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 번 사면 되는 풀게임 시대의 종말

칼럼 | 강승진 기자 | 댓글: 38개 |
똑같은 게임으로 어떻게 더 많은 돈을 벌까. 최고의 미덕이 돈인 게임사의 고민도 이 단계에서 보통 가장 오래 머물러있는다.




단순히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나 장식품이라면 아주 약간은, 더 간단하게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시장지배력과 가격 차별같이 경제 이론적인 부분은 차치하고서 간단히 생각해보자. 물건이 필요한 사람이 공급량을 넘어선다면 가격은 오른다. 제작에 들어가는 재료비와 인건비가 많다면 일정 수준 이하로 가격을 낮추기는 어려워진다. 기술 노하우나 브랜드 가치가 반영된다면 가격은 더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의 가격은 일반 공산품의 논리가 쉬이 적용되지 않는 품목이다. 실물 상품 거래가 이루어지는 리테일의 경우 제작 소요가 있다지만, 이론상 무한정 공급할 수 있는 디지털 게임은 공급과 수요의 원칙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풀프라이스라는 가격 상한선의 구조도 존재한다. 대개 플랫폼사의 주도 아래 협의가 이뤄진 이 풀프라이스 탓에 제작비나 마켓팅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도 게임 하나의 판매 가격은 크게 올리기 어렵다.

개발비 적게 들인 게임에 수요만 많다면 무제한 공급으로 개발비의 수백, 수천 배의 이득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개발비가 높아져도 판매 가격은 일정 수준에 머무르다 보니 최저 수익을 내기 위한 판매량 하한선은 점점 높아진다.

가격을 올릴 수 없으니 게임사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개발 비용을 줄이거나, 더 많이 팔 게임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수익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 게임 산업 협회 ESA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미국 게임사의 1인당 평균 보상액은 약 12만천 달러(1억3,474만 원)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동안 9만 달러 선에 그치던 임금은 임금 보조금 등의 증가로 수년 사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임금이 오르니 효율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개발 기간을 줄이고 게임 출시까지 소요되는 인원도 줄여야 한다.

다만 대형 게임사일수록 비교적 낮은 퀄리티의 게임이 회사 전체 신뢰도에도 영향을 주는 만큼 개발 비용을 줄이기 쉽지 않다. 일정 수준의 개발자와 개발 기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 미국 내 개발자 1인당 연간 총보상(ESA 보고서 단순 추정치)

해법은 잘 팔릴 게임에 집중하는 일이다. 실제로 대형 게임사들은 안정적인 판매량을 위해 검증된 프랜차이즈의 후속작. 혹은 다양한 수의 유저들 끌어모을 수 있는 복합장르 게임 개발에 열을 올린다.

반대로 프랜차이즈의 인기가 시들해지거나 전략적 실패를 거뒀을 경우 그다음 작품을 과감하게 멈추기도 한다. 대형 게임사 주도의 신규 IP 개발은 독특한 일로 평가받을 정도이며 그마저도 후속작 개발을 장담 받기 어렵다. 회사를 떠난 '데이즈 곤'의 게임 디렉터 제프 로스는 판매량 때문에 SIE가 후속작 개발을 취소했다고 밝혀 화제가 됐을 정도.

■ 관련 기사 - [기자수첩] 할인가로 산 나 때문에 후속작이 취소됐다면

반대로 8년 만에 겨우 VR 게임 하나 후속작으로 나온 스플린터 셀처럼 독보적인 인기가 있어도 비주류 장르이거나 회사에 더 잘나가는 타이틀이 있다면 얼마든 후속작 개발이 멈출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내는 일인데 유비소프트는 그런 수익 다변화를 가장 최근 언급한 대형 게임사다.

회계연도 2021년 실적 발표에서 유비소프트의 CFO 프레데릭 뒤게(Frédérick Duguet)는 이전에 언급한 '매년 3~4개의 AAA게임 출시'를 더는 목표로 하고 있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AAA의 공백을 채울 타이틀로 하이엔드 프리투플레이(High-end free-to-play)게임을 지목했다.

팬들이 회사에 기대하는 바를 잘 알고 있듯 유비소프트는 이런 무료 게임의 투자가 기존 AAA급 게임 경험 제공 기회를 줄이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의혹의 싹을 미리 잘라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긴 했지만, 무료 게임을 통한 수익원 확대를 그리는 건 변함이 없다.

일각에서는 유비소프트의 발표가 그저 업계 전체의 변화 과정을 명시한 것일 뿐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늦은 변화라고 평하기도 했다. 실제로 하이엔드 F2P 게임과 AAA 게임의 병행으로 큰 효과를 본 기업은 액티비전이다.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회계연도 2019년 중 액티비전의 네 분기 순매출은 각각 3.17억, 2.68억, 2.09억, 14.26억 달러의 순매출을 기록했고 이 기간 영업 이익률은 각각 23%, 21%, 12%, 49%였다. 이 중 4분기는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의 성적이 적용된 분기다.

즉, 회사를 대표하는 AAA 게임이 나오지 않을 때 액티비전은 2억 ~ 3억 달러 수준의 매출을 올린 셈이다.

