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멜티블러드', 팬들의 오랜 갈증을 풀 수 있을까?

리뷰 | 윤서호 기자 | 댓글: 13개 |


▲ 2021년은 첫날부터 서브컬쳐 유저들을 놀라게 만든 해였다. 설마 이게 현실이 될 줄은...

이래저래 2021년은 오래 전부터 서브컬쳐 유저들에겐 꽤나 기념비적인 해일 것이다. 농담으로라도 셋 중 하나라도 이루어지면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희망고문 같은 비원들이 전부 달성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월희' 리메이크의 개발 및 출시도 그 중 하나였다. 그 소식은 서브컬쳐 유저들이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서브컬쳐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타입문이라는 팀이 처음 결성해서 만들어낸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그들 특유의 문체와 스타일이 시작된 지점이 20년을 지나서 다시금 새롭게 빚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의 처음을 알리는 자리에서 그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일부 유저들 사이에서는 또다른 작품, '멜티블러드'의 행방에 대해서도 시선이 갔다. 월희의 동인 격투 게임으로 시작한 시리즈인 '멜티블러드'는 2002년 첫 작품 멜티블러드 출시 이후, 2010년 멜티블러드 액트리스 어게인 커런트 코드까지 월희의 새로운 소식을 기다리는 유저들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멜티블러드는 처음엔 동인 게임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어설픈 밸런스나 다소 조악한 퀄리티를 선보였지만, 그래도 월희 세계관에 충실한 기술 및 성우진의 열연으로 팬들의 지지를 받아왔었다. 그에 힘입어 작품을 거칠 때마다 점차 나아진 시스템 및 팬심을 자극하는 후일담을 선보이며 월희의 팬들이라면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그런 만큼 월희 리메이크 출시에 이어 멜티블러드 타입 루미나 출시도 결정됐을 때, 소위 달덕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 더군다나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한국어를 처음부터 지원한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이번 멜티블러드 타입 루미나는, 멜티블러드 사상 처음으로 패치가 아니라 출시 초부터 한국어를 공식 지원하기 때문에 팬 입장에선 더욱 기대가 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더군다나 월희가 한국어를 미지원하는데다가 한국어 번역에 난색을 표하고 있고, 게다가 PC가 아닌 콘솔로 출시되서 유저 한국어 패치라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쓰는 극약처방도 어려운 상황. 이제는 멜티블러드 타입 루미나가 그 불타오르는 팬심을 달래줄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할까. 일본어가 된다고 해도, 나스 기노코 특유의 중2병스럽기도 하고 자신만의 코드를 이곳저곳 쑤셔넣은 묘한 문체를 플레이타임 40시간 동안 보려면 보통의 각오가 필요한 게 아니니 말이다.

"그게 뭐라고" 아마 예전에 월희를 안 했거나 혹은 타입문 작품을 접하지 않은 유저, 서브컬쳐에 대한 관심이 없는 유저라면 지금쯤 아마 반응이 싸늘해져있을 거다. 만일 오래 전부터 메이저 2D 격투 게임을 즐겨왔다가, 다 3D로 변해가는 와중에 도트로 만든 정겨운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온 사람이라면 이 온도 차이에 당황하지 않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멜티블러드는 원래 이런 반응이 자연스러운 시리즈다. 애초에 동인 게임으로 시작한 작품이기도 하고, 개발팀 중 한 곳은 여러 격투 게임의 외주 제작을 전문으로 하고 있지만 여전히 동인팀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아직도 동인 마인드라는 지탄을 받곤 한다. 그런데 이번엔 그나마 20년 가까이 업계를 구르면서 쌓아온 '짬'이라는 게 보인다. 조금의 애정만 있으면, 순식간에 폭발적인 가속도를 붙일 수준의 엔진은 갖췄다고 할까.



