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난 25초라는 시간을 소홀히 해서 졌다"

리뷰 | 윤서호 기자 | 댓글: 6개 |

"전반과 후반 각 5라운드, 라운드당 시간은 25초, 당신의 뇌와 피지컬을 시험하세요"


▶ 훈련을 건너뛰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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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명 : 렘니스 게이트(Lemnis Gate)
장르명 : 전략 FPS
출시일 : 2021.09.28.
개발사 : 래트루프 게임즈 캐나다
서비스 : 프론티어 파운더리
플랫폼 : PC, PS, Xbox

관련 링크: '렘니스 게이트' 오픈크리틱 페이지



연습경기, 1라운드


처음 들어간 순간, 뭔가 좀 쌔한 느낌이 들었다. 하긴 그것도 당연했다. 트레일러 공개 당시 FPS에 타임루프를 가미했다는 정보를 봤는데, 아무리 영상을 보고 소개문을 읽어봐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경쟁 게임에서 시간능력자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아예 본격적으로 시간이라는 소재를 적극 활용한 경우는 드물었으니 감이 안 잡힐 수밖에 없었다. 결론은 직접 확인하는 것밖에 없으니, 예약구매로 주문해두고 기다려왔었다. 그리고 마침내 전장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망설일 것 있나. 바로 들어갔다.

튜토리얼은 스킵하는 게 국룰이라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저 타임루프를 섞었다는 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덜컥 들어와서 대원들과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눈 채 훈련장에 들어와서, 얼떨결에 끌려온 캐피탄 대원을 데리고 지금 대기하고 있는 이 순간도 그렇다. 그러고 보니 이 대원들이 나라는 사령탑을 안 만나고 FPS 프로들을 만났다면 그저 무쌍을 찍고 돌아다닐 수 있을 테지. 그래서 지금쯤이면 수천수만 번 테스트 과정에서 계속 했을 튜토리얼을 건너뛰고 헤드샷을 뿜뿜 날려대고 있지 않았을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승리를 거머쥐려면 룰부터 알아야 할 테니 별 수 없다.

타임워프라는 기술이 개발된 한참 후의 미래를 배경이라 그런지 어딘가의 최첨단 우주기지 같은 시설이 눈에 보인다. 왜 그런 일을 벌이나, 했더니만 양자 게이트를 건너서 타임라인을 어지럽히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걸 처치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뒤틀리는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던가. 꽤나 복잡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런 패러독스 때문에 이런 전투 및 시뮬레이션이 발생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딱 봐도 미래풍 디자인에, 그에 걸맞는 그래픽을 갖췄으니 게이머라면 이해를 해줘야지. 미래풍의 스테레오타입에 딱 걸맞는, 아주 무난한 스타일이다.



▲ 시간 여행이나 타임루프 따위는 아주 간단히 할 법한 미래 분위기다

사실 현재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이 시설의 생김새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기본 이동 방식을 알려주는 게 초반부일 테고, 중요한 건 이 게임의 룰이다. 다만 그 튜토리얼 과정을 한국어로 재생해주는 정성은 마음에 든다.

지정된 목표물을 더 많이 가져오거나, 더 많은 지역을 점령하면 승리. FPS를 많이 해보았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룰까지 진행하는 건 문제가 없다. 심지어 대원은 내 명령도 칼 같이 그대로 따른다. 실수로 프래깅을 했는데도 그것도 고스란히 따라할 정도니까. 그런 해프닝까지 하고 남은 건 대체 타임루프라는 걸 FPS란 놈에 어떻게 섞었냐는 건데...

어느 순간 캐피탄 대원과의 접속이 끊어졌다. 그리고는 나머지 대원들에 대한 소개도 짤막하게 이어진다. 그들의 특성을 짤막하게 훑어보고 무의식적으로(심지어 이름만 겨우 숙달한 채로) 앞으로 나아가다보니 드론과 연결된다. 뭐지? 싶지만 어쨌든 드론을 움직인다. 위아래 그리고 부스트하면서 위잉거리다보면 맵 전체가 눈에 보인다. 첫 튜토리얼은 점령전. 전후반이 아닌 3라운드 약식이다. 드론이 전송해준 화면에 '턴'이라는 문구가 보인 걸로 봐선 턴제다. 일단은 선공을 잡았으니, 준비 타임에 빠르게 드론을 돌려서 지역을 탐색해본다. 방벽과 낮은 쉘터 같은 게 하나 있고, 그 옆 능선에 점령지역 하나. 중앙에 하나. 그리고 중앙을 기점으로 대칭으로 되어있는 1VS1 전용맵.



