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텐센트는 왜 롤드컵 개최지를 급하게 변경했을까?

칼럼 | 김병호 기자 | 댓글: 119개 |



지난 25일 새벽, 라이엇 게임즈 e스포츠 총괄을 맡은 존 니덤(John Needam)은 공식 채널을 통해 한 가지 소식을 발표했다. 2021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개최지가 중국에서 유럽으로 변경된다는 내용이었다. 존 니덤은 코로나 19의 재유행으로 몇몇 나라가 비자 발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개최지를 이전한다고 밝혔다.

개최지 이전은 대회 개최를 두 달 정도 앞둔 시점에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존 니덤은 개최지 이전 소식을 전하면서도 변경된 개최지가 어디인지 밝히지 않았다. 최근에서야 지난 5월 MSI가 열렸던 아이슬란드가 유력하다는 외신발 기사가 나왔을 뿐이다.

라이엇 게임즈가 개최지 이전을 진작부터 고려했다면, 당연히 변경된 개최지도 함께 발표가 되는 게 순리이다. 월드 챔피언십 정도 규모의 대회가 치러지는 장소를 두 달 안에 섭외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바꿀 장소도 섭외하지 않은 채 이뤄진 개최지 이전 결정은 꽤나 급하게 느껴진다.

라이엇 게임즈의 최대주주인 텐센트가 중국 내 월드 챔피언십 개최에 열정적이었다는 점도 이번 결정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텐센트는 코로나 19가 발발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지난해에도 월드 챔피언십 개최를 강행했다. 또한, 텐센트는 코로나 19로 인해 2020 월드 챔피언십 대회 운영에 차질이 있었다며 2021 월드 챔피언십도 다시 중국에서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해외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국 내 대회 개최를 강행했던, 그리고 두 해 연속으로 대회를 열겠다던 텐센트는 왜 2021 월드 챔피언십 개최를 포기했을까? 그리고 대회를 두 달 정도 앞둔 시점에서 왜 이렇게 성급하게 개최지를 변경했을까?




라이엇 게임즈는 코로나 19의 재유행으로 중국 비자 발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말 비자 발급이 어려워졌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중국 비자 발급을 담당하는 업체에 문의를 해보았다. 업체에 따르면, 중국 비자 발급이 어려워진 지는 1년 8개월 정도 됐고, 올해 초에 한차례 더 강화됐다. 비자 발급의 난항을 겪을 거라는 예상은 올해 초부터 가능했다.

현재 중국 비자는 중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가 초청장이 있어야만 발급받을 수 있다. 즉, 월드 챔피언십 대회를 치르기 위해서는 중국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정부의 분위기는 게임 업계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중국 관영 매체 신화통신이 발행하는 경제참고보(經濟參考報)는 지난 8월, 청소년들의 온라인 게임 중독을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 신문은 하루 여덟 시간씩 게임을 하는 청소년들을 예시로 들며 ‘게임은 정신적 아편’이라고 게임 산업을 비난했다. 기사는 “정신적 아편(게임산업)은 수천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지만, 어떤 산업이나 스포츠도 한 세대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걸 허용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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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아편에 비유한 점은 중국 내에서 최고 수위의 비판이다. 중국은 19세기 두 번의 아편 전쟁 패배로 서구 열강들에 의해 나라가 분열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중국은 마약에 대해서 무관용을 원칙으로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중국은 그만큼 마약에 대해서 예민하다. 그럼에도 중국의 관영매체는 게임을 마약에 비유하며 비판했다.

기사는 게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삭제됐지만, 여파는 컸다. 홍콩 증시에 등록된 텐센트 주가는 기사 게재 이후 10%가량 빠지면서 급락했다. 한때 1,000조를 넘겼던 텐센트 시가 총액은 현재 40%가 빠진 약 600조 원 수준에서 머무는 중이다. (일부는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는 텐센트와 최근 주가가 약간 반등한 점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밖에 넷이즈를 비롯한 대부분의 중국 게임 업체 주가가 하락했으며 블리자드 등 해외 업체 주가도 함께 영향을 받았다.



▲ 올해 초만 해도 중국 정부는 프로게이머 자격증을 발급하겠다고 했다.