게임명 : 멜티블러드 타입 루미나(Meltyblood: Type Lumina)
장르명 : 대전 격투 액션
출시일 : 2021.09.30.
개발사 : 타입문, 프랑스빵
서비스 : 딜라이트웍스
플랫폼 : PC, PS, 닌텐도 스위치

관련 링크: '멜티블러드 타입 루미나' 오픈크리틱 페이지


보기만 해도 팬심이 차오르는, 일신한 그래픽으로 보는 월희의 세계


앞서 언급했듯, '멜티블러드'는 팬심이 우선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작품이었다. 단순히 동인 게임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시리즈가 어느 정도 발전하기 전까지는 그런 말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낮은 퀄리티가 먼저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그 옛날, 아무 것도 모르고 월희의 캐릭터 일러스트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이 떠오른다고 할까.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예전에 국내에 월희가 처음 커뮤니티를 통해서 알음알음 알려지던 시절, 동아리 멤버 중 타케우치의 그 당시 일러스트를 보고서 "내가 그려도 저것보다 잘 그리겠다"라고 호언장담하던 사람들이 몇몇 있었으니 말이다.

2D 일러스트와 도트는 2D라는 것 외엔 서로 차이가 큰 분야지만, 도트의 퀄리티가 썩 좋지 못해서 사람에 따라 어느 정도 콩깍지가 필요했다고 할까. 하긴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서브컬쳐 게임계는 최고 애정 캐릭터가 움직이는 것만 봐도 좋았던 시절이니, 서브컬쳐 유저라면 딱히 진입장벽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 대신 일반적인 게이머의 눈에 과연 만족스러울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던 때였다.

이제 눈을 2021년으로 돌려보자. 도트는 물론이고 고퀄리티 2D 스프라이트나 3D 카툰렌더링 등, 서브컬쳐 게임에서도 각 그래픽 스타일에서 지난 몇 년간 퀀텀 점프에 가까울 정도로 발전했다. 그냥 애정 캐릭터가 움직인다, 이런 정도가 아니라 '어느 정도 퀄리티인가'까지도 이젠 덕심으로 게임을 평가하는 확고한 척도로 자리잡았다.



▲ 라떼는 말이야 저 초창기 그림만 봐도 가슴이 두근두근했지만 그래도 발전한 게 낫긴 하다(응?)

그런 척도에서 지켜봐도 이번 멜티블러드는 확실히 눈에 띄게 발전한 게 보였다. 우선 계단 현상이 현저히 줄어 외곽선이 뚜렷히 드러났고, 그만큼 한 층 더 표현이 섬세해졌다. 최근 도트를 채택한 격투 게임 자체가 드물긴 하지만, 명맥을 잇고 있는 시리즈의 최신작들과 비교해봐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 시리즈에 개발팀 중 하나가 참여했으니까 당연하다고 쳐도, 기법에서도 여러 가지 발전이 눈에 띄었다. 도트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컷씬, 3D 이펙트까지 자연스럽게 녹여내면서 이젠 다른 2D 격투 게임들 사이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수준이 됐다고 할까. 팬이라면 감격할 만한 정도로 괄목상대한 변화다. 아울러 클래식한 감성을 퀄리티 있게 녹여내서, 2D 격투 게임을 즐겨했던 유저들도 조금 혹할지도 모르겠다. 계단 현상이 최소화된 깔끔한 도트로 그려낸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애니메이션 컷씬까지 덧입히면서 각 캐릭터마다 개성을 드러내는 필살기 연출은 고전 2D 격투 게임이 3D로 바뀌기 전, 최종 발전해온 그 모습을 연상케하니 말이다.

아울러 3D로 구현한 배경도 3D로 만들었다는 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2D 캐릭터 사이에 녹아있었다. 개발진에서 처음 발표할 때 3D로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다면, 그냥 2D로 만들었겠거니 하고 지나쳤을 법하다고 할까. 월희 리메이크에서 배경이 미사키 시가 아닌 소우야 시로 바뀌었는데, 그렇게 리모델링한 것만큼이나 일신한 변화가 느껴졌다.

물론 팬심에서 다소 과장되게 이야기했을지도 모르지만, 동인 게임이라는 소리를 듣던 시리즈가 강산이 한 번 바뀐 뒤에 꽤나 발전했다는 건 사실이다. 그렇게 일신한 그래픽으로 알퀘이드, 시키, 아키하, 시엘 등 캐릭터를 만나는 재미는 팬이라면 결코 놓치기 싫은 일이다.