▲ 갑자기 드론은 왜? 싶었지만



▲ 적 동향을 살펴봐야만 이길 수 있지 않나. 잘 살펴보자

이 타임워프 기능을 바탕으로 전투 시뮬레이션을 돌릴 대원들은 처음에 만난 캐피탄 대원을 포함해 총 7명. 어설트 라이플에 샷건부터 저격용 라이플, 에너지건, 독가스 살포기 등 각자 다른 무기들을 들고 있고 스킬도 제각각 다르다. 다들 실전이라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누고 간단한 브리핑으로 소개를 마친 뒤, 전장에 바로 투입된다. 일단은 안전하게 능선부터 먹고 포탑을 깔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벤데타 대원과 연결했다.

포탑을 깔고 근접해서 샷건을 풀로 먹여주니 점령은 쉽게 된다. 좋았어 하는 순간에 탕, 탕 소리와 함께 연결이 끊어지고, 디스플레이 속에서 시뮬레이션만 계속 돌고 있다. 아차, 개활지에서 커버 없이 샷건 대원을 먼저 투입하는 실책을 저지르다니. 지휘관 실격이다. 그렇지만 돌이킬 수 없다. 벤데타 대원은 이제 내가 지시한 그 루프를 그대로 수행할 것이고, 그렇게 몇 번 적을 쏴보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아웃당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에 드론은 매정하게 맵을 다시 보여준다. 대원의 희생에 눈물 흘릴 시간 따위는 없다는 건가. 라운드 시간은 25초, 준비 시간도 25초 정도. 그 짧은 시간에 다른 대원을 투입해 벤데타 대원을 죽일 누군가를 저지하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로켓런처로 장거리 포격도 가능하고, 지뢰로 적의 접근을 저지할 수 있는 데스블로 대원이 좋겠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 능선으로 같이 올라가고, 그런 다음에 적이 보인다. 마치 가속기를 가로수마냥 엄폐물로 쓰고 있다니.

거기에 바로 포격 시작이다. 초탄은 불발, 잽싸게 에임을 옮겨서 2탄. 명중이다. 이제 남은 건 중앙 점령지에 포격을 해서 탈취하는 일이다. 망설일 필요 없이, 마우스를 클릭한다. 달칵.

펑.

아뿔싸. 벤데타 대원을 잊고 있었다. 벤데타 대원도 중앙에 있는 점령지를 먹으려고 그쪽을 보면서 달려가지 않던가. 머리보다 몸이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내 무지성 플레이 때문에 이전 턴의 벤데타 대원의 동선과 지금 나의 사선이 겹쳐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눈이 손보다 빨랐어야 하는데 FPS에서 잠시 손을 뗀 고작 몇 년 사이에 눈이 이렇게 침침해졌나. 벤데타 대원, 미안하네. 자네는 이번 전투에선 결국 피탄될 운명이었나보군.



▲ 복기해보니 톡신 대원이 맞은 거였지만, 어쨌든 총구 앞에 서지 말라는 철칙은 명심하자

...이런 쓸데없는 생각만 하느라 턴을 낭비하고 있는 지휘관을 용서하게. 그러는 사이에 적은 중앙까지 점령하고, 우리 기지를 노리고 있어었다 급히 다른 대원들을 다음 턴에 투입해서 중앙을 노리는 적들 두 명은 선제공격으로 제거했지만, 상대는 한 명씩만 죽이고 조금만 전진해도 이득인 상황이 이어졌다. 25초라는 시간이 왜 이렇게 짧은지.

