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인왕 개발진이 만든 '어려운 파이널 판타지'

리뷰 | 박광석 기자 | 댓글: 12개 |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줄곧 정통 JRPG 특유의 감성적인 스토리와 여기에 몰입감을 더해주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강점으로 내세워왔다. 20년이 넘는 역사를 거치는 동안 시리즈 팬들에게 스토리와 비주얼 모두에서 기대와 감동을 선사하는 인기 IP로서의 입지를 다져왔고, 자연스레 후속작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래서일까, 스퀘어에닉스가 선보이는 파이널 판타지 스핀 오프 작품들은 메인 넘버링 시리즈가 보여주는 매력과는 조금 다른, 다소 도전적인 시도들이 엿보이곤 한다. 코에이 테크모가 지난 E3 2021 행사를 통해 처음 선보인 FF 시리즈 최신작, '스트레인저 오프 파라다이스 파이널 판타지 오리진(이하 파판 오리진)'처럼 말이다.




파판 오리진은 기존의 파이널 판타지 게임들과는 차별화되는, 이례적인 느낌의 파이널 판타지다. 상성과 시너지 중심의 전략적인 턴 방식 전투 대신 '다크소울'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높은 난이도와 액션 중심의 전투가 적용됐고, 스토리 역시 모티브가 된 시리즈 초대 작품 '파이널 판타지'와는 조금 다른 방향의 독자적인 스토리로 꾸며졌다.

게임 컨셉에 대한 소개를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이게 파이널 판타지에 어울릴까?'라는 걱정과 우려였다. 파판 오리진의 개발사인 코에이 테크모 팀 닌자, 그리고 프로듀서인 야스다 후미히코가 이미 '인왕' 시리즈를 통해 해당 장르에 대한 이해도와 저력을 보여준 바 있다지만, 굳이 '파이널 판타지여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신작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상 주요 타겟은 시리즈의 팬들이 될 것이 분명한데, 소울라이크 방식의 고난이도 액션은 기존의 파판 시리즈에선 볼 수 없었던 방식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파판 오리진을 온전히 '소울라이크' 장르의 게임으로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파판 오리진은 소울라이크 특유의 악랄한 난이도 대신 비교적 빠르고 경쾌한 3인 협력 플레이 중심의 전투를 도입했고, '피닉스의 깃털' 아이템을 사용하면 빈사상태의 파티원을 부활시킬 수도 있다. 이처럼 전투의 부담감을 낮춰주는 여러 장치가 적용되어 있기에, 개발자들 역시 "소울라이크가 아닌, 어려운 RPG로 봐달라"고 소개한 바 있다.

좋게 표현하자면 타겟층을 더 넓혔다고 볼 수 있겠으나, 냉정하게 보면 어느 한 쪽에도 집중하지 않은 '이도 저도 아닌 시도'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첫인상에선 기대보다 우려가 더 컸고, TGS 데모 빌드를 먼저 체험해볼 기회가 생겼을 때도 걱정의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데모 빌드를 직접 플레이해보고 난 뒤,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한방 한방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어려운 전투 난이도와 호쾌한 액션 연출은 '인왕' 시리즈나 소울라이크 명작인 '세키로'를 떠올리게 했다.

게임을 파판 시리즈의 후속작 개념으로 플레이할 것인지, 혹은 '소울라이크' 게임처럼 어려운 액션 게임으로 플레이할지 유저가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세 개의 난이도를 제공하는 점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메인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는 '스토리 모드'로 게임을 플레이할 경우, 소울라이크 게임 속 '패링'에 해당하는 소울 실드 스킬로 게임 내 모든 공격을 다 막아낼 수 있다. 정확한 타이밍이 요구되는 패링과 달리 소울 실드는 비교적 넉넉한 발동 시간을 갖으므로, 액션 조작이 익숙지 않은 초보 유저들도 금방 적응할 수 있다.

악랄한 난이도의 소울라이크식 액션을 맛보고 싶은 유저라면 난이도 선택에서 '하드'를 선택하면 된다. 시연에서는 중간 난이도인 '액션'을 선택했음에도, 체험판 빌드의 최종 보스인 엘레멘탈 코어를 공략하기 위해 여러 차례 게임 오버 화면을 봐야만 했다.