▲ 깔끔한 도트와 2D 느낌을 살린 3D 배경, 애니메이션 컷씬 연출은 팬심을 만족시키고도 남는다



세계관만큼이나 복잡한 시스템을 완만하게 다듬은, 짜릿하고 속도감 있는 배틀




이렇게 말은 하지만 대전 격투 게임이 어떤 장르인지는 굳이 설명 안 해도 알 것이다. 대표적으로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 아니던가. 메이저 격투 게임도 그런데, 더 유저 풀이 적은 서브컬쳐, 그것도 동인부터 올라온 게임은 그야말로 해골물처럼 고이기 쉽다.

특히나 이 멜티블러드의 근간이 월희 아니던가. 그 옛날 타입문 작품이 처음 우리나라를 강타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일반인들이 보면 중2병 돋는다지만 한 번 빠져들면 이것저것 자꾸 파고들면서 보게 만드는 묘한 맛이 있었다. 라떼는 말이야 이런 소리가 나오기 좋은 말이긴 한데, 그때 또 싸이월드 감성하고 뒤섞이면서 지금까지도 악명 높은 달덕 밈이 나올 사례들이 수십 건이나 싸이월드 서버에 봉인되어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도 생존해있는 몇몇 사례만 봐도 좀 기가 찬 수준이니, 그게 만일 봉인 해제되는 순간 대체 어떤 후폭풍이 불어닥칠지 생각만 해도 두렵다.

잡담은 여기까지. 결론은 멜티블러드가 흔히 말하는 '일반적인' 느낌과는 다소 다른 스타일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란 거다. 그 근간이 되는 월희 자체가 그런 작품이니 말이다. 어쨌건 그런 세계관과 스타일을 살려내는 것에 주력했던 만큼, 당연히 여타 2D 격투 게임보다 훨씬 복잡다단한 시스템과 설정이 붙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흔히 생각하는 필살기 게이지 같은 것이나 가드 외에도 쉴드, 마술회로, 회로 개방, 리액트 등등 처음 접한 유저들이라면 어리둥절할 개념과 시스템이 있었고, 그것에 대한 설명도 그리 친절하지가 못했다. 말 그대로 '모르면 맞아야지'의 정석이라고 할까.






▲ 튜토리얼 및 가이드 시스템을 디테일하게 다듬어서 접근성을 높였다

멜티블러드:타입 루미나에서는 리메이크됐다고 해도 세계관의 배경 자체가 그렇게 꼬여있다 보니 그 복잡한 시스템을 완전히 없애거나 하진 않았다. 대신 커맨드를 단순화시키고, 입력 판정을 조금 여유있게 주는 데다가 기본 공격 버튼만 눌러도 콤보가 완성되는 '래피드 비트'를 채택해서 입문 과정을 다듬었다.

이런 변화는 다른 2D 베이스 격투 게임의 트렌드였지만, 멜티블러드:타입 루미나에서는 효과가 더욱 뛰어났다. 멜티블러드 자체가 원체 시스템이 복잡하고, 이를 하나도 모르면 그저 맞는 수밖에 없는 시리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보들은 자기 애캐들의 스토리라도 끝까지 보고 싶어 발버둥치다가도 스토리 모드에서부터 좌절한 적이 꽤나 많았다. 이제는 그런 걸 모르더라도, 래피트 비트 정도만 할 줄 알면 어느 정도 확정타는 뽑아낼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스토리 감상이나 싱글플레이 정도는 무리가 없다고 할까.

아울러 공통 커맨드 및 커맨드 단순화, 입력 판정이 조금 여유로워진 것까지 겹치면서 어느 정도 격투 게임 경험이 있다면 예전보다 더 쉽게 콤보를 짜낼 수 있었다. 하다못해 대표적인 필살기 커맨드 236A나 B, C를 래피드 비트와 개틀링 콤비네이션 사이사이에 집어넣기만 해도 나름 준수한 대미지를 뽑아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원체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입력이 조금 빡빡했던 과거와 달리, 커맨드도 간편해지고 선입력도 캐치를 잘하기 때문에 초보라고 해도 기본 콤보 정도는 어느 정도 연습만 하면 바로 쓸 수 있었다. 실전에서 쓸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그래도 멀티플레이에서 두들겨 맞는 와중에 빈틈을 찔러놓고 반격은 노릴 수 있는 정도의 틈은 준 셈이다.