아니지, 나는 25초라는 시간을 소중히 하지 않았다. 아군을 오폭해서 그의 1초를 내가 빼앗았다. 그리고 잡생각에 몇 초를 더 허비했다. 그 모래알갱이 같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점수차는 만회하지 못했다. 최종 점령지 수 1:2, 결국 내 게임역사상 처음으로 튜토리얼에서 졌다. 지휘관 실격이다.



턴 기반 1라운드


대기실은 때로는 새하얗고, 때로는 합금이 가득한 무미건조한 공간이었다. 우주공간 같은, 그런 암울함이 느껴진다. 대원들은 아무 말 없이 앉아있다. 기분전환을 위해서 코스튬을 바꿔보려고 했지만 활동비를 따로 챙겨오지 않았고 아직 메인 게임도 진행하지 않았으니, 바꿀 수 있을 리가 있었나. 그들은 각자 무기를 손질하면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만나기 전, 모의전에서 이런 상황을 몇 천 번은 겪어봤을 역전의 용사들 답다. 눈빛이 싸늘한 게 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훈련장은 긴장감이 없고, 코로나 시국에 로컬이 가능할 리 없었다. 혹시나 해서 들어가봤더니, 혼자 두는 체스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손풀기용으로 일반을 선택, 매칭을 준비해본다. 25초 라운드만 지속하다보니, 분 단위로 시간이 넘어갈 때마다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결국 랭크로 간다. 브론즈5, 당연한 일이다. 어쨌거나 한 판, 실전으로 내 능력을 증명해봐야 했으니 모드는 빼지 않고 다 정했다. 1VS1 턴 기반부터 1VS1 실시간, 2VS2 턴 기반, 2VS2 팀원 협력 플레이, 2VS2 적 협력 플레이, 2VS2 실시간 등. 보아하니 턴제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도 붙는 모양인데, 그건 또 어떻게 진행될까?



▲ 한 화면으로 친구와 1VS1이 가능하지만



▲ 친구가 없으면 혼자 두는 체스 느낌이다



▲ 어차피 처음부터 지고 시작했으니, 더 진다고 두려울 게 뭐가 있나 ㄱㄱ씽이닷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상대가 매칭됐다. PS마크가 보이는 걸로 봐선 PS로 접속, 크로스플랫폼을 지원하는 모양인가. 아까 패착을 겪었으니, 이번엔 차근차근 진입해서 하나하나 전진한다. 포탑을 깔고 점령한 뒤 뒤로 빠지고, 진입로에 독가스를 미리 살포해서 견제하는 수로 중앙을 야금야금 먹어가는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갑자기 네트워크 연결이 끊어졌다는 말과 함께 매치가 종료가 안 됐다면 내 승리였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건 전적에 들어가지 않았다. 비겁한 겁쟁이 같으니라고. 네 대원들이 널 어떻게 보겠냐 말해봤자 상대에겐 들리지도 않겠지. 주최측의 대응만 기다리고 있지만 답을 빨리 내려줄 것 같지도 않고, 일사부재리로 처리할 거다.



▲ 서로 한 명&거점 하나씩 맞교환 가지만 스나이퍼 라이플 VS 아킴보 SMG, 속도 차이는 명확하다



▲ 전반전도 미처 안 끝났는데 도망가는 나약한 녀석 같으니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 사이에 전장이 다시 결정됐다. 푹 파인 절벽들 사이로 구조물들이 사각형을 이루면서 배치된 이곳은 지각지대다. 각 모서리와 중앙에 있는 2층짜리 구조물에 있는 XM을 최대한 많이 회수하면 이기는 전장. 정찰을 위해 드론을 서로 날리는 행동은 마치 개전 직전 서로에게 하는 인사 같이 느껴진다. XM이 뭐였더라?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긴 하지만 그런 걸 생각하기엔 초읽기 시간은 짧다.

전반전은 선공으로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앙을 먼저 장악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번에도 똑같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첫 수는 이번에도 역시나 포탑과 샷건을 들고 설치를 담당하는 벤데타 대원. 내 애정픽이다. 벤데타 대원은 내 지시에 따라 왼쪽 사이드로 질주해서 이번엔 적 진입로 앞에 포탑을 깔고, XM을 재빨리 회수한 뒤에 추가로 XM을 얻으러 간다. 그렇지만 25초는 역시나 짧았다. 골인을 눈앞에 두고 벤데타 대원은 회수된다.



