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더 궁금한 게 없는 국내 게임사

칼럼 | 이두현 기자 | 댓글: 55개 |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궁금한 게 없다는 건 나쁜 신호다. 그게 연인 관계든, 게임사 컨퍼런스 콜이든. 지난주 주요 게임사들이 실적을 발표하는 컨퍼런스 콜을 진행했다. 컨퍼런스 콜에서 게임사는 지난 매출, 영업이익이 왜 그런 수치를 보였는지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 계획인지를 발표한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게임사에 궁금한 것을 묻는다.

그런데, 한 대형 게임사 컨콜 중 질의응답 시간에 침묵이 흘렀다. 꾸준히 그 게임사 컨콜을 들어왔지만, 이런 침묵은 낯설었다. 딱히 더 궁금한 게 없는 분위기다. 과거에는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고, 질문이 그치지 않던 게임사였다. 연인 관계에서 끝을 직감하게 되는 어색함이 컨콜에서 연출됐다.

지난 2분기 실적발표를 종합하면 대형 게임사 매출은 내림세를 보인다. 반면, 개발자 몸값 상승, 마케팅비 상승 등으로 인해 비용은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국내 게임산업 영업이익이 줄어들고 있다. 올해 초 IT 업계 개발자 연봉 인상 릴레이에 따라 게임업계 개발자 몸값도 상승했다. 올해 2분기 게임사 인건비는 전년 동기 대비 넥슨 29%, 엔씨소프트 14.6%, 넷마블 17.8% 증가했다.

증권가에서는 국내 게임산업 이번 성적을 '어닝쇼크'로 정리한다.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은 넥슨 42%, 엔씨소프트 46%, 넷마블 80.2% 감소했다. 줄어든 영업이익 원인을 인건비 상승에서만 찾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회사 재무제표 책임을 경영진이 아닌 노동자에게 돌릴 수 있어서다.

모바일 MMORPG, 수집형 RPG, 확률형 아이템 등으로 성장했던 국내 게임산업이 이제 주춤한 모양새다. 모바일 MMORPG 시장 변화는 엔씨소프트 실적에서 엿볼 수 있다. 엔씨소프트는 2017년 '리니지M'을 성공적으로 출시하며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을 넓혔다. 엔씨소프트 매출은 2017년 3분기 7,272억 원(리니지M 출시 효과 반영) ▷ 2020년 1분기 7,311억 원(리니지2M 출시 효과 반영) ▷ 2021년 2분기 5,385억 원으로 변화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277억 원 ▷ 2,414억 원 ▷ 1,127억 원으로 줄어들고 있다. 매출 성장에 따라 몸집을 키웠는데, 키운 몸집만큼 매출이 뒤따르고 있지 못하다. 성장과 투자의 선순환 고리가 끊어진 게 아닌지 우려된다.

유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모바일 MMORPG, 수집형 RPG, 확률형 아이템 BM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일 것이다.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PC 게임으로 큰 인기를 끈 작품이 있다. 그리고 게임사는 이 IP를 활용해 모바일 MMORPG를 내놓겠다고 강조한다. 오픈월드, 콘솔급 그래픽, 크로스 플랫폼 등 화려한 단어들로 치장됐다. 그 게임을 상상해보면 결국 자동사냥 버튼부터 인터페이스, 유료 상품 구성, 합성으로 전투력이 높아지는 시스템 등이 뻔하게 그려진다. 지난 몇 년간 반복된 패턴이다.

컨콜 중 질문이 끊긴 것은, 결국 애널리스트가 봐도 주요 게임사의 사업이 뻔해서일지도 모른다. 국내 게임산업에 기대감이 사라진 것일까.



▲ 농담이 아니라 진짜 뽑아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게임사가 손만 놓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넥슨은 슈퍼 IP 10종 발굴을 천명했고, 엔씨소프트는 본격적으로 눈을 해외로 돌리기 시작했다.

모바일 게임으로 국내 게임산업이 비정상적으로 커졌다는 분석이 있다. 확률형 아이템 BM으로 성장했는데, 이후 PC-콘솔 게임으로 유지가 되겠냐는 것이다. 이 변화의 시작이 올해 2분기에 슬슬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게임사가 모바일 게임 다음의 먹거리를 준비했는지, 이제 성적표가 나오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도 게임사 신작 발표회에 두근거림을 느껴본 지 오래다. 돈 얘기는 차치하더라도. 풋풋했던 시절, 게임사가 다음 작품으로 무엇을 내놓을지 궁금했던 시절을 다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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