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에픽세븐, 얼마나 달라졌을까

칼럼 | 윤서호 기자 | 댓글: 72개 |
"계승자님 안녕하세요. 에픽세븐 1주년을 기념하는 에픽 버스데이에 초청되셨습니다."

이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설마 지금 같은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시점에서 어느 누가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해서 오프라인 이벤트가 싹 다 취소되고 온라인으로 대체되거나, 여러 가지 악재가 벌어졌으리라 생각했을까.



▲ 이 문자를 받을 때만 하더라도, 설마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지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에픽세븐을 했다가 그 시점에서 그만뒀던 유저들이라면 그보다도 에픽세븐의 지금 상황에 대해서 더 놀라지 않을까 싶다. 돌이켜보면 에픽세븐은 최근 게임계에서 발발한 장시간의 간담회의 시초격 아니던가. 애정이 깊었던 유저들의 분노는 그만큼이나 컸고, 그걸 다 쏟아내고도 앙금이 남아서 아직 돌아오기 꺼려하는 유저도 많을 것이다. 그 해결되지 않은 앙금은 아직도 유저들이 에픽세븐에 접근하기 꺼리는 이유로 손꼽히고 있으니 말이다.

그 험난한 과제를 보고 에픽세븐을 안 하던 유저들도 혀를 내두르던 게 어느덧 2년이 지났고, 지난 8월 29일 에픽세븐은 3주년을 맞이했다. 2주년은 코로나19의 갑작스런 전파로 누구나 다 정신없던 시기였고, 에픽세븐 역시나 예정되어있던 행사가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등 혼선을 빚었다. 그런 와중에도 에피소드2를 마무리 짓고, e스포츠 대회의 초석이 될 실시간 아레나 등을 추가해나가긴 했지만, 다들 정신이 없었던 시기고 각자도생이 문제였던 시기라 크게 조명될 수 없었다고 할까.

굳이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는 많이 나아졌다고 선뜻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지난 시절의 에픽세븐의 과오가 꽤 컸기 때문이다. (조금 순화를 거쳤지만) 직설적으로 말해서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 "너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 알기나 해? 그게 쉽게 바뀐다고? 거짓말 아님?" 이런 소리를 듣기 딱 좋다고 할까.

에픽세븐은 그래픽이나 연출 퀄리티로 보면 한 편의 애니메이션 같은 게임이라는 말이 허언은 아니었지만, 당시엔 가면 갈수록 한계가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반성문으로 대변되는 빈약하고 몰입감이 없던 스토리, 유저 적대적이라는 말을 들은 운영, 매번 반복되는 콘텐츠. 거기다가 출시 초부터 논란이 된 월광 영웅에 깨져버린 밸런스, 이를 진화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보상까지. 그게 얼마나 심했으면 아직도 에픽세븐에 관심 없던 유저 사이에선 1,320만 원이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올까.



▲ 2년이 지난 지금도 유저들의 가슴 한 구석에 남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이제 와서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1주년 때만 하더라도 에픽세븐에 이런 변화가 찾아오리라고 장담을 못 했다. 오히려 금방이라도 다시 초심을 찾아버리지 않을까 일말의 불안함도 있었다. 기자가 아닌 유저 신분으로 1주년 이벤트를 참가하긴 했지만, 그 현장에서 개발진이나 운영진과 잠깐씩 만나서 이야기했을 때 조금은 당혹스러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10연차 정도는 어떤 큰 이벤트가 있을 때 한껏 풀어줘도 괜찮지 않을까 등등, 여러 가지 얘기가 오가는 동안 온도 차이가 느껴졌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땐 가치 보존, 이런 말이 먼저 나왔다가 유저들에게 질타를 한창 받고 갈팡질팡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그랬던 터라 지난 라이즈 업데이트에서 월광 영웅을 준다고 했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3주년 에고왕에서는 심지어 5성 소환권에 최초로 5성 성약 영웅 선택권도 별도로 주고, 신비 소환 10연차까지 출석 보상으로 냈다. 2년 전으로 돌아가서 나중에 에픽세븐이 이런 보상을 준다고 말하면 허튼소리라는 말을 넘어 비속어가 저절로 튀어나오지 않았을까. 그것도 네고해서 더 해준다는 그런 형태로 준다고 하면, 아마 광인 취급 받을지도 모르겠다.



▲ 그런 일이 일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1주년 보상이 이랬으니






▲ 만약 그때로 가서 2년 뒤에 이런 보상을 준다 그러면 누가 믿었을까

업데이트 로드맵을 발표하는 꼬꼬에도 변화가 있었다. 장비 보관함 추가와 관련해서는 유저들이 불편한 부분과 개발상의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면서 이를 절충해나가고자 새로운 것을 추가해나가는 과정을 설명해나갔다. 아울러 업데이트 예정인 고대의 유산 콘텐츠가 어떤 점 때문에 연기됐으며, 어떤 의도로 개발 중인지를 차근차근 짚어나갔다.