▲ 아...조금만 더 가면 추가골인데 시간이 너무 촉박한 것

물론 상대가 그걸 지켜볼 리가 없다. 곧바로 벤데타 대원을 암살하러 파견보낸다. 불쌍한 벤데타 대원. 포탑을 깔러 가다가 적에게 헤드샷을 맞는다. 나는 복수를 위해서 데스블로를 파견한다. 사이드로 잽싸게 진입하고, 이번엔 벤데타 대원이 맞지 않게끔 옆에서 로켓런처를 쏜다. 펑, 초탄은 역시나 빗나간다. 하여간 이놈의 손은 한 방에 제대로 조준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두 번째 사격에 적을 처리하고 득점을 위해 뛴다. 그때마다 이 설계자들이 참 시간은 칼 같이 재는구나, 싶다. 아슬아슬 한 끗 차이로 골인을 못하게 만들어둘 줄이야. 아마 그래서 순간이동이 특기인 러쉬 대원이 빛을 발하는 것이겠지.

그렇게 수를 세고 있는데 희소식이 들린다. 펑! 맨 처음에 빗나갔던 초탄에 상대방의 후속 대원이 피격당했다. 그것도 깔끔한 헤드샷이라니!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상대방의 홀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피어난다. 10초 벌었군.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다니, 무슨 바둑 초읽기 이런 것도 아니건만. 그런데 그렇게 머리를 굴리면서 수를 생각하는 맛은 꽤 나쁘지 않다. 여기에 에너지 드링크만 하나 더 있으면 완벽할 텐데, 원체 많이 마셔서 요즘 줄이고 있는 중이라 아쉬울 따름이다.

그 다음부터는 무난하게 중앙부터 하나하나씩, 야금야금 먹어간다. 상대방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25초 중 10초, 그리고 한 턴을 완전히 공으로 날려버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1:0의 상황에서 내 턴이 지나면 2:0, 상대방의 턴이 되면 1:1이 되는 접전이 이어지다가, 4라운드에 좌측을 제압하다가 XM을 회수하는 적이 중앙쪽으로 통과해 아군을 저지하고 있다는 걸 파악했다. 그래서 그 적을 죽이니 4라운드 끝이 2:1이 되는 상황. 상대방은 마지막에 저격수를 꺼내서 최후 발악을 하는 것 같은데, 상대방도 나처럼 에임이 썩 좋진 않은 거 같아서 XM을 회수하러 간 3명의 대원 중 2명이 무사히 복귀한다. 전반전은 2:1 승리.



▲ 이 녀석이 내 득점원을 처리하고 있는 걸 파악했으니



▲ 그 시간 전에 미리 저지하자



▲ 그 다음에 상대가 뭘 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저지엔 실패한 것 같다. 결과는 2:1로 전반전 승리

먼저 배치할 수 있는 선공이 유리한가 싶어서 후반전은 다소 긴장감이 돌았다. 후공이었으니 일단 0:1로 시작하는데, 다음 턴 상대방 진입을 저지하겠다고 시간이 어느 새 20초를 지났다. 아차 싶어서 뛰지만, 시간과 공간은 잔인하다. 5초만에 갈 수 없는 거리였고, 그렇게 해서 1라운드는 0:0으로 종료.

거기다가 2번째 라운드, 적의 눈이 먼 제압사격에 벤데타 대원이 어이없이 헤드샷을 맞았다. 미래를 보고 오는 핵이라도 있는 건가? 싶지만 그랬다면 아마 상대방은 이런 게임을 하고 있지 않겠지. 허탈하게 쓰러진 벤데타 대원이 홀로그램으로나마 움직이는 걸 보면서 그의 승부욕을 떠올린다. 정신차리자. 그래야 이긴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금 수를 생각한다. 초읽기 25초가 왜 이렇게 빡빡한지(타임루프 후 복기하니 내 지시 실수로 벤데타 대원이 데스블로 요원의 사로 앞에 서버렸던 것이었다. 벤데타 대원, 미안하네. 나를 용서하게).

