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브레이브걸스 역주행, 게임도 가능한가요

칼럼 | 강승진 기자 | 댓글: 20개 |
달리는 차 안에 우린 아무 말 없네
너는 그렇게 운전만 해
난 핸드폰 보네 넌 창밖을 보네
난 너무 답답해 우리 사이는 막막해



유키카니 레인보우 노트니 하며 한창 시티팝이 플레이리스트를 채워나가고 있을 작년 여름 즈음. 문득 눈에 들어온 '브' 무슨 그룹의 '운전만 해'는 거의 아침 출근길 주제곡이 될 정도로 가슴에 확 와 닿았다. 특유의 멜로우한 분위기. 여기에 먹먹한 권태기 이야기가 담긴 가사는 사라진 줄 알았던 연애세포님께서도 가슴 아파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지금에야 역주행의 새 아이콘으로까지 떠오른 '롤린(Rollin')'. 그 후광을 본 노래처럼 비치고 있긴 하지만, '운전만 해'도 '그 노래 좋았는데'라고 인제야 말하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만듦새를 자랑한다. 이에 숨어 듣는 명곡이 아니라 나만 알던 숨겨져 있던 명곡으로 '숨듣명'의 정의를 새로 하고 있기까지 하다.

어쨌든 4년 전 곡을 통한 짧은 재활동. 그리고 예능과 온라인 채널 곳곳을 누비는 브레이브걸스의 모습은 꿋꿋하게 버틴 이들의 성공 신화를 현세대에 재현한 듯하다. 그 화려한 재기 뒤에는 인기 아이돌이 기피하는 위문열차 출연 활동이 군인들의 든든한 화력 지원을 이끈 원동력처럼 그려졌고 이른바 '존버'가 미덕인 양 칭송받는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역주행을 기대하라고 말하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듯 기다림은 그 어떤 것보다 고달프며 이는 게임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절대 최근 마음이 동한 브브걸 홍보를 위해 쓰는 기사가 아니다.




게임은 역주행이라는 단어가 쉽게 어우러지지 않는 몇몇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장르나 트렌드는 호흡이 짧아 워낙 빠르게 바뀌는 데다가 그래픽 등 눈에 보이는 요소만을 강조했다간, 몇 년 지나지 않아 낡은 그래픽만 강조한 올드게임이 돼버린다.

그렇다고 시대를 타지 않는 장르나 스타일은 이미 클래식으로 불릴 법한 게임이 여럿 있다. 엄청난 한방을 준비하지 않고서야 한 번 빛을 못하면 이들 게임은 다시 주목받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매스 미디어에서 역주행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임은 출시 초기 불완전한 게임이거나 개발 의도가 정확하게 구현되지 못한 것들이다.

현 상황이 어떻든 업계에서는 거의 역주행 교본으로 불리는 '레인보우 식스: 시즈'는 초창기 부실한 콘텐츠와 핵 문제를 잡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업데이트를 통해 훌륭한 SF 게임으로 평가받은 '노 맨즈 스카이'는 게임사(史)에서 손꼽을 수준의 과대광고로 제목 그대로 아무도 즐기지 않는 게임이었다.

여기에 게임을 되살리는 데는 그만큼의 인력이 들어가고 이를 견뎌낼 자금도 필요하다. 유비소프트야 유럽 시가총액 1위의 기업이다. 이미 전 세계에 상당한 판매고를 올리고 투자까지 받아 든든한 자금원을 마련한 헬로게임즈도 주력 타이틀인 '노 맨즈 스카이'를 살릴 여력이 됐다.

물론 업데이트를 통해 게임 평가를 뒤집는 것도 정말 이례적인 몇몇 예일 뿐이다. EA는 처절한 평가로 팬을 잃은 바이오웨어 '앤섬'을 리부트하는데 무려 1년을 공들였지만, 결국 제대로 끝도 맺지 못하고 개발 중단을 선언했을 정도다.

이러니 당장 손에 떨어질 매출이 급한 중소 게임사는 자신 있게 게임을 내놓았다손 치더라도 허덕이는 자금난에 성공을 기다려 줄 여유를 가지기 힘들다. 여기에 코로나19가 빚은 업계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며 이들은 매출과 고용 감소의 늪에 허덕이고 있다. 중견 기업들이 앞다퉈 전에 없는 수준의 연봉 인상 소식을 전하는 것 역시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긴다.

결국, 중소 게임사든 세계 굴지의 게임사든 짧고 굵게, 그리고 안정적인 자금원이 될 게임에 더 쉽게 눈이 갈 수밖에 없다.




고난을 이겨낸다는 역주행 스토리의 감동도 아름답지만, 사실 가장 좋은 건 실력 있고 매력 있는 이들이 일찌감치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게임은 이런 인기 정주행이 가능한 판이 그나마 돌아가고는 있다.

게임은 음악 방송 출연을 위해 목숨을 걸다시피 할 필요가 없다. 앱 피쳐드나 메인 페이지에 이름을 올리면 그 화력부터 차이가 나겠지만, 'ALTF4'처럼 스트리밍 영상 한 번에도 쏟아지는 인기를 체감할 수 있다. 여기에 '발하임'은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커뮤니티 등을 장악했고 실제 판매량 역시 이런 관심과 함께 덩달아 늘었다. 게임을 즐긴 유저들이 직접 내린 긍정적 평가는 괜히 게임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물론 역주행이든 정주행이든 차체가 튼튼하지 않다면 곧 퍼져버릴 낡은 자동차와 다름없을 터. 막상 TV에 나온 가수가 춤과 노래,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자리에서 머뭇거렸다면 신드롬처럼 번진 인기는 반짝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대중의 눈에 들 수 있는 건 정말 손에 꼽고 꼽은 것. 그중에서도 한정될 수밖에 없다.




돌고 돌아 결론은 잘 만든 게임이다. 어렵사리 유저들의 눈길을 받았을 때 브레이브걸스가 그랬듯 가진 매력을 전부 드러내야 한다.

하지만 게이머들의 선택을 받을 소수의 게임이 되길 마냥 기다리라고는 선뜻 말할 수 없다. 힘내라는 말도 당장 돈이 없어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 하는 개발자들에게는 귀따가운 훈수일 뿐이다. 그렇기에 시장의 분위기와 게이머들의 모습도 조금은 바뀌어야 한다.

잘 만든 게임이 더 쉽게 눈에 띌 수 있는 게임 마켓. 스샷 한 장 없는 광고보다는 게임의 장점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홍보와 매체. 그리고 한없이 0에 가까운 획득 확률의 아이템보다 다양한 재미를 즐길 줄 아는 게이머. 마지막으로 이런 '게임'을 만들 줄 아는 게임사.

어쩌면 이런 변화가 빛을 보지 못한 게임의 운 좋은 역주행 대신 실력으로 호평받는 게임을 만날 기회를 만들 것이다.

그러니까 실력이 느껴지는 '운전만 해'도 좋은 노래니까 많이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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