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인터랙티브 무비'가 아닌 이유

게임뉴스 | 강승진 기자 |
이미 만들어진 이야기를 감상하듯 즐기는 게임. 퀀틱 드림은 주어진 이야기의 공간을 넓혔다. 플레이어는 넓은 공간 안에서 보다 다양한 선택의 권한을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한다. 할 수 있는 것, 선택할 수 있는 게 많고 그에 따라 이야기의 구조도, 내용도 달라진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 다른 시퀀스, 다른 이야기에도 분명한 변화와 그에 따른 결과를 불러온다.

이러한 퀀틱 드림의 자유로운 이야기는 '헤비 레인', '비욘드 투 소울즈', 그리고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으로까지 이어졌다.

여기에는 모든 작품의 작가, 디렉터로 활약하는 데이비드 케이지 퀀틱 드림 대표의 철학이 그대로 녹았기에 가능했다. 당연히 그와 함께한 짧은 인터뷰는 25주년을 맞은 퀀틱 드림의 성장, 게임에 구현하고자 하는 목표와도 맞닿아 있었다.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한 퀀틱 드림의 작품은 오늘날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많은 게임에 영향을 줬다. 업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장르에 큰 축을 세웠다.

하지만 회사의 핵심 인물인 케이지 대표는 처음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온 인물은 아니다. 꽤 오래 작곡가로 활약한 그는 어느 날 게임 개발에 뛰어들었고 1997년에는 퀀틱 드림을 설립, 스튜디오 첫 작품인 '오미크론: 노매드 소울'을 시장에 내놨다.

그는 게임이 가진 통합성을 게임 업계에 발을 담근 이유로 꼽았다. 케이지 대표는 문학 작품,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게임은 이러한 많은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미디어였다. 일찌감치 스스로 빅 게이머였다는 회상한 그는 문학 전반에 담긴 스토리 텔링과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의 결합을 시도했다. 영화라든가, 모션 효과, 음악 요소, 스토리텔링 등 게임에는 많은 요소를 담아낼 수 있었다.

음악, 혹은 스토리텔링이라는 하나의 표현을 넘어 다양한 장르적 특성을 결합한 게임은 어쩌면 그가 선택할 가장 적합한 영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매드 소울은 이러한 도전적 목표가 담겼다. 하고 싶은 건 다 담을 수 있는 게임 말이다. 이러한 목표가 어느 정도 성과를 냈는데 플레이어는 게임 안에서 전투도 하고, 운전도 하고, 총도 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스토리 역시 충실하게 담았다.

특히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에리크 샤이의 '어나더 월드', 폴 퀴세의 '플래시백' 등 데이비드 케이지 대표와 같은 프랑스 출신 개발자의 어드벤처 게임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루카스 아츠의 인디아나 존스 같은 게임도 어드벤처의 틀 안에서 모험을 그려냈다. 이에 그 역시 기본적인 목표를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 안에서 구현했다.




다만 노매드 소울에는 오늘날 퀀틱 드림이 그리는 세계의 모습이 맛만 보여졌을 뿐이었다. 오히려 액션 어드벤처라는 틀을 좀 더 덜어내고 어드벤처로서의 정체성을 부각한 '파렌하이트'가 오늘날의 퀀틱 드림의 시작을 알렸다 할 수 있다.

'파렌하이트'는 이날 케이지 대표가 직접 한 말을 빌려 말 그대로 퀀틱 드림의 터닝 포인트였다.

'파렌하이트'가 출시된 2005년 즈음에는 어드벤처의 트렌드는 오픈 월드였다. 비교적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는 월드를 구현하는 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탐험 요소를 줄이려는 케이지 대표와 퀀틱 드림의 시도는 이른바 트렌드를 역행하는 행위였다.

케이지 대표는 자신들만이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여러 실험을 하려 했다. 향후 출시된 퀀틱 드림의 게임들은 '파렌하이트'에서 쌓은 것에 살을 붙이고, 새로운 가지를 접목해 커져 나갔다.