게임 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제재는 이후로도 계속 강화되는 추세다. 8월 30일에는 또 한 번의 규제가 있었다. 중국 정부는 만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의 게임 이용시간을 일주일에 세 시간으로 제한했다. 정부 관계자는 "한동안 미성년자의 온라인 게임 남용이 일상생활에서 부정적 영향을 미쳐 미성년자의 정신적 건강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이러한 조치를 시행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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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제재는 중국 게임 산업뿐만 아니라 중국 e스포츠 업계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중이다. 현재 중국 내 프로게임단들은 종목을 막론하고 18세 미만 프로게이머들을 로스터에서 제외하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의 1부 리그인 LPL에서도 로스터에서 제외된 인원이 나왔다. 정규리그 10위를 기록한 OMG는 서브 미드라이너 ‘크렘’을 나이 제한을 이유로 로스터에서 말소했다. 이 밖에 2부 리그인 LDL에서도 18세 미만의 많은 선수들이 미성년자 게임 이용시간 제한 정책 때문에 로스터에서 제외되고 있다.

이렇듯 게임 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철퇴(규제)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텐센트가 2021 월드 챔피언십을 자국 내에서 강행하기는 쉽지 않았을 듯하다. ‘코로나 19 재확산으로 인한 비자 발급의 어려움’도 개최지 이전의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 속에서 텐센트가 대규모 e스포츠 대회를 중국 내에서 개최하기 부담스러웠을 거라는 예상도 합리적인 추측이다.




중국정부의 게임 산업 규제는 한국 e스포츠 업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가장 빠르게 체감할 수 있는 곳은 올해 11월의 이적시장이 될 전망이다. 중국의 게임 산업 규제가 지속된다면, 게임 산업에 대한 투자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중국 e스포츠 게임단들 역시 많은 연봉을 지출하며 선수를 영입하기에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

한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임단 관계자는 “중국이 작정하고 선수를 영입하려 한다면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라고 토로했다. 한국 프로게임단이 지급할 수 있는 선수의 연봉과 중국 프로게임단이 지급할 수 있는 연봉의 차이는 그 정도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프로게임단이 중국 정부의 규제로 인해 투자를 망설인다면, 국내 프로게임단은 올해 이적 시장 경쟁에서 전보다 적은 지출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선수들의 해외 진출은 중국이 아닌 북미행이 주류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추측일 뿐이기에 다가오는 이적 시장에서 중국 프로게임단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중국 미성년자의 게임 이용시간 제한은 한국 아카데미 사업의 활성화를 유도할 수도 있다. 중국 프로게임단은 유망주 육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아카데미 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이뤄진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게임 이용시간 제한으로 유망주 육성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유망주 육성은 프로게임단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꼭 유지돼야 하는 사업이다. 만약 한국의 프로게임단이 중국 e스포츠 유망주들에게 중국 정부의 규제를 피해 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중국 프로게임단은 유망주를 계속 육성하고 한국 프로게임단은 이를 이용해 수입을 늘려 서로에게 윈-윈(Win-Win) 효과를 노려볼 수 있다. 실제로 이 같은 방법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겠지만, 양 측 모두가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전략이다.




2021년 중국은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1980년대, '먼저 부자가 되라'며 선부론(先富論)을 외쳤던 중국은 2021년 공동부유(共同富裕)를 말하며 '함께 잘살자'고 말한다. 그리고 공동부유를 이루기 위해서는 합법적인 소득은 보장하되 너무 높은 소득은 조절하고, 고소득 계층과 기업이 사회에 더 많이 보답해야 된다고 강조한다.

중국 정부가 가장 먼저 겨냥한 곳은 텐센트를 포함한 이른바 빅테크 기업이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텐센트는 우리돈 9조 원에 달하는 기부금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정부가 제시한 규제보다 더 높은 강도의 방안을 자체적으로 내놓으며 정부의 요구에 응하고 있다. 연일 쏟아지는 강력한 규제에 두 손 들고 항복 선언을 한 셈이다.

중국 정부가 일으킨 변화의 물결은 중국 게임 산업을 넘어 국내로, 다시 국내 e스포츠 업계까지 밀려올 것으로 보인다. 변화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시류가 변하며 일어난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잘 타기 위해 국내 e스포츠 업계가 민감하게 반응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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