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더 많은 '크래프톤 웨이'가 나오길

칼럼 | 이두현 기자 | 댓글: 13개 |
"일반적으로 동시접속자가 10만 명이 넘으면 대박을 터뜨렸다고 간주했다. 시시각각 늘어나는 테라 동시접속자 수를 보며 직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날 점심 테라 동시접속자 수는 26만 명을 기록했다. (중략) 직원들의 축하 메세지를 뿌리는 김강석(블루홀 대표)의 속내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테라가 재무적으로 크게 성공할 게임이 아니라고 직감했다. 그가 보기엔 테라는 문제가 있는 게임이었다" - 크래프톤 웨이 中 -



성공한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후에 포장되어 평범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다고 했다. '크래프톤 웨이'가 출판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의 우려가 그랬다. 또 뻔한 '배그어천가'가 나오는 게 아닐까. 다행히 아니었다.

이것은 성공보다는 실패의 기록이다. 물론 '크래프톤 웨이'는 후반부 '배틀그라운드' 성공기로 마무리된다. 다만, '배틀그라운드' 성공기는 책 전체의 방향성을 바꿀 정도는 아니다. 이 책의 지독한 솔직함은 대담함을 넘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후 자서전에나 나올법한 창업자의 치부와 임원진들의 시행착오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크래프톤 웨이'는 포스트모템이다. 게임사는 실패한 프로젝트를 되돌아보는 포스트모템을 중요하게 여긴다. 실패를 실패를 남기지 않고, 경험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배틀그라운드'가 중심이 된 크래프톤은 성공한 회사이지만, '테라'가 중심인 블루홀 시절을 성공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책 내용 대부분은 블루홀 시절을 담았다.

게임업계 사람에게 '크래프톤 웨이'는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우리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열심히 버티고 나니 성공하더라"와 같은 문장은 없다. 게임회사를 시작한 사람에게 해결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먼저 겪은 사람으로서의 솔직한 고민과 말이 담겼다. 의미 없는 위로보다 낫다.

게임사 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궁금한 유저에게 책을 추천할 법하다. 대부분의 유저에게 게임사는 게임을 제공하는 회사에 그친다. 게임 그 자체에 더 관심이 간다면, 하나의 게임이 유저에게 선보이기까지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질 수 있다. 그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 '크래프톤 웨이'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때때로 사람과 사람의 갈등을 '게임'이라고 말한다. '배틀그라운드'나 '테라'보다 더 재밌는 '게임'을 책으로 접할 수 있다.

책 내용과 별개로, '크래프톤 웨이'가 의미 있는 것은 기록을 남겼다는 시도 그 자체다. 야사(野史)로 잊혀질 뻔한 이야기들이 담겼다. '크래프톤 웨이'와 같이 게임업계에도 수많은 정사(正史)와 야사가 있다. 게임업계 사람들끼리 술 마시면 나오는 이야기들은 야사, 공식 석상에서 말하거나 인터뷰로 나오는 이야기들은 정사라 할 수 있다. 정사는 이야기가 정제되어 나올 수밖에 없다. 반면, 야사는 인간적인 면이 묻어난다.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정사보다 야사가 흥미롭게 들리는 이유다.




국내 게임산업은 아직도 창업자가 현역이다. 역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요즘 국가가 게임산업을 말할 때 문화콘텐츠 수출 산업의 주역이라고 치켜세운다. 한 세대만에 조연에서 주역이 됐다. 그 기간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알려지지 않았을 게임사 안과 밖 이야기가 있다. 술자리 안주로만 남기엔 아깝다.

성공한 게임 창업자들의 배경에는 그들 스스로의 노력도 있겠지만, 유저부터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사연이 얽혀있다. 지난 시절을 글로 기록하는 것은 성공한 게임 창업자들의 의무이자 책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점에서 장병규 의장은 본인의 책임을 '크래프톤 웨이'로 보였다.

유저들에겐 게임보다 재미있는 게임사의 숨은 이야기, 새로운 게임인들에게는 방향성을 알려줄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사회적으론, 게임을 개발하고 서비스한다는 게 애들 놀이에 불과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크래프톤 웨이'가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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