그래서 2라운드는 당연히도 0:2로 끝난다. 난 실수했고, 적은 두 대원을 제압하고 XM을 안전히 두 번이나 챙겨간다. 우측 사이드는 이제 적의 홈그라운드다. 대원들은 동요 없이 내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역시 프로답군. 심호흡을 한 번 후욱, 들이쉬면서 나 자신에게 주문한다. 침착하자. 상대방은 우측 사이드를 먹을 게 확정이면 나는 왼쪽과 중앙을 빨리 장악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러시 대원이 활약할 타이밍이다. 마침 러시 대원은 몸을 딱 풀고 있었고, 나오자마자 쏜살 같이 중앙으로 달린다. 번개 같다.

그런데 아슬아슬하긴 했다. 점프패드를 중간에 멍청하게 밟아서 좀 지연됐으니. 러시 대원의 텔레포트까지 모두 다 칼 같이 써서 겨우 1초를 남기고 2골을 넣는데 성공한다. 설마 하이퍼FPS를 요즘 안 했다고 이렇게까지 노답이 되어있을 줄은. 그런 푸념이 스쳐지나가지만, 그런 걸 생각할 정도로 25초란 시간이 여유로웠나? 아니면 내가 집중해서 이렇게 길게 느껴진 건가?



▲ '턴 기반' 싸움이라 불필요한 교전 없이 득점만 노리는 턴도 때에 따라선 필요하다. 명심하자

다시 적의 25초. 적은 중앙 시설의 1층으로 가서 XM을 픽업한 뒤에, 일석이조를 노리고 러시 대원의 뒤를 밟았다가 실패한다. 그렇게 해서 점수는 2:1, 역전이다. 이걸 그대로 유지하자는 생각으로 캐피탄 대원으로 독가스를 살포하고, 상대방은 그 루트를 우회하다가 25초 내로 XM을 추가 회수하지 못했다. 승기를 잡았다는 생각에 그 좋지도 않은 에임으로 스트라이커 대원을 골라 스나이핑을 한다. 다급한 상대가 골대로 아무 생각 없이 허겁지겁 들어오는 심리를 이용, 골대에만 집중한다.

타앙,

스코프로 보니 상대방은 이번에도 5라운드에서는 저격을 하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절망적인 에임으로 움직이는 상대를 저격하려고 하다니. 코웃음 한 번 치면서 저격하느라 바쁜 그 스나이퍼의 머리에 총알을 배달해준다. 클린 히트.



▲ 에임이 구려도 이미 상대가 어디로 가는지 대략 알고 있으니, 명사수 흉내내는 맛이 있다

이어서 골대로 진입하려는 대원 둘을 사격한다. 탕, 철커덕. 저격용 소총의 탄알집이 2발짜리였다는 걸 잊다니. 재빨리 장전하고 다시 탕, 탕, 두 발을 재차 사격한다. 3발 중 2발 피격이라는 놀라운 성과였지만, 애석하게도 재장전하는 사이에 XM은 회수되어버렸다. 그래도 후반전 최종 득점은 2:1, 승리다. 전반 승리에 후반 승리, 총점 435점 대 240점으로 완승. 거기다가 하이라이트각까지 쏠쏠하게 나왔으니, 이제야 대원들을 볼 면목이 생긴다.

턴 기반은 이겨봤으니, 남은 건 이제 실시간이다.



