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또 로그라이크 덱빌딩, 그런데 '손가락 두 개면 되는'

리뷰 | 박광석 기자 | 댓글: 1개 |

편리함에 집중한 로그라이크 덱빌딩의 또 다른 모습


스팀에서는 거의 매일 새로운 '로그라이크 덱빌딩' 게임이 출시되고 있다. 또 로그라이크 덱빌딩이냐며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엔 또 어떤 것으로 차별화를 추구했을까'라고 궁금해하며 매번 유심히 지켜보는 편이다.

지난 18일에 출시된 스팀 신작 '라이트 앤드 다운(Right and Down)'은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간편함에 집중한 로그라이크 덱빌딩이다. 제목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듯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사용하는 버튼은 오른쪽, 그리고 아래쪽 방향키 단 두 개 뿐이다. 네 방향 이동이 가능한 '팩맨'을 넘어 '퐁' 수준까지 회귀한 원시적인 이 게임에 우려의 마음도 들었지만, 오직 두 개의 버튼만으로 즐기는 단순한 게임 플레이 안에도 로그라이트 덱빌딩 특유의 재미는 분명히 존재했다.



게임명: 라이트 앤드 다운 (Right and Down)
장르명: 로그라이크 덱빌딩 카드 게임
출시일: 2022. 10.18
리뷰판: 출시 빌드
개발사: mc2games
서비스: mc2games
플랫폼: PC
플레이: PC



'오른쪽으로, 아래로' 진짜 이것만으로 로그라이크 덱빌딩이 되네?




'라이트 앤드 다운'은 6X5 총 30칸의 타일로 이루어진 50개의 스테이지를 탐험하는 던전 크롤러 카드 게임이다. 게임의 목표는 던전의 왼쪽 최상단에서 오른쪽 가장 아래로 이동하는 것 뿐. 단순히 아래로 나아갈 뿐이지만 그 과정 속에 플레이마다 달라지는 독특한 덱을 구성하거나, 새 능력과 유물로 영웅 캐릭터를 조금씩 성장시키는 로그라이크 특유의 게임 플레이가 담겨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 번의 모험에서 플레이어가 여행하게 되는 50개의 던전은 모두 무작위로 생성되므로, 매번 다른 형태의 모험을 기대해볼 수 있다. 랜덤하게 등장하는 던전은 숲, 설원, 화산, 공허, 황무지 등 서로 다른 몬스터와 함정이 등장하는 다섯 개 구역으로 나뉘며, 각각의 지역에서 획득할 수 있는 독특한 유물들의 수는 100개 이상에 달한다. 한 번도 죽지 않고 50개의 스테이지를 전부 통과해야 하는 기본적인 게임 구성은 매판 동일하지만, 조작법이 단순하다고 게임 플레이까지 단순해지지 않도록 게임 속 여러 무작위 요소들이 깊이를 더해주고 있는 셈이다.

게임에 깊이를 더해주는 것은 비단 스테이지의 무작위 요소들뿐만이 아니다. 플레이어는 모험에 앞서 자신과 모험을 함께할 영웅 캐릭터를 고르고, 그 영웅으로 사용할 '초기 스킬'과 '초기 무장'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총 6종에 달하는 캐릭터들, 그리고 각 캐릭터가 사용할 수 있는 3개 이상의 스킬, 무기 조합이 게임의 전략성을 더 심도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 갑옷, 물약, 적의 위치와 공격력, 유물 등 스테이지의 모든 구성 요소가 매번 무작위로 배치된다



▲ 영웅 선택 과정부터 모험을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여러 선택지가 등장한다

던전을 탐험하는 동안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인 '오른쪽과 아래 이동'을 단순히 캐릭터의 이동에만 한정하지 않고, 일종의 '스킬 커맨드'로 해석해서 또 하나의 콘텐츠로 만든 것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모험을 하는 동안 플레이어가 습득할 수 있는 모든 스킬은 커맨드 형태로 발동되는데,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커맨드를 완성해 스킬을 쓸 것인지, 꼭 필요한 유물이나 회복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 기껏 진행해둔 커맨드를 도중에 끊을 것인지, 플레이어는 계속해서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하게 된다. 스테이지의 후반부로 갈수록 한 번의 선택이 더욱 중요해지므로, 결국엔 '오른쪽으로 갈지, 아래로 갈지' 둘 중의 하나를 고르는 것뿐임에도 매번 선택을 앞두고 장고의 시간을 갖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내게 가장 잘 맞는 무기와 스킬 조합을 찾느라 몇 번의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찾아낸 나만의 조합으로 게임 플레이를 반복하며 새로운 캐릭터를 해금하고, 또 새롭게 해금된 캐릭터에 맞는 무기와 스킬 조합을 하나씩 찾아보는 일련의 과정이 장르 팬으로 하여금 게임에 몰두하게 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 정도 플레이하고 나면 '오른쪽과 아래' 버튼으로만 플레이하는 단조로운 게임이라는 인식은 어느새 잊혀지고, '또 하나의 새로운 로그라이크 덱빌딩'을 바라보는 시선만 남게 된다.



