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데...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8개 |



5월 27일, 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이하 CA)의 개발자 대담에서 '토탈워: 삼국'의 업데이트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이란 발표가 있었다. 새로운 DLC는 물론이고, 밸런스 패치를 포함한 어떤 업데이트도 없을 거라는, '사후관리 종료' 통보였다.

커뮤니티는 한순간에 혼돈의 도가니가 되었다. 게임 하나에 수십개의 DLC를 팔아치우는 CA의 상술에 익숙해진 팬 게이머들은 대부분 '알면서도 당해준다'는 마인드로 꼬박꼬박 DLC를 사온 이들이고, '토탈워: 삼국'이 그간 출시한 DLC는 다른 토탈워 시리즈에 비하면 현저히 적었기 때문이다. 5월 27일 당일에도 '다음 DLC는 무엇일까'를 주제로 신나게 떠들던 게이머들은 이 소식 한 방에 한동안 합죽이가 되었다.

이후 반응은 스팀의 게임 평가가 잘 보여준다. 다음날인 5월 28일에만 1,600건이 넘는 부정적 리뷰가 찍히면서 게임 평가는 '압도적 부정적'으로 수직낙하했다. 100% 감정에 의한 평가다. 업데이트 중지 발표 전이든 후든, 게임 내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한 번쯤 생각해 보았다. 어차피 게임이 출시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업데이트가 멈추는 건 당연한 흐름이다. 그런데 굳이 그걸 말로 해야 했을까?

CA는 '토탈워: 삼국'의 개발을 멈추고, 개발팀을 독립시켜 '삼국지' 배경의 새로운 게임을 개발할 것이라 밝혔다. 업데이트 중단에 대한 당위성을 언제 나올지 모를 신작으로 대체한 거다. 여기서, 과정을 조금 바꿨다고 가정해 보자. 가벼운 밸런스 패치라도 조금씩 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개발 중이라는 신작의 소개와 플레이 영상을 공개하면서 동시에 "이 새로운 작품의 개발에 전념하기 위해 아쉽게도 기존의 '토탈워: 삼국' 업데이트는 더 이상 약속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다 나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이렇게만 했어도 훨씬 아름다운 그림 아니었을까?

'삼국 없는 삼국지'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게임 산업이 성숙되는 과정에서 도드라진 '게이머와 게임사 간 공감대의 유리화'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그리고, 이는 비단 CA만의 문제가 아닌, 국내외 게임 산업에서 전반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일종의 세태에 가깝다.

밈이 되어 지금까지도 껌처럼 씹히곤 하는 3년 전 블리자드의 발표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는 게이머들은 '이모탈 발표할 때 디아블로4에 대한 약간의 언급이라도 있었으면 분위기가 훨씬 화기애애하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을 하지만, 현실에서 디아블로4는 1년 후에나 발표되었고 그 이전의 1년은 30년 가까운 블리자드 역사상 가장 많은 안티가 발생한 해였다.

본인들은 재미있고 센세이션한 발표가 될 거라 생각했지만, 정작 게이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까닭이다. 게이머와의 공감대를 완벽하게 형성해 전성기를 누렸던 블리자드의 과거를 생각하면, 퍽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지난 겨울 판교를 강타한 트럭 웨이브도 마찬가지. 게이머들이 사비를 지출해가며 트럭을 보내며 내건 대부분의 이유는 '말이 안 통해서'다. 전쟁 중에도 대화로 평화를 찾는게 비일비재한 마당에 아예 말이 안 통한다는 건 서로 생각하는 구조와 가치관이 완전히 다를 정도로 공감대가 없다는 뜻이다. 이 상황에서 게이머가 개발사의 생각에 공감대를 맞춰야 했을까? 아니면 그 반대가 타당할까?

게임 산업이 태동되던 시절, 많은 게임 개발사들은 규모나 만드는 게임에 관계없이 게이머들의 응원을 받으며 개발을 이어왔다. 지금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시장이 작았던 당시, 게이머들에겐 게임을 만든다는 것 그 자체가 응원할 일이었으며, 당시 개발자들 대부분은 스스로 게이머였으며, 보다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꽤 오래 지났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간수와 죄수들처럼, 생산자와 소비자로 입장이 달라진 그룹은 점점 공감대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이를 '어쩔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다 여기까지 왔다. 20년도 더 된 게임이 완벽한 게임이니 숫자 하나도 바꾸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게이머들의 '결제 태도 불량'을 말하기까지 말이다.

억지로 게이머가 되라 말하긴 어려울 거다. 어떻게 하라고 말해 봐야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 말짱 헛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바라는 것'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게이머의 마음을 이해하는 개발사가 얼마나 좋은 게임을 만드는지를 오래 전에 겪어 보았기에, 그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이나마 개발사와 게이머가 공감대를 형성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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