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에서 가장 '빡센' 등급을 받은 게임 - 폴아웃: 뉴 베가스

기획기사 | 윤홍만 기자 | 댓글: 8개 |



국내에서 정식으로 게임을 출시하고 서비스하기 위해선 게임물관리위원회를 통해 등급분류를 받아야 합니다. 얼마나 잔인하고 선정적인지 사행성 문제는 없는지 등을 심의한 후 그에 따라 연령대별 이용 등급이 정해지는 식입니다.

등급분류는 폭력성, 선정성, 사행성, 공포, 언어, 약물, 범죄 7가지 항목으로 결정됩니다. 가장 흔한 건 폭력성과 언어일 겁니다. 선혈표현과 신체훼손이 두드러지거나 게임 내 욕설 등이 과도하게 사용되면 청불 등급을 받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어지간한 게임도 7가지 항목 모두 충족시키는 경우는 드물다는 겁니다. 청불 등급을 받은 막 나가는 게임의 대표격인 GTA5만 해도 공포를 제외한 6개에 그쳤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GTA5도 받지 못한 등급분류 '몰표'를 받은 게임이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게이머들이 회자하고 있는 명작 '폴아웃: 뉴 베가스'가 그 주인공입니다. 가만 생각하면 이상할 수도 있습니다. 꽤 잔인하긴 했지만 혐오스러울 정도였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거든요.

'폴아웃: 뉴 베가스'는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선정적이며, 온갖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그런 게임이었을까요. 레드 데드 리뎀션과 더불어 등급분류 7개 항목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폴아웃: 뉴 베가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등급분류 그랜드 슬램 달성 '폴아웃: 뉴 베가스'
11년이 지났음에도 사랑받는 명작




2010년 10월 19일 출시한 '폴아웃: 뉴 베가스'는 폴아웃3의 후속작이자 외전으로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한 게임입니다. 오늘날 시리즈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작으로까지 칭송받는 '폴아웃: 뉴 베가스'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오히려 폴아웃3만 못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폴아웃3에서 기술적으로 큰 발전이 없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실제로 폴아웃3는 오늘날 폴아웃 시리즈의 새로운 근간을 제시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쿼터뷰 턴제 RPG였던 폴아웃2에서 폴아웃3로 넘어가면서 숄더뷰와 1인칭 시점을 결합하고 여기에 실시간 액션을 베이스로 기존의 턴제 느낌을 살린 V.A.T.S.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혁신적인 변화를 이뤘을 정도입니다.







그랬던 폴아웃3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게 '폴아웃: 뉴 베가스'였으니 아무래도 형보다 못한 아우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당시 메타크리틱 평점 역시 이를 방증하고 있죠. 폴아웃3는 90점대를 기록했지만, '폴아웃: 뉴 베가스'는 80점대 중반을 기록하며, 무난한 명작 정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유저들의 평가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지만요.

'폴아웃: 뉴 베가스'는 전반적으로 폴아웃3에서 좀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넓은 맵은 탐험의 재미를 안겨줬고 복합적인 팩션 시스템은 선악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세력에 도움만 주면 된다는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더욱 살려줬죠. 여기에 더해 더욱 풍부해진 사이드 퀘스트는 폴아웃3를 뛰어넘었다고까지 평가받을 정도였습니다. 단순히 사이드 퀘스트의 양을 늘리는 게 그친 게 아니라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특수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퀘스트의 진행과 결과가 달라지게 한 겁니다. 선악의 이분법이라는 한계에 머물렀던 폴아웃3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발전한 셈입니다.




이에 따라 스토리텔링 역시 훨씬 강화됐습니다. '폴아웃: 뉴 베가스'에 사용된 대사만 65,000줄가량으로 당시 모든 RPG 가운데 가장 많은 수준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가 얼마나 스토리텔링에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죠.

이러한 변화들은 어쩌면 배달부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기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폴아웃: 뉴 베가스'는 한 차례 억울한 죽임을 당한 배달부의 복수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미스터 하우스에게 배달을 가던 중 베니와 위대한 칸에게 납치당해 총알을 두 발이나 맞고 매장당했지만, 죽지 않고 수수께끼의 로봇 빅터의 도움을 받아서 살아나게 됩니다. '폴아웃: 뉴 베가스'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무덤에서 기어나온 배달부가 이제 복수를 위해 황무지를 횡단하게 된 거죠.




최종 목표가 복수인 만큼, 배달부는 폴아웃3의 주인공인 외로운 방랑자보다 훨씬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상대가 누구든 어떤 세력이든 개의치 않죠. 카르마에 따라 선악이 갈리긴 했으나 궁극적으로는 선을 추구하는 쪽이었던 시리즈의 주인공들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복수가 최우선 목표이기 때문이죠.

선악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건 퀘스트 진행 방식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폴아웃3의 선택지는 기껏해야 한두 개에 불과했습니다. 그것도 적을 살릴지 죽일지 고르는 게 대부분이었죠. 그러나 '폴아웃: 뉴 베가스'는 여기서 더 나아갔습니다. 비선형적이고 다채로운 선택지가 주어졌을 뿐 아니라 그 선택이 분기를 만들어 스토리가 다양하게 전개되게 한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사이드 퀘스트에서 특정 지역을 점령해야 할 때 폴아웃3였다면 천천히 하나씩 암살하거나 화려하게 정면돌파하는 선택지 둘 중 하나밖에 없었을 테지만, '폴아웃: 뉴 베가스'에서는 여기에 더해 화술을 이용해 서로 싸우게 할 수도 있습니다.




