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케이크에 달라붙는 날파리

칼럼 | 심영보,남기백 기자 | 댓글: 13개 |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는 커다란 산업으로 변모해 간다. 해외 선수들은 몇십억 원에 가까운 연봉을 받고, 국내 최정상급 선수에겐 10억 원이 넘는 가치가 책정돼 있다. 그와 걸맞게 외부 모양새도 갖추려고 한다. 프랜차이즈 제도를 도입하고, 스폰서십을 끌어모으며, 관련 제도 정비까지 진행 중이다.

누군가 곁눈질로 보기에 이보다 더 달콤한 케이크가 없다. 손가락 하나 쿡 찍으면, 오감을 자극할 거대한 크림 덩어리가 딸려올 것만 같은 느낌. 그래서 케이크를 망치면서까지 손을 뻗어 비벼본다. 케이크를 만드는 데 아무런 헌신을 바치지 않은 이들까지도.

날파리들의 이야기다. 기자 생활을 하며 지금까지 여러 날파리들의 소식을 접했지만, 한동안은 아니었다. 그러다 최근 새로운 날파리 사건 하나를 듣게 됐다.

위~~~잉, 접근

스토브리그 기간, e스포츠 종사 이력을 가진 B씨가 이름값 있는 선수 A에게 접근했다. A의 동료 선수와 아는 사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B씨는 중국 팀에서 거대의 오퍼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한국인 B씨는 중국 교포 지인과 함께 일을 진행 중이라며 A선수의 관심을 끌었다.

A선수와 부모님은 귀가 열릴 수밖에 없었다. 해당 중국 팀은 이전 스토브리그서도 실제 관심을 보였고, 큰 금액을 제시한 바 있기 때문이었다. B씨의 말이 사실처럼 들리기에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B씨는 빠르게 계약서를 작성해 일을 진행하자고 권유했다. A선수와 부모님은 '설마'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큰 의심을 품진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A 부모님은 경험이 많은 분이었다. 계약을 서두르지 않았다. "후에 몇 가지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e스포츠에 아는 분들을 통해 천천히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도움을 구한 쪽은 중국 시장에 발이 넓은 쉐도우 코퍼레이션 박재석 에이전트와 중국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코치였다.




확인 결과 B씨의 이야기는 거짓이었다. 인벤 취재에 답한 박 에이전트는 "직접 해당 중국 팀 매니저에게 A선수 영입 진행 사안이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계획조차 없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전 스토브 리그에 추진했던 영입이라고 했다. 이 사실을 A 부모님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A 부모님은 다른 코치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고 한다. 결국 시간을 들인 B씨 쪽 계약은 없던 일로 두고, 다른 팀과의 계약을 속히 체결했다.

무얼 비벼봤나

A 부모님은 "정확히 B씨가 어떤 이득을 취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본인은 소개만 하는 사람이라고 했고, 실질적으로 계약을 진행하는 사람은 중국 교포 지인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 중국 교포와 연락을 해볼 수 있냐고 물었더니, 계약하는 날에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며 꿍꿍이를 궁금하게 여겼다.

박 에이전트는 "에이전트를 사칭한 사기 사례로 보인다. 확언하기 어렵지만 소개비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고, 에이전트 계약으로 엮으려는 속셈일 수 있다. 또는 A선수를 볼모로 중국 팀에게 계약금을 따내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른다"며 B씨가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이득에 관해 추측했다. A 부모님은 에이전트 계약을 함부로 하는 것에 대해 위험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에이전트 계약은 섣불리 진행하지 않았고, 유선을 통해서만 10차례 넘게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도 밝혔다.

A선수와 부모님이 다른 팀과의 계약을 마무리하고, 일주일 후에야 B씨에게 다시 한 차례 연락이 왔다. 이때는 이미 오피셜 기사까지 나온 상황이었는데, 영입 의사를 밝혔던 중국 팀이 철회했다는 사실을 B씨가 뜬금없이 알려온 것이었다. A 부모님은 "괜한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아 알았다는 말만 전했다. 조용하게 넘어가고 싶었다. 참 골치 아프고 힘든 시간이었다"며 그때를 떠올렸다.

살충제 투여

LCK 리그 운영국은 "의심이 가는 상황일 경우, 리그에 요청하면 해당 지역 리그 또는 팀에 문의해 줄 수 있다"며 지체하지 말고 도움을 구할 것을 권했다. 또한, "상대방의 소속과 신분을 확인하는 등 유의해야 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해외 이적이 빈번한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서 에이전트의 활동은 피해갈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무분별한 에이전트 활동은 오히려 산업 저해를 불러온다. LoL e스포츠의 특성상 제도 안에 둬야 할 필요가 있고 깨끗하게 관리돼야 한다. 이에 LCK 사무국도 지난 6월 인터뷰를 통해 동의한 바 있다.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안이다. LCK 리그 운영국은 "에이전트를 사칭해서 발생하는 사례를 실질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과 공통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에이전트 제도에 대해 팀들과 논의해 가며 리그 차원의 입장을 정리해 나갈 예정"이라고 방안을 마련하리라 의사를 전했다.

선수, 팬, 수많은 관계자들이 쉽지 않은 세월을 보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케이크다. 누구라도 가볍게 먹기 아까운 소중한 케이크. 관련 없는 이가 손가락을 함부로 찍어 넘겨 망치는 꼴은 아무도 보고 싶지 않겠다.

삽화 : 남기백 기자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