실시간 1라운드


사실 처음 훈련 때도 턴제부터 알려줬으니, 실시간은 대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일말의 불안감이 있다고 할까. 그건 남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매칭 시간은 조금 더 길었다. 하도 경기 내에서 초 단위로 재서 움직이다보니, 이젠 초 단위로 매칭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불안하다. 이 시간이면 내가 뭘 더 했을 텐데, 강박증이 걸려버릴 것 같다. 대원들은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아무 말 없이 무기를 점검하고 있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키메라, 정글 사이에 위치한 실험장으로 중앙의 메인 셸터와 좌우측에 가속기가 하나씩 놓인 점령전 맵이다. 맵의 전경을 다 파악하기도 전에 드론의 타임이 지나갈 게 뻔한 터라, 주요 오브젝트만 재빨리 파악한다. 점프패드는 없고, 중앙과 사이드 사이 이동은 자유롭지만 장애물이 꽤 많아서 한쪽 사이드에서 반대편이나 중앙 저격은 어렵겠군. 물론 이건 내 상황이다. 상대방의 에임이 정말 좋으면, 장애물 사이 잠깐 빼꼼 거린 것도 칼 같이 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격소총이 원샷원킬이 가능하다는 걸 전판에 확인했으니 말이다. 내 쓰레기 같이 구린 에임으로도 어찌저찌 맞추면 될 정도니, FPS 고인물이 잡으면 25초라는 시간만 주어져도 시야에 들어오는 족족 다 처리해버릴지 모르겠다.

탐색전이 끝나고 대원을 고르는 5초, 카운트다운이 지나가는 것 같다. 첫 수는 역시나 벤데타. 샷건으로 가속기를 빨리 켜고, 포탑으로 적을 견제하는 수다. 원거리 교전 위주라면 불리하지만, 어차피 장애물 때문에 사이드에서도 원거리 교전은 쉽지가 않고 중앙은 아예 좁은 셸터라 샷건은 못 피할 테지.

적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게임 시작 5초만에 두 벤데타 대원이 서로 마주본다. 철컥, 타탕! 샷건의 장전음과 메마른 총성이 거의 동시에 울려퍼지고, 총격전은 시작된다. 잠시 엄폐물로 숨었다가 다시 조준한 사이, 적은 잽싸게 포탑을 깔고 있다. 기회다, 싶어서 다시 총을 먹이지만 간발의 차이로 포탑은 완성되고 적은 거의 피해가 없다. 침착하지 못하게 쏜 내 실책이다.



▲ 실시간 중앙 싸움의 1차 결과.gif, 이 둔한 판단력과 에임으로 상대를 이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중앙 가속기를 두고 좀 거리를 벌린 채 사격을 했다고는 치지만, 설마 저 정도까지 못 맞출 줄이야. 내 에임에 내 스스로가 절망할 지경이다. 대원은 잘못이 없다. 그는 지시한 대로 다 해내는 프로니까. 저주스러운 건 내 손, 그리고 세팅을 게임 내에서 할 수 없게 해둔 주최측의 농간이다. 돼지손에 진주라지만 그래도 좀 매끄럽게 다듬어주면 티끌만큼이라도 폼이 날 텐데, 그런 센스가 없다니 절망스럽다. 나중에 훈련장, 대기실에서 감도를 따로 조절해야 할까.

두뇌회전은 어느 덧 풀로 가동하고 있다보니 푸념을 늘어놔도 어느 덧 다른 코어에서 임무를 연산하고 있었다. 어느 새 벤데타 대원은 샷건에 한 방 더 스쳤다. 한 대 더 맞으면 끝이다, 싶을 때 타이머를 흘끗 본다. 아직 13초. 사이드로 바로 뛰면 가속기를 아슬아슬하게 켤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반사적으로 벤데타 대원은 바로 위협 사격을 한 번 가한 뒤 문을 박차고 뒤로 나갔다. 그리고는 사이드로 질주했다. 반대편 장애물에 엄폐하고 있던 적이 한 번 추격해본 것 같지만, 그 역시도 시간 때문에 결국 선택을 해야 했다. 8초, 그는 결국 중앙 가속기를 켜는 걸 선택한다. 탕, 탕, 탕, 중앙 건물에서 들려온 총성이 메아리치고 있는 사이 벤데타 대원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발걸음 소리가 그 샷건의 메아리 소리 못지 않게 크게 울려퍼지고, 심장박동도 빨라진다. 더 빨리, 더, 더.

철컥, 탕탕탕탕! 급하게 당긴 방아쇠 소리, 그리고 연달아 이어지는 샷건의 굉음, 가속기의 게이지가 파란색으로 물든 걸 다 확인하기도 전에 카운트는 종료된다. 다행히도 스코어는 1:1. 간발의 차이로 동점에 성공한다.