▲ 래피드 비트+필살기+공중 추적 래피드 비트로 그럴싸한 콤보도 금방 만들 수 있다

여기에 튜토리얼이나 트레이닝 메뉴, 시스템 설명도 잘 갖춰두었기 때문에 이전 시리즈를 몰랐던 유저도 언제든 정보를 확인하고 연마할 수 있었다. 특히나 콤보 미션에서 실패시에 처음부터 다시 하기나 반복하기 등, 콤보를 반복해서 정확히 숙달하고 싶은 유저들을 위한 디테일한 설정도 충실했다. 커맨드리스트에는 점프 캔슬이나 추가타 팁도 잘 써있는 편이고, 연습 모드에서 입력키를 노출하면 프레임 정보도 나온다. 사소한 부분이라고 넘어가겠지만, 그런 사소한 부분도 누적되다보면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특히나 격투게임은 입문하고 나서 어느 정도 적응하기까지 실전과 연습 모드를 계속 오가야 하는 만큼 더욱 그런 사소한 불편함이 크게 느껴질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최신 트렌드를 빠르게 접목하고, 디테일까지 신경 쓴 이런 부분이 더욱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물론 격투 게임은 상대와 공평한 조건에서 1:1로 자신의 실력을 겨루는 게임이다. 내가 쉬워졌다는 건, 상대도 쉬워졌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니 고수들이면 아예 한 번도 콤보를 놓치지 않고 칼같이 우겨넣거나, 더 쉬워진 콤보를 응용해서 아예 숨도 못 쉬게 틀어막아버릴 우려가 있다. 더군다나 멜티블러드는 초기 버전에선 매번 무한콤보가 발견되서 밸런스 이슈가 불거졌던 시리즈니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이번에는 무한콤보 문제는 없어졌지만, 실드 시스템이 리스크가 적어진 탓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상대방의 공격을 실드로 방어한 뒤에 A, B 등을 추가 입력하면 반격을 하는데, 이를 실드로 막아서 추가로 반격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반격을 또 다시 타이밍에 맞춰 실드를 누르면 방어 후에 반격이 가능해지다보니, 반격을 반격하고 또 그걸 반격하는 꼬여버린 게임 양상이 나온다고 할까.

물론 나중으로 갈수록 타이밍이 더 짧아서 무한 반복하는 건 어렵긴 하다. 다만 보스 러시 등의 콘텐츠를 살펴보면 초보들이 실드로 야심차게 반격해서 기회를 잡는 것이 기획 의도인 것으로 보이는데, 고수에겐 아예 그것조차 통하지 않아서 손을 대기 힘든 상황이었다. 기껏 반격 찬스를 잡았는데 숨돌리기는커녕 오히려 그냥 가드한 것보다 나쁜 상황이 되어버리니 조금 할 줄 아는 상대를 만나면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스토리는 깰 수 있게 해줬으니. 숨통은 좀 더 틔워주긴 한 게 다행이다.