▲ 다음엔 스킬? 이동? 선택지는 둘 중에 하나 뿐임에도, 고려할 것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참신함은 합격, 다만 오랫동안 즐기기엔 한 끗이 부족하다



▲ 키보드의 모든 버튼을 빼고, 오직 S와 D 버튼만으로 '라이트 앤드 다운'을 플레이하는 모습

'라이트 앤드 다운'은 분명히 신선한 로그라이크 덱빌딩 게임이 맞다. 당장에라도 모바일 플랫폼에 이식을 고려할 수 있을 정도로 간결하고 직관적인 조작법을 갖추고 있으면서, 동시에 로그라이크 장르 게임 특유의 무작위성과 선택의 중요성 역시 잘 강조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의 라이트 앤드 다운은 참신함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오랫동안 진득이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장르 팬들이 로그라이크 덱빌딩 게임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 중요 요소들이 분명히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지나치게 운에 의존하게 되는 무작위성과 밸런스 문제다.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무작위로 등장하는 스킬과 유물, 던전의 종류까지, 여러가지 운이 동시에 따라주지 않으면 절대로 첫 시도에 클리어할 수 없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작이 단순한 만큼 플레이어가 게임 플레이에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굉장히 한정적인데, 이렇다 보니 다른 게임들보다 특히 운에 매달려야 하는 게임 구조가 자칫 불합리하게 느껴지기 쉽다.

두 번째는 '분기 이벤트'의 부재다. 로그라이크 덱빌딩 게임의 분기 이벤트는 플레이어가 직접 가상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즐기는 TRPG처럼 플레이어가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고, 다음 여정엔 어떤 인물과 사건이 등장할 것인지 기대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라이트 앤드 다운에는 50층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던전과 중간마다 쉬어가는 스테이지가 있을 뿐, 별다른 분기 이벤트가 등장하지 않는다. 상황을 묘사하는 일러스트나 대사 한 줄 찾아보기 어렵다 보니, 나중엔 숫자로 가득한 게임 플레이 화면이 마치 퍼즐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모르는 사람이 보면 스도쿠, 사천성 같은 퍼즐 게임으로 착각할지도…?



▲ 뚜렷한 스토리가 없으니, 다음엔 어떤 유물을 해금할 수 있을지 기대하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세 번째는 스토리 요소의 부재다. 오늘날 시장에 출시되는 대부분의 로그라이크 덱빌딩 게임들은 저마다 독특한 시나리오를 갖고, 죽음 이후에도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모험에 플레이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해 주곤 한다. 하지만 '라이트 앤드 다운'에서는 이러한 요소도 찾아볼 수 없다.

'50층까지 죽지 않고 나아가기'라는 아주 직관적인 목표가 제시됐지만, 목표 달성까지 플레이어를 이끄는 스토리적 배경이나, 마땅한 동기 부여 요소는 전혀 없다. 이점은 게임 자체가 가지는 전투의 재미와 참신함에 집중하고, 스토리의 유무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이들에겐 그다지 큰 결격 사유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이 내세우는 매력인 '오른쪽과 아래' 이동 방식만으로 채워진 로그라이크가 더이상 참신하게 느껴지지 않게 됐을 때, 라이트 앤드 다운에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탱하는 받침목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만약 자신이 로그라이크 게임을 플레이할 때 게임의 스토리적 배경이나 조작감을 기대한다면, '라이트 앤드 다운'은 앞서 강조한 참신한 매력들보다 아쉬운 점들이 더 먼저 드러나는, 처음부터 무언가 결여된 것 같은 게임이 될 수 밖에 없다. 로그라이크 덱빌딩이 어렵다고 생각해서 시도하지 못했던 이들조차 쉽게 배울 수 있는 아주 간단한 게임이기에, 앞서 부족하다고 여겨졌던 몇 가지 요소들의 보완이 이루어지기를 더 간절하게 바라게 됐다.




아쉬운 부분도 정말 많지만, 라이트 앤드 다운은 여전히 '가벼운 마음으로 잠깐잠깐 즐기기 좋은 로그라이크 덱빌딩' 게임이다. 스토리나 분기 이벤트의 지문을 읽기 위해 모니터를 집중해서 들여다볼 필요도 없고, 실수 없이 정확한 위치에 카드나 기물을 배치하기 위해 마우스와 키보드를 바쁘게 조작할 필요도 없으며, 여러 요소가 생략된 만큼 1회차 플레이에 걸리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키보드 버튼 두 개로 플레이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나, 역시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모바일 플랫폼에 더 어울리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그라이크 덱빌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덱빌딩 장르가 인디 게임 시장 상황 전체를 정형화시키고 있다는 부정적인 시선도 분명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더 많은 로그라이크 덱빌딩 게임이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를 응원하는 입장이다. 지금도 수 많은 게임들이 이름을 알리지도 못한 채 묻혀버리고 있는 것처럼, 차별화되는 재미와 독창성을 갖추지 못한 게임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도태될 수밖에 없다. '라이트 앤드 다운'을 포함하여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여러 작품을 양분 삼아, 향후 '또그라이크 덱빌딩'이라는 폄하 없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명작이 시장에 나타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오직 '두 개의 버튼'으로 즐기는 간편함
  • 캐릭터와 무기, 스킬조합으로 더해진 전략성
  • 다회차 플레이를 위한 수 많은 해금 요소들
  • 지나치게 운에 의존하는 무작위 시스템
  • 조우 이벤트, 분기 등 스토리 요소 부재
  • 간편함 이후 금새 찾아오는 단조로움

리뷰 플랫폼: PC (출시 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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