▲ 데스매치가 아닌 '점령전'이다. 룰을 잘 기억하자

그 다음은, 데스블로 대원이 로켓런처로 적을 갈아버릴 차례. 이젠 말할 것도 없지만 초탄은 빗나갈 게 뻔하니 포탑부터 펑, 적은 유폭됐지만 아직 살아있다. 그래서 포탑을 또 만들 때 그 포탑에 다시 펑. 그걸로 끝내고 중앙을 점령했는데 1:1로 라운드가 종료된다. 드론 탐색 시간 동안 루프를 다시 돌려보니, 적은 내가 중앙을 점령하는 동안 벤데타 대원을 요격하러 러시를 파견하고 그대로 좌측 사이드를 먹었다.

"치고빠지는 생쥐 같은 놈에게는 독약이 제격이지 않겠나?" 톡신 대원이 내게 말하는 것 같다. 아마 내 두뇌가 풀로 가동하다보니 되도 않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거겠지만, 뾰족한 수가 없으니 톡신을 투입해 적 사이드 주변에 독가스를 살포한다. 효과는 굉장했다! 러시는 직격으로 독가스 지역에 피격하고, 다음 턴에 맞상대로 투입된 상대 대원도 캐피탄의 독가스 지대를 미처 못보고 지나가다가 쓰러지고 만다. 보네거트식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가는 거지.



▲ 적을 처치하고 아무 생각 없이 막 뿌려둔 독가스인데



▲ 거기에 걸려서 적이 죽을 줄이야.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인가?

그렇게 해서 점수는 2:0까지 가고, 상대방은 어떻게든 1점을 내기 위해서 우측으로 모였다. 그것까진 굳이 막을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좌측과 중앙만 굳히고 전반은 2:1로 마무리. 이 기세로 가면 되겠다.

하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다. 적어도 그는 대원들의 특수 능력에 대해선 나보다 훤히 더 잘 아는 듯했다. 이제야 겨우 두어 번 써본 햇병아리인 나는 톡신 대원이 투사체 충격 지점으로 순간이동하는 능력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앞서 독가스 살포로 톡톡히 이득을 봤으니 그 저력을 미리 알아야 했건만, 먼저 자리잡은 상대가 깔아둔 독가스가 내 코에 스며드는 것 같다. 실제론 대원들이 들이마시는 거겠지만, 그만큼 내 실책이 온 몸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라운드 하나, 아니 이전 라운드까지 두 개의 라운드가 통째로 날아가는 통렬한 콤보가 시간을 거슬러와서 내 명치에 꽂힌다. 대체 어느 사이에 내 진영 가까이까지 독가스를 뿌린 거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4라운드와 5라운드에 적은 모든 거점을 점령한다. 단 1분하고도 30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을 나는 허둥지둥하다가 대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때의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흘러가는지. 전반은 2:1이었지만 후반 0:3, 의심할 여지가 없는 역전패에 완패다. 가슴이 쓰라려서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플레이하고 싶지만, 애꿎게도 현실에선 타임루프가 불가능하다. 리플레이만 보면서 다신 이런 실수 안 해야지 다짐만 할 뿐.



▲ 적을 많이 죽이거나 피해를 더 많이 입히는 게 목표가 아니다. 미션 목표 달성이 최우선. 나는 아직 멀었다







25초라는 짧은 시간이 계속 이어지고 이어지다보니 어느새 며칠이 가있었다. 얄궂게도 내 등급은 마치 타임루프를 한 것마냥 진전이 없다. 먼저 선공으로 점수 따고 난 뒤에 후공으로 상대방이 점수를 저지하는, 이 게임의 전반적인 양상 같다고나 할까. 이를 타파할 수 있는 묘수를 떠올릴 뇌지컬이나 최소한의 동작으로 상대방을 다 제압하는 피지컬이 뒷받침됐다면 달랐겠지만, 그게 안 되면 계속 전전긍긍하면서 이 지옥 같은 루프 속을 아둥바둥거릴 수밖에 없다.