하지만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기반의 무료 멀티플레이 '콜 오브 듀티: 워존' 출시 이후 네 분기 동안 각각 5.19억, 9.93억, 7.73억, 16.57억 달러의 순매출을 올렸다. 신작 '콜 오브 듀티: 콜드 워' 성과가 반영된 4분기를 빼도 35%, 56%, 45%의 영업 마진을 기록했다. 이 1 ~ 3분기 기간의 영업이익은 회계연도 2019년 순매출을 웃도는 수치기도 하다.



▲ 막대 그래프는 순매출, 꺽은선 그래프는 영업이익률
순매출 안정세와 영업이익률 모두 워존 이후 두드러진다

별개의 무료 게임을 제공하는 액티비전의 방식과는 다르지만, 자사 대표 프랜차이즈에 인앱 요소를 넣은 EA나 2K는 이러한 디지털 판매가 얼마나 지속적인 매출을 올리는지 서구 시장에 일찌감치 알려준 회사다.

FIFA 넘버링 시리즈에서 라이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피파 얼티밋 팀은 지난해 EA의 순매출 56.29억 중 무려 28.9%를 책임졌다. 비중 역시 매년 꾸준히 상승해왔다. 풀 게임에서 나오는 매출이 꾸준히 55%를 넘기던 테이크 투도 결국 지난해 NBA 2K21, GTA 온라인 등에서 나오는 반복 지출 순매출이 20.74억을 기록, 전체 순매출의 61.5%를 기록하며 그 비중이 절반을 넘겼다.

유비소프트는 한 번의 구매로 게임의 모든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풀게임 판매 버전에 아이템 위치가 그려진 유료 지도를 팔기도 하고 치장 아이템을 유료로 판매하기도 했다. 여기에 추가적인 개발 소요가 들어가는 DLC를 다수 발매하며 수익 증대를 노렸다.

하지만 이미 전체 게임 구매 가격을 지불한 팬들에게는 그저 상품을 더 팔아보려는 수작쯤으로 보일 수 있고 DLC의 판매도 일시적인 수익만을 가져다줄 뿐이다. 유저들을 잡아둘 수만 있다면 꾸준한 유지 보수로 새 타이틀 출시만큼의 매출을 올리는 워존의 성과는 꽤나 군침이 흐르는 수익 모델이었을 것이다. 물론 유비소프트 뿐만 아니라 많은 대형 게임사 역시 그럴 테고 말이다.



▲ 직접 성능에 영향을 주든, 주지 않든 풀게임 구매자에게는 돈을 더 내라는 의미로 보일 수 있다

노출 증가와 높아진 접근성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게임이 경쟁하는 시기에 한 번 팔아 수익을 내는 풀게임의 이점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여기에 단순히 게임을 파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온라인 서버 유지, 꾸준한 패치, 추가 개발도 이루어져야 한다. 유저 입장에서는 당연한 권리이지만, 게임사 입장에서는 돈 나올 구실이 없는 곳에 되려 돈을 부어야 한다는 의미다.

하나의 게임에 어차피 개발 코스트를 들일 거라면 꾸준히 매출이 나올 수 있는 무료 게임을 선택하는 게 일견 더 높은 수익성을 낼 것처럼 보인다. 물론 유비소프트가 워존과 같은 AAA급 무료 게임을 표방한 만큼 그저 모바일로 옮겨낸 열화판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에 어울리는 게임을 만들리라 기대해봄 직하다. 특히 하이엔드급 무료 게임의 낮은 진입 장벽은 신규 유저 유입으로 이뤄지고 자연스럽게 콘솔이나 PC로 출시되는 프랜차이즈 풀게임의 관심도 덩달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무료 게임의 돈벌이가 지나치게 빼어나다면 되려 풀게임 개발을 위축시킬 수 있다. GTA 시리즈와 락스타 게임즈는 그런 우려의 시선을 받는 시리즈, 회사 중 하나다. 넘버링과 외전을 포함해 1년, 길어야 4년 주기로 개발되던 GTA 시리즈는 2013년 GTA V 이후 무려 8년 동안 후속작 소식이 없다. 7세대 콘솔인 PS3, Xbox 360으로 출시된 게임은 8세대, 9세대 콘솔로 리마스터 될 정도다.

작품 하나에 들어가는 개발 코스트가 과거와 비교도 안 되게 올랐고 '레드 데드 리뎀션2'를 선보였다고는 하지만, 락스타가 2,000명 이상의 직원과 10개 가까운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여전히 아쉬운 개발 간격이다.

만약 온라인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며 돌아가지 않았다면 성난 팬심과 주주들의 성화에 이렇게 오래 신작을 만들지 않을 수 있었을까? 물론 안정적인 수익이 더 오랜 기간 완벽한 게임을 만들 여유가 됐을 수도 있지만, 시리즈가 정체하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즐길 거리 꾸준히 업데이트해줘서 좋지만, 차기작을 기대하는 팬에게는 아쉬움도 함께 주는 GTA 온라인

과연 대형 게임사의 프리투플레이는 풀게임의 새로운 장을 열까? 아니면 강력한 매출 증대로 풀게임이 프리투플레이 게임의 소개서 정도로 전락할까. 분명한 건 시대는 변하고 있고 고전적인 풀게임의 자리는 언제든 휘청거릴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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