▲ 그나마 반격할 여지가 있다는 거지, 이래저래 맞으면서 배우는 건 피할 수 없다



팬서비스를 채우기엔 부족한 볼륨, PC 버전의 잦은 오류


다소의 잡음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세련되게 바뀐 외형만큼이나 내부도 나름 정돈이 됐으니, 팬이라면 해보기엔 충분했다. 어찌되었건 시작부터 팬게임에, 팬심을 채우는 게 우선인 시리즈 아니던가. 거기에 게임으로서 퀄리티를 갖추기 위한 노력까지 결실을 맺었으니, 팬심이 가속도가 붙어서 계속 플레이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 불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만큼이나 이를 쭉 이어가기 위한 콘텐츠가 뒷받침되어있다고 하기엔 좀 애매했다. 우선 전작들에 비해 캐릭터가 줄었다는 게 타격이 컸다. 물론 이는 예견된 일이긴 했다. 월희가 리메이크되면서 캐릭터 라인업에 변경이 생겼고, 루트도 알퀘이드와 시엘 루트만 나온데다가 스토리도 일부 변경됐으니 이를 바탕으로 한 멜티블러드에서도 변화는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캐릭터가 줄어든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스토리의 볼륨은 상당히 적었다. 조금 과장되게 이야기하면 그저 캐릭터가 잠깐 대면하는 장면들만 보여주고, 후일담만 스치듯이 보여주는 게 전부였다. 원래 그런 시리즈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잠깐 대면하는 장면조차도 짧고, 경우의 수도 적다. 한 캐릭터당 세 번 정도만 그런 이벤트가 발생하고 끝이니 말이다. 그나마 모든 캐릭터의 스토리를 다 끝낸 뒤에 나오는 '보스 러시' 모드에서는 나스 기노코 특유의 개그 퀘스트 느낌을 살린 스토리가 통째로 들어있어서 위안이긴 하지만, 그것마저 없었다면 사실 절망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볼륨이다. 이런 걸 두고 평균의 오류라고 하지 않던가. 특출난 하나가 모자란 나머지를 커버하는 거나 평균적으로 괜찮은 거나, 다 평균을 내고 보면 비슷비슷해서 단순 수치로만 비교하면 놓쳐버리는 그런 거 말이다.



▲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조합이긴 한데...더 갖고 와, 아니지 다 갖고 와

▲ 그래도 난관을 극복하면서 외전 보는 맛은 어느 정도 챙기긴 했으니 다행이랄까

최근 격투 게임 추세가 이런 부분들을 DLC로 채우다보니 그런 방향으로 갔다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DLC는 추가로 주문하는 개념이지, 지금 당장 주문한 요리에 나오는 몫이 아니다. 지금 당장 주문한 요리의 분량이 배를 채우기에 부족하다는데 DLC까지 기다리라는 건 그때까지 허기를 참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나. 특전이나 이런저런 요소들이 들어갔다지만 라운드 보이스나 그런 것들만으로 허기를 참아내기엔 역부족이다. 물론 아주 오랜 옛날부터 화석마냥 월희를 기다려왔던 고대 유물팬들이라면 물 한 방울에도 기뻐할지 모르겠지만, 사람이라는 게 욕망에 한 번 불이 붙으면 그 위력이 상상 이상이지 않던가. 한 번 불 붙은 팬심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리가 없다.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치면서 인내심에 시험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타입문이니까 이래저래 축적된 썰들을 좀 보면서 유예 기간을 주는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얄짤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팬덤의 갈증은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여태까지의 멜티블러드 시리즈와 달리 이번 멜티블러드 시리즈는 네트워크 대전은 꽤나 잘 갖춰진 편이다. 최신 트렌드에 맞춰서 랭크전도 잘 되어있고, 트레이닝 대기 등 기본적인 건 다 있다. 조건 설정 등도 어느 정도 갖춰져있어서 아예 손도 못 대고 질 법한 상대가 매칭되거나 그렇진 않다. 물론 고인물이 워낙 많은 게임이라서 같은 C등급이라고 해서 이길 수 있다, 이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한 번은 좀 쥐어박을 수 있다고 할까.

그런데 PC 버전은 예외다. 두 판 정도만 하고 나면 여지 없이 튕기거나, 타임아웃되서 다시 매칭을 잡아야 하기 일쑤다. 오죽하면 일본 프로게이머의 트위터에서 PC 버전은 할 수가 없어서 PS 버전으로 해야겠다는 말이 나왔을까. 그나마 10월 1일 패치로 나아졌다고 하는데, 그래도 튕기거나 디버그창이 뜨는 일이 생각보다 잦았다. 매칭이 잡히고 게임에 들어간 이후에 튕기는 일은 없지만 두 판, 세 판 정도 끝난 뒤 매칭을 잡는 중에 튕기거나 타임아웃되기 일쑤니 말이다. 더군다나 크로스플랫폼을 지원 안 하는 게임이니, PC 버전은 가면 갈수록 매칭 시간이 길어지지 않을까 싶은 우려가 생길 정도였다.






