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프랜차이즈 스타 '페이커'가 남긴 유산

칼럼 | 김병호 기자 | 댓글: 73개 |


▲사진제공: T1

요즘 프로게임단 관계자를 만나면, 거의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나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프로게임단이 팬과 접점을 맺고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다. 프로게임단은 팬들과 접점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운 편이다. 대부분은 창단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역사가 짧다. 그리고 e스포츠는 현재 오버워치를 제외하고 지역적 연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e스포츠를 좋아하는 팬이라도 특정 프로게임단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현재 프로게임단에게 팬들과 접점을 만드는 방법은 선수 영입이 거의 유일하다. 선수를 영입하면,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은 자연스럽게 소속 팀에도 관심을 갖고 응원하게 된다. 좋은 선수를 영입하면 팀의 성적도 오르고 팬들의 지지도 얻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그러나 선수의 인기에 기반한 지지는 선수와 프로게임단의 계약 기간만큼만 유지되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프로게임단은 좋은 실력을 가진 선수와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하고 싶어 한다.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선수가 팀에 오래 있으면, 그 선수가 소속 팀에서 은퇴하더라도 지금까지 응원해 온 팀을 계속 응원할 가능성이 생긴다. 혹은 이를 계기로 팀 내의 다른 동료 선수에게 애정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프랜차이즈 스타’, 한 팀에서 오랜 시간 동안 좋은 활약을 보여준 선수를 일컫는 이 말은 현재 프로게임단의 가장 큰 관심사이다. 많은 팀들이 팀에게 애정을 갖게 해주고, 팀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줄 프랜차이즈 스타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 몇몇 LCK 팀들은 프랜차이즈 스타를 보유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문제는 프로게임단이 날이 갈수록 프랜차이즈 스타를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및 북미 프로게임단의 이적 시장 개입은 한국 프로게임단의 경쟁을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카나비 사건’ 이후로 선수가 계약의 주도권을 쥐면서 1, 2년 정도의 단기 계약이 트렌드가 됐다.

올해는 그런 흐름이 가장 정점에 달한 시기다. 거의 대부분의 팀 로스터가 어그러졌고, 많은 선수들이 자유 계약 시장으로 나왔다. 이유는 대부분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서이다. 프로게이머의 짧은 수명을 생각하면, 벌 수 있을 때 더 많은 연봉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프로게임단 입장에서는, 지출만 높아지고 팀에 긍정적인 영향은 없는 지금의 상황이 결코 달갑지 않다.

이런 흐름 속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역대 최고의 선수로 손꼽히는 ‘페이커’가 T1, 그리고 LCK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아있는 건 대단한 일이다. ‘페이커’는 단기 계약과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현재 이적 시장 트렌드를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누릴 수 있는 선수다. ‘페이커’가 만약 T1을 떠난다면, 그는 e스포츠 역사상 전무후무한 금액의 연봉을 받을 거란 건 e스포츠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페이커’ 이상혁은 데뷔 이후로 지금까지 T1의 선수로 남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T1이 아닌 다른 팀에 소속한 ‘페이커’를 생각할 수 없듯이, ‘페이커’의 팬들도 T1이 아닌 다른 팀의 팬이 되는 걸 생각하지 않게 되고 있다. ‘페이커가 남긴 유산’은 그가 커리상 남긴 트로피와 업적뿐만이 아니다. 그가 헌신하면서 팀을 위해 정착시킨 T1 팬들도 ‘페이커가 남긴 유산’이다.

단기 계약과 높은 연봉만을 쫓고 있는 이적 시장의 슬픈 현실 속에서 ‘페이커’가 남기는 e스포츠 역사에 남기는 발자국은 더욱 특별하고 소중하다. T1뿐만 아니라 다른 팀을 응원하는 팬들도 자기가 사랑하는 팀에 속한 프랜차이즈 스타의 가치를 조금 더 알아봐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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