팩션에 따라 스토리가 다른 식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위대한 칸과 시저의 군단의 동맹에 대한 게 대표적이죠. 시저의 군단 편이 아닌 상태라면 서로 이간질해 동맹을 파기시킬 수 있습니다. 동시에 NCR 편이라면 둘 사이에 균열이 간 틈을 이용해 위대한 칸과 동맹을 주선할 수도 있죠. 어찌 됐건 플레이어인 배달부의 선택에 따라 이들 팩션의 스토리 역시 다르게 흘러가는 셈입니다.

덕분에 '폴아웃: 뉴 베가스'는 할 때마다 다른 경험을 안겨줍니다. 퍽(Perk)과 능력치에 따라 선택지가 늘어나고 다양한 팩션과의 관계 등을 통해 같은 사이드 퀘스트라도 결과가 천차만별로 갈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육성 측면에서도 더욱 깊이가 더해졌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특정 장비 착용이 강제되던 폴아웃3와 달리 퍽마다 다양한 개성을 부여하고 장비 종류를 늘려 다양한 콘셉트로 즐길 수 있게 됐죠.








등급분류 '몰표' = 절대 해선 안 되는 게임?
게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담았을 수도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메타크리틱 평점은 80점대 중반에 머물렀지만 유저들 사이에서는 시리즈 최고의 명작이라고 평가받는 '폴아웃: 뉴 베가스'는 등급분류 몰표를 받은 게임이란 거죠. 얼핏 절대 해선 안 될 정도로 선정적이고 잔인한 게임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폭력성, 선정성, 사행성, 공포, 언어, 약물, 범죄 7가지 항목을 모두 포함하고 있긴 합니다. 가볍지도 않죠. 신체 절단은 예사고 선정적인 묘사도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심지어 배달부가 여성일 경우 요부 퍽을 갖고 있다면 유혹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여기에 뉴 베가스라는 부제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도박이 추가되어 즐길 수도 있죠.

그렇다고 '폴아웃: 뉴 베가스'가 막장의 끝을 달리는 그런 게임이란 건 아닙니다. 등급분류 몰표를 받은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그런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거지 선을 넘거나 그런 건 아니거든요. 술이나 마약 등 약물에 대한 게 나오지만 약에 취해 다니지도 않고 약에 취해서 성범죄를 저지른다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공포 역시 마찬가지죠. 핵전쟁 이후의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루는 만큼, 온갖 돌연변이가 나오지만 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계관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정도입니다.




아마 이런 점들이 '폴아웃: 뉴 베가스'가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폴아웃4의 등급분류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최신작에서는 오히려 '폴아웃: 뉴 베가스'에서 할 수 있었던 것들이 빠졌으니 더욱 '폴아웃: 뉴 베가스'만의 특징으로 자리 잡은 셈입니다.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시리즈 최신작과 비교하면 밀릴 수밖에 없음에도 가끔 시리즈 가운데 어떤 게임이 최고인가 하는 논쟁이 벌어질 때면 으레 상위에 랭크될 정도죠. 시리즈 최신작으로서 그래픽이나 편의성 측면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건 폴아웃4일지 모르지만, 오픈월드 게임으로서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고 끝맺음이 확실한 건 '폴아웃: 뉴 베가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지금도 많은 폴아웃 팬들이 '폴아웃: 뉴 베가스'의 뒤를 이을 게임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없으면 만든다는 마인드로 폴아웃4를 기반으로 한 뉴 베가스 MOD를 만들 정도죠. '폴아웃: 뉴 베가스'가 폴아웃 팬들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폴아웃: 뉴 베가스'는 등급분류와 관련해 모든 항목을 충족하지만, 과하지 않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당히 매운맛이 입맛을 돋워주는 거랑 비슷합니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선정적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고평가 받지도 못했을 겁니다.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정식 출시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모탈컴뱃의 경우 폭력성에 한해서는 끝을 달린다고 해도 될 정도였기에 번번이 국내 정식 출시가 무산됐을 정도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모든 항목에 대해 등급분류 몰표를 받았다는 건 마냥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만큼 다양한 콘텐츠를 녹여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폴아웃: 뉴 베가스'가 출시된 지 올해로 약 11년이 지났습니다. 등급분류 몰표에 청소년이용불가 게임이었기에 아마 당시에는 즐기지 못했던 청소년 게이머들 역시 많았을 겁니다. 당시 10대였던 게이머들은 이제 20대가 됐습니다. 이제는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상황이죠. 최신 게임과 비교하면 투박하고 다소 불편한 점들 역시 많을 겁니다. 그럼에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별것 없습니다.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아직 '폴아웃: 뉴 베가스'를 즐기지 않은 게이머들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감히 추천해 드리고자 합니다. 어른이 된 지금이라면 눈치 볼 필요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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