다양한 선택과 그에 따라 명확하게 바뀌는 이야기. 25년의 퀀틱 드림 역사에서 스튜디오에 개성을 부여한 작품은 분명 '파렌하이트'였다.

하지만 개발 초기부터 '파렌하이트' 개발이 환영받진 못했다. 개발 당시 순수 어드벤처는 사장되는 추세였고 많은 게임사가 슈터, 액션에 더 치중했다. 누군가는 케이지 대표에게 어드벤처는 구식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만 그저 똑같은 어드벤처를 만들고자 할 생각은 없었다. 퀀틱 드림 어드벤처의 내러티브는 퍼즐을 풀고,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을 통해 풀어나가는 대신 경험이 중심이 되는 내러티브 구축을 목표로 했다.

대표적인 예가 주인공의 아침 루틴이다. 게임 속 캐릭터는 플레이어의 조작과 함께 아침에 침대에서 잠을 깨고, 샤워 하고, 옷을 갈아입고, 커피를 마시고, 출근 전 아내와 간단한 작별 인사를 나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당시 게임들을 떠올린다면 눈이 번쩍 뜨일 경험이었다. 액션 게임 속 주인공은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구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퀀틱 드림의 게임 속 주인공은 우리의 일상을 게임에 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아내와 아침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는, 일상적인 모습을 직접 조작하면서 플레이어는 캐릭터와 친밀감을 쌓는다. 캐릭터에 애착을 갖는다. 그게 가능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파렌하이트'를 통해 연 가능성은 확신이 되어 '헤비 레인'을 비롯해 퀀틱 드림의 게임 전반에 적용됐다. 다만 후속작에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부분도 있는데 그게 바로 게임 오버의 요소다.

'파렌하이트'에만 하더라도 게임 내 특정 구간에는 QTE가 존재했다. 플레이어가 필요한 액션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실패 이전 구간으로 플레이어를 되돌려보냈다. 일종의 게임 오버가 존재하는 식이었다.

실제로 슈팅이나 점프, 도주 같은 액션 내에서 플레이어에게 능동적 플레이 요소를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그러한 액션 요소를 배제한 채 게임을 그렸다면, 퀀틱 드림이 지금까지 구현한 여러 게임 속 내러티브가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선택과 결과가 능동적으로 연계되는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하는 액션 시퀀스를 그리기 위해서는 QTE가 필요했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랬다.

"전투든 추격전이든 모든 것을 다 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도 상호 작용하도록 했다. QTE는 처음 우리가 생각한 해결책이었고 그걸 '파렌하이트'에 접목했다.

하지만 최신작인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을 보면 그런 부분이 개선됐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역시 답을 찾아가고 있다."

그렇게 오늘날 퀀틱 드림의 게임에는 분명한 게임 오버가 없다. 선택지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플레이어 개개인의 도덕적 신념에 기반한 선택을 요구하고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가 기다릴 뿐이다.




게임 오버와 함께 퀀틱 드림의 게임에 포함되지 않은 게 또 하나 있으니 바로 빨리 감기나 특정 세션을 건너뛰는 스킵 요소다. 최신작인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는 이미 플레이했던 챕터로 넘어가는 정도의 기능만이 담겼을 뿐이다. 스토리텔링 기반의 많은 게임이 일찌감치 이를 채택했던 만큼 기능 구현상의 어려움은 크지 않으리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케이지 대표는 이러한 기능 구현을 고려하지 않았다. 플레이어가 각각의 신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즐길 수 있길 바랐다. 또 조금의 선택만으로도 그 내용이 달라지는 만큼 완전히 똑같은 장면을 다시 플레이하는 것도 아니다.

전에 해보지 않은 선택지를 택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것. 그게 퀀틱 드림, 그리고 케이지 대표의 목표였다. 그렇기에 게임을 빨리 감아 즐기는 식의 플레이는 지양코자 했다.

유명인 기용에 대해서도 명확한 목표하에 진행했다.