이 정체 불명의, 왜 이런 구조로 진행되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미래의 전투를 처음 봤을 때는 의문이 들었다. 굳이 이런 번잡한 룰을 왜 채택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몇 번의 루프를 돌다보면 그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된다. 흡사 영화 셜록 그림자 게임에서 셜록 홈즈와 모리어티 교수의 공방 시뮬레이션 장면이 실사로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 수를 두면 상대가 저렇게 응수하고, 그 응수에 나도 대응하면서 돌파구를 찾고 찾고 또 찾아서 승패를 가르는 묘미. 25초라는 시간에 5라운드는 그 공방에 비하면 양반이지 않았을까.

간혹 매칭 상대의 네트워크 상태가 안 좋아서 끊어진다거나, 매칭이 꽤나 안 잡혀서 다른 권역의 상대방과 겨루게 되는 경우엔 좀 버벅거리긴 하는 게 좀 아쉽다. 그나마 아직은 매칭이라도 잡히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FPS라고 하면 바로 실시간으로 투닥거리는 양상을 기대했겠지만, 이건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전략 시뮬레이션에 FPS를 입힌 거다. 아니면 워게임 브리핑 시뮬레이션이라고 할까. 적이 이렇게 응전하면 아군은 이렇게 대응해야 한다가 5차례에 걸쳐서 진행되니 말이다. 임관평가 때 브리핑 시험이 떠올라서 PTSD가 올 지경이다. 하필이면 훈육관님이 각개전투 및 분대전투 전문가셔서 스파르타로 뼈저리게 가르침을 주셨으니. 그 이글거리는 목도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파트너와 실시간 브리핑하고 의견교류하면서 치고 나가야 하는 2VS2는 그래서 지옥이다. 25초라는 시간은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기 너무 짧았고, 아군의 눈먼 제압사격에 내 대원들이 쓰러져나가는 꼴을 보면 내 총구도 그놈을 향해 가기 마련이다. 반대로 상대편이 그런 꼴을 하는 걸 보면 통쾌하지만, 그런 일이 얼마나 되겠나. 팀 게임에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아군은 야이언스 적군은 버스기사라고 말이다. 그나마 핑, 채팅 등은 잘 지원하니 익숙해지면 해결될 문제겠지만, 누구도 그 시뮬레이션에 동참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이크에 대고 욕해대는 그 음이 아직도 생생해서 다시는 그걸 재생하고 싶지 않다. 그런 건 머리속에서만 재생하는 걸로 충분하다.



▲ 1VS1만 해도 팀킬이 엄청 나오는데, 2VS2는...상상에 맡기겠다

타임루프는 지옥이다. 동일한 상황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그 일이 결코 즐거울 리가 없다. 행복한 엔딩이 반겨준다고 해도 그건 '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짧은 루프의 결말은 내 일이다. 고향으로 회귀하는 연어마냥 브론즈에서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다른 곳으로 털털하게 가는 미래가 그려지지만, 지금 순간도 나는 대원들을 내 머릿속에서 체스말처럼 움직이며 저번 경기를 복기하고 있다. 그리고 경기에 앞서 대원들을 다시 지켜보고 있다.

대원들은 그런 내 모습이 익숙한지, 이젠 좀 밝은 옷차림과 꽤 그럴싸한 포즈로 반겨주고 있다. 좀 예쁜 옷도 사주고 꾸며주고 싶지만 마음에 드는 건 썩 없어서, 그냥 루프를 여러 차례 하며 얻은 것들 중 그나마 나은 걸로 입혔다. 더 좋은 걸 내놓지. 그리고 저번엔 졌으니, 이번엔 이기자. 이런 말을 중얼거리는 나는 지금 정상인가? 그런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드론으로부터 신호가 온다. 승리를 향한 루프, 다시 시작이다.

▶ 훈련을 건너뛰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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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프, 턴 전략, FPS를 섞은 참신함
  • 25초에 맞춰 설계된 짜임새 있는 맵
  • 드론, 핑, 마크, 리플레이로 쉬운 복기
  • 그 짧은 시간에도 느껴지는 준수한 손맛
  • 25초란 시간에 묶여서 경직된 맵 디자인
  • 한 명이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끝나는 팀전
  • 낯선 룰과 이동 테크닉으로 높아진 진입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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