이때 무작정 어려운 난이도로 좌절감만 키우는 게 아닌, 도전할 때마다 "아 이렇게하면 깰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과 여지를 제공하며 반복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게 만드는 절묘한 레벨 설정 역시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 '소울 실드'로 흡수한 적의 공격을 활용하면 큰 상성 효과를 볼 수 있다

액션 요소보다 시리즈 전체에 대한 좋은 기억을 품고 파판 오리진을 접한 유저라면, 게임 속에 반영된 다양한 파판 시리즈 요소들을 찾아보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사하긴'이나 '봄', '커얼', '사보텐더'처럼 시리즈 전통의 몬스터들을 만나볼 수 있다 보니, 마치 먼 타지에서 오랜 지인을 만난듯한 반가움이 더해졌다.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클래스와 무기, 스킬 구성에도 파판 시리즈의 향취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리제네, 케알가, 프로테스 등 치유 마법을 사용하는 백마법사나 점프를 전투에 활용하는 용기사, 그리고 각종 속성 마법을 구사하는 흑마법사 등이다.

플레이어는 전투에서 사용할 두 개의 클래스를 미리 설정해두고, 각 상황에 맞는 클래스로 잡을 바꿔가며 유동적이고 전략적인 전투를 치를 수 있다. 두 명의 파티원에게 어그로를 돌리고 원거리에서 캐스팅이 필요한 대형 속성 마법을 구사하거나, 보스의 기믹과 패턴을 파악한 후 순간의 허점을 파고들어 강한 근접 공격을 퍼붓는 등 다양한 공략 방식을 제공하는 것이 파판 오리진 전투의 특징이다.



▲ 적의 기본 속성을 알고 있는 파판 시리즈 팬은 대처하기도 쉽다



▲ 스핀오프 타이틀인 만큼, 파판 시리즈의 팬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TGS 데모 빌드의 전체 플레이 타임은 약 2시간가량에 달한다. 소울라이크 게임의 보스전처럼 기믹을 이해하지 못하면 클리어하기 어려운 보스전 두 개가 포함됐기 때문에, 플레이 방식에 따라 플레이 타임은 더 길어질 수 있다.

만약 오프라인 행사장의 부스 시연존에서 게임을 플레이했다면, TGS를 통해 최초로 공개되는 왜곡된 빛의 수곽 맵의 보스는 구경도 해보지 못하고 부스를 떠나야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번 시연은 데모 빌드 전체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기에, 누구나 집에서 자신의 페이스대로 느긋하게 공략을 찾아가며 즐길 수 있다.

전체적으로 만족감 높은 시연이었지만, 도통 정을 붙이기 어려운 캐릭터 디자인은 여전히 아쉽게 느껴졌다. 게임 스토리상 핵심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기 위해 아저씨 주인공을 채용했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기획자인 노무라 테츠야의 향취가 진하게 묻어나는 현대식 의복과 이해하기 어려운 컨셉의 동료 디자인, 그리고 아저씨 셋이 '카오스'를 쫓아 떠난다는 중2병 스토리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PS5와 Xbox 시리즈 X/S 플랫폼으로 지원되는 파판 오리진의 TGS 데모를 플레이해볼 계획이라면, 스토리와 등장인물들에 대한 관계 등은 머리 속에서 비우고, 전투 액션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 이롭다. 기존에 다른 파판 시리즈를 즐겼던 추억이 있다면, 어떤 몬스터들이 적들로 등장하는지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파판 시리즈의 하나로 출시된 이상 모두에게 스토리 전체를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으므로, 오는 3월에 출시될 예정인 정식 버전에서는 이세계로 날아온 세 명의 아저씨가 의기투합하여 카오스 토벌을 떠나게 되는 배경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이 더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관련기사 : [인터뷰] 파이널 판타지 오리진, "고난이도 RPG, 소울라이크 아니다"
  • 잘 잡힌 '고난도' 액션 공식과 조작감
  • 다채로운 직업과 액션, 볼만한 그래픽
  • 멀티플레이는 AI가 없으니 괜찮지 않을까?
  • 그래픽 옵션 조절 다양하게 부탁드려요
  • 다소 아쉬운 성장과 잡 시스템 활용
  • 너무 빠르고 설명이 모자란 초반 스토리
  • 노는게 눈에 자주 밟히는 동료 AI

리뷰 플랫폼: PS5 (출시 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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