아울러 심연 120층 업데이트에 맞춰 더 많은 유저들이 120층에 도전해볼 수 있도록 이전 100층부터 110층까지의 구간을 조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1주년 이전에 유저들의 공략을 보고 더 어렵게 패치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것과는 천양지차라고 해야 할까. 여기에 콘텐츠 크리에이터 지원에 굿즈까지 보강하고 팬서비스 콘텐츠인 에정노트를 꾸준히 올리는 등, 그간 에픽세븐이 약점이라고 손꼽혔던 부분을 하나하나 다듬어가고 있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2019년 11월부터 2주 간격으로 패치 노트 라이브를 통해서 소통을 확장하고자 했고, 클리셰 덩어리라고 했던 스토리는 에피소드2부터는 갈피를 잡아간 모습이었다. 그러다 에피소드3에 와서부터는 점차 그 노력이 꽃피고 있는 단계라고 할까. 매번 디에네 서브 스토리만 좋았다, 이랬던 것이 셰나와 알렌시아 등 메인퀘스트 이야기가 점차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아울러 예전에 뿌려두었던 떡밥들이나 캐릭터들의 행보를 연결하면서, 큰 그림까지도 그려나가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서브퀘스트도 천편일률적 방식에서 미니게임이나, 이벤트 스테이지가 아닌 미션 달성 형태로 보상을 더 추가로 뿌리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변화를 시도해왔다.

초보 적대적이라는 운영도 조금씩은 고쳐갔다. 초창기 월광 5성 영웅을 얻을 수 있는 달빛의 인연뿐만 아니라 모험가의 길과 전직 퀘스트 개편, 선별 소환의 픽 저장 및 10, 20, 30번째 픽에서 5성 확정 등 2년에 걸쳐 계단을 하나둘씩 추가하면서 보완했다. 다소 사소하게 느껴질 UI도 개편을 이어가서 유저들의 편의성도 높였다. UI 구조를 전면 개편한 건 아니지만, 계속 편의 기능을 이어붙이면서 게임 내 시스템에 금방 익숙해지게 하면서 영웅 승급 및 장비 강화나 추출 등 반복 작업도 바로바로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경험치 시스템도 개편해서 속칭 개썰매를 끌고 다닌다는 쫄작도 줄이는 방향으로 갔다.









▲ 개발진이 유저의 입장에서 불편한 것을 꾸준히 개선하고자 했다

물론 이렇게 했다고 해서 에픽세븐이 갓겜이 됐다고 찬양하는 건 아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고쳐나가면서 여러 가지가 개선됐지만, 아직도 문제가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와이번 뺑뺑이로 귀결되는 콘텐츠와 장비 문제, 초보에겐 좀 힘들 정도로 고여버린 PVP, 그리고 캐릭터 스킬 레벨을 단기간에 올리기 어려운 머라고라 수급 구조까지. 이제 에픽세븐을 시작할 유저들 혹은 지금 에픽세븐을 즐기는 유저들 사이에서도 이건 아니다 싶은 문제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아직도 접근이 어려운 게임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고, 여기에 과거의 악명까지 겹쳐졌으니 커뮤니티 안에서 차마 에픽세븐을 한다고 말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아직도 이어지지 않았을까.

사람 일은 어떻게 되는 걸지 모르는 거다보니, 그런 의심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예전에 저지른 짓이 있다면 더욱더 그렇게 보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심리 아니던가. 그렇지만 에픽세븐은 2년에 걸쳐서, 이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그 결실을 라이즈 업데이트 이후 역주행과 3주년 방송으로 하나둘씩 보여주고 있다. 원래 에픽세븐이 저력이 있는 게임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그 저력이 묻혀버릴 만큼 그때의 충격이 컸던 걸 생각하면 쉽게 올릴 만한 성과는 아니랄까.

▲ 3주년 방송은 좋아요 3,333개 공약을 넘어 5천 개 이상을 달성할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봉사'와 '환원', 에픽세븐이 3주년에 내세운 키워드다. 말로는 누군들 못하겠냐고 코웃음을 치겠지만, 1주년 이전 그리고 1주년 현장을 기억하는 입장에선 이 단어가 나온 것만으로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앞서 얘기했지만, 처음에 에픽세븐이 강조했던 말은 '가치 보존'이었으니까.

가치 보존, 생각해보면 여러 게임사들이 은연중에 쓰곤 하는 말이었다. 패치를 할 때마다,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가치'라는 말은 자주 등장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우연인지 모르지만 그런 말을 오래도록 자주 했던 게임들은 꼭 한두 번씩은 유저들의 질타를 받았다. 캐릭터의 가치, 아이템의 가치, 게임의 가치. 그 사이에 유저는 없었다. 그러니 유저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할지라.

그 고집을 버리고 에픽세븐은 2년간의 노력 끝에 다시금 궤도에 올랐다. 아직 갈 길도 멀고 문제도 남아있는 데다가, 외부의 시선은 아직 그때 그 시절에 머물러 있긴 하다. 그러나 적어도 에픽세븐을 하는 유저 사이에서는 이젠 그 다짐을 한 번은 믿어보고 기다려줄 만큼 궤도에 올라섰다. 비난 일색이던 댓글들도 점차 이젠 고쳐졌다는 댓글이 달릴 만큼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고, 구글 인기 순위 1위와 매출 6위에 오르는 역주행까지 해냈다. 최근 게임계가 다사다난해서 유저들의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 2년 전 그 상흔이 아직도 남아있는 상태인데도 말이다.

앞으로 에픽세븐이 지금까지의 노고와 각오를 잊지 말고, 매번 나오는 말처럼 20년은 더 갈 게임이 되길 바란다. 처음에 발을 크게 헛디디고 헛발질을 해 고꾸라져서 고난의 시절을 보냈어도, 마음을 고쳐먹고 유저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하면 다시 일어설 여지가 있다는 좋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한 번 나락으로 떨어진 뒤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올라올 수 없다고만 한다면, 누구도 그런 시도를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부디 그때의 초심은 잊고, 3주년에 했던 그 말을 지켜나가면서 더욱 발전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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