퀀틱 드림의 첫 작품인 노매드 소울에는 전 세계 음악 시장에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한 데이빗 보위가 2개의 캐릭터로 구현됐고 비욘드 투 소울즈에는 윌럼 더포, 엘리엇 페이지처럼 일찌감치 명배우로 이름을 떨친 인물들이 참여했다. 코너 역의 브라이언 데카트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인기와 함께 더 큰 명성을 얻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마케팅에 의한 접근으로 본다. 게임의 퀄리티가 좋지 않으니 유명인을 고용하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유명해진 계기가 바로 엄청난 재능이다"

유명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능력, 연기가 그들이 게임의 모션캡처 배우로, 목소리로 선택된 이유라는 것이다. 케이지 자신이 구상한 이야기 속 역할의 모습과 최대한 비슷한 이미지를 낼 수 있는 인물. 기존의 연기 방식보다 더 어려운 게임 속 연기를 훌륭히 수행해낼 수 있는 인물. 그게 캐스팅의 핵심이었다.

실제로 이러한 재능을 가진 배우들은 각각의 작품에서 빛을 냈고 그이를 바탕으로 게임 역시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화면 안에 풀어낼 수 있었다.




퀀틱 드림의 게임은 실제 배우만이 아니라 실제 세계의 이야기를 담는다. 인간성, 인공지능과 AI, 소수자에 관한 차별. 이러한 이야기는 단순히 게임을 위해 온전히 창작된 주제가 아니다. 게임 안에 현실 속 갈등 등의 문제 제기였다.

게임 산업 안에서도 비디오 게임이 현실의 문제를 다루면 안 된다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케이지 대표는 이야기했다. 하지만 게임이 아닌 많은 매체, 장르를 가리지 않은 많은 예술이 한계가 없는 모든 것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케이지 대표의 생각이다.

플레이어는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고, 어떻게 느끼는지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자신이 직접 연관되어 있지 않은 어려운, 하지만 분명 당면한 현실 세계의 문제에 직접 당사자가 되어보는 것이다.

물론 퀀틱 드림 역시 이렇게 현실 속 이야기를 게임에 담아내는 데에 압박감을 느꼈다. 팀 안에서도 이러한 방식의 연출, 주제 표출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논의가 있기도 했다.

"돌아보면 이러한 접근 방식에 결국은 많은 이들이 호평했다. 그렇기에 현실 세계의 문제를 다루는 데 더 큰 용기를 가지게 됐다.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고, 퀀틱 드림이라는 스튜디오의 DNA에 각인될 수 있었다."

다만, 그는 지난 강연에서도 언급했듯 문제를 다룰 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실 속 문제가 그저 웃음거리로 쓰이지 않도록, 또 플레이어가 진지하게 그 이야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쯤 돼서 흔히 쓰이는 인터랙티브 무비라는 표현에 관해서도 의문이 생겼다. 국내에서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게임 방식을 모두 인터랙티브 무비, 혹은 인터랙티브 필름이라고 부른다.

해외에서는 풀 모션 비디오(FMV)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적 방식의 게임으로 해당 표현을 한정하기도 한다. 케이지 대표 역시 자신들의 게임에 서명할 때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게임이라고 줄곧 소개했다.

그리고 사용한 표현처럼, 명확한 차이와 그간의 철학이 그들의 게임에 담겼다.

"인터랙티브 무비는 영화 시리즈라는 느낌이 강하다. 관객들이 보고 싶은 것을 골라서 보여주는 게 인터랙티브 무비인데 우리가 추구하는 것과는 방향이 다르다.

실시간 3D 엔진으로 게임에 좀 더 치중해 그 안에서 플레이어가 자유를 가진다. 그리고 그 자유는 작든 크든 어떠한 결과로 이어진다.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임이 퀀틱 드림이 원하는 바다.

액션의 경우 제약이 있을 수 있다. 반면 우리 게임은 보다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다. 캐릭터가 스포츠를 즐기거나 대화 하고, 싸우거나 추격전을 펼치기도 한다. 그게 우리 게임이 가진 자유고,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게임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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