▲ 으아닛차 왜 랭크 매치만 몇 판 하면 이러냔 말이오



▲ 어쨌거나 패치는 하고 있으니 조금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







페이트와 달리 월희는 타입문이 동인팀이던 시절에 나온 작품이고, 그 뒤 미디어믹스를 진행했지만 페이트 시리즈만큼의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은 들쭉날쭉한 작화 때문에 흑역사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였다. 이후에 세계관을 공유하는 여러 작품을 연달아서 발표하긴 했지만 페이트 IP만큼의 호응은 얻지 못했고, 조금 딥하게 파고 드는 사람은 알고 나머지는 대략적인 맥락만 아는 정도로 남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멜티블러드는 더욱더 마이너한 시리즈였다. 그런 걸 접해봤던 입장에서 이리저리 썰을 풀고 싶었지만 이런 것에 대한 밈도 있지 않던가. 그리고 리뷰를 쓰는 입장에선 이는 지양해야 마땅한 일이다. '팬'으로서의 덕심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게임'으로서의 퀄리티를 논하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되니까.

그래서 이번 멜티블러드:타입 루미나를 플레이해보고서는 만족스러웠다. 그간 어딘가 나사가 풀린 듯한 밸런스에 "관심 있는 사람만 오던가"라는 동인 마인드가 느껴졌던 시리즈였는데, 이번 작품에선 이런 티를 벗은 느낌이 확실히 났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격투 게임이라는 장르 자체가 그 옛날과 다르게 매니아 장르가 된지 오래고, 타입문 스타일 자체가 원체 취향을 극히 타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멜티블러드는 그 '근간'과 맞닿아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그런 맥락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기본기가 갖춰졌으니, 한 번 플레이할 만한 그런 물건이 나왔다고 평가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의미다. 물론 2D 도트 그래픽을 채택한 격투 게임이 가뜩이나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신작 중 하나로 자신있게 소개할 만한 퀄리티가 나와서 기쁜 것도 있다.



▲ 월희 리메이크에서 캐릭터 라인업이 일부 수정됐으니 별 수 없긴 해도, 캐릭터 수가 상당히 적은 건 아쉽긴 하다

이게 밸런스가 정말 잘 맞는다거나, 2D 격투 게임 입문자도 아주 마음 놓고 차근차근 즐길 법한 그런 물건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캐릭터 픽률을 보면 아리마 미야코에 상당히 치우쳐져있고, 그외 몇몇 강캐에 치중하고 있는 추세다. 더군다나 앞서 말한 것처럼 반격의 반격이라는 통수가 있어서 초보들은 아차 하는 사이에 방어나 반격도 제대로 못하고 두드려맞을 수 있다.

그래도 팬서비스라는 입장에서 즐길 만한 건 다 즐길 수 있고 꽤나 속도감과 박력이 넘치는 최애 캐릭터들의 대결을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으니, 팬심을 충족하는 입장에서는 꽤나 할만한 타이틀이라고 하겠다. 싱글플레이는 조금 빈약하게 느껴지겠지만 모드의 수나 그 플레이타임을 따지고 보면 평균 정도는 하니, 적당히 즐기기에도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그 팬심을 완전히 채우기엔 지금은 조금 양이 부족하니, 조금 더 채워진 이후에 기회를 봐서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겠다. 그 오랜 기간 동안 갈증을 당장 어느 정도 채우느냐, 혹은 나올지도 모를 DLC와 완전판을 기다리면서 이왕 기다린 거 조금 더 버틸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을 것이다.
  • 깔끔한 도트와 3D로 맛보는 월희의 세계
  • 커맨드 정리, 신시스템으로 속도감 UP
  • 튜토리얼의 디테일을 다듬어 높인 접근성
  • 적은 캐릭터 수에 머릿수 채우는 캐릭터까지
  • 맥락을 고려해도 다소 싱거운 스토리 볼륨
  • 고질적인 밸런스 문제와 PC 버전의 오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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