진 일러스트가 장식되어 있는 사보텐스토어 ]


분명히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이나 불확실한 미래때문에 선듯 뛰어들기는 어려운 시장이었던 프리미엄 매니아 샵.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시장에 이런 샵이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다만 시장의 규모에 비해 개인의 취향과 분야가 워낙 다양하다보니, 초기 규모로 볼때 상당한 규모의 물품을 갖추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물건이 부족해 따로 요청을 해오는 손님이 많다고 한다. 앞으로 좀 더 규모가 커지게 되고 확실한 시장으로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결국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


매장 한켠에 따로 준비되어 있는 코타츠(일본식의 온열 탁자)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한경철 대표. 앞으로 사보텐 스토어에 가득 차게될 다양한 캐릭터 상품이나 동인 문화를 위한 상품들을 기대해보며 국내에도 이런 샵이 생겼다는 사실이 매우 즐거웠다.

동인 문화가 지금까지의 부정적인 인식을 벗고 좀 더 대중화된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물품을 다루는 전문 매장, 사보텐 스토어의 출발은 이제 시작이다. 첫발을 내딘 사보텐 스토어가 온 오프라인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작지만 알찬 샵으로 발전해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고 있는 사보텐스토어. 점차 온라인으로 등록될 상품을 늘려갈 예정이다. ]



※ 사보텐스토어 홈페이지 바로가